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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  통권 171호  필자 : 이광열  |  조회 : 2512   프린트   이메일 
[단기선교 경험기]
은내천 선교정탐을 위한 부르심

※ 올 9월 11-16일, 추석연휴 기간을 이용하여 부부 4가정 8명이 은내천 지역(본 웹진 2014년 10월호부터 2015년 12월호까지 “선교현장 이야기”를 통해 연재된 글을 참고 바랍니다.)을 정탐, 격려하고 왔습니다. 답사기를 2회에 걸쳐 나누고자 하는데, 먼저 선교의 부르심에 대한 동기부여로 전했던 말씀을 이번 11월호에 나누고, 실제로 다녀온 일정과 준비과정은 12월호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명(召命)이 사명(使命)의 시작이다

모든 성도는 주 안에서 3가지의 부르심을 경험합니다. 첫 번째 부르심은 출생으로 시작되는 몸의 부름입니다. 두 번째는 영혼의 거듭남인 하나님의 자녀됨, 영적인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부르심은 그 거듭난 인생이 감당해야 하는 사명 또는 직업과 직분에 관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는 일, 내게 주어진 역할과 직분은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고, 그곳에 세우셨기에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의 부르심에는 3가지가 있는데 다 확인이 가능합니다. 육적인 부르심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몸을 만져보면 확인됩니다. 또 영적인 부르심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확인할 수 있고요. 그리스도를 닮아감, 순종의 열매로, 영적인 생명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소명의 자리인. 내 직업과 직분의 부르심입니다. 이것은 단 한 번의 확인이 아닌 평생이 확인의 과정이기에 늘 확신과 회의를 반복하며 이어갑니다. 그리고 이 부르심은 저와 여러분을 마지막 주님 품으로 불러주실 때에야 끝이 나기에 한 번에 확신이 아닌 과정으로서 확신이 필요한 부르심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바울의 세 번째 부르심은 사도입니다. 그런데 그 사도의 부르심을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연결시켜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공부를 하든, 주부로서 살림을 하든, 가계에서 물건을 파고, 일터에서 사무를 보든, 성도의 일상 소명은 다 그리스도와 연결된 자리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 1절에서도 같은 부르심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사도바울의 자기 이해는 자기를 부르신 그리스도 앞에서는 종이요, 일꾼이고, 자신의 소명, 직분에 관해서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말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아도, 자신의 부르심의 의미와 목적을 다 하나님과 연결시키며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전제하에서는 누구를 불렀는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누가 나를 불렀는가 더욱 중요합니다. 누가 불렀는가에 따라 대개는 부름받은 사람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의사가 나를 불렀다는 것은 내가 환자일 경우가 많습니다. 경찰과 검찰에서 나를 불렀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부름은 아닙니다. 대신 국가대표 감독이 한 선수를 부를 때 부른 목적이 무엇일까요? 국가대표를 하라는 것이지요. 나라를 대표해서 자기 몸을 불사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다 나를 불러주심에 대한 감격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군에서 이등병 신분으로 수색대생활을 한참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사단 사령부에서 지프차 한 대가 왔습니다. 이제 곧 전역하는 부사단장 당번병을 대신할 새로운 사병을 찾는 것입니다. 차에서 보좌관과 부사단장이 내려 응접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제 막 이등병을 마치고, 일병을 달기 직전의 사병들을 다 소집했습니다. 저까지 모두 열 한 명이었습니다. 부사단장이 짧게 하나씩 물어보고 바로 떠납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다시 지프차가 오더니 제 짐을 다 꾸리라는 거에요. 부사단장이 저를 불러준 거에요. 그 부르심 가운데도 여전히 저의 신분과 계급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제 신분은 여전히 이등병이지만, 이제 육군 대령 중에서도 가장 고참 중에 한 분이 나를 불러주었기에 그 권위아래 들어갑니다. 불러준 분이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바뀌어 집니다. 병장을 부르든 일병을 부르든 부름을 받은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불러준 사람의 계급이 중요하지요.   


