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지난호 
북쇼핑
2018.5.2  통권 189호  필자 : 다니엘  |  조회 : 6225   프린트   이메일 
[특별 기획]
티베트선교의 현황과 사역의 돌파를 위한 제안들

티베트 이야기
월리엄 캐리, 썬다 싱 등 믿음의 선진들로부터 시작된 선교 이후 200여 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황은 티베트선교가 든든히 서 가는 데는 여전히 역부족 상태이다. 무슬림선교는 현 선교사적 시점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며 회자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슬림지역으로 선교사들이 여전히 파송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선교에 비해 티베트선교는 역으로 숨겨져 있으며, 관심과 연구도, 사역적인 면에서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게다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해외포교에 주춤한 사이 티베트불교는 서구 주요 도시와 대학으로 사람들을 내보내서 그 나라에서 불자가 된 서구인들이 티베트로 들어와서 티베트 현지 기독교 선교사와 심하게 대립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영어를 가르치고 의술을 지원하며 그들이 성지라고 여기는 티베트 곳곳에서 공덕을 쌓고 자비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티베트사역자들은 지친 듯이 보인다. 힘써 섬기고 가르쳐 놓으면 어느새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티베트인들에게 민족종교말살자처럼 인식되어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고, 공안(경찰)들에 대해서는 늘 예민해야 한다. 사방이 온통 적이다. 앞서 사역하신 분들의 열매도,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도 하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우리한테 허락된 새롭고 온전한 도전을 주시기 위한, 새롭게 시작해야 할 단계로 나아가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인 것을 믿는다.

우리의 영원하신 중보자의 힘을 덧입어 기도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야만 하는 많은 믿음의 일들, 티베트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그 영혼들을 섬기는 사역자들(한•중)한테 쏟으시는 은혜의 복음이 그 땅과 영혼들을 변화하게 하시리라 확신한다. 아직도 많이 열리지 않은 티베트선교를 위하여 충분한 기도의 양이 채워져야 한다. 더 많은 이들이 이 땅을 밟으며 탄식의 분량을 채워야 할 시점이다. 오늘 이 글을 통해서는 티베트를 다 이야기 할 수 없겠지만 필자의 책 《티베트 & 티베트인》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했고 필자의 경험에 의존해서 기술한 것이 많아 다른 사역자들과 견해가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둔다.


티베트 그리고 초기 선교


티베트불교의 특수성

티베트불교사를 언급할 때 일반 불교사가 갖는 특이성뿐만 아니라 그 토양으로써 티베트불교가 갖는 특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첫 번째 특수성은 불교의 교리를 모태로 하는 불교 그 자체이면서도 원시불교나 소승•대승불교와는 많이 다른 형태로 독특하게 진행되었다. 둘째로 티베트고원(설역고원)이라는 폐쇄된 환경에서 생겨나고 성장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정치와 결탁이 심하다는 것과 넷째는, 활불(活佛)[전생활불(轉生活佛)의 약칭이며, 화신(化身) 라마(喇嘛, 라마교의 고승(高僧)이라고도 한다. _편집자주]사상이 존재함으로써 ‘라마교’로 불리는 까닭으로 다른 나라의 불교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특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수성에 입각하여 티베트불교가 특히 라마교로 불리는 이유를 묻는다면 첫째로 티베트불교의 주술성(呪術性)을 들 수 있다. 종교 일반에 있어서 주술은 신앙하는 자가 경우에 따라서 아직 믿지 않는 자의 현실 생활 속에서 길흉화복과 양재초복(禳災招福)을 모종(某種)의 영매자한테 기대하는 데서 생긴다(실제로 티베트 일반인들의 신앙은 티베트불교-라마교 교리보다 그들 선조로부터 내려온 샤머니즘인 본교(本敎)에 더 의지하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주술을 부릴 줄 아는 자는 당연히 특수한 영능자(靈能者)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영매력을 갖춘 이를 ‘라마(활불)’라고 생각한다.


