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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3  통권 181호  필자 : 현덕손  |  조회 : 4025   프린트   이메일 
[기획]
중국 동북선교의 개척자 로스 선교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 글은 중국 동북지역 선교의 개척자이며 한국선교에도 많은 도움을 준 존 로스(John Ross, 罗约翰, 1842. 8. 9. - 1915. 8. 6.) 선교사의 한글신약성서 <예수셩교젼서>(통칭, 로스역) 발간 130년을 기념해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이덕주 교수)가 실시한 로스의 행적을 따라 동북3성을 가다(6월 26일 - 7월 1일)에 참가해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것이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는 1984년부터 기독교유적 정기답사를 실시해 오고 있는데 이번이 37회 답사이며, 해외답사로는 세 번째이다. 2015년에는 이수정의 마가복음 출판 130주년을 기념해서 일본의 간토(관동)•간사이(관서) 기독교유적지 답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답사에는 42명이 참가하였다.
 

1. 로스 선교사의 생애(연보)

로스 선교사에 대해서는 《중국을주께로》 7월호 발행인 통신에 잘 소개되어 있는데, 그 글을 바탕으로 하고, 많은 부분을 보충하여 그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42년 8월 9일  :스코틀랜드의 닉에서 출생.
                      :글래스고우 대학과 에든버러신학교 졸업, 중국선교사가 되기로 결심.
1872년 3월 20:스코틀랜드장로교 연합선교회 선교사로 임명을 받음.
                       :3월 25일 스튜어트(M. A. Stewart)와 결혼.
          8월 23일 :중국 즈푸(芝罘) 도착.
          10월      :잉커우(营口)에 정착.
                      :중국어와 사서삼경을 공부.
1873년 2월       :첫 아이 드루먼디 출생.
          3월 31일  : 출산 후유증으로 부인이 세상을 떠남.
          5월 11일 :중국어로 설교.
1874년 10월 9일:제1차 순회전도여행 출발, 린장(临江)과 지안(集安)을 거쳐 고려문 도착.
                         백홍준(白鸿俊)의 아버지 등 조선인들을 만나 전도.

1876년 4월       :고려문 두 번째로 방문. 이응찬(李应赞)을 만나 한국어 공부와 성경번역 준비.
                      :왕정명(王静明)을 선양으로 파송하여 노방전도를 하게 함.
                      :선양 소북관(小北关)에 셋집을 얻어 복음당을 엶.
1877년             :한국어 교재 와 한국역사 출간.
                      :한글성경번역 착수
                      :복음당을 서화문(西华门)으로 옮겼다가 다시 사평가(西平街)로 이전.
1878년             :선양(沈阳)을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
1879년 5월 9  :안식년 휴가 출발(복음서와 사도행전, 로마서 번역원고를 가지고 감). 
                       :매제인 매킨타이어, 잉커우에서 조선인 네 사람한테 세례 줌. (한국인 최초의 수세)
1881년 2월24일  :맥패디안과 재혼(둘 사이에서 자녀 8명 출생, 그 가운데 4명은 중국에서 사망)
1881년 5월 25 :안식년 휴가를 마치고(한글성경 인쇄에 필요한 비용을 지참하고) 잉커우로 돌아 옴.
                        :선양에 문광서원(文光书院) 설립.
1882년 3월 24일  :누가복음, 5월에 요한복음 각각 3천 부씩 인쇄.
                        :스코틀랜드 성서공회를 통해 대구, 동래, 원산, 인천에 보급.
                        :인쇄공 김청송(金青松)을 권서(劝书)로 그의 고향인 서간도 지역으로 파송.
1884년 11월       :동역자 웹스터와 함께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600마일을     여행하여 지안 일대 방문,
                           75명한테 세례를 줌.

                         :복음서와 사도행전 간행
1885년 3월 8일     :서울에서 2년 동안 전도활동을 한 서상륜의 보고를 바탕으로 
                            대영성서공회에서 서울에 70여 명, 
                           서울의 서쪽과 남쪽에 각각 20명 내외의 수세 희망자가 있다는 편지를 씀.

1885년 여름        :지안 일대 2차 방문 25명한테 세례 줌.
1886년               :한글성경번역 완료
1887년               :<예수셩교젼서> 출간(5,000부).
1888년               :대동문 밖에 땅을 구입하여 중국 양식으로
                           중국 동북지역 최대의 예배당인 동관교회(东关教会) 건축.

