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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님 앞으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 1~2).
10년 전, 나름 신앙생활에 열심이었고, 가정생활에도 열심이었고, 이웃사랑에도 열심이었던 내게 상상하지 못할 고난이 겹쳐 일어났다. 가정, 건강, 사업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무너지는 고통 가운데 있을 때 아브람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이 들렸더라면 그래도 견딜힘이 있었을 텐데. 사랑의 하나님이 미리 눈치도 주지 않으시고 갑자기 나를 깊은 수렁에 밀어 넣으신 듯,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끌려다니며 내 의로 유지하던 신앙은 아무 소용없이 거품 속으로 사라졌다.
찢어진 가슴에 조울증을 겪으며 소망 없이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을 하였다. 하지만 살려고 몸부림친 것이 아니라 죽으려고 몸부림쳤던 그 죽음마저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를 기다려주시고 새 생명으로 살려주시더니 인생의 밑바닥에서 다시금 새 소망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다시 만났고 그제서야 하나님이 다시 나를 부르시는 음성이 제대로 들렸다. 다시 주님 앞으로 오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여 년 전 스무 살, 어느 목요집회에서 “중공 땅을 위해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를 복음이 없는 중공으로 보내소서!” “아멘, 주여 나를 써주소서, 나를 보내주소서!” 고백하는 내내 나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며 서원기도를 했지만 첫사랑을 잊어버리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시 세상의 목적에 한발을 걸치고 종교생활을 즐겼던 내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시고 택하시고 부르셨는데 나의 불순종에도 끝까지 기다려주셨다. 때가 되니 내가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고난을 허락하셨다. 고난이 축복이라고 설교하시던 목사님의 설교가 이렇게 다가올 줄 몰랐다.
다 차려진 잔칫상에 늦게 와서 숟가락 들고 앉아있는 기분
17년이 지나서 다시 만난 주님 앞에 감사와 송구함이 밀려와 어디라도 좋으니 주님께 다시 헌신하며 주님 가신 길 가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지난 시간 버리지 않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며 인도해주신 선교훈련을 받았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중국의 어느 도시에 중국인이 개척한 교회에 와 있었다. 500여 명과 함께하는 추수감사절 축제는 충만한 은혜, 감사와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곳에서 드리는 예배에서 함께 찬양하는 것이 너무 감사하여 기도하는데 다시 송구함이 밀려왔다. 이렇게 종교의 압박이 끊이지 않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수많은 기도와 영적 전쟁, 헌신자들 가운데 이제야 함께 이 영광을 함께 누림이 너무 죄송했다. 다 차려진 잔칫상에 늦게 와서 숟가락 들고 앉아있는 기분 이랄까.
“주님 이제라도 다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은 생명 다시 살려주신 이 은혜 어찌 갚으리요. 갚을 길 없어 이제 남은 시간과 주신 은사로 중국선교를 위해 써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이 생명은 주님의 것이오니 주님 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 보내주신 이 나라 이 땅에 뼈를 묻으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예배 때마다 주시는 감격은 늘 눈물로 기도하게 하셨다.
눈을 뜨고 예배당을 나오면 여기는 다른 세상, 아는 중국말이라고는 “니하오, 이, 얼, 싼. 뚜이부치”가 전부였다. 온통 빨간 간판에 그림인지 글씨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는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늘 싸우듯이 말하는 중국인들. 말도 못하고 아직 공산당 냄새가 나는 사회도 문화도 이해가 안되었다. 서른일곱 살에 선교훈련이라니, 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10여 년 미술선생으로 살았던 경력밖에는 없는 내가 다시 언어를 공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주님! 저는 안 되겠으니 다시 보내주소서” 하며 다시 기도했다.
