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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1  통권 169호  필자 : 편집부  |  조회 : 2651   프린트   이메일 
[인터뷰]
제주에서 만난 <游子吟>의 저자, 冯(펑) 목사님


[편집자 주]
冯(펑) 목사님은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1982년에 박사학위 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갑니다. 중국이 피폐하고 지식인(知识分子)들이 다른 일을 할 수 없던 시절에, 서방의 과학기술을 배워 고국으로 돌아와 과학교육을 통한 중국의 부흥을 꿈꾼 펑 목사님. 마오쩌동(毛泽东)에 대한 숭배와 문화대혁명을 겪었기에 정치나 신앙에 관심 갖는 게 싫었던 목사님. 누군가 복음을 전해도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의 문을 두드린 지 9년 만인 1991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합니다. 그리고 중국선교의 비전을 받고 지금까지 오직 한 길을 달려오신 목사님! 그 여정의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목사님이 경험한 한국교회와 한국선교사에 대해 듣고 싶어요.

▶▶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한국선교사들을 많이 만났어요. 내가 경험한 한국선교사들은 끈기 있고, 집념이 강하고, 끊임없이 돌파해나가는 열심이 특심인 분들이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선교사님 한 분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사실 그 선교사님과 알고 지낸 지 몇 년이 안 됐어요. 처음 만났을 때 그에 대한 인상이 참 깊었어요. 그는 동경의 한 교회에서 목회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타문화권의 중국인크리스천센터를 설립해서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어요. 그의 열심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2013년에 그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에서 3일 동안 사경회를 인도했는데, 형제자매들 집중력이 대단하더라고요. 이번 제주 모임에서도 그가 양육한 사람들을 만났지요. 한국은 크지도 않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파송선교사의 숫자는 참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이번에 한국에 와서 또 한 사람의 한국인목사님을 만났어요. 그 목사님은 소목자 과정을 중국 대륙에서 할 수 있도록 추진한 분이지요. 한 교회씩 한 교회씩 추진하고 있더라고요. 요 며칠 동안 진행된 모임에 그 교회들의 성도들이 와서 간증을 했어요. 모두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는 한 1년을 후난(湖南)에서 보낸 적이 있는데, 그가 처음 도착했을 때가 마침 겨울이었는데 겨울옷가지들을 미처 챙겨오지 못했답니다. 한국은 집집마다 난방시설이 잘 돼 있어 실내에 들어오면 항상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데 중국 농촌은 그렇지가 않아서 여간 추운 것이 아니었다고 해요. 게다가 홑바지 하나만 입고 강의를 했다니, 지금 생각만 해도 추운데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의지가 강한 한국인선교사님들을 존경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크게 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한국 크리스천들과 중국 크리스천들이 더 많이 연합하고 동역하길 바라고 있어요. 사람도 많고 자원도 풍부한 중국선교사들이 한국선교사들의 이러한 정신을 배워서 더 견고해져야 할 것입니다.  


▷▷ 펑 목사님의 교회와 사역을 소개해주세요.