1898년 10월 22일 :낙성식.
1890년               :유전악(刘全岳), 중국 동북지역 최초의 목사 안수를 받음.
1894년 3월         :글래스고우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음.
1900년 6월 30일  :의화단 사건으로 동관교회 전소됨.
1907년               :동관교회 서양식 청벽돌 건물로 재건축.
1910년 4월 8일    :귀국.
          7월          :중국선교사 38년 사역을 마치고 은퇴.
1915년 8월 6일    :고향에서 별세.
           8월 11일  :에든버러의 뉴윙턴 묘지 공원에 안장.
1995년               :대한성서공회, 경기도 용인에 로스 기념관 건립.


2. 로스 루트 탐방기(일정)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이번 답사는 <예수셩교전셔> 출판 130주년 기념 존 로스의 행적을 따라 동북3성을 가다라는 긴 이름으로 실시되었는데, 줄여서로스 루트 탐방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동북3성을 가다고 하였는데 동북3성인 지린성(吉林省), 랴오닝성(辽宁省), 헤이롱장성(黑龙江省) 가운데 헤이롱장성은 방문하지 않았으므로 실제로는 동북2성을 간 것이 되었다, 로스 루트 탐방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곳에 발표가 되었다. 아래에 발표된 글들의 리스트를 밝히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를 하면 좋을 것이다.


국민일보

종교부의 박재찬 차장이 로스 루트 탐방에 동행하면서 취재하여 여러 차례 보도를 하였는데 보도 일자와 기사의 제목을 소개한다.

▹ 6월 29일(목)

① 중국선양동관교회루터 독어(独语)성경처럼…한글성경 복음의 능력펼치다
▹ 7월 3일(월)
② 중국 지안 이양자교회터中 은둔의 마을에 한인 첫 해외교회 있었다
▹ 7월 4일(화)
③ 중국 단동 고려문존 로스가 조선인(의주상인 이응찬) 처음 만난 역사적 현장
▹ 7월 5일(수)
④ 중국 랴요양교회평양 대부흥 물결 이은 만주 부흥운동의 요람”
▹ 7월 6일(목)
⑤ 중국 잉커우 “한국인 최초로 4명이 세례 받은 복음의 관문
▹ 7월 10일(월)
- 미션 톡! 존 로스 선교루트 老 목회자들이 찾아나선 까닭은
▹ 7월13일(목)
- 기독사학자 중국 현지 좌담 루터로부터 말씀 능력 되찾을 때

참석자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윤경로(한성대 전 총장,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 이덕주(감신대 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박형신(남서울대 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식> 제118호(9월 2일)

- 참가자 가운데 한 분인 이복규 교수(서경대 국문학과)의 탐방기가 게재되어 있다.


SNS, 기타

- 이만열 교수가 7월 2일에 페이스북에존 로스 선교사의 한글성경 번역 행적을 따라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답사기를 올렸고, 탐방자들이 존 로스 선교여정 탐방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을주께로》 7월 호 발행인 통신서두에도 참가소감이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번 탐방의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 제1일(6월 26일, 월) 선양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선양에 도착, 먼저 로스가 세운 동관교회를 찾아 한글성서 번역현장(조선글 성경번역 유적지)과 동관교회 본당을 보았다. 동관교회 측에서는 일행을 친절하게 맞아주고 기념품(타올)도 선사했다.
 

이어 병자호란 후 인질로 온 소현세자 일행이 머물던 심양관(다른 이름, 沈馆, 高丽馆)으로 추정되는 곳을 큰길에서 바라보고, 스코틀랜드장로교회가 파송한 의료선교사 크리스티(D. Christ, 司督阁)이 사역하던 성경시병원(盛京施病原)과 봉천의과대학을 방문하였다. 모두 그 큰 규모에 놀라면서, 중국 동북지역에서도 의료선교가 활발하게 전개되었구나!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성경의원은 중국 동북지역 최초의 서의(西医)병원이며, 봉천의과대학의 요녕종양(암)병원은 1,500병상 규모였다.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오니까 병원의 안내직원들이 매우 긴장하여 이것저것, 제지를 하는 바람에 단체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이상으로 선양에서 일정을 끝내고 통퉁화(通话)를 거쳐 지안에 도착하였다.
 