또한 티베트불교에 밀교적 색채가 농후한 이유는 당시의 인도 불교에서 영향을 받은 바 컸겠지만 동시에 티베트인들이 자신의 종교적인 주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도 묵과할 수 없다. 그래서 승려 계급에서는 티베트불교 문화가 일반인들에게는 토속신앙 뵌교(본교)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은 티베트사역자들이 복음을 제시하기 전에 티베트의 문화와 현상에 대해 파악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중요한 일임을 말해준다.


둘째로 티베트인들의 라마에 대한 광적인 존숭(尊崇)이 티베트에 라마교를 탄생시킨 이유가 되겠다. 주지하다시피 불교의 삼보귀의(三寶歸依)에 대해 라마교는 라마보(寶)를 추가시킨 ‘사보귀의’가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경우 라마는 삼보와 신앙자 사이의 중개자로 숭배되며, 영원한 진리인 법도 라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앙자와 결부될 수가 없다. 원래 라마는 스승, 선지식(善知識) 또는 선우(善友)의 뜻으로 교법(敎法)을 신앙자에게 교시(敎示)하는 자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본래 인격 그 자체였던 라마보는 결국 삼보의 종합체, 삼보 그 이상의 존재로 승화되었다.
 

더구나 달라이라마를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그리고 판첸라마를 아미타여래의 화신으로 본다. 종교적 영위(靈威)를 정치적인 최고위(最高位)로 끌어올린 라마교는 다시 그것을 그들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보살의 화신으로 존숭한다. 여기에서 달라이와 판첸은 단지 정령(精靈)의 전생자일 뿐만 아니라 그 영성을 대승불교의 대표되는 보살, 여래로 계승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티베트불교를 라마교로 부르게 하는 기본요소는 ‘라마는 곧 활불’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동시에 티베트불교의 4가지 특색(주술성, 라마에 대한 광적인 존숭, 활불사상, 종교와 정치의 결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초기 티베트선교 현황
처음으로 티베트를 통찰한 서구인은 예수회(Jesuits)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중세 기독교도들의 왕국을 히말라야의 오지에서 발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1624년 인도에서 건너와 찹파랑(Tsaparang)에 선교회(mission)를 세우고, 서부티베트문화센터를 건립했다. 18세기 초 교황청은 카푸친(Capuchins)에게 티베트를 선교활동 지역으로 승인했고 그는 1707년 라싸(拉薩)에 선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예수회가 이에 불만을 품고 티베트를 떠나면서 갈등이 생겼고 1745년 모든 선교활동은 중단되었다.
 

티베트어 사용권에서 가장 성공한 선교사들은 모라비아교파(Moravians)였다. 그들은 데시데리의 감화를 받아 1885년 레(Leh)에 정착촌을 세웠다. 저명한 학자이자 선교사인 예치케(Jaeschke)는 1881년 《티베트어-영어 사전》 서문(원서는 독일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리의 노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는 전적으로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면서 티베트어를 읽고 말하는 수백만의 불교도들에게 빠르고 쉽게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출발한다.” (H. Jaeschke, A Tibetan-English Dictionary, Routledge and Kegan Paul, London, 1965, p.iii)
 

그럼에도 그들은 성경을 번역하는 노력을 통해 높은 수준의 학문 저술을 발전시켰다. 예치케의 동료 프랑케(A. H. Francke)와 막스(K. Marx)는 1891년부터 1931년까지 미개척 분야로 남아있던 라다크(Ladakh)에 관한 역사적 민족적 연구 분야에서 언어학적 지식을 생산했다.
 

선교사적 접근방식은 티베트 해석에 대한 서구의 중요한 모델을 소개하기는 했지만 역사적으로는 단지 최초로 티베트를 다루었다는 의의만 있을 뿐이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 선교사들은 여전히 티베트를 가장 우선적으로 선교해야 하는 지역으로 보고 있지만 현대에 그들의 학문적 연구에 대한 공헌은 개척자들(pioneer figures)의 공헌과 결코 같지가 않다. 현대선교사들은 티베트 문화 연구를 거의 중시하지 않고 있다.


