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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  통권 170호  필자 : 시과  |  조회 : 2690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하나의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권 선교역사가 20년을 훌쩍 넘겼다. 이제는 시골 동네 곳곳에서도 우뚝 세워져 있는 십자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도대체 선교사들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어디지?’라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는 도시화로 인해 성도들이 도시로 떠나간 빈 자리들이 늘어가고 있는데, 이것이 큰 문제로 대두된 것도 이미 오래다. 일이백 명이 모이던 교회조차도 노인들만 열댓 명 남아있어서 교회를 유지하는 자체가 어려운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다가 이십여 년 전에 교회를 시작할 때에 낡은 건물을 구입하여 수리해서 사용해왔기에 교회당이 낡아서 새로 건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교회들이 교회당은 크고 유지비가 많이 들어서 목회자들이 설교할 때마다 헌금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힘들어 한다. 또 겨울이 되면 성도들에게 의무적으로 난방비를 거두고 있다. 특히 자비량으로 선교를 하던 선교사들은 선교후원비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어렵게 교회를 건축하고 사역하다가 현지의 사정으로 사역지를 옮겼는데 교회가 유지되기 어려워서 계속해서 유지비를 보내야 하는 자비량선교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글쓴이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들 가운데 한 교회가 너무 낡아서 새로 짓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에 이르렀다. 그게 벌써 7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번에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권사님에게 ‘힘들지만 교회를 새로 지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하지만 권사님은 ‘아직 우리 믿음이 교회를 건축할 정도까지는 안 되니깐 좀 더 있다가 교회를 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였다. 그래서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어렵게 되어 교회당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방에서 예배를 드렸다. 십여 명이 둘러앉으면 꽉 차는 작은 방이지만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면 성전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돌아가고 난 뒤 들어 누우면 숙소가 되는 다용도 방이다. 재미있는 것은 저녁에 잘 때는 난방, 새벽에는 자동냉방이 되는 친환경시스템(?)을 갖추었다. 여기에서 울고 웃으며, 또 도시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수련회를 하면서 보낸 시간이 7년이다. 


처음 이 A교회에 오게 된 것은 2004년에 이 교회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B교회에서 거처하면서 이 동네를 지나 다른 한(汉)족 동네에 전도집회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십자가를 보았다. 그래서 통역하는 집사님에게 “이 동네는 한족 동네인가요?”라고 물었는데, 집사님이 “조선족 동네예요”라고 하였다. 그래서 “책임집사가 누구죠?” 라고 물었더니 “그 집사님은 학습을 안 다니기 때문에 목사님은 몰라요.”라고 대답을 하였다. “왜 학습을 안 다니는데요?”다시 물었다. “술 먹고 마작을 하느라 학습 다닐 시간이 없어요.”한다. “그래요! 그러면 전화를 해서 내일 내가 간다고 전해주세요.”라고 일러주었다. 다음날 내가 직접 차를 운전하면서 성도들과 함께 그 교회로 갔다.

교회 문 앞에서 성도들을 내려주고 차를 바로 세워놓고 내렸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그 교회 집사들이 나오면서 “목사님, 우린 목사님이신 줄 몰랐어요. 그냥 운전사인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교회는 원래 그런 거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들어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나서 점심을 먹으며 교제하는 시간에 그 책임집사에게 “언제까지 그러고 살 겁니까? 5년, 10년?”하고 물었는데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리고 오후 에 돌아올 때 “내일 아침 B교회에 와서 같이 학습합시다.”라고 한 마디를 던지고 자리를 떠났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 집사님은 내가 들어갈 때마다 B교회에 와서 학습을 하였고, 그곳에서 사역을 마치고 함께 자기네 교회로 가서 학습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 교회에 갈 때도 함께 가서 학습을 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찾기 시작하였고, 2014년 현재 시무 중인 교회 목사님을 통해 권사로 취임 하였다. 


올 6월 일정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가면서 비행기와 버스 안에서 이 교회의 재건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금액을 따져 보았다. 한국 돈으로 약 일천오백만 원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었다. 저녁 버스를 타고 교회에 도착하였는데 권사님이 저녁 준비를 하면서 “목사님, 교회를 새로 지어야겠어요.”한다. “아침에 건축업자가 찾아와서 자기가 지어주겠다고 하면서 금액을 제시했는데 중국 돈으로 7만 원(한화 약1,200~1,300만원)이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했던 금액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7만 원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건물을 완전히 새로 헐고 짓는데 기와는 그대로 사용하고 보온을 위한 이중벽과 이중창문을 사용하면 된다면서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였단다.

그래서 숙소의 방을 1m 정도 더 넓히는 것과 부엌바닥의 배수 문제와 교회가 습기 차기 때문에 교회 바닥을 높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진행하자고 하면서, 얼마 정도 부족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7년 전에 내가 처음 교회건축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기 때문에 많이 빚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하기에, 그러면 내가 만원을 헌금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무슨 돈이 있냐면서 티격태격했다. 그래서 “나는 돈이 없지만 돈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되겠지요.”했다. “목사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마세요. 여기서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지을 거예요.”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주일 후에 교회 공사를 시작하였고, 나는 한국에 나와서 몇몇 지인들에게 기도해달라고 부탁만 하였다. 그런데 중국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나온 B교회 집사님 가운데 한 분이 8월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돈을 부쳐왔기에 무슨 돈이냐고 전화를 하였더니, 한국에 나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A교회 건축비와 선교비로 모은 것이라고 하였다.  
 

