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번호 
북쇼핑
2017.7.3  통권 179호  필자 : 김주한  |  조회 : 2348   프린트   이메일 
[쉬어 가는 페이지]
신리학 세계관의 건설 (현대신유학의 여정7)
-풍우란(冯友兰)의 사상과 유학적 특성-

 

“실제로 어떤 이치에 의거한 실제의 사물이 있다고 해서 어떤 이치가 그것으로 인해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어떤 이치에 의거한 실제의 사물이 없다고 해서 어떤 이치가 그것으로 인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어떤 이치에 의거한 실제의 사물은 많지만 어떤 이치가 그것 때문에 늘어나지도 않으며 어떤 이치에 의거한 실제의 사물이 적지만 어떤 이치가 그것 때문에 줄어들지 않는다. 일체의 이치는 곧 본래 존재하며 본래 이와 같다. 어떤 실제의 사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이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실제의 사물이 없다고 하여 우리는 이것 때문에 어떤 이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거꾸로 말해 만일 어떤 이치가 없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어떤 실제의 사물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치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어떤 실제의 사물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이치가 없다면 곧 그 어떤 종류의 실제 사물도 있을 수 없는데, 이것은 이치의 존엄이라 말할 수 있다. 어떤 이치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어떤 종류의 실제 사물이 있는 것은 아닌데 이것은 이치의 무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풍우란-
 

풍우란이 파악한 중국철학의 문제와 정신
풍우란(1895-1990)은 철학과 종교의 개념을 규정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그의 학문을 ‘반성적 사색’이라 표현하기를 좋아했는데, 자신의 철학을 곧 인생론, 우주론, 지식론 등을 통해 사람의 인생을 반성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생을 떠난 사색은 그 자체로 인간을 위한 지식이 되지 못하고, 인생을 떠난 종교 또한 공허한 것이다. 우리가 우주와 지식을 사유하는 것은 모두 인생의 반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의 유•불•도(儒•佛•道) 삼교의 특성 또한 종교적 대상과 신앙을 위한 것이 아닌, 종교를 철학화한 인간의 반성적 사색이 중심이다.
 

반성적 사색이란 또한 구체적으로 도덕적 성찰과 실천을 의미한다. 중국철학 주류의 정신인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는 이 세상을 부정하고 이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에 있지 않고 바로 이 세상에서 하늘에 부여받은 천성인 인격을 고양하여 이 사회에서 구현해야 하는 가치이다. 그래서 중국철학은 초도덕적인 차원에 관심하지 않고 오로지 이 사회에서 실현해야 할 도덕적인 차원을 중시했다. 성인은 이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이며 사람과 사회를 끌어안고 세워주는 현실 정치적 존재이다. 그러나 도덕적인 가치는 현실에 나타나는 이익적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도덕법칙에 의거한다는 것이 유학과 이를 발전시킨 송대리학의 핵심이다. 곧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하는 당위성과 선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하늘과 사람의 관계 자체에 이미 내포되어 있고 이를 통해서만 자신의 내면을 수양하고 사회를 새롭게 하는 내성외왕(内圣外王)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풍우란의 《정원육서(贞元六书)》와 <신리학(新理学)>
풍우란의 대표저서인 <신리학(新理学)>, <신사론(新事论)>, <신세훈(新世训)>, <신원인(新原人)>, <신원도(新原道)>, <신지언(新知言)>을 통칭하여 《정원육서(贞元六书)》라고 한다. 철학을 자연, 사회, 인생에 대한 반성적 사색이라고 할 때, 그 중심은 자연을 말한 신리학이며 신리학의 체계와 방법론을 사회와 인생의 문제에 대입한 것이 신사론과 신원인이다. 신리학에서 우주의 진(真)에 관해 말했다면, 신사론에서는 동서논쟁이 아닌 고금논쟁으로 서로 다른 서양과 동양의 사회상에서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말하고, 신원인은 그러한 우주와 인간의 관계, 사회와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도덕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중국철학사에서 구체적으로 해설한 것이 신원도이고 철학방법론만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이
신지언이다. 신세훈은 신사론과 신원인 사이에 수양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정원육서 체계의 근본인 신리학은 주자학의 리를 중심으로 하는 철학에 근거한다. 리와 기는 형이상학적인 본질과 형이하학적인 현상의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주자는 리와 기의 관계를 서로 떨어질 수 없고(不相离) 서로 섞일 수 없는(不相杂)의 관계로 설명했다. 이를 통해 만물은 하나의 절대적인 리인 태극을 공유하고 태극이라는 절대적인 리는 각 사물의 기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는 각구일태극(各具一太极)으로 리와 기의 관계를 상정했다. 리학은 필연적으로 리의 같음이 아닌 현실에 나타나는 기의 다름에 관심하게 되고, 여기서 본성의 이치는 같지만 현실의 이치는 다르다는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气质之性)의 개념으로 분화된다. 곧 모든 사물이 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진 기의 차이 때문에 리를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리와 기의 모순이 발생하게 되고 이를 수양의 목적으로 두게 된다.
 

풍우란의 신리학은 주자의 리학과는 달리 리와 기의 관계를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관계로 파악하지 않고, 모두 관념상의 논리적 개념으로 파악한다. 곧 기는 사물 자체가 아니며 기 또한 리와 같이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요소로 파악한다. 리는 사물의 성질이며 기는 사물의 존재에 착안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역동하는 사물이기 때문에 기 또한 관념상에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 자체가 운동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주자학의 리의 절대성과 기의 가능성 사이의 현실적인 모순을 생각해서 풍우란은 리와 기 모두를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돌려놓고 현실의 한계를 형이상학의 지고지순함을 논리적 사유를 가지고 이해함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풍우란은 이러한 리와 기의 관념을 가지고 눈에 보이는 사물 이전의 선험적인 사물의 시초에 다가가 하늘을 사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개념들은 단계적으로 하늘을 알게 하는 경지(知天), 하늘을 섬기게 하는 경지(事天), 하늘을 즐기게 하는 경지(乐天), 하늘과 같아지는 경지(同天)로 나아가게 한다고 보았다.
 

풍우란 신리학의 한계와 평가
형이상학적인 사유는 비현실적인 공상이 아닌 반성을 통한 참 인간다움의 실현과 현실 사회의 변혁을 위한 결정적인 방법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증명되지 않는 논리라는 점에서 주관성에 빠질 오류와 그러한 주관성을 권력을 통해 강요할 이념적인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경계되어 왔다. 곧 하나님이라고 하든 하늘이라고 하든 누구나가 생각하는 절대성의 관념이 움직이는 이 역사를 오롯이 반성하고 개혁하게 하는 기능을 갖지 못하면 또한 변하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구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심학은 끊임없이 리라는 절대적인 실체에 관심하기보다는 차라리 리까지 사유할 수 있는 바로 서려는 마음 그 자체에 관심해야 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사람은 불변하는 리와 변하는 마음 그 사이 어디쯤에 서있는 것이다.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
 

    인쇄하기   메일로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