현대 선교사들은 최근 학자들이 흔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티베트 종교체계와 제도 등 주제를 우선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에 공통적으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티베트 종교를 언어 문제로 보고 있다. 언어는 기독교적 개념을 번역하고 서술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티베트 사회의 종교적 양상에 주된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최초의 선교사적 저작부터 지금까지 티베트에 대한 관점과 연구에서 지배적인 관심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일에 자질을 갖추고 헌신된 한국인, 중국인사역자가 극소수라는 것이다.

 


한•중 티베트선교 현황

 


티베트선교 1 세대 - 한국교회의 선교사역


티베트와 한국의 역사 관계

• 동이족의 후예: 티베트는 토곡혼(吐谷渾)의 후예들이 사는 나라이다. 토곡혼은 4세기 초 중국의 청해(菁海)지방에 있던 나라이름으로 왕족은 선비(鮮卑)족이다. 5호16국시대부터 세력을 떨쳤으나 뒤에 북위(北魏)ㆍ수(隋)ㆍ당(唐)의 침략을 받고 663년에 토번에게 멸망을 당한 나라였다. 원래 선비족은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고 중국도 선비족의 나라라고 하고 있다. 토곡혼(티베트 옛이름)은 단군왕검의 후예인 선비족들이 세운 나라였다. 선비는 조선비왕(朝鮮卑王)의 준말로 단군왕검을 가리키는 말로 즉 단군족이다.
 

광개토태왕 비문에 적혀있기를, “영락 8년(398) 무술년에 일부 군대를 토곡에 보내 관찰 순시하도록 하였다(八年戊戌 敎遣偏師觀帛愼土谷因便抄得莫斯羅城加太羅谷 男女三百餘人 自此以來朝貢論事).” 이 내용은 광개토태왕 시절 고구려의 영토가 티베트까지 미쳤음을 말해준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묘족, 몽고족, 만주족, 장족(티베트종족)의 상당수가 우리와 핏줄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구당서(舊唐書)》 권 43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볼 수 있다. ‘669년, 당 고종은 고구려 유민 3만8천3백 호(약 20만 명)를 강회(江淮) 등 사람이 살지 않은 광막한 땅으로 옮겼다’. 또 이런 기록도 있다. ‘관내에 단결병이 있었는데, 6주(泰, 成, 岷, 渭, 河, 蘭)에 살고 있는 고구려와 치앙족(羌族)이다.’
 

위 지역들은 모두 토번과 벌인 전투지역이어서 우리 망국의 유민(流民)들이 인간방책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이치이(以夷治夷)’ 즉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쳐서 양쪽 힘을 모두 약화시킨다’는 정책의 희생자들인 셈이다. 명분 없이 허망하게 사라져간 망국의 유민들이야 무슨 이름을 남기겠는가 마는 그중에서 고구려 장수 고선지나 백제 장수 흑치상지 등은 당당히 서역 하늘에 이름을 드날린 경우였다. 승려로서는 최초 우리의 순례승으로 알려진 혜초(慧超) 말고도 그보다 먼저 천축(天竺)에 갔던 순례승이 있다. 그들은 해로(海路)나 실크로드를 경유하는 기존의 행로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시 토번을 경유하여 ‘왕현책 루트’(문성공주와 네팔공주 브리쿠티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네팔을 경유하여 천축에서 불교를 수입하기 위해 개통된 길이라서 임시로 들릴 수 있는 길이다.)를 통해 히말라야를 넘는 직행로 천축에 갔다가 돌아왔다.
 

