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사이 과거나 추억을 이용한 마케팅이나 드라마는 대체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공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복고풍 유행 현상은 젊은이들이 비전을 품고 나이 든 이가 과거를 회상한다는 인식을 적당히 망가뜨리면서 세월을 겪은 이나 젊은이 할 것 없이 향수를 통해 서정을 반추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전통을 찾고 옛 향기에 마음을 적시는 것이 일종의 유행이 된 느낌인데 이는 일종의 사회적 노스탤지어 현상을 반영한 것이리라.
노스탤지어 현상의 유행과 함께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개인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불안감이 팽배할수록 향수를 추구함으로써 감성분출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비록 지금보다는 못살았지만 옛날 그 시대가 좋았고 편했고 정감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럴 때면 어쩐 일인지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때로 내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 나오기도 한다. 분명히 옛날보다 지금이 훨씬 나은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옛날의 순수한 나를 잃어버린 채 때가 끼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어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이럴 때면 가난에 처하는 지혜보다 더 어려운 것이 풍부에 처하는 지혜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혹은 옛날의 나)은 본래 가난을 잘 극복하는 민족(혹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그러면서 돈푼 꽤나 쓰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로 인해 불안감도 따라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렵고 힘들 때는 생각도 못했는데 여유가 생겼다는 이유로 죄 지을 기회를 자꾸 엿보게 되는 것도 부가 현상이다. 배부른 것이 나를 교만하게 하지 않고 배고픈 것이 나를 비굴하게 하지 않는다는 ‘항심(恒心)’을 지킬 수 있다면 실로 모든 것에 흔들림 없이 감사하며 살 수 있을 터인데!
중국 명(明)나라 시대, 풍부와 비천에서 일체의 만족을 배웠던 사도바울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홍자성(洪自诚)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채근담(菜根谭)》의 글귀는 과거를 향한 향수를 귀하게 여기면서도 풍요가 잉태한 현재의 막연한 불안에 불편해 하는 현대인의 복잡한 심리를 향해 맑고 투명한 의식을 전달한다.
사람들은 이름과 지위가 있는 것만 기쁨으로 여기고, 이름과 지위가 없는 기쁨이 참 기쁨인 것은 모른다. 사람들은 굶주리고 추운 것만 근심으로 여기고, 굶주림과 추위가 없는 근심이 훨씬 더 심한 근심인 줄은 모른다. (人知名位为乐, 不知无名无位之乐为最真. 人知饥寒为忧, 不知不饥不寒之忧, 为更甚.) (《채근담(菜根谭)》 제66편).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겪고 연단을 다한 뒤에 복을 이루면 그 복이 실로 오래간다. 의심과 믿음을 고루 겪고 고민을 다한 이후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 깨달음은 실로 참된 지식이 된다. (一苦一乐, 相磨练, 练极而成福者, 其福始久. 一疑一信, 相参勘, 勘极而成知者, 其知始真.) (《채근담(菜根谭)》 제74편)
편안함 속에 있는 삶은 창조적인 삶은 아니다. 긴장감도 있고 슬픔도 있고 적당한 스트레스와 아픔도 있는 삶이 오히려 자기성찰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 안의 어둡고 외로운 부분이 결핍의 감사를 느끼게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큰 빛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중에 느껴지는 어떤 신실함이 내재된 사람, 상처가 있는데 그 상처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극복한 사람, 이들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에너지가 있다. 그 가치 있는 에너지를 찾고, 존경하고, 따르고, 갖고 싶은 것이다!
배다니엘 | 남서울대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