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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대 감독 자장커의 작품세계
2006년 《스틸 라이프(三峡好人, Still Life)》로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세계 감독 반열에 오른 자장커(贾樟柯)의 8번째 장편작품인 《산하고인 (山河故人)》이 2015년 10월 30일 중국에서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2015년 제68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노미네이트, 제52회 금마장영화제 각본상, 제63회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영화관객상, 제10회 아시아영화 대상 각본상을 수상하였으며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된 작품이다. 이렇게 세계의 영화제에서 주목도 받고 영화인들의 호평도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자장커는 장이머우, 천카이거, 티엔좡좡 등 5세대 감독의 뒤를 이은 장위엔, 루쉬에창, 왕샤오솨이 등과 함께 6세대 감독의 대표로서 1990년대에 베이징영화대학엘 다녔다. 그의 아내 자오타오(赵涛)는 베이징 무용대학(北京舞蹈学院) 민족무용과 출신으로 《스틸 라이프》에 이어 《산하고인》에서도 주연을 맡았는데,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그의 춤을 선보이며 4번째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산하고인》은 자장커 감독의 자전적 성격을 띤 영화로서 그의 고향이자 그가 결혼했던 산시(山西) 펀양(汾阳)을 배경으로 찍은 작품이다.
자장커는 일찍이 소자본으로 제작한 첫 장편영화이자 독립영화인 《소무(小武)》가 제48회 베를린영화제(1997년) 포럼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신예배우를 등장시키며 인위적인 조작을 최소화하고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살리며 관객에게 친숙함으로 다가간 것이 큰 공감을 얻었다. 이후 그는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그래서 2013년 칸영화제에서 《천주정(天注定)》이란 작품으로 각본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산하고인》은 캐나다, 스페인, 미국, 영국,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되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상영 첫 주만에 박스오피스 5위에 진입했는데 이 소식은 중국 블로그 웨이보를 통해 대대적으로 전해졌다. 자장커 감독의 변화에 대한 논평이 찬반으로 엇갈리지만, 그가 향토성과 예술성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세계의 다양한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상업 요소를 배제하지 않고 염두에 두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는 이십여 년 동안 변화하는 중국과 그 변화가 보통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 영상에 담아냈다. 그가 첫 해외 현지 촬영으로 제작한 《산하고인》은 펀양에서 베이징, 장강(長江), 상하이, 호주까지 공간을 확장시켜 만든 영화이다.
개인과 시대의 이야기를 동시에 담은 시공간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을 통하여 사회와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인물들의 모습을 조명하였다. 과거의 상징인 관우와 산서성 펀양의 건축물을 주축으로 1999년이 펼쳐진다. 펫샵보이즈(Pet Shop Boys)의 <고 웨스트(Go West)>에 맞추어서 젊은이들이 춤을 추며 영화가 시작된다. 선타오(沈涛, 赵涛 분), 장진성(张晋生, 张译 분), 량즈(梁子, 梁景东 분)는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장진성은 량즈와 선타오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질투심을 느껴 자신의 부유함을 무기로 가난한 량즈를 쫓아내고 선타오를 독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량즈는 선타오가 돈 때문에 장진성과 친밀해졌다고 의심하고 그녀의 곁을 떠난다. 2014년 선타오는 장진성과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장진성은 재혼을 하게 되고 아들 다오러(张到乐(Dollar), 董子健 분)를 데리고 상하이로 가버리고, 량즈는 중병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미래의 시간 2025년 호주에서 다오러는 아버지 장진성과 빈번히 충돌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중국어 선생 미아(Mia, 张艾嘉 분)를 사랑하게 된다. 사람들은 한 사람을 만남과 한 사람과 이별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모두와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산하고인》은 시간을 1999년 과거, 2014년 현재, 2025년 미래 세 단계로 구분하였다. 미래 설정이 독특하지만 현재의 지속에 불과하다. 경쾌한 <고 웨스트>의 음악으로 시작되고 끝을 맺지만 과거, 현재, 미래의 주된 감정은 고독이다. 등장인물들은 젊음과 연애, 결혼과 이혼, 그리고 이민 등의 아픔을 겪는다. 인간이 함께하는 시간은 짧고, 이별은 길기에 이들이 겪는 사랑의 달콤함은 짧기만 하다.
