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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  통권 172호  필자 : 나은혜  |  조회 : 2328   프린트   이메일 
[나은혜 선교문학]
상처 입은 성탄트리에도 은혜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도 성탄절하면 성탄트리를 떠올리는 나라가 되었다. 12월이면 성탄트리는 예배당뿐만 아니라 백화점과 지하철, 상점들 등 곳곳에 세워진다. 그렇게 진열된 성탄트리를 볼 때마다 왠지 성탄트리가 상술인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아기 예수님이탄생하신 것을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성탄트리의 진정한 의미는 다르게 다가 올 것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선교지에서 보낸 1997년의 성탄절이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사역하던 현지에는 성탄절 문화가 전혀 없었다. 거리에 나가도 그 어디에서도 성탄트리를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외국인들이 드나드는 고급호텔의 로비에는 세워져 있었을지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선교지에서 맞는 성탄절,성탄트리가 없는 집에서 성탄절을 보낸다는 것이 왠지 더없이 쓸쓸했다. 그래서 시장에 나가서 성탄트리로 쓸 수 있는 나무를 살 수 있는지 알아 보았다.  


대부분 상점에는 성탄트리를 팔지도 않을 뿐 더러 상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다. 한참을 찾아 다니다가 꽤나 큰 도매상점에 갔더니, 성탄용 트리가 딱 두 개 남아 있었다. 간혹 외국인 들이 찾아서 가져다 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에 놓을 수 있는 작은 성탄트리는 없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무려 높이가 3미터나 되는 나무를 그냥 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거실이 좀 넓은 편이어서 성탄트리를 세워 놓아도 제법 잘 어울렸다. 나무가 너무 커서 성탄트리용 작은 전구도 세 줄이나 샀던 기억이 난다. 성탄절을 전후해서 식구들이 모두 잠이 든 후에 나는 홀로 거실에 나와서, 모든 불을 끄고 성탄트리의 색등만을 켜 놓고 색등의 빨강 파랑 초록의 색색의 영롱한 불빛을 바라보며, 이국땅에서 잠시나마 행복에 젖어 들곤 했다.  


이번에 C국에 들어와서도 문득 그때 썼던 성탄트리가 아직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고에가 보니 남편 K 선교사가 비닐포장을 해서 잘 보관해 둔 성탄트리가 보였다. 그것을 보자 괜스레 마음이 설렜다. 거실에 꺼내다가 놓고, 성탄트리를 세우고 분리해 놓았던 나뭇가지들을 줄기에 하나 하나씩 꽂고 잎들을 펴기 시작했다. 성탄트리의 맨 밑동에는 나뭇가지들을 쉽게 꽂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위 줄기에 두 개쯤 나뭇가지를 꽂아 넣을 때였다. 우지직하더니 나뭇가지를 꽂는 부분이 부서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하!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니 부식되어 버렸구나. 습도가 높은 이곳은 이삼 년만 물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가죽이든 뭐든 망가지기 일쑤다. 그냥 삭아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조심 조심 성탄트리 위 부분에 나뭇가지를 다시 꽂기 시작했다. 텅 빈 밑 부분은 나뭇가지를 위의 가지에 걸쳐 놓아서 공간을 채웠다. 집에 있던 빨간색 종과 빨간색 리본으로 색깔을 맞추어 장식을 했다. 성탄트리에 두를 색등도 있어서 꺼내 보았다. 살살 다루었는데도 색등은 빠져 떨어져 굴렀다. 역시 다 삭아져 버린 것이다.  


두 번째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다행히 세 번째 것은 불이 들어왔다. 와~ 정말 다행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완성된 성탄트리에 신나게 색등 줄을 걸었다. 맨 꼭대기에 꽂은 다윗의 별에서 아래까지. 이제 완성되었으니 밤마다 나 혼자서라도 보면서 감상해야지. 그런데 뜻밖에도 성탄트리를 봐줄 손님이 왔다. 그것도 귀여운 소녀들이. 사실 늘 드나드는 앞집 사람들 외에 우리 집에 손님이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성탄트리에 장식을 한 이튿날, 하나님은 두 소녀를 보내주셨다. 소녀의 부모님들과 함께 말이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로 한 여중생들이었다. 소녀의 부모들이 감사의 표시로 가지고 온 풍성한 과일바구니와 성탄트리가 잘 어울리면서 집안에 성탄을 맞이할 풍성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하루가 지났을까, 타일바닥인 거실에 성탄트리의 장식들이 떨어져 떼구르르 구르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래서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성탄트리의 한 나뭇가지가 빠져 버린 것이었다. 이미 부식이 된 나무줄기가 겨우 꽂아 놓은 나뭇가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버렸다. 나뭇가지가 하나둘 빠지자, 아담했던 성탄트리의 중간 부분이 휑했다. 이튿날, J선교교회 사모님과 모처럼 장식한 성탄트리가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더니, “저희가 작은 트리 하나가 있는데 보낼까요?” 한다. 하지만 나는 “성탄트리가 처음엔 봐 줄만 했는데... 가지가 자꾸 떨어져서 가운데가 텅 빈~ 아픈 성탄트리가 되었네요. 올해는 아픈 성탄트리와 함께 성탄절을 보내지요. 지구에서 아픈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면서요.” 


엉성한 성탄트리가 대수인가? 우리 마음속에 진정으로 아기 예수님을 모시지 못한다면 아무리 멋진 성탄트리를 장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올 성탄절, 어차피 이곳에서 나는 좀 외롭게 보내야 하겠지만, 덕분에 아기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어야 하는지 더욱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주님만 내 마음에 계시다면 상처 입은 성탄 트리에도 은혜가 넘칠 것이기에.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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