사도바울은 이처럼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그 사실 하나가 자신의 모든 부족함을 채움 받고 일어서게 합니다. 심지어 과거의 아픈 상처까지 얼싸 안으며 순종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주변의 사도직에 대한 의심과 논쟁도 감싸 안습니다. 한때 그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고, 예수님을 만난 장소인 다메섹도 교인들을 붙잡으러 가던 여정 중이었습니다. 그런 과거의 아픈 상처가 있지만, 그럼에도 주님이 나를 불렀다는 사실이 그 상처를 이기게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사도직에 대한 부정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게 했던 힘도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확고한 소명 때문입니다. 이 부르심의 확신과 망각이 바울뿐만 아니라 한 인생을 세우기도 하고 넘어뜨리게도 합니다. 그래서 부르심에 대한 확신과 감사는 사역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자 기둥입니다. 사람이 불러줘도 감격하고, 보은의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는데, 하물며, 바울은 자신의 부름이 신적인 부름,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불러주었다는 그 사명 하나로 충성을 다 합니다. 이 부르심이 우리를 세상에서 당당하게 합니다. 이 부르심이 바울이 경험했던 과거에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의 처지와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했던 타인의 평가마저 넘어서게 만듭니다.  


소명의 메아리

이번에 저와 여러분이 5박 6일의 일정으로 단기정탐을 다녀옵니다. 우리의 어떠함으로 보면 실망과 어려움뿐입니다. 시간 내는 것, 훈련받고 모이는 것, 재정 문제, 가족들과 집안의 어려움 등 충분히 피하고 싶은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면 그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보게 하실 비전이 있습니다.

그 부르심에 소망을 두고 중국 회족(回族)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13년 전에 동인교회는 저를 선교사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6년 전에 담임목사로 불렀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부름입니다. 그러나 이제 제가 여러분을 부르고 싶습니다. 처음 저를 불렀던 그 마음과 그 뜻을 잊지 마시고 함께 아름다운 주님의 몸된 교회, 몸된 사역을 함께 이루어가자고 여러분들을 간절히 부릅니다. 13년 전에 여러분들이 저를 부를 때에 기도하며 작성한 선교계획서에 포함되어 있는 땅이고 민족입니다. 그 땅과 민족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부르심에 우리가 멈칫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어떠함을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어떠함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덮으시고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우리 동인교회가 꾸준히 참여하는 것은 정말 의미가 있습니다. 이 시대는 바울도 필요하지만 정말 멋있는 교회의 역할이 더 절실합니다. 선교사들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큰 그림을 그려갈 수 있도록 준비된 교회의 큰 그림이 필요합니다. 방향도 나누고 전체적인 시야를 공유하며 진행시켜 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소수민족도 품고 끝까지 감당하며 사역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꿈, 복음확장의 기대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이어령 교수가 쓴 ‘젊음의 탄생’이라는 책에 퍼스트 펭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퍼스트 펭귄, 첫 번째 펭귄이라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뜻의 유래가 있습니다. 펭귄들은 항상 뒤뚱뒤뚱 떼를 지어 다니며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다닙니다. 그리고 이제 수컷 펭귄이 사냥 떼가 되고, 먹이를 물고, 새끼들에게 줄 때가 되면 바다 쪽으로 다 우르르 몰려갑니다. 그러나 바다에 와서는 정작 한 번에 뛰어들지 못하고, 일제히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머뭇거립니다. 그것은 바닷물 속에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먹이도 있지만, 자신들을 노리는 물개나, 바다표범 같은 천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머뭇거리고 있는 펭귄의 무리 가운데 바다를 향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용감한 펭귄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까지 머뭇거리던 펭귄들도 다 일제히 힘차게 바다로 뛰어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퍼스트 펭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순종해보지 못한, 아니 해보았음에도 순종의 대가를 치르기에 주저하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 과감히 몸을 던질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찾는 것은 백 명 천 명같이 많은 무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나오는 첫 번째 펭귄 같은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이 일을 우리 동인교회가 다시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또박또박,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이 부르심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이번 기회를 통해 함께 응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광열 | 동인교회 담임목사, 전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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