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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97년 단기선교를 통해 처음 중국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단기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후 하나하나 중국선교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십여 년 동안 중국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해오고 있다. 지난 9월 27일부터 3박 4일 동안 제주에서 열린 선교중국2030대회에 참가해서 느낀 점을 나누고자 한다.
가슴 뛰게 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이번 선교대회 참가 후 느낀 점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과 은혜로 가슴속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이다. 먼저 1000여 명 이상의 중국기독교인들이 한곳에 모여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경배하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중국 대륙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국제자유도시 추구 등 무비자 정책으로 인해 선교허브로 부상하고 있는 제주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한국 최초의 선교사인 이기풍 선교사가 제주에서 최초로 개척한 교회에서 이루어졌으니 여러 면에서 의미심장했다. 물론 여기에 모인 중국기독교인들이 7천만 명 이상의 중국교회 전체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중국 동부연안의 도시교회들, 지식층들을 주축으로 모이는 교회들이 선교중국의 비전을 품고 있으며 그것이 단순한 구호나 열정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중국 전역에서 2030년까지 2만 명의 타문화권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가진 전략 모임이라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물론 주최측의 진행상의 어려움도 많아 보였다. 대회진행의 중추 역할을 하는 목사님들과 일부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출국금지를 당해 진행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은 것은 분명하다. 중국 본토가 아니기에 한국어가 가능한 여러 중국인신학생들과 중국인유학생들을 섬기는 한국인 사역자들, 몇몇 중국선교 관련 단체들과 한국교회의 여러 성도들이 곳곳에서 묵묵히 섬겨주는 아름다운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대회 기간 내내 비가 오는 악천후 속에서도 풍성한 나눔과 원활한 진행은 이들의 귀한 섬김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지난 홍콩대회 이후 두 번째인 이번 대회에서는 홍보와 동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과 전체 진행의 미숙한 점도 더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사들의 강의와 사역자들의 사역 나눔 간증을 통해 전달해주는 메시지는 보석 같이 빛났다.
‘선교하는 중국(宣教的中国)’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2002년 당시 한창 유행했던 ‘선교하는 중국(宣教的中国)’이라는 복음성가를 중국인대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선교중국의 비전을 나눌 때만 해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불과 10여 년 만에 이 상황을 목도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다. 중국이 선교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던 당시만 해도 이런 일은 너무나 요원한 일이라며 황당하다는 답변만 메아리처럼 울렸었다. 대학 주변에 교회도 몇 안되던 때에 어렵게 교회로 초청한 중국인대학생 친구들을 삼자교회에 데려가면 노인들 밖에 없었기에 좁은 식견에 그런 반응은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후 2006년에는 크리스천이 많다고 알려진 허난(河南)성 농촌가정교회에서 진행된 선교사대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이 선교대회는2년마다 그 교회에서 파송한 타문화권선교사들이 고향 교회에 모여 선교보고를 하며 사역에 대해 재정비하는 그런 모임이었다. 그때 당시 8, 90년대 중국 농촌가정교회의 부흥을 허락하신 이후 많은 전도인들이 희생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더 나아가 50년대에 이미 주셨던 백투예루살렘 비전의 영향으로 국내외 타문화권 지역에 선교사를 적지 않게 보낸 것에 대해 놀란 기억이 있다. 선교사로 헌신하고 파송받아 중국 서남부의 소수민족지역과 중앙아시아나 중동, 이집트, 서아시아지역 파키스탄까지 나간 모습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하지만 대부분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의 저학력에, 파송 교회가 재정후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아서 현지에서 건설노동자 신분으로 혹은 중국 식당을 운영하며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교 사역시간의 부족, 외국어 습득능력의 부족과 영어로 소통이 되지 않아서 해외선교사들과 협력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타문화권선교훈련과 경험의 부족, 부부관계의 어려움, 자녀교육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실제 현지인선교에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그로 인해 좌절하고 철수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더더욱 대학생선교를 통해 도시지식인의 교회개척을 돕고 미래의 선교자원 개발에 매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생선교의 열매인 많은 지식인크리스천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식층 가정교회가 세워져 성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자, 직장이나 비즈니스 경험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타문화권선교훈련을 통해 선교사를 보내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아직 많지는 않지만 이번 선교중국2030대회에서 중국인선교사들의 선교보고와 간증이 특히 보석처럼 빛났다. 필자가 이번 선교대회에 준비팀이나 섬김이로 참여하지 않아서 선교대회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강사 등은 보안 문제로 일일이 다 쓸 수 없어서 안타깝다.
