아침 산책을 나섰다. 한참 걷다가 아차! 아파트 출입카드를 안 가지고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나갔다가는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카드를 가지러 다시 오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마주 오는 한 여성이 보였다. 운동복 차림의 단발머리 여성이었다. 모르는 사람이어서 그저 눈인사나 하고 지나가려는 데 상대방이 갑자기 “罗老师!(나 선생님!)”하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별 신기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새로 이사 온 이곳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 내 성까지 정확하게 알까? 더욱이 이곳에서 나를 부르는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사뭇 반가운 기색이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바로 2년 전이었다. 이곳에 입주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 때 만났던 몇몇 주민들의 모습을 머리 속에 열심히 떠올려 보았다.
그래도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더 적극적으로 자기 집의 동과 호수를 말했다. 그때서야 어렴풋이 기억나는 한 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은 영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때는 머리를 묶고 있었던 그녀가 지금은 단발머리였고, 옷차림도 집에서 입는 평상복 차림의 모습을 줄곧 보아 왔던 것이다. 짧은 바지에 가볍게 티셔츠를 걸친 지금 그녀의 모습과는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한마디로, 수더분하고 전형적인 가정주부로 기억되고 있었는데 이렇게 발랄한 여학생 같은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니까 예전의 그녀의 이미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다시 기억을 더듬어 확인하니 그녀가 누구인지 확인이 되었다.
2년 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을 때 입주민은 스무 가정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따라서 아파트 안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은 거의 알 수가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길을 지나는데 한 남성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옆 동에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집 사람이 늘 집에 있는데 저희 집에 좀 놀러가 주세요. 댁은 무척 교양이 있어 보여서요.”라고 하며.
낮에 출근하는 남편이 낮에 집에 혼자 있는 아내가 무료할 것 같아서 친구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아내를 배려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 남성은 애처가임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남성이 가르쳐 준 주소로 그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집을 찾아간 첫날 아예 함께 저녁까지도 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2년이 지난 것이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왔다가 일 년쯤 지나고 다시 중국에 와서 그녀에게 연락을 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얼마 뒤에 그녀는 바쁜 일이 있으니 자기가 연락하면 그때 만나자고 하더니 종내 소식이 없어서 작년에는 만나지를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마주치듯 만나서는 먼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나도 반가웠다. 나는 운동을 하며 물었다. “少龙包(작은 만두) 먹으러 갈래요?”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그 만두가게가 있었다. 좀 멀기는 했다. 왕복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저는 아침은 잘 안 먹지만 사오롱바오(少龙包)는 좋아해요. 걷기에는 좀 머니까 제 차로 가요!” 한다. 그녀 덕분에 자동차로 편하게 만두가게로 갔다. 사오롱바오(少龙包)와 더우장(豆浆)을 시켜서 함께 먹었다. 그녀가 ”리즈(荔枝) 좋아해요? 근처에 큰 재래시장이 있는데 함께 가 보실래요?” 한다.
만두가게를 나왔는데 뜻밖에 그녀의 동서를 만났다. 둘은 그들의 사투리로 재빠르게 이야기를 나눈다. 만다린어밖에 모르는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 짐작만을 할 뿐이다.
재래시장의 규모는 엄청났다. 과일, 야채, 생선, 고기 등 없는 것 없이 다 있을 뿐 아니라 슈퍼마켓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함이 확! 느껴지는 물건들이 즐비했다. 나는 주꾸미와 샐러리, 밥에 얹어 먹을 완두콩을 조금씩 샀다. 돌아오다가 리즈도 한 근 샀다. 한국에서는 뷔페식당에나 가야 먹어보는 과일이다. 냉동 리즈는 별로 맛이 없지만 재래시장에서는 금방 딴 것을 가져나와서 팔기 때문에 더 신선하고 달고 맛있다.
나는 이번에 열대과일을 많이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벌써 망고(芒果), 류롄(두리안, 榴莲), 하미과(哈密瓜), 망고스틴(山竹), 피타야(용과, 火龙果) 등 몇 가지 열대과일을 사다 놓았다. 조금씩이지만 하나씩 맛을 보고 가려는 것이다.
선교지에서는 현지인과 친해야 살기가 편하다. 지역정보도 그렇지만 여러 가지 생활정보도 현지인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지역으로 옮길 때마다 좋은 이웃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열심히 한다.
아무튼 오늘 만난 이웃은 꼭 만나야 할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번에 왔을 때 내가 먼저 연락을 했지만 만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이웃이 먼저 반갑게 인사해 주어서 다시 교제가 시작된 것이 참 기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녀는 내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었나 보다.
사진 | 네이버 캡처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