▹ 제2일(6월 27일, 화) 지안
지안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관계로 국내성 유적, 광개토대왕비 등 고구려 유적이 많은 곳이다. 중요한 고구려 유적들을 돌아보고, 이양자교회가 있었던 골짜기를 방문했다. 로스 선교사는 1884년 겨울과 1895년 여름 두 차례에 걸쳐 이 일대를 방문하여 1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양자교회 터까지 버스가 들어가지 못해 버스는 길가에 세워두고 소형승합자(중국에서는 이를 ‘빵차’라고 부른다) 여러 대를 불러 타고 가면서 ‘아니, 이렇게 멀고 험한 곳을 그 때, 그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 어떻게 왔나?’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 제3일(6월 28일, 수) 단동(丹东)
상해임시정부 교통국 단동연락사무소(이륭양행) 건물을 밖에서 보고, 원보산(元宝山)에 있는 단국(丹国, 덴마크) 루터교 선교유적지를 돌아보았다. 필자는 단동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단동에 덴마크 루터교회 선교기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교회•병원•육영당 등이 있었는데 병원과 교회는 이름을 바꿔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이어 북한의 평안북도 의주가 보이는 호산장성(원래 이름, 박작성)으로 옮겨, 일부는 압록강 강가에서, 일부는 호산장성 봉수대에 올라 의주를 바라보았다.
 

그 다음에 방문한 곳은 고려문(高丽)인데, 고려문은 한국과 기독교가 처음으로 접촉한 중요한 지점이면서도 그 위치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던 곳이었다. 이번에 여러 명의 전문가들이 방문하여 현장 토론을 거쳐 어느 정도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점은 이번 탐방의 큰 수확 가운데 하나였다. 일행 중에 지질학자로서 기독교유적 보존에 힘쓰고 있는 분(전 공주대 총장 서만철 박사)가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어 료양(辽阳)으로 향했는데 시 입구의 백탑(白塔)이 일행을 맞아 주었다.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은 여기에서 광활한 요동을 바라보며 한바탕 울만한 곳이로구나!하며 호곡장(好哭场)이라는 명문장을 남겼다. 일행 중에 국문학자가 있어서(서경대 이복규 교수) 그 이야기를 맛깔나게 해 주었다.
 

▹ 제4일(6월 29일, 목) 료양
료양에는 고구려의 산성인 백암산성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어서 일행 중에 한국사를 전공한 분들은 이곳을 방문하고 싶어하기도 하였다.
 

로스 선교사는 1881년에 안식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왕정명을 료양으로 보내 노방전도를 하게 하고 이어 복음당을 설치하여 료양선교를 열었다. 료양에는 스코틀랜드 장로회에서 파송한 제임스(James Wylie, 李雅各) 선교사가 1888년에 부임했는데 제임스 선교사 동삼도가(东三道街)에 교회를 세웠다. 제임스 선교사는 불행하게도 1894년 8월, 청일전쟁에 조선으로 가던 청나라 증원군한테 구타 당해 구타 당해 순직하였다. 청나라 정부는 가족들에게 상당액의 배상금(抚恤金)을 지급했는데 가족들은 이 돈을 전부 교회에 헌금하여 1907년에 료양기독교예배당이 건립되었다. 료양민속박물관에는 제임스 목사의 순교비(李公殉道堂碑)가 유리상자에 둘러싸여 보존되어 있다. 일행은 그 앞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머리를 숙였다.
 

1907년에 평양에서 대부흥이 일어났을 때 중국의 고프트(J. L. Goforth,古约翰)이 한국을 방문하여 그 현장을 목격하고 중국에 돌아와서 만주부흥운동을 일으켰는데 만주부흥운동은 료양에서 시작되었다.
 

료양에는 제임스 선교사가 세운 료양기독교예배당과 조선족교회인 열방선교교회가 있는데 조선족동포인 김영철 목사(46세)가 두 교회를 함께 담임하고 있다. 탐방단은 두 교회를 모두 방문하여 기도회를 가졌는데, 감신대에서 공부한 김 목사는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가서노가다를 했는데 그때 배운 기술을 활용하여 교회당을 보수하였죠.하며 웃었다.
 

료양시에는 료양시병원과 여성들을 위한 병원인 인모원(仁母院)이 있었는데 일부는 현재도 병원으로 쓰이고 있으나 중요한 건물들은 퇴락할대로 퇴락하여 곧 철거될 것으로 보여 일행을 안타깝게 하였다.
 

