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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3  통권 181호  필자 : 왕빈  |  조회 : 2644   프린트   이메일 
[선교나침반]
“등고망원(登高望远)”




실패했다. 냉혹한 겨울바람이 부는 것 같다.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이했지만 최근 중국 정부의 한국을 향한 냉정한(?) 태도에 대해 실망한 이들의 한숨 섞인 목소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와 같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국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경제보복과 한류콘텐츠, 자국 여행객의 한국행 금지 등 한한령(限韩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압박 수위가 누그러질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하나 둘 떠나야만 했다. 2014년 ‘별에서 온 그대’가 회당 3만 달러에 팔린 이래 한국 드라마의 몸값이 10배 넘게 폭등했던 것은 아∼ 옛날이 됐다. 한국 드라마를 사겠다는 문의도, 투자도 끊겼다. K-팝 그룹의 중국 공연과 행사는 줄줄이 취소됐다. 그렇게 빈번하면 한류 스타들의 중국 팬미팅도 사라져갔다. 중국 예능에서 한국 연예인들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기 일쑤였다.
 

대신 한류저작물 해적판은 불법 유통되는가 하면 판막이 프로그램들은 중국 TV에서 버젓이 방영됐다. tvN 드라마 도깨비,중찬팅(tvN윤식당포맷) 등. 중국전담 여행사 180여 개 중 90%는 개점휴업상태다. 중화동남아여행업협회 130여 회원사 중 현재 중국인여행객을 받고 있는 곳은 10여 곳. 이마저도 단체가 아니라 면세점에서 명품을 대리구매(다이거우(代购))를 하는 곳이다. 한류를 보고 한국에 상주하던 중국 업체들도 어려움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올해 3∼7월 외국인여행객은 517만 명.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1만 명 줄어든 것. 공교롭게 이 기간 중국인여행객은 231만 명이나 감소했다.
 

정치•군사적으로도 한•중관계 시계는 극도로 불투명하다. 지난 9월 1일 봉황망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런궈창(任国强)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사드 배치 방침을 결연히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고 재확인했다. 한국에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군은 필요한 조치를 취해 국가 안전과 지역 평화·안정을 보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양국 수교 25주년 행사가 베이징(北京, 8월 23일)과 서울(8월 24일)에서 각각 주중한국대사관과 주한중국대사관 주최로 열렸지만 기념 리셉션 참석자의 급 또한 5년 전 수교 20주년에 비해 매우 하향조정 됐다. 수교 기념일에 양국 정상과 양국 외교장관이 축전을 교환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문재인 한국 대통령에게 보낸 축하 메시지를 통해 양국 사이의 의견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시 주석은 나는 시종일관 한•중관계의 발전을 고도로 중시했다중국측은 한국측과 함께 정치적인 상호신뢰를 공고히 하고, 이견을 적절히 처리해 양국의 관계를 건전하고 안정되게 발전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수교 이래 양국관계는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했다. 수교 당시 64억 달러였던 교역 규모는 2013년 2742억 달러로 43배나 늘어났다. 지난해 중국인 806만 명이 한국을 찾았다. 다른 분야에서도 양국교류는 괄목상대했다. 그러는 사이에 중국은 G2국가로 도약했다. 자동차, 철강, 조선, IT 등 한국이 강점을 보이던 산업에서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외교무대에서도 중국은 최강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광양회(韬光养晦, 빛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유소작위(有所作为, 할 일은 한다.)등 전통적인 중국 외교정책은 사라진 지 오래다. 주동작위(主动作为, 적극적으로 할 일을 한다)를 넘어 대국외교(大国外交)가 대세가 됐다.
 

어느 새 중국은 미국에 이어 제2의 세계경찰국가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여러 대내외적 변수의 출현과 함께 한•중관계는 그때마다 출렁일 가능성이 커졌다. 과거 서로 잘 나가는 시절, 한•중관계는 1992년 경제·통상 중심의 선린우호 단계였다가 1998년 협력동반자관계,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2014년 전략적 협동동반자관계 내실화로 발전했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은 수교 25주년 축전을 통해 실질적인 협력동반자관계로의 변화를 갈구한다고 밝혔다. 양국이 지난 세월 서로 켜켜이 쌓아온 관계를 통해 윈윈(win-win)으로 만들어가자는 러브레터와 같은 것이었다. 양국 사이의 최상위단계인 혈맹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 턱밑까지는 가자는 의미였다. 그러나 사드 배치와 북핵 문제는 양국 관계의 진일보를 막는 아킬레스건이 됐다.
 