▶▶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1982년에 박사학위 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때 중국은 피폐했고 우리 지식인(知识分子)들은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시절이었어요. 서방의 과학기술을 배워 고국으로 돌아와 과학교육을 통한 중국의 부흥을 꿈꿨지요. 마오쩌동(毛泽东)에 대한 숭배와 문화대혁명을 겪었기 때문에 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어요. 미국에 왔을 때는 정치나 신앙에 관심 갖는 게 싫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하기가 싫었어요. 그저 ‘내게 맡겨진 일, 과학을 발전시키는 일만 잘 사는 거지’하고 생각했어요. 그때도 누군가 나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나는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했어요.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마오(毛)를 숭배하지 않기로 결심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하나님을 숭배’하는 자들이 또 찾아왔었어요. 물론 그때도 그들을 배척했어요. 미국에서 9년을 살면서 손해 본 일이 많았기에 누군가 나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해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1982년 미국에 와서 1991년 비로소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이후 의과대학에서 일하면서 교회의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어 섬겼어요. 하나님께 붙들린 이후에 전임사역자가 되었지만 전임사역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나는 ‘과학연구를 하면서 복음전하는 것도 좋은 일인데…’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일을 내려놓길 바라는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도 분명했어요. 그런데도 나는 계속 하나님께 토를 달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어요. 침대에서 이십여 일을 꼼짝 없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을 때, 그분이 나의 마음을 만지셨죠.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침대에서 일어나 나의 죄를 인정하며 회개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1997년 병원에서도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한 자매가 침을 맞고 완치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적도 있었어요. 그렇게 헌신한지 내년이면 20년이 됩니다. 사역을 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은 나에게 중국교회를 섬기는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곧바로 사역을 하도록 돼 있었어요. 담임목사님이 퇴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후임자가 필요했습니다. 내가 교회에 계속 남아있게 된다면, 여러모로 내게 유익했어요. 첫 번째는 그 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역했기 때문에 사람들과 친숙했고, 그 교회에서 장로가 돼 한결같이 섬겨왔기에 사람들과 관계도 원만했지요. 다시 말해서, 그 교회에서 사역할 경우, 사례비와 보험, 퇴직금 등 목회자 복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예요. 교회와 나 자신, 그리고 가족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중국인들을 섬기는 사역하기를 더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교회에서 목회만 했다면, 꼼짝하지 않고 이 교회에서 목회만 하는데 온 힘을 다 쏟아 부어서 중국 대륙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내가 절반만 사역을 해도 괜찮은 교회거든요. 그래서 나머지 절반은 교회 밖 사역을 합니다. 이렇게 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목사가 목회를 할 때는 100프로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절반의 시간을 교회 밖에서 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사가 외부에서 보내는 시간을 보내면서 교회 일을 모두 처리하기는 힘들죠. 그리고 만일 다른 목사가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싶어도 내가 있으면 올 수 없겠다는 생각에 다른 목회자들과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는데 많은 시간을 밖으로 나가게 되니 교회에 있을 동안에는 전심으로 섬기겠다”고 솔직하게 나눴습니다. 그래서 20여 년 동안 나는 여러 교회를 섬길 수 있었으며, 담임하는 교회에서는 설교를 하고 중대한 일들을 의논하였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후에 세움을 받은 두 분의 목사님이 맡고 있어요. 그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나의 사역 또한 큰 어려움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 지금 중국교회를 어떻게 보세요? 특별히 저장성(浙江省) 지역의 십자가철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 문화혁명 이후, 중국의 많은 교회들이 철거를 당해왔어요. 이들 교회는 모두가 과거 서방선교사들이 목숨을 바쳐 세운 교회들입니다. 정치환경이 살벌했던 시절 그들은 그들의 집에서 비밀리에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했죠. 그러면서 중국 정부의 분위기가 느슨해지면 차차 교회를 설립하려고 했어요. 중국 농촌에서 도시로 들어온 후 도시의 퇴직노동자들과 노인들이 지식인집단(知识分子群体)에 들어왔다. 이 15년 안팎의 시간 동안 많은 학교와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의사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어요. 사람은 절대 이러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반드시 이 많은 중국교회 신도들을 복음전파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을 또한 믿습니다.

지금 중국교회 신도들의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지만 대략 6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해 봅니다. 이것은 굉장한 숫자입니다. 하나님이 중국교회 신도들에게 부탁하신 일과 중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신뢰합니다. 그래서 중국교회 신도들이 최후의 보루가 아닐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사람이 많기에 경제력이나 인력 모두 풍부함이 긍정요소들인 것이지요. 중국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있어서 중국교회 신도들이 말씀 위에 뿌리를 내리고, 진리 가운데, 영적으로 큰 성장이 있기를 바랄 뿐 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할 때에야 비로소 중국교회는 큰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교회의 하나 됨은 매우 중요하죠.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는 마음을 주실 때 합심하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중국교회는 교회 수도 많고 교회건물도 웅장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종파(宗派)와 유형의 교회 사이에 발생하는 힘 또한 큽니다. 중국교회는 지금 온 힘을 다해서 평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부차적인 것들이 다른 상황에서도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부차적인 일들 때문에 협력하지 않거나 분쟁을 일으키지 말아야겠죠. 만약 서로 존중하지 않고 분쟁만 일으킨다면 중국교회는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성장하는 중국교회의 한 측면이 반영된 원저우(温州)교회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힘에 의해 방해 받을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번에 철거된 교회는 공식 등록된 교회들의 십자가였으며, 가정교회는 없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가정교회와 공개된 교회 사이에 선을 그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정교회만이 주님의 교회이고 공개된 교회는 꼭두각시 신앙이고, 사단에게 속한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정교회와 공개된 교회 모두가 진정으로 중생하여 구원받은 영혼이 모인 교회이기에 서로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이는 중국교회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신학 종파 문제와 은사주의교회(灵恩教会)와 전통교회의 관계 문제 등이 더욱 호전되어야 중국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수 있어요. 이러란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교회가 피해를 입는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입니다. 중국교회가 힘을 잃으면 선교하는 데도 힘을 잃습니다. 하나님이 중국교회 신도들에게 부탁하신 이 일을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기대하며 지켜보아야 하겠지요. 중국교회 신도들이 이 일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다른 민족을 일으킬 것입니다. 지금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기독교가 부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중국교회 신도들도 하나님이 부탁하신 일을 능히 감당하길 바랍니다.  