선타오, 장진성, 량즈 세 명의 청춘은 연애하기 전에는 좋은 동창생이자 친구였다. 장진성은 돈을 벌어서 외제차를 사고 탄광도 사들였다. 그는 선타오를 독차지하기 위해 광부인 친구 량즈를 탄광에서 쫓아냈다. 산서 방언을 사용하는 펀양의 세 친구들의 우정, 사랑, 이별이야기가 고대 건축물 문봉탑(文峯塔)과 황하 9번째 굽이 등지에서 펼쳐지는데 선타오와 이별한 장진성이 상하이로 갔다가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떠났다.
과거 화면 속의 창검을 든 소년은 청년이 되어 관우의 언월도(偃月刀)를 들고 지나간다. 펀양 사람들은 집과 탄광에서 관우상을 모시고 향을 올리는데 중국인들에게 관우는 민족의 영웅이며, 무장이며, 재물신이다. 자장커 감독은 정의와 재물의 화신인 관우가 과거와 현재의 중국인들의 마음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세 사람의 시간을 이어주는 장치로서 관우 외에도 열쇠, 청첩장, 노래 등이 등장한다. 량즈는 장진성과 선타오가 결혼하게 된 사실을 알고 청첩장과 열쇠를 버리고 집과 고향을 떠난다. 결혼 전 선타오가 아버지의 가게에서 오디오를 판매하다가 홍콩가수 예쳰원(叶倩文)의 광동노래 <진중(珍重)>을 듣고 맘에 들어 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장진성이 바로 거리로 나가 CD를 그녀에게 사다주었다. 이 곡은 <고 웨스트>처럼 자주 등장한다. 선타오는 헤어져야 하는 어린 아들 다오러와 함께 90년대 중국 대륙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홍콩 노래 <진중>을 들었다. 그 노래는 ‘길에 흰 눈이 나부끼고 당신을 잃고 헤어지는 것이 아쉽지만, 먼 곳에서도 당신을 기다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타오의 아버지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가 도중에 급작스럽게 돌아가신다. 선타오는 장진성에게 전화해서 아들 다오러를 보내달라고 한다. 그녀는 전통 예절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 할아버지 영전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엄마로서 호되게 꾸짖는다. 아들은 선타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자, 두 모자의 사이는 여전히 서먹서먹하기만 한데, 아들이 목에 맨 노란 스카프도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패드로 계모와 오랫동안 통화하는 아들이 계모를 ‘마미’라고 부르는 것도 무척 거슬렸다. 하지만 선타오는 손수 만두를 빚어서 아들에게 주며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라며 자신의 집 열쇠를 준다. 헤어지기가 아쉬워 비행기나 고속전철 대신 완행기차를 타고 아들을 배웅해준다. 모든 사람은 잠시 짧은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을 뿐이었다.
금전: 관계의 파괴자
자장커 감독은 돈을 극도로 경계한다. 다양한 인물들이 돈으로 인해서 겪는 고충을 담았다. 돈을 상징하는 인물은 장진성이다. 그는 돈 때문에 친구, 아내, 자식과 헤어지고 우정, 사랑, 부자의 관계가 파탄이 났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 속에서 돈이 유용하게 쓰이는 장면도 연출하였다. 량즈는 중병이 들어 고향에 돌아왔지만 제대로 치료할 돈조차 없자 그의 아내는 남편의 옛 애인 선타오를 찾아갔다. 선타오는 돈다발을 량즈에게 건넨다. 암 치료를 위해 옛 애인의 도움을 받는 참으로 처량한 상황이다. 량즈는 받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장진성의 연적(戀敵)의 돈을 받아야 하는 극적 요소가 강렬했지만 담백하게 표현하였다.
