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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  통권 170호  필자 : 나은혜  |  조회 : 1533   프린트   이메일 
[나은혜 선교문학]
피서를 즐기는 노트북

한참 더운 8월 셋째 주 우리 가족은 B시로 여행을 다녀왔다. 매년 현지 선교회의 총회가 이때쯤 있기 때문이다. B시까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세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기차를 타고 22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이다. 만 하루가 꼬박 걸리는 길을 기차를 타고 갔다가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그런데 필요해서 갖고 갔다가 돌아온 나의 미니 노트북이 그만 멈춰 버린 것이다. 사람도 피로했지만 노트북도 피로했는지 도무지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딸애가 하는 말이 “엄마 노트북을 하루 정도 쉬게 하면 되는 수가 있어요.” 하기에 하루를 푹 쉬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은 되겠지 하고 전원을 켜보았으나 여전히 화면이 뜨지를 않는 것이다. 할일은 많고 정말 큰일이었다. 이제 노트북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문서필기도구가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미니 노트북은 Sony중고를 산 것이어서 쉽게 고칠 수도 없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이제 방학이 끝나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딸편에 보내어 수리를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시종 시큰둥하게 구는 것이다. 그리곤 “기도해. 기도해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어” 한다. 나는 그 말에 화가 나서 속으로 “기도하면 기계가 고쳐지나, 뭐, 자기가 컴퓨터 수리점에 갖고 가서 고쳐다 주기 싫으니 저러지” 하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얼마 후 점심준비를 하기 위해 재료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연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미니 노트북이 비닐지퍼백 속에 얌전히 넣어져서 냉장고 안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우습기도 했지만 너무 기가 막혔다. "아니, 누가 노트북을 냉장고에 집어넣었대요? 우리 집에 다니엘이 하나 더 나왔구먼.”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 큰 아들 다니엘이 서너 살 때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아들은 엄마가 뭐든 냉장고에서 꺼내고 넣는 것을 보고는 어느 날 유치원을 다녀와서 냉장고 문을 열고는 냉장고 안에 크레파스와 스케치 북을 넣어 둔 것을 발견한 우리 가족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던 일이 있었다. 그 생각을 떠올리면서 내가 한마디 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기가 막혀하는 말을 듣고도 남편은 웃지도 않고 정색을 하며 대꾸를 한다. “내가 넣었어. 당신 노트북 고쳐 주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더 기가 막혔다. 그래서 좀 빈정대며 “아니, 냉장고에 노트북을 넣으면 노트북이 추워서 정신을 차리기라도 한대요?” 했다. 그러자 그런 내 말에는 대꾸도 안하고 남편은 부엌으로 가더니 냉장고 문을 열고 노트북이 들어 있는 지퍼백을 꺼내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에 남편이 기뻐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노트북이 정신이 돌아왔다. 된다. 돼!” 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내 노트북의 친숙한 화면이 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하도 반가워서 “아유 신통해라 애가 여행 다녀오느라고 더위를 먹었었나 보네. 그런데 시원하게 피서를 하더니 정신이 돌아왔나 보다.” 했다. 놀라움 반 기쁨 반의 소란스런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남편이 기도가 만능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남편은 내가 속상해 하는 것을 보고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내의 노트북을 고쳐 주세요. 고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남편은 이곳 지역 신문을 보게 되었는데, 그 신문에 ‘여름철 PC관리 요령’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신문에는 ‘무더위와 PC’, ‘습기와 PC’, ‘낙뢰와 PC’, ‘여름철 노트북 관리법’ 등의 소제목으로 자세하게 PC관리법이 나와 있었다. 특히 여름철에 노트북을 가지고 여행을 다닐 때 자동차 트렁크에 장시간 넣어두면 노트북이 다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저런 여름철 PC관리에 대한 정보를 읽게 된 남편은 혹시 노트북을 식혀주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퍼백에 넣어서 냉장고에 넣었던 것인데 그것이 아주 주효했던 것이다.  


아무튼 가장 고마운 사람은 두말할 필요 없이 나였다. 노트북은 내가 매일 필요로 하고 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후부터는 남편은 열심히 내방에 들어와서 내가 노트북을 쓰다가 켜놓고 나가든지 하면 노트북 밑에다가 받침을 대어서 통풍을 시켜 주었다. 그러다가 그래도 노트북이 열이 많다 싶으면 예의 그 지퍼백에 넣어서는 냉장고로 이동을 시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냉장고를 열다가 노트북을 보아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친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넨다. 


“노트북아 너 또 더위 먹었구나. 좋아 냉장고에서 좀 더 피서를 즐기려므나!”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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