• 신라의 멸망을 막아준 티베트: 그렇다면 왜 토번이라고 불리기도 한 티베트는 한국사의 생존에 깊은 공헌을 한 것일까? 676년 3월 당나라는 청해(靑海)에서 벌인 토번(현 티베트)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자 당나라 정예군이 다시 신라로 향하게 되고 다시 신라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678년 당 고종은 다시 신라 정벌을 천명한다. 그러자 다시 토번의 가르친링이 당나라로 진출하였고 여기에 18만의 당나라 군대가 청해성에서 참패(승풍령 전투)를 당하자 결국 “토번이 당나라 변경(邊境)을 자주 침략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고 노략질을 하고, 신라는 비록 순종하지는 않지만 군대를 몰고 중국을 침범하지는 않는다.”라는 이유로 신라 침공을 중지하였다. 토번은 당나라의 세력이 한반도로 미치지 않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토번은 한반도의 역사를 지키고 신라의 멸망을 막아준 나라이다.


한국인사역자의 사역 분포

1992년 8월 한•중수교로 인하여 한국의 중국선교의 시작과 동시에 티베트에도 1세대 한국선교사들이 파송된다. 당시에는 시짱을 우선시하여 라싸를 선두로 사역이 시작되고 이어 대티베트로 분류되는 칭하이, 간쑤(甘肃), 쓰촨(四川), 윈난(云南)성으로 분포되어 현재까지 이른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시짱을 비롯해 4개 성에 거주하며 사역하는 한국인선교사는 약 30여 가정 10여 유닛(unit)에 이르는 소규모이다. 1990년 후반에서 2000년 초기에 비하여 많은 가정이 추방 또는 재입국 거절, 사역지 이동 등의 변화로 이전에 비해 약 삼분의 일 정도 줄어들었다. 그 외 티베트 젊은이들이 교육정책상 대티베트지역이 아닌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 다른 지역의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학생들을 이동시킴에 따라 상당수 티베트인들이 주요 도시에도 분포되어 있어 이들에게도 전도의 문을 열어 티베트사역자와 교류한다면 더 효율적인 추수가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사역 유형
1세대 선교사 그룹으로써 아직 이렇다 할 사역의 열매를 제시하기가 섣부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각지에서 신학교 사역, 제자양육, 교회개척, 어린이 사역, 문서 사역, 비즈니스 사역, 스포츠, NGO 사역 등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사역의 대부분은 현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신학교, 제자양육은 티베트를 벗어나 다른 도시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개종한 티베트 크리스천 현황
초기 1990년 초에서 2000년 초까지 서구와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선교사에 의해 전도된 티베트인 크리스천의 수는 약 300여 명, 그중에 승려였다가 개종한 크리스천은 10명 내외이고 대부분 대학 시절에 주님을 영접한 자들이 많았다. 2017년 현 시점에서 살펴본다면 약 100-15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안의 티베트인 전체 인구를 640만(2014년 기준)으로 본다면 지극히 적은 무리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같이 개종자의 수가 증가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선교사의 현저한 감소와 티베트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기도의 여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과 선교사의 시행착오, 중국 정부의 비자 제한, 티베트사원의 적극 방해, 호기심으로 출발했던 기독교의 관심에서 돌아서는 티베트인 증가, 적시적기에 성경번역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체된 점, 성경 외 티베트인들이 기독교를 접할 문서, 책자, 영상물의 부족, 티베트 목회자 양성의 미흡, 중국교회의 오랜 침묵과 서구와 한국 등 선교사들과 중국교회와의 연계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선교 1세대-중국교회의 티베트 사역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 관계

• 티베트 침공: 1950년: 티베트는 유라시아대륙의 중앙부에 위치한 험준한 티베트고원에 위치하여 독자적인 문화권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청나라 때 일시 청국군의 주둔을 받아들여 보호국이 되었다. 또 19세기에는 영국의 세력 아래에 들어가서 1904년에 영국군은 라싸에 주둔했다. 신해혁명 후 티베트는 자립하여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중립정책을 유지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시 티베트는 중립정책을 표방했어도 영국군과 미군 등 연합군과 중화민국으로서 병참선을 제공했다. 당시 티베트의 지도자는 제14대 달라이라마였는데 1945년에 전쟁이 종결되자 인도와 중화민국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티베트의 주권을 확립하려고 시도했지만 중국 국민당 내부의 강경파가 저항하여 실패했다. 그리고 곧이어 발발한 국공내전의 여파로 독립으로의 길은 미루어졌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끌던 중국공산당은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1949년 10월 1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선언한 뒤 1950년 1월 1일에 중국국제방송(라디오 베이징)은 판첸라마 10세의 요청으로 중국인민해방군이 티베트를 해방시킬 준비가 되었다고 방송했다. 삼동 린포체와 달라이라마 14세는 이것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방적인 약속이다>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침공 움직임에 대해 미국 정부는 영국의 대표단을 만나 국무성에서 회의를 열고 티베트에 대한 지원을 논의했다. 하지만 한국은 국가의 정세가 급박하고 자국의 권익과 그다지 관계가 없는 분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8월에 티베트에 인도를 경유하는 극비원조만을 실시했다.
 