2000년에 필자가 군복무를 할 당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중앙아시아 T국에서 한국인선교사가 세운 현지교회가
폭탄 테러로 10명이 그 자리에서 순교하였고 100여 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는 보도였다. 기도하며 인터넷에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후원모금사이트가 있었다. 얼마 안되지만 5개월 동안 모았던
군인 월급을 헌금하며 기도했다.
‘저 한국인선교사와 현지 크리스천들이 큰 어려움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교회가 다시 세워지고 더 큰 부흥을 주십시오!’
그리고 다 잊어버렸는데 16년이 지난 지금, 이번 대회에서 그때 기도했던 그 선교사님을 만났다. 중앙아시아 선교전략이라는 선택 세미나에서 이미 몇 명의 중국인선교사와 한 팀이 되어 이슬람권에서 멋진 사역을 하다가 지금은 중국인선교동원에 집중하고 계시는 그 선교사님을 만난 것이다. 2000년 당시 기도했던 것처럼 순교의 피 흘림 위에 더 큰 부흥이 있었다. 선교사님이 보여준 20여 년 동안의 사역 영상을 보면서 벅찬 감격을 숨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7000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회심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협력 사역하는 중국인부부가 선택특강의의 주강사였다. 대도시에 호구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둘 다 명문대학을 나온 인재로 외국기업에서 상당한 연봉을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헌신하여 척박한 이슬람권선교사로 나간 모습에서 중국선교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이제는 중국인선교사들을 위한 영성훈련센터를 건립해서 선교동원 사역에 집중하고 있는 한중연합선교사팀의 활약이 기대된다. 어쩌면 중국에서 사역하던 많은 한국인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난 이후의 선교중국을 위한 모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약 8년 전에 내가 섬기고 있던 한국인선교훈련생들과 중국 남부의 한 소수민족지역에 비전트립을 가서 다이족이라는 미전도종족을 처음 만났다. 모든 다이족 남자 아이들은 의무감으로 3년 동안 승려생활을 해야 하는 철저한 불교신앙이다. 다이족 중에는 크리스천도 선교사도 거의 없었다. 그 땅에 주님의 복음을 전할 일꾼들을 보내 주시고, 무엇보다 다이족 현지인 사역자가 나오게 해달라고 짧지만 굵은 기도를 했다. 선교 중국대회 기간에 중국 안 소수민족선교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나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그날 밤에 소수민족 사역자들이 강단에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로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이족 현지인 사역자를 만났는데 그를 통해 현지 다이족교회들의 소식을 들으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다.
또한 승려였던 TB현지 사역자의 회심이야기와 자신의 동족으로부터 수많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핍박 속에서도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전도소수민족들 가운데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간증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가운데 한 한국인선교사 가정이 중국 정부에 소수민족으로 등록이 안되어 있는 서남지역의 한 미전도종족을 품고 이들과 몇 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이들의 언어를 배우며 오디오 성경을 번역하고 전도하여 현지인 제자들이 나오고 교회가 세워지게 된 선교보고는 내 영혼을 정화시켜주었다. 필자도 짧은 시간이지만 중국 서부지역의 소수민족 사역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는 많은 한족선교사들이 소수민족의 언어를 배우기보다 보통화(普通话)로 선교 사역을 하려다 배척당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고 했다. 외국인이 소수민족지역에 사는 것도 어려운데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낙후된 마을에 그들과 함께 살면서 현지어로 선교를 하는 자체가 큰 도전이 되었다. 중국내 알려진 소수민족을 좀 더 세분화한 민족지 정보와 잘 알려지지 않은 다수의 미전도종족에 대한 자료를 공유하고 각 교회에 민족입양을 하도록 격려하며 실제로 대회 기간 중에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한 것도 감사했다. 감동에서 행동으로, 행동에서 연합하는 행동으로 나아가려는 선교대회의 취지에 맞게 순간의 감동을 뛰어넘어 구체적인 선교전략과 행동계획들이 세워진 점도 놀라웠다.