▷▷ 세계선교에 있어서 중국교회와 한국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 나는 이번 모임에서 중앙아시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인선교사를 만났어요. 그의 사역 나눔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지요. 나는 원래 중국과 한국선교사가 함께 연합하여 중국 실크로드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복음을 전하기를 바랐어요. 그렇다면 ‘이 이슬람 지역을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갈 때 중앙아시아를 필히 지나가야 하기에 그 지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지나가야 하는데,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믿는 이슬람교는 엄격하지 않아요. 이미 지역의 종교와 혼합돼 있어서 복음전하기가 수월하고 또한 복음을 잘 받아들이죠.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나간다면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슬림과 관계가 좋고 언어도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죠. 한국교회와 중국교회가 이들 지역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들이 다시 복음을 전파하러 나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도 직접 가는 것이 아닌 그들이 그 땅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선교사들도 중앙아시아나 K국에 교회를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교회에는 유대인들과 무슬림들도 있어요.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는다면 그들이 이 복음을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수 있어요. 이제 와서 보니 이 중앙아시아지역은 정말 중요한 곳이네요.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중앙아시아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들이 이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쉽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그들이 이 기독교의 신앙을 가지고 돌아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그들 민족에게 가는 것입니다. 정말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참가한 이 모임에서 3명의 선교사를 처음 파송했습니다. 2명이 K국으로 가는데 둘 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기도를 했는데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게다가 그중 한 청년은 부모가 아직 그가 선교사로 나가는 동의하지 않았고, 예수님도 믿지 않는 부모였어요. 부모가 자식을 키웠는데 어떻게 자식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수 있겠어오. 그래서 그 청년은 부모님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있었음에도 하나님께 받은 소명은 더욱 확신에 차 보였고, 선교사가 된 그는 나를 향하여 “나는 이미 주님의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나 또한 그에게 선교사가 되어 선교지에 가지만 너 또한 부모님이 네가 부모한테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할 것이며, 길러 준 은혜를 감사하고 있음을 부모님께 전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능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청년도 이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교지에 있다고 해서 부모를 방치해서는 안 된고, 부모님과 한 번 더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그를 설득했어요.

이번에 파송하는 이들 세 사람이 다 이십대 초반이라는 것에 대해 감동을 받았어요. 우리는 파송을 해 놓고서는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이 청년들에게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가족과 떨어져서 그들의 민족과 언어권이 아닌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그들에 대해 거룩한 부담감을 가져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선교지에서 성과가 어떠하든지, 그들이 선교 사역을 잘 하든지, 그들이 그곳에 있는 그 자체가 선교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선교사가 한 번 나가면 반드시 순교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몇 년 후에 어떤 선교사의 선교 사역이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면,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번 나갔으니 돌아오면 안 된다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는 이러한 생각들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독자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씀 있으세요?

▶▶ 우리는 여전히 중국 대륙을 섬깁니다. 우리의 힘을 다해 그들을 섬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달으며, 그들이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화평케 하는 자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어요. 우리는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 됨은 통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 됨은 서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견도 자기 자신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갖고 중국선교 사역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정리•번역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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