▹ 제5일(6월 30일, 금) 잉커우
잉커우는 우장(牛庄)과 종종 혼동을 일으키는 곳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858년 중국이 영국과 맺은 천진조약에서 동북지방의 개항장으로 지정된 곳은 우장이어서 선교사들은 초기에 우장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하천의 변화로 우장이 하항(河港)으로서 기능이 약해지자 1861년에 부임한 영국공사는 개항장을 영구로 옮기고 각종문서에는 영구를 조약문서에 표기된 'Newchang'로 표기하였다. 청나라 관리들은 이를 묵인하였다. 박형신 교수는 이를 설명하면서 영구라 쓰고 우장이라 읽는다라고 명쾌하게 풀이했다.
 

일행은 영구기독교회(营口荣恩堂)을 방문했는데 이 교회 안내판에는 이 교회가 1852년에 구츨라프(중국에서는 ‘郭实列’이라고 표기함) 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적혀 있었다.
 

잉커우에서 일행의 옷깃을 여미게 한 곳은 잉커우외국인묘지였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이곳은 지금 잉커우고등학교(高中) 운동장이 되어 있는데 주변에 프랑스 가톨릭교회에서 세운 성당과 양로원, 개신교 예배당, 러시아공사관 등이 있고, 주민들도그곳에 묘지들이 있었고, 외국인들이 자주 다녀갔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외국인 묘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잉커우외국인공동묘지에는 1868년, 중국 동북지역에서 첫 번째로 세상을 떠난 미 북장로회의 번즈(W. C. Burns) 선교사를 비롯하여 로스 선교사의 동역자이며 매제로 한국인들한테 처음으로 세례를 준 매킨타이어 선교사, 로스 선교사의 첫 번째 부인 스튜어트, 로스 선교사의 자녀 넷 등이 안장되어 있었다.
 

일행은 우장교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도 찾아가 보았는데 개발을 위해서인지 한 블록 전체의 집들이 철거되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주민들로부터 왜 무너진, 보기 흉한 곳을 찍느냐?는 항의를 받았다.
 

▹ 제5일(6월 30일, 금) 선양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를 이용하여 먼저 청나라 초기 수도였던 고궁을 찾았다. 몇 번 온 곳인데 점점 깊은 맛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 서탑으로 이동했는데 북한서적을 팔던 서점을 찾아갔더니 ‘이제는 그런 책들은 팔지 않는다’고 하였다.
 

서탑에 있는 북한식당들 앞에는 한복차림의 종업원들이 나와 있었는데 상당히 먼거리에서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카메라를 대도 큰소리로 항의하며 찍지 말라고 야단이었다. 일행은 서탑교회를 방문하여 탐방을 정리하는 기도회를 갖고 공항으로 향했다.
 

3. 후기
이번 탐방이 잘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철저한 사전준비였다.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 2월에 탐방 예정 코스를 따라 정밀하게 사전 답사를 하고 왔다. 연구소에서 발간한 자료집도 무려 170쪽에 이르렀다. 또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교회사 연구가 한 분이 동행하여 현지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실감 있는 설명을 해 주었다.
 

탐방단이 이런 일에 관심이 있고 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도 성공요인 가운데 하나였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여럿 동참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참가자 42명 가운데 15명이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어서 금방 비박(非博)친박(亲博)이라는 말이 나왔다.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은 그대로 강의 시간이었고, 토론 시간이었다. 이만열 교수의 동북공정(东北工程)에 대한 강의는 정말로 현장감이 넘치는 것이었다.
 

탐방을 마치면서 ‘2년 뒤인 2019년은 중국의 첫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손의 <신천성서>(神天圣书) 완역 200년이 되는 해인데 그 때는 중국어문선교회 주관으로 <신천성서> 완역 200주년 기념 모리손 선교사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제목으로 그가 사역하던 마카오와 광동 중심의 탐방여행을 실시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출처 | 국민일보
현덕손|제주극동방송 초대본부장,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 북방선교 전문가
 

차하경 (2017-09-18)
'에에레네'를 '에이레네'로 수정합니다.
최상만 (2017-09-13)
샬롬! 2월 선임 연구원 답사에 동행 했던 사람입니다. 6월 출발 전 주에도 한번 더 방문하는 기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신천성서 완역 200주년 기념 모리슨 선교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도 잘 준비 하면서 협력의 기회를 열어 주시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에에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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