 

 (건축전 A교회)

( 새로 건축한 A교회)

 

문득 이 집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하루는 술 먹고 하루는 마작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분이다. 그러다가 다시 주님 앞으로 돌아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학습 때 B교회 집사님을 만나 서로 이야기하면서 같은 경험을 한 것으로 인해 가까워져서 깊은 교제를 하며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교회 집사님 한 분이 헌금을 해주셔서 중국 돈 2만 원을 환전해서 들어가 A교회 건축헌금으로 1만2천 원을 드리면서 성경에 나오는 1만 2천이라는 숫자에 대해 설명을 하고 관련된 성경구절을 나누면서 그 의미를 이야기 해주었다. 약 십오 년을 중국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사역을 하였지만 젊은 집사님들 가운데 돈 벌기 위해 한국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이 권사님 한 분밖에 없다. 처음 만나서 학습할 때는 중국어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었는데 지금은 설교도 잘 하고 있다.  


그 후 돌아오는 길에 다른 도시에서 주일을 지켜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곳에 교회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가 본적이 없어서 터미널 앞에서 기독교회가 어디 있느냐 물었더니 저쪽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기에 가르쳐 준 곳으로 가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예배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터미널 앞으로 나와서 택시를 타면서 기사에게 교회가 어디 있는지 알면 좀 데려다 달라고 했다. 택시기사는 새로 지은 것 같은 큰 교회 앞에 내려주었다. 그런데 피아노 소리는 들리는데 교회 문이 걸려있었다. 손을 안으로 집어넣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한 여학생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먼저 기도를 하였다. 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드니 그 여학생이 와있었다. 그 여학생은 조선족 예배는 오후 2시에, 한족 예배는 저녁 6시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교회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교회를 지으면서 빚을 많이 졌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 할지 고민이라고 하였다. 4년 전 홍수가 있었는데 그때 교회가 침수되어 새로 지어야 할 상황이었는데 정부가 그 지역을 재개발하면서 이전하여 새로 지었다고 하였다. “재개발하면 정부에서 그냥 지어 주는데 왜 빚을 졌느냐?”고 물어보았다. 교회를 좀 크게 짖기 위해 평수를 제시하였더니 정부에서 가격 차이가 너무 난다면서 그냥 현금으로 받아서 교회를 지었는데, 약 200명 정도가 예배드릴 수 있는 천정이 높은 웅장한 교회였다. 예배를 왜 오후에 드리느냐고 했더니 오전에 못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 나올 수 있는 오후로 시간을 변경했다고 하였다. 기대에 부풀어 예배시간을 기다렸는데 2시에 조선족 예배를 드린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7명이었다. 일이 있어서 못 나온 사람은 둘. 그리고 한족 예배는 몇 분이 드리느냐고 하였더니 15-20명이 모인다고 하였다. 한국행 바람이 불기 전에는 60-70명이 모이던 교회, 지금 상황은 10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200명이 모이는 교회로 건축하는 이것은 믿음일까? 자기 과시욕일까? 아니면 바벨탑일까? 


교회는 눈에 보이는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로 구분된다고 조직신학에서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렇게 설명하지 않고 교회와 예배당으로 설명을 한다. 교회는 성도들이요.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건물은 예배당이라고. 사실 70년대까지만 해도 모든 교회 건물에는 ○○예배당이라고 적혀 있었고 주보에만 교회라고 적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건물에 교회라고 표시하면서 연합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개 교회주의가 한국교회 안에 가득하게 되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세워야 할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물론 눈에 보이는 교회를 세우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보고 수없이 반문하며 고민해야 한다.  





공산권 지역의 선교의 문이 열리면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으로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선교의 터를 잡기 전에 먼저 교회를 세워야 했고, 몰려드는 성도들로 인하여 지도자 양성이 아닌 교회 유지관리가 더 시급하여 너도 나도 좀 더 큰 교회를 경쟁하며 세웠다. 하지만 지금 그 교회들이 교회공동화로 인하여 성도들이 1/10 심지어 1/20 로 줄어든 이 시점에서 우리가 선교지에서 자립하는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건물을 세우기 전에 사람을 세우고,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도가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갈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제자를 양육하고 세운 후 그가 교회를 감당할 수 있을 때 교회를 세워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예수님은 12제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들을 훈련하면서 몰려온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위하여 교회를 세우지 않았고 그들을 목양하기 위해 제자양육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니 오히려 제자 양육을 위하여 몰려온 수많은 무리들을 포기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은 그들 때문에 십자가를 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제자들은 교회를 세우고 책임지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가 되었다.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그 길, 그 길이 바로 우리가 걸아 가야 할 선교의 길이 아닐까. 





시과 | 순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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