당분간 양국 사이의 긴장관계를 말끔히 해소하기엔 서로의 입장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다른 관점이 필요할 듯하다. 그 과정은 매우 어렵겠지만 구동존이(求同存异, 공동의 이익을 찾되 차이 나는 부분은 인정한다.)화이부동(和而不同,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의(义)를 굽혀 좇지는 아니한다.) 사이 어느 시점을 선택해야 할 듯하다. 미국과 대만, 남중국해, 일본 문제 처리와 일대일로(一带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안정화 등 장기적 국가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 중국은 만만치 않은 과제를 떠안고 있다. 어찌 보면 사드와 북핵 문제는 일부분의 합에 불과하다. 중국 입장에서 전체를 본다면 시간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위기 속에 기회를 찾아가는 계기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큰 틀에서 자국의 문제를 봐야 한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유불리(有不利)를 모두 갖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반도 분단은 선천적인 최악의 조건이다. 하지만 주변국과 우호관계를 넓혀가면서 어느 한쪽에도 과도하게 기대지 않는 중심축 국가(Pivot state)를 향해가는 게 필요한 시점이 됐다. 그러려면 제발 외화내빈(外化内贫)에서 벗어나야 한다.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절박할수록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 상대에게 명분을 주어야 한다.
 

중국의 대(对) 한반도 정책은 3가지 전제요소가 있다. 첫째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둘째는 한반도 비핵화, 셋째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핵심적 요소는 북한 체제의 안정을 품고 있다. 북핵 변수가 중국의 입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지만 북한은 버릴 수 있는 패가 아니다. 사드 또한 한중 간 갈등 요인이지만 다자간 전략적 이해관계가 내재된 사안이다. 미•중 경쟁구도 속에서 충분한 갈등요인이기 때문에 한국은 갈등관리기능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중국의 군사안보 관련 우려를 이해하는 한편 사드 배치의 필요성과 중국의 이해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실질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 이어질수록 한국에 득이 될 게 없다.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크고 점차 한국만의 생존공간은 그만큼 줄어들 뿐이다. 냉정한 분석과 단기적 처방이 아닌 중장기적인 대안을 갖고 중국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한국교계한테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교회가 카피하고 싶은 한국교회

한국교회는 양국관계를 깊이 쳐다보고 감정이 아닌 실질적 상황을 전제로 한 선교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처럼 중국을 내 집 드나들 듯이 선교사들이 신분을 세탁한 상태에서 중국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게 됐다. 시간이 갈수록 전통적인 선교는 중국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중국교회가 성장할수록 갈등, 충동, 조정, 융합과정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교회가 해외선교를 하겠다는 의욕이 충만해질수록 내부 실력과 외부로 나갈 근력을 모두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를 위함이었다는 선지자적, 예언자적 준비가 이어지는 게 최우선이 아닐까. 중국교회는 시대적 요구와 환경적 변화에 따라 리셋해야만 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중국기독교의 중국화를 시도하는 한 기존의 방식으로는 교회다움을 유지하기 어렵다. 과거에 비해 세속화의 속도와 범위가 젊은 기독인 세대뿐 아니라 전 세대로 속절없이 확대된다면 현재 중국교회가 꿈꾸는 세계선교에 대한 플랜은 또 다른 허구로 전락할 수 있다. 중국교회는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교회가 일반사회로부터 유리되어 간 이유를 곱씹어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를 비롯해 세계교회는 중국 크리스천들이 내실화한, 구별된, 탁월한 사회인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펼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보다 건실해져야 한다. 아울러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회와 세계를 보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그에 걸맞게 열매로 주님의 가르침을 보여줘야 한다. 서로에 대해 조급증을 버리고 상대를 좀 더 인정하고 서로에 대해 안타까움으로 기도해주고 격려해야 한다. 한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선교적 크리스천의 역할을 감당한다면 한국 사회에 희망을 줄 뿐 아니라 중국교회가 카피하고 싶은 그 모델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긍휼의 눈으로 한국과 중국을 바라보고 이미 준비된 크리스천들을 찾아내서 양국관계를 진일보하는 데 기여하도록 여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한국이나 중국한테 주어진 자주적인 시간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것 같다. 한국과 중국이여, 서로 독립변수나 종속변수가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겸손함을 갖고 보다 멀리 보고 가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 연합뉴스
왕빈 | 중국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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