1950년 3월 7일에 티베트 정부 대표단이 중국과 대화에 나섰다. 티베트는 영역보전과 안전보장을 위해 1950년 9월 16일에 인도 델리에서 중국측 대표단을 만났지만 중국측 대표는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이다, 중국이 티베트의 국방, 외교, 무역을 담당한다>라고 하면서 이를 받아들이면 평화적인 해방이 될 것이며 거부하면 전쟁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티베트는 달라이라마와 여러 장로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열고 이를 논의하였다. 그 시간에 인민해방군은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1950년 10월 7일 밤에 인민해방군은 라싸의 동쪽 100km 위치까지 침공했다. 인민해방군의 병력은 약 4만 명 남짓으로 동쪽에서 세 갈래로 동시에 진군해왔다. 1950년 10월 25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인민해방군의 티베트 진주를 선언했다. 다음날인 26일에 인도 정부는 이를 ‘침략행위’라고 비난성명을 내고 영국 정부도 이를 지지했지만 양국은 실제 티베트에 대한 군사지원에 나서지는 않았다. 티베트의 라싸 정부는 UN에 인민해방군의 침공을 제소했지만 UN은 UN군이 관련된 한국전쟁의 대응에 바빠 티베트에 개입할 여유가 없었다.
 

한편 티베트는 UN의 상임이사국인 중화민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자국영토로 취급했기에 정식 독립국으로 취급을 받지 못했다. UN총회 운영위원회도 “티베트와 중국, 인도에 평화를 위해서도 UN에서 토의하는 것은 걸맞지 않다”라고 하여 심의의 연기를 결정했다. 1951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은 동투르키스탄(신장위구르), 칭하이, 청두(成都) 세 방면에서 인민해방군을 라싸로 진격시켰다. 그리고 그 무력을 배경으로 하여 달라이라마 정권에 17개조 협정을 강요해서 조인했다. 이 17개조 협약에서 티베트 정부는 지방 정부로 규정하고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사실상 귀속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출처: 모리 가즈코, 《주변국가와 중국》)
 

중국인사역자의 사역 분포와 현황
중국인 사역자들이 티베트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말부터로 추정된다. 중심 지역인 라싸를 비롯해 대티베트지역에 속한 각 성마다 가정교회가 주축이 되어 사역자들을 파송하기 시작했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사역자 수가 티베트복음화의 바람이 불었던 시기에 비해서는 절반 정도 줄었지만 파송단체와 교회, 사역자의 자질이 높아진 뒤 사역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초기에 와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라싸의 경우 A족 사역자들의 약진이 고무적이다.
 

필자는 2005-2008까지 약 3년 동안 중국 가정교회와 협력해서 중국인사역자 22명(2-3명으로 구성된 10개의 팀)을 티베트지역(대티베트; 5개 성)에 파송한 뒤 반년마다 재충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지금은 B지역에 1팀과 C지역의 1팀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수한 상태이다. 2년 반의 기간 동안 신학교교육을 받고 해당 지역의 모교회에서 선발, 후원하고 파송했는데 결과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다시는 이 일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위의 두 사례를 통해서 사역이 침체를 맞게 된 원인이야 여러 가지로 나열할 수 있겠지만 타 지역의 부흥을 힘입어 티베트에 무리하게 교회를 확장하려 한 인본적인 발상이 가장 큰 요인이 되었고 2명이 1팀으로 구성된 사역자들의 영적 충전 기회가 부족하고 고산 반응이 주는 신체적 고통, 티베트에 대한 이해 부족, 티베트인들의 중국사역자에 대한 원한-중국에 의해 땅을 빼앗고 이어 중국인 사역자에 의해 종교의 자유까지 빼앗긴다는 압박감-이 고스란히 영적 침해와 사기 저하를 초래한 것이다.
 