마지막 날 헌신의 밤에 A에서 몇 년째 사역하고 있는 중국인선교사의 간증을 들었다. 한국교회가 파송한 의료단기선교팀이 A에서 탈레반에게 피랍돼 두 명이 순교한 사건 때문에 그에 대한 아픔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한국인 여행금지국인 그곳에 중국인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해서 관심을 갖고 들었다. 그곳은 하루에 두 시간만 물과 전기를 쓸 수 있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아직도 탈레반 세력이 남아 있으며 현지인 기독교인들은 가족명예살인으로 순교하는 그 땅. 얼마 전까지 친하게 지냈던 남아공으로 파송받은 선교사 일가족이 폭탄 테러로 순교하고, 자신과 가장 친한 미국인 자매 선교사가 ‘A민족이 주님께 돌아오는데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명을 취하소서!’라는 눈물의 기도를 드린 이후 정말로 일주일 뒤에 탈레반에게 살해 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수많은 A국의 무슬림들이 환상과 꿈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 질병의 치유와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있다. 가족명예살인 등 많은 순교자가 나오고 있는 A국은 전 세계에서 교회성장률이 두 번째로 빠르다. 지금은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A국을 품고 사랑하게 되어 자신의 자녀도 A국선교에 헌신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사역의 필요가 많은데 중국인들은 비교적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A국. 자신과 평생을 함께할 중국인선교사 7명을 그 자리에 초청했다. 함께 기도하는 중에 기도회를 인도하시던 목사님이 공개 헌신 초청에 정말로 10분 통성기도 후 기적같이 각기 다른 지역, 교회의 7명의 형제자매들이 그 땅의 평생선교사의 부르심에 응했다. 각본에 있는 것처럼 이렇게 많은 증인들 앞에서 공개 헌신한다는 것, 또 믿음으로 도전했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반응하여 헌신한 중국인 형제자매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과 감격 속에서 울며 감사로 화답하였다. 그 자매 선교사를 파송했던 교회목사님이 갑자기 사회를 보는 목사님의 마이크를 잡고 공개선언을 한 것에 크게 공감이 됐다.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의 책임자로서 한 번도 A국에 방문해 보지 않았으며, 후원도 넉넉하게 하지 못했음을 회개했다. 그래서 돌아가서 최선을 다해 이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꼭 A국에 가 보겠다고 울며 나누었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그 동안 중국교회가 선교사들을 파송하지 않고 있던 것을 회개하며 선교하는 중국으로 2030년까지 2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겠다고 결단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막을 사람이 없다
다함께 ‘선교하는 중국’이라는 찬양을 부르며 중국선교를 통한 세계선교의 비전이 이제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이뤄지는 모습을 내 눈에 내 마음에 담았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감격하고 감사했다. 또한 미래 중국선교의 자원개발을 위해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대학생선교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며 돌아왔다. 다만 선교한국처럼 청년, 대학생들이 주요 대상이 아닌 교회 지도자들의 참여가 많은 선교대회였기에 참여한 지역교회는 선교 열정의 분위기를 고취하여 선교사 파송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실제로 선교사로 나갈 미래의 선교자원인 청년, 대학생들을 동원하는 선교중국대회가 된다면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했을 때만 해도 전 세계에 나가 있는 한국인선교사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90년대 초 큰 부흥이 있었던 대학생선교운동과 한국교회의 부흥,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최된 여러 선교대회와 한국교회의 단기선교 등의 노력으로 10여 년 만에 2만 명 이상의 한국인선교사가 파송된 역사 속의 예가 있다. 한국 인구의 10%가 되지 않는다는 기독교인 수보다 10배 이상이 되는 중국교회가 일어난다면 2030년까지 2만 명의 중국인선교사들을 중국 내지와 해외 타문화권 선교지로 파송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닌 줄 믿는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막을 사람이 없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추후 어떻게 중국교회들을 일으켜 마지막 남은 선교과업을 어떻게 이루어가실 지가 기대된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한국선교사들이 지금의 중국선교 전략과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어떻게 중국인선교사와 함께 이 일에 동역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주님께 무릎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왕 선생 | 현지 사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