장진성은 돈으로 총과 다이너마이트를 사서 선타오의 마음을 빼앗은 량즈를 없앨 생각도 해 보았다. 돈은 있지만 사랑을 갖지 못한 장진성은 량즈에게 질투심을 느꼈기에 그의 눈에는 선타오의 모습들이 가식으로 느껴졌다. 장진성은 선타오 아버지의 가게에서 선타오와 량즈가 함께 만두를 먹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뛰쳐나가 버린다. 그 이유를 묻는 선타오에게 “너는 나를 기만하고 있어. 왜냐하면 내가 너를 맘에 두고 있기 때문이야.”라고 외쳤다.
장진성은 선타오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미국 달러라는 의미의 다오러로 지었다. 그는 아들에게 돈을 많이 벌어주겠다며 호언장담하였다. 다오러는 호주에서 반 친구들에게 중국 런민비가 미국 달러보다 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름을 런민비로 바꾸라는 농담을 자주 듣는다. 장진성은 재혼하고 다시 호주로 아들 다오러를 데리고 이민을 갔다. 아들은 대학 졸업장이나 호화로운 집도 필요 없다며 자유를 달라고 했다. 그런 아들에게 그는 세상에서 살려면 돈과 졸업장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장진성은 아들에게 돈은 줄 수 있었지만 사랑은 줄 수는 없었다.
다오러는 자신의 중국어 선생님이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돈 문제로 말다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아(Mia, 张艾嘉 분)는 화교로서,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는 어린 다오러에게 동병상린을 느꼈다. 다오러는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중국어 선생님인 미아를 사랑하게 되고, 어머니가 준 집의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여행사 직원이 미아 선생님을 다오러의 어머니로 오해하자 다오러는 화를 냈지만 미아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두 사람이 함께 중국에 계신 어머니 선타오를 만나러 가려는 계획이 이 일 때문에 불투명해졌다.
영화의 시작은 젊은 선타오가 <고 웨스트>의 선율에 맞춰서 춤을 추었고, 마지막은 중년의 선타오가 주방에서 만두를 빚다가 다오러가 엄마라고 부르는 환청을 듣고 밖으로 나간다. 때마침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문봉탑 아래서 경쾌하게 춤을 추면서 끝난다. 유쾌한 선율로 과거와 미래가 마주한다. 다만 예전에는 군무를 추다가 지금은 홀로 미소 지으며 춤을 춘다. 노래의 내용은 이러하다. ‘서부로 가자. 탁 트인 푸른 하늘에 해변이 있고 겨울에도 햇살이 비추어 공기조차 자유롭고 평화로운 곳. 친구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이곳을 떠나자.’
자장커 감독은 어둠 속에서 밝은 곳으로, 고향 펀양에서 호주로, 과거와 현재에서 미래로, 순수 예술영화에서 상업영화의 노선으로, 이 영화를 통해 다양한 변화를 탐색하였다. 그는 전에 사회 하층의 어두운 면을 조명했는데 이번에는 슬프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촬영하였다. 기존의 롱테이크 기법, 비 전업배우 기용 등이 줄어들고, 과감하게 대만의 유명배우 장아이자(张艾嘉)를 캐스팅하였다.
그는 <산하고인>으로 칸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기존에 추구했던 주변화, 소인물, 완만한 서사리듬, 소도시, 하층청년, 사실주의, 향토적인 것 외에 중국화와 국제화 조류에 합류하였고, 기록영화 형태의 독립영화에서 디지털 카메라의 고화질로 전환을 시도하였다. 자장커 감독은 대학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을 시도하며 주류에 편승하지 않았던 열정과 확고한 신념으로 미래에 또 다른 변신을 추구할 것을 기대해본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