이후 서구 사역팀과 중국 가정교회의 협력으로 다시 티베트복음화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시작되었다. 중국 가정교회의 또 다른 팀은 규모가 지역에 5-6개의 팀 혹은 가정을 파송해 공동 사역을 진행 중이다. 주일이면 모두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현안들을 의논하며 기도회도 갖고 있는데 영적으로 지치지 않게 서로를 격려하며 정착하고 있어 좋은 사례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사실 한국인사역자이든 중국인사역자이든 지금 티베트 사역의 시점은 모두 1세대에 해당된다. 사역을 위해 충분한 연구도 사례도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이런 부족함이 더 나은 기회로 전환이 가능한 것은 티베트를 향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신랑이신 주님, 스승이신 성령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씨 뿌리는 사역자의 무기는 기도와 눈물인 것을 깨닫게 되는 좋은 영성으로의 진입을 도와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여 년 동안을 잘 살피고 교훈을 얻는다면 우린 오직 영으로 사역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한•중교회 차원의 하나됨과 협력
최근 사드와 관련해서 가장 마음 아파하는 이들은 한•중교회와 사역자일 것이다. 중국 안에 떠도는 수많은 유언비어에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분별의 영을 받아 주님의 마음을 품도록 말씀과 기도로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또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사태로 중국과 한국과의 영적인 끈이 끊어지게 하려는 마귀의 궤계에 대해 무지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시대를 분변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화평을 시도하지도 않은 채 보복과 대응으로 나누어진 우리들의 불신앙이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가장 슬퍼하며 탄식하시는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이 혼란스러운 상항에서 가장 피해자는 바로 우리 주님이시다. 사드 문제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갈등이지만 영적으로는 중국을 위해 가장 많은 사역자를 내보내고, 중국을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형제로 사랑해온 아름다운 관계를 끊으려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마귀의 도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한국교회만큼 중국선교에 대한 열정, 기도, 헌신을 쏟아부은 나라가 많지 않다. 하나님의 역사도 보았고 열매도 얻었고 부흥과 선교중국에 대한 비전도 출발도 보았다. 지금 우리는 선교중국 가운데 극히 작은 부분인 ‘티베트를 주께로’를 사명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중요한 시점에 같이 서 있다.


중국사역자 여러분

티베트 영혼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쏟아부었는데 손을 뿌리치고 저주의 말들을 내뱉으며 얼굴을 돌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아픈 마음을 하늘이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를 계기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우리도 주님과 한마음이 되는 좋은 선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은혜이다. 중국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많은 형제의 나라가 기도하며 순교의 피를 흘린 것으로 이제 중국이 소망의 나라가 된 것 같이 가까운 형제 티베트가 고통을 당할 때 지체된 중국교회도 함께 고통에 동참하도록 기도하자.
 

상한 심령으로 긍휼히 여기며 눈물로 이 시대를 위해 탄식의 기도하면 중국도, 한국도, 우리가 같은 믿음으로 함께 섬기는 티베트도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마음에 새겨진 한 나라, 티베트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목표가 같은데 영이 어찌 나누어지도록 버려두겠는가! 티베트를 향한 거룩한 부르심 앞에 우리가 도우며 협력할 것은 많은데 우선 상처받고 나누어진 마음부터 추슬러야 한다. 그래서 주께서 주신 아름다운 기업을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
 


티베트 사역의 돌파를 위한 제안들

 


