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국에 들어오면서 깜박 잊고 커피를 안 챙겨왔다. 믹스커피를 넣어야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잊어버린 것이다. 집근처 상가로 인스턴트커피 한 병을 사러 나갔다. 커피를 사 가지고 오면서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 들러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주문한 커피는 맛이 너무 진했다. 다시 주문대로 가서 뜨거운 물을 한 컵 얻어서 희석을 하니까 커피가 두 잔이 되었다. 마침 실외에 자리가 있어 앉아 있었는데 내 옆 자리에 빨간 잠바를 똑같이 입은 두 명의 중년여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만 보니 두 사람은 주문은 하지 않고 이야기만 나눌 낌새였다. 나는 남는 커피 한 잔을 가지고 다가가서 마침 커피 한 잔이 남아서 그러는데 마시겠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커피를 받았다. 조금 후에 나는 좌석을 옮겨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어떻겠느냐고 그 두 여인한테 물어 보았다. 그중의 한 여인이 좋다고 쾌활하게 대답하였다. 지방 사투리를 많이 쓰는 것을 보니 이 지방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 쌍의 부부가 합석을 했다. 알고 보니 두 여인과 이들 부부 모두는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부모들이었고 아이들 때문에 학부모로서 서로 알게 된 사이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나까지 5명이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 그들은 내가 외국인인 것을 눈치채지 못하다가 나중에 내가 밝혀서 알게 되었다. 내 소개를 하면서 전에 이 도시의 B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고 하자 그들은 몹시 호감을 갖는 눈치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물어 보았다. 아이들이 한국을 좋아 하느냐고.
그들은 자기 아이들이 한국 가수들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원하면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몹시 기뻐하며 정말 가르쳐 줄 수 있느냐고 거듭 물었다. 이곳에 머무는 6주 동안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 내가 머무는 집에 학부모 중 한 쌍의 부부가 여중생 둘을 데리고 찾아온 것이다. 코와 이마에는 여드름이 나고 앞머리는 단발로 반듯하게 자른 두 여중생이 약간 쭈뼛쭈뼛하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 한 학생의 아버지가 커다란 과일바구니를 들고 왔다.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더니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는 모양이다.
첫 수업이기에 《처음 배우는 한국어 읽기》라는 책을 사용해서 모음 10개를 가르쳐 주었다. 잘 따라 하기에 모음으로만 된 단어 10개를 가르쳐 주고 중국어로 뜻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70분 정도 수업을 하고 나니 여학생들은 곧잘 따라서 읽었다.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추어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이곳은 집집마다 대부분 한 아이만 있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대단하다. 수업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도 한 학생의 부모였는데 수업 후에는 다른 학생의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배웅을 했다.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대부분 이렇게 이루어진다. 사람들을 만나는 접촉점으로 주로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서 제자를 삼는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가 오기까지 공을 들이는 것이다.
그동안 주로 대학생들을 만나다가 여중생을 만나니 어찌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나중에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두 아이가 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해서 미술대학교에 가고 싶단다. 그중에 한 아이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라고 했더니 좋아했다.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이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 자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고마운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욱이 거저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나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나은혜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