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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  통권 172호  필자 : 김주한  |  조회 : 2365   프린트   이메일 
[쉬어 가는 페이지]
주자의 천국은 무엇인가? (주자학 역사의 전개12)
-주자학 종교철학의 이해-

 
“인간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하늘과 하나 되어 하늘의 뜻으로 살아갈 때 해소된다. 하늘의 뜻이 완벽하게 실현된 낙원이 천국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천국일 것이다.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아도 천국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중용에서는 그 천국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천국은 하늘의 뜻이 실현되는 곳이다. 그런데 그 하늘의 뜻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천명지위성(天命之谓性)’이란 바로 그것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성(性)이 바로 하늘의 뜻이라면 이제 걱정이 없다. 그 성(性)을 붙잡기만 하면 나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 성(性)을 붙잡는 것으로 구체화가 된다.”-이기동-  



선한 존재와 행위의 근거, 마음속에 품은 하늘

사람의 본성은 과연 선할까요, 악할까요. 범죄와 관련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인면수심의 사람을 생각해보면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학의 역사는 한결같이 사람의 본성을 선한 것으로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 세상 가운데 여러 환경과 대상을 만나면서 흐려지더라도 그 마음의 중심인 본성에는 하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인간 외부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인격적인 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주와 자연, 이 세계를 지탱하는 신적인 원리와 속성이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 되는 원리이자 도리인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나’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본성은 ‘나’와 ‘너’의 구분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어느 것 하나 ‘나’로서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주와 자연, 사람과 사회의 관계성을 인식하고 관계 속에서 선한 행위로 만나져야 합니다. 우리가 결코 사리사욕에 매몰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품어야 할 하늘 때문인 것입니다.

하늘은 남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선한 존재로 태어날 뿐 아니라, 선한 행위로 살면서 서로 길러주고 품어주는 사랑의 관계로 살아가야 하는데 욕심과 사랑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립되지만 세상을 살면서 그것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욕심이 사랑을 기만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착취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이 곧 군자답다고 말한 것입니다. ‘나’를 알아주지 못할 때 우리는 분노하고 시기합니다. 그러나 군자와 선비는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묵묵히 하늘의 의리를 따라 사람다움의 도리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늘이 있는지 욕심이 있는지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모든 것은 선한 본성을 가꾸기 위한 과정

고금을 막론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사람이 넉넉해지고 베풀 수 있는 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라 살림이 풍요로워야 인심도 후해지는 것일까요. 유학은 선한 행위의 근거가 물질의 풍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마음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마음은 철저히 자신의 사리사욕이 배제된 하늘마음입니다.

주자는 유학의 하늘을 품은 선한 본성을 어떻게 가꿔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그의 학문을 전개해나갔습니다. 하늘마음의 우주적인 이치를 탐구한 것이 리기론(理气论)이라면 그 하늘마음을 사람의 한마음으로 풀어간 것이 심성론(心性论)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에 대하여 어떠한 이해를 가지고 있던지, 우리의 마음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지, 정작 그 마음을 가꾸어가는 과정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과는 상관없는 사변적인 학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자의 인식과 개념의 발전이 일어나는 부분은 항상 그것이 현실에서 어떠한 실천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수양론(修养论)입니다. 하늘을 알았다고 해서 이미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늘을 마음에 품었다고 해서 그 사랑이 스스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양은 계속해서 몸과 마음의 훈련을 통해 실천 속에서 하늘마음을 더 깊이 느껴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차분하고 고요히 하는 것, 몸을 겸허히 굽히는 것, 일과 대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 사물의 이치를 공부하는 것 등의 수양을 통해 참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선한 본성이 우러나오도록 한다면 도덕은 억지가 아니라 가장 인간다운 본성의 자연스러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존재이며 행위, 대동사회를 꿈꾸며

주자의 신앙은 곧 우리가 마음속에 하늘을 품었다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며, 신앙의 모델은 하늘마음과 한마음으로 살아간 역사 속의 성인들입니다. 주자의 신앙은 결코 하늘을 내재화하여 개인의 종교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을 근거로 한 선한 본성의 실현인 도덕실천의 이상을 추구하며 자연과 같이 아름다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게 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입니다. 사람이 이루어야 할 역사와 세상이 어떠한 곳이 되어야 할까요.  


주자는 ‘말라 죽은 초목에도 성(性)이 있는가(枯槁有性)’를 논의하면서 곧 ‘하늘이 만물을 낳으면서 그 리는 차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학이 꿈꾸는 대동사회(大同社会)는 내 안의 하늘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늘처럼 느끼고 받드는 것입니다. 곧 내가 신과 같이 우쭐대는 마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거룩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겸손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하지 않은 것 같은 세상 속에서도 끝까지 선한 본성을 믿을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좌절하고 넘어집니다. 우리의 악함과 약함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한 마음을 품고 선한 세상을 꿈꾸며 선하게 살아가려는 과정이 곧 ‘인간다움’의 실현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습니다. 주자는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줍니다. ‘반드시 자주 자기에게 물어야 한다.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하는데, 자기의 본성에서는 그 선함이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요순의 인격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자기에게서는 요순의 인격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왜 보이지 않는가. 자주 자문하여 부끄러워할 줄을 알면 곧 용맹하게 분발하여 뜻이 세워지게 된다. (주자어류, 권118.)’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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