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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  통권 170호  필자 : 김주한  |  조회 : 3897   프린트   이메일 
[쉬어 가는 페이지]
주자 수양론의 결론은 무엇인가? (주자학 역사의 전개10)
-중화신설 시기에 완성된 주자의 경사상-


“경이란 글자는 동(动)과 정(静)을 관통하는 의미를 갖는다. 다만 미발시(未发时)에는 혼연한 것이 경의 본체이다. 그러나 미발시만 알고 경을 행하는 공부를 그만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발시(已发时)에 일에 따라서 성찰하면 경의 작용이 행해진다. 그러나 본체가 처음부터 세워지지 않으면 그 작용이 역시 저절로 행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경과 의는 별개의 구별되어진 일이 아니다. 반드시 어떤 일을 있게 하되 기필코 하려 하지도 말고, 잊지는 말되 조장하지도 말라. 그렇게 하면 이 마음은 또렷하게 움직임과 고요함을 관통하고, 경이 확립되고 의가 실행되어 어디를 가더라도 이치의 올바름이 아님이 없게 된다.”  -주자-  


성체심용(性体心用)에서 심통성정(心统性情)으로 심성론을 확정하다

주자는 중화구설 시기에 성과 심의 관계를 본체와 작용인 체용의 논리로 파악하고 마음의 움직임 가운데서 본성의 실마리를 관찰하여 이를 통해 지극히 순수한 본체를 체험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요동치는 마음의 흐름 속에서는 고요한 마음의 본체를 체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간파한 이후 본체를 직관하려는 노력이 아닌 함양하는 것으로 그의 수양론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는 곧 마음속 순수한 본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종교 수양에서 마음의 선한 본성을 길러 나가는 도덕 수양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주자 수양론의 변천과정에서 드러나는 도덕심과 도덕심의 근거가 되는 도덕성에 대한 심성론 구조의 관심은 도덕주체인 인간의 수양이 어느 부분까지 계속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물음이고 노력입니다. 성체심용의 심성론 구조에서는 마음이 논리적으로 본성을 직접 길러나갈 수 없는 개념으로 파악되었지만 심통성정의 구조에서는 마음이 고요한 중의 발현되기 전의 상태인 성과 움직이는 중의 발현된 이후의 상태인 정 모두를 수양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불교가 추구한 불성이 세상만사의 시름을 풀고 선과 악의 상대세계 자체를 벗어나는 초월적 깨달음의 영역이라면 유교, 특히 송명시대의 성리학이 추구한 인성은 세상만사 가운데 지극히 선한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하여 마음으로 돌아오게 되는 수양으로서 마음의 고요함과 움직임 모두에 적용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마음의 미발수양과 이발수양에 모두 실패하였던 주자는 최종 미발수양과 이발수양을 어떻게 종합하게 되었을까요.  


도덕 실천은 마음의 동기와 행동 모두를 일컫는 것이다

대상을 끊어내는 순수상태를 지향하는 미발체인(未发体认)의 수양과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이발찰식(已发察识)의 수양을 모두 지양하고 수양의 점진성과 일상성을 토대로 주자는 경(敬)이라는 수양개념에 새롭게 주목하게 됩니다. 수양의 점진성은 일회적인 깨달음이 아닌 도덕의 선한 본성을 평상시 늘 담지하고 있어야 함을 의미하고, 수양의 일상성은 대상을 만나기 전에 그렇게 길러진 도덕성이 대상을 만났을 때의 일상현실 속에서 가감 없이 그대로 흘러나갈 수 있는 태도로서 주자는 이를 거경(居敬)의 상태로 보았습니다. 곧 대상을 만나기 이전과 만난 이후의 마음가짐에 변화가 없이 모든 때에 선한 본성이 그대로 발현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양은 마음속에 부분으로 경의 상태를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의 개념 안에 내 마음을 푹 적시는 모양을 말합니다. 곧 물속에 내 몸을 완전히 담그는 형상입니다.  


이는 곧 도덕 실천의 동기와 행동의 일관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대상을 만나기 전 선한 행동에 대한 마음을 굳건히 먹어도 실제로 대상을 만나거나 특정한 환경에 처하면 선하게 먹었던 마음가짐보다 대상과 환경에 굴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동기는 좋았지만 결과는 욕심으로 끝나는 경우가 됩니다. 또한 반대로 눈에 보기에 결과는 훈훈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동기는 대상을 이용하고 조종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행동의 결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역사와 사람 앞에 온전한 도덕적 평가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주자는 경사상을 통해 마음이 모든 상황과 대상에 대하여 변함없이 일관되게 선해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 자연만물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감이 성실하듯이(诚) 이를 본받아 사람 또한 동기와 행동이 일상 속에서 늘 성실해야 함(敬)을 강조한 것입니다.   


경이무실(敬而无失)의 경지를 말하다

정자(程子)가 예기의 중심이 되는 구절로 ‘曲礼曰 毋不敬 俨若思 安定辞 安民哉’를 꼽았는데, 이는 ‘곡례에 이르기를 사람이 수양함에는 언제나 공경치 않음이 없어야 하고, 늘 도의를 생각하는 것같이 엄숙해야 하며, 말은 편안하고 명확해야 하니,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할 수 있으리라’라는 뜻입니다. 경은 특정한 때와 방법을 의미하지 않고 곧 그렇게 하지 않음이 없는 경지로서 모든 때의 조건 없는 절대적인 선에 관한 수양을 의미합니다. 주자는 무불경의 경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경이무실로 표현합니다. 그는 ‘경하여 놓치지 않음(敬而勿失)이 곧 중(中)이라는 것이다. 경하여 잃지 않음(敬而无失)이 본래 중인 것이 아니고, 단지 경하여 잃지 않으면 중의 기상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공정함(公)이 인(仁)은 아니지만 공정하여 사적인 것이 없으면 인인 것과 같다.’는 설명을 통해 우리의 수양이 곧바로 선한 본성 그 자체는 아니지만 우리가 수양하는 과정의 그 자체가 선한 본성의 모습 그대로를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 선에 대하여 완전한 사람은 없지만 수양을 통해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고 경을 통해 자신이 용납하지 못하던 대상과 상황까지 더욱 깊이 포용해 가게 됩니다.  


주자는 또한 경사상을 통해 경을 통한 마음의 수양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수양을 점진적으로 강화할 수 있도록 대상과 환경을 파악하려는 공부를 동시에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거경함양과 더불어 주자 수양론의 양대 축으로 일컬어지는 격물치지입니다. 수양의 주체는 마음이지만 마음만을 문제 삼지 않고 공부의 지평을 외부로까지 돌려 수양이 주관적인 평가에 빠지지 않고 도덕 실천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입니다. 마음이 무엇을 바라는가,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가는 대상과 환경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 대상과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에서 또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주자 수양론의 통찰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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