사역의 연약함

지금까지의 티베트 사역이 언더우드의 한국선교 초기 때처럼 앞이 보이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단계에 와 있는 셈이다. 티베트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성경과 쪽복음, 그리고 복음을 통해 성도의 성숙을 돕는 신앙서적, 문맹자이든 어린이든 누구든 보고 들으면서 복음을 접할 수 있게 하는 영상물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티베트지역의 특성상 언어는 크게 3가지(위, 캄, 암도지역)로 나누어 있기에 의사소통에 장애가 될 수 있지만 다행히 문서로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든 어디서든 원하기만 하면 손에 쥘 수 있는 문서 사역의 확장이 시급하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문서 사역의 중요성을 알고 이 일에 전념하려고 한 사역자들이 지금 대부분 추방이나 입국 거절, 사역지 이동 등으로 인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이다. 현재 활동하는 대부분의 티베트사역자 가운데는 티베트종족만을 전담하는 사역자가 극소수이다. 많은 이들이 소수민족과 한족을 품고 사역하다 보니 사역의 전문성 차원에서 볼 때 부족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티베트를 떠나는 많은 사역자들의 사역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그들의 사역을 전승해서 확장하려고 해도 정보의 교환이나 교류가 미흡한 상황이다. 그리고 한두 사역자를 제외하고는 티베트와 연관성이 적은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 안에서 혹은 제3국에서 대티베트 사역을 위한 재단이나 연구소 같은 전문화한 공간도 필요하다. 더 큰 장애는 현재 5개의 성 티베트지역에 있는 사역자들과 커뮤니케이션도 열악하다. 교단이나 교회 차원에서 대(對)티베트지역사역자를 아우르는 시도도 간절하다.
 
티베트선교를 위한 실천적 제안들

필자는 티베트에서 10여 년을 살고 있다. 선교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개략적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는 연약함에 용서를 구한다.
 

▶ 티베트를 위해 기도를 쏟아붓는 교회와 단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
▶ 티베트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비전트립이 계속해서 진행되는 일
▶ 한국교회가 티베트 사역에 대해 질서있는 홍보를 하는 일
▶ 티베트인과 한족사역자가 공동으로 볼 수 있는 영상물과 문서를 지원하는 일
▶ 티베트 사역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교회와 단체가 준비되는 일
▶ 티베트와 티베트의 영혼들을 위해 그들이 받을 저주의 분량을 대신 짊어질 믿음의 사람, 주와 성령께서 이 땅에 쏟으시는 눈물을 마음으로 보는 자, 특별히 인내와 지혜를 구하는 자들이 세워지게 힘쓰는 일
 

사실 이 땅에는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화평의 사자, 즉 일군들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시짱 라싸에 이어 광활한 그러나 일꾼이 부족해서 희어진 추수밭 칭하이, 간쑤, 쓰촨, 윈난지역에 있는 티베트인들을 위해 섬기는 일꾼들이 채워지기를 기도하자. 저 내몽고와 몽골, 부탄, 네팔 등 그리고 미주와 유럽, 러시아까지 미쳐있는 그들의 세력에 맞설 정예 일꾼들을 세워나가자.


결론

표정을 읽어내기가 무척이나 힘든 특유의 무표정, 우상을 섬기느라 지쳐 붉어진 눈동자, 머리카락에서부터 긴 옷자락에 묻은 때의 자국, 굳은살이 가득하도록 마니통을 돌려대던 손바닥, 닳고 닳은 그들의 발 뒤꿈치만큼이나 티베트는 오랜 우상숭배의 역사를 지녔다.
 

철저히 위장된 순결과 고상함, 평화와 빈곤, 불안과 두려움, 어울리지 않은 두 세계를 오가는 이들 민족, 척박하고 공기조차 희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대로 경건과 자부심은 또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우리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긍휼이 하늘로부터 임하시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열정(Passion for God)을 사모해야 할 일이다.



(‘선교중국2017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을 일부 편집하여 실었음을 밝혀 둡니다.)

 






다니엘 | 중국선교사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