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슈주(洪秀柱) 대만 국민당 주석과 시진핑(习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국공(国共)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는 대만의 ‘고독한 통일파’가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배후를 반영한다. 대만의 정치 무대에서 홍슈주는 고독한 통일파로 당 안에서 ‘조그만 영토에 안거함을 만족해하는(偏安一隅)’ 계파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또한 왕진핑(王金平)의 ‘본토파(本土派)’의 중국화도, 마잉주(马英九)의 ‘통일도 하지 않고, 독립도 하지 않고, 무력도 쓰지 않는’ 방어적이며 수동적인 노선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손중산(孙中山)의 정치이념을 부르짖으며 양안(两岸) 모두 중산 선생을 스승으로 삼아 ‘민족부흥의 대업을 함께 이루고 평화와 행복의 영광의 때를 함께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11월 1일 홍슈주는 시진핑과 회담을 가진 후, 베이징호텔에 투숙하며 70여 년 이어진 ‘국공회담’에 또 한 번의 역사의 증거를 남겼다. 베이징호텔은 과거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 시절 외빈을 가장 많이 접대한 곳이다. 이번 회담은 국민당이 대만에서 민진당에게 정권을 내어주고 다시 야당으로 전락한 뒤, 양당 지도자가 처음으로 만났기에 언론의 집중을 받았다. 역사에서 국공회담은 늘 중국의 운명을 바꿔왔다. 한랭기류의 영향으로 베이징의 기온은 갑자기 떨어졌지만, 홍슈주는 양안 모두 중산을 스승으로 삼아 민족부흥의 대업을 함께 이루고 평화와 행복의 영광의 때를 함께 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고추’라는 별명을 가진 홍슈주는 대만정계에서는 고독한 통일파이다. 그녀는 당 안에서 조그만 영토에 안거함을 만족해하는 계파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왕진핑의 본토파의 중국화도, 통일도 하지 않고, 독립도 하지 않고, 무력도 쓰지 않는다는 방어적인 수동성을 갖고 대만 내부에서 ‘중국인 인정’을 무시하여 임기 안에 빨리 미끄러진 마잉주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대만이 ‘독립’으로 갈 수 없으며, 양안관계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고독한 통일파가 외롭지 않게 되었는데, 그가 중산의 정치이념을 부르짖어 황푸싱(黄复兴) 당부(党部)와 광범위한 국민당 기층 당원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번 4일 동안의 전체 일정에서 홍슈주는 짙고 차가운 색 위주의 옷을 입었는데, 곳곳에 휘날리는 붉은 깃발은 그녀의 절제된 속마음과 대비되었다. 홍슈주가 베이징에서 제출한 ‘화평정강(和平政纲)’은 쏜중산의 “평화와 분투로 중국을 구하라’는 유지에 호응한다. 중국공산당은 쏜중산을 ‘혁명선의 선구자’로 지위를 부여했다. 양안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은 지금 평화라는 이 말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지만 홍슈주가 혁명 계승자가 되어 대내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번 국공회담 한달 전에 국민당은 월급도 줄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홍슈주가 자기 집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 마지막에는 돈까지 빌리면서 위기를 넘겼다는 소식이 있었다. 홍슈주가 어려운 시기를 모면은 하였지만 내년 다음 회기 당 주석에 경쟁자들이 무대 위로 오르고 있다. 그들은 모두 홍슈주를 비판하며 그가 국공회담을 위해 출국하기 전 잡음을 냈다. 이번 국공회담 일주일 전에 막을 내린 중국공산당 18기 6중전회는 ‘시진핑 동지를 중심으로 당 중앙이 움직이고 솔선수범하여 전면적으로 엄격히 당을 다스리는 것을 견고히 추진’하는 것을 확인했다. 시진핑도 마오쩌동, 덩샤오핑, 쟝쩌민의 뒤를 이어 4번째로 핵심지위를 얻은 중국공산당지도자가 되었다. ‘하나의 중국을 추구하는 원칙은 같으나 하나의 중국이라는 뜻은 차이가 있다!’ 홍슈주가 이번 회담 중 과거 20년 동안 ‘92공식(九二共识)’이 형성한 기초에 호응하였다. 하지만 시진핑은 6가지 의견을 제출하여 5.20민진당의 재집권한 뒤 처음으로 대만에 대한 담화를 공개했다. 이는 대만에 대한 정책을 전 방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쌍방은 국내외의 다양한 변화 속에 형성된 차이와 모순이 이번 국공회담을 통해 역사의 발전을 이루어 가게 되었다. 이번 회담은 국민당이 대만에서 두 번째로 야당이 되고 민진당이 두 번째로 집권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국공회담이다. 이에 대해 베이징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언론인 왕밍이(王铭义王)는 ‘독립을 반대하고 평화를 촉진하는’ 전략연맹이 이루어졌으며, ‘대만독립반대, 평화추진’이라는 대화를 계속하면서 양당 의사소통의 시스템을 공고히 한 것이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라고 보았다.
출처 | <亚洲周刊> 第30卷 45期(2016年11月13日)/ 사진출처 | 바이두 번역 | 밝은뜰·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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