참 신실하신 하나님! 내게 있던 전부를 이미 정리시켜 주셨으니 내게 남은 전부로 지불한 훈련비, 이제 어디에도 갈데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 어찌하오리까 울며불며 매일 주님을 찾을 수밖에. 그렇게 날마다 시편을 묵상하며 따뜻한 하늘 아버지를 만났고 자상하고 애틋한 신랑 예수님을 만났다. 상처 난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시며 사랑을 부어주시는 주님. 그렇게도 들리지 않던 주님의 음성이 끊이지 않고 들린다. “이거 정말 제게 주시는 말씀 맞아요? 주님!”
사랑방이 된 학교 앞 작은 단칸방
“네게 보여준 내 사랑을 네가 있는 이 땅에 울고 있는 영혼들에게 전해주겠니. 너와 같이 상처와 고통 가운데 울고 있는 영혼들에게 내 사랑을 흘려주렴. 말이 통하지 않아도 된단다. 내 사랑을 담아 사랑으로 섬기면 된단다. “
주님은 학비까지 챙겨주시며 외국어대학 어학원에 보내주셨고 그곳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중국대학생들을 만나게 해주셨다. 말을 유창하게 못해도 내 말을 다 알아듣는 학생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복음을 전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학생들 중에 이미 어느 선생님한테 복음을 듣고 세례까지 받고 신앙을 키워가던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교제를 하면서 점점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예수님을 만났지만 말씀으로 양육하지 않은 채 복음을 전했던 선생님은 이상하게 변질되어 사람을 모으는 대가로 돈을 받기 시작했고 아이들 양육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아이들을 돈으로 계산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십일조라는 이름으로 개개인에게 돈을 요구하였고 선생님을 신뢰하며 사랑을 느꼈던 아이들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배신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던 예수님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며 교회를 무조건 욕하기 시작했다.
주님! 이 학생들을 어쩌면 좋겠어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보다 이미 복음을 들은 친구들이 다시 복음으로 회복될 수 있게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감동을 받았다. 그 감동으로 나는 그들에게 조건없이 베풀고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기 시작했다. 학교 앞 작은 단칸방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복음을 전했던 선생님 때문에 복음에 배신감으로 가득 찬 학생들을 이 단칸방으로 모이게 하셔서 날마다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하셨다. 교문 바로 앞이라서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가족, 이성, 장래에 대한 상담도 해주고 따뜻한 밥과 떡볶이, 생일엔 생일상을 차려주고, 유학생들과 중국어 담임선생님 등을 초대하며 음식을 나누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늘 내가 있는 곳이 주님이 기뻐하는 곳이 되게 해주시고 예배와 삶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주님의 처소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셨다. 할렐루야!
학생들은 한 명 한 명 마음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특별히 심한 배신감으로 상처가 깊었던 D자매와 마음을 나누던 중 거할 곳이 없어진 자매와 단칸방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중국어가 부족해 혼자 살기 어렵겠다며 나를 도와주겠다는 의도였지만 흠…. 처음엔 조금 걱정이 되었다. 교제할 때는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섬길 수 있었는데 정말 좁은 한 방에서 문화가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친구랑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도밖에 안 나왔다.
그런데 D자매는 교회, 예수님, 복음, 이런 단어만 들으면 두드러기가 난다며 늘 욕을 하면서도 나의 사역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어느 겨울 새벽 5시 눈을 떠서 7시부터 시작되는 1부 예배를 준비하려 나가려는데 자매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 옷을 입는다.
“언니, 아직 밖이 깜깜해
서 위험해요. 같이 가 줄게요.”
“어… 안 졸려?”
“괜찮아요. 함께 가요.”
이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D자매는 지금까지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동역자가 되었다. 매주 나를 지켜주겠다며 따라와 예배시간에 앉아 졸면서도 찬양하는 가운데 마음이 열리고 전하는 말씀에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자매는 일대일 양육을 받고 모든 사역에 한마음으로 도우면서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고 불교가정에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귀한 딸이 되었다. 역시 전도는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수님의 용서와 긍휼과 사랑으로 온몸으로 영혼을 품게 하셔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김용희 | 경배와찬양 문화사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