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수2.jpg)
‘아웃리치’ 장소가 제주도!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여행’을 간다는 마음으로 신청하였다. 하지만 부팀장을 맡게 되고 사역에 대해 알게 되면서 ‘여행’이 아닌 ‘선교’로 아웃리치를 준비하게 되었다.
우리팀은 ‘중국어문선교회’를 섬기시는 박애린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게 되었다. ‘중국어문선교회’는 문서 중심의 사역을 하고 있으며 아울러 제주 중국인유학생과 노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양육하여 그들이 선교중국(宣敎中國)에 앞장서는 소망을 갖고 섬기는 곳이었다. 첫날, 제주대학 교정을 거닐며 마음으로 간절히 빌었다. 여기에 와 있는 중국인유학생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제주 속 중국’이라는 ‘바오젠 거리’에서 중국인관광객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제주를 방문하는 중국인관광객이 하루에 2만 명이라고 하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엄청난 중국인관광객들로 바오젠 거리는 붐비고 있었다. 신라면세점 바로 옆에서 관광버스를 기다리는 중국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어설픈 중국어로 “칭 두 이샤(읽어보세요.)”, “예수 아이 니(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건네며 전도지를 주었지만 경계심 가득한 눈총을 보내며 손사래를 쳤다. 아예 그냥 그 자리를 팍 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전도지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내 중국어를 못 알아들은 걸까? 그래서 전도지를 안 받는 건가? 계속 이렇게 전도지를 안 받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다.
그때 선교사님이 길 한복판에서 찬양을 부르자고 하셨다. 방금 전도지를 거절한 사람을 앞에 두고 반주도 없이 찬양을 부르니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빨개졌지만 더 큰 목소리로 열심히 찬양을 부르며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자리를 피하거나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찬양을 부르는 동안 몇몇 중국인들이 우리의 찬양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또 누군가는 영상을 찍기도 했다. 찬양을 끝내고 다시 전도지를 건네자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그 전도지를 받기 시작했다.
다시 건너편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팀원들과 함께 가서 전도지를 주며 몇 마디를 건넸다. 그런데 그중에 한 여성이 우리의 찬양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분에게 찬양을 들려드리니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 자신도 그리스도인이고 한국 땅에서 중국인들에게 복음전하는 우리를 보며 감동이 됐다고 하였다. 무모한 전도방법에 내심 불만을 갖고 있던 나에게 부끄럽고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였다.
저녁을 먹어도 마음은 여전히 울적하였다. 저녁집회에서 하나님이 내게 해주실 격려의 말씀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담임목사님과 질의응답을 하는 것으로 교체되어서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웠다. 하나님께서 답답해하는 내게 시원한 소나기처럼 무언가 말씀해주시길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담임목사님이 떠나시기에 전에 한 말씀을 하셨는데 오히려 그 말씀이 내 머릿속에 빛을 켜주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위’있게 사십시오. 하나님 자녀로서 권세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로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십시오!” 하신 이 말씀에 오늘 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래, 오늘 내가 전도할 때 하나님 자녀로서 귄위와 권세를 가지고 전하지 못하였구나. 그래서 나의 전함에 능력이 없었구나…….’ 하나님 자녀로서 정체성을 생각지 않고 전해야 함에만 급급하였기에 나의 마음이 힘들고 불편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웃리치 기간에 하나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사역의 자리에 임하리라 다짐하였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 팀원들과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감귤농장으로 향하였다. 몇몇 선교사님들이 함께 임대해서 시작한 감귤농장을 이제는 남편선교사님만이 혼자 고군분투하시며 가꾸고 계셨다.
처음 보는 감귤나무가 신기했다. 그리고 농활을 한다는 생각에 의욕이 먼저 넘쳤다. 하지만 20분 만에 빗줄기가 되어 흐르는 땀과 간지러움에 체력이 고갈되었다. 작은 감귤나무 밑으로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들어가서 나무를 해롭게 하는, 감귤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덩굴을 제거해주어야 했다.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작은 감귤나무 밑에서 하는 작업이라 어깨도 팔도 아프고 온몸이 쑤셨다. 계속 반복되는 작업을 하는 팀원들도 땀범벅이 되었고 지쳤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덩굴제거 작업을 마쳤다.
나는 덩굴을 제거하면서 ‘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덩굴을 제거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자라서 나무를 꽁꽁 묶으며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나무의 성장을 방해를 한다. 나 역시 ‘죄’에 민감하지 못하면 ‘죄’가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킬 것이다. 그런 나의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하여 주시고 지켜주시는 은혜를 묵상하며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속에서 기쁨이 샘솟았다.
셋째 날 주일사역으로 오전에 세선교회 예배를 드리고 준비한 특송과 워십으로 예배를 섬겼다. 워십을 하게 될 때 떨리고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는 또 다른 기쁨이 있었다. 그런데 팀원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하고 몇몇 팀원이 빠진 상황에서 오후에 성안교회에서 중국연합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팀원이 걱정되기도 하고 생각보다 큰 예배장소에서 워십을 해야 된다는 것이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곳에서 예배를 기도하며 준비하는 중국인들을 보며 마음을 담대하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이지만 우리의 섬김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처음 워십을 보는 중국인들이 있다면 마음을 열어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도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
세선교회에서 선교사님의 간증과 특강을 들었다. 27년 동안 오직 중국을 위해 한 길을 걸어오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철저한 순종의 삶을 살아오신 선교사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이 감사했다. 그리고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실 일을 기대하니 도전이 되었다. 가까운 나라 중국, 막상 중국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중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선교 사역을 위해 꾸준히 기도할 것을 다짐했다. 숙소로 들어와 팀원들과 사역 나눔을 하는 가운데 서로 느끼고 생각한 것은 달랐지만 각자의 상황에 맞게 역사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번 아웃리치는 순간순간 일정이 수시로 바뀌고 정해지는 것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불안과 초조함, 그리고 불편함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매순간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대한 것은 내려놓게 하시고, 내가 기대하지 않고 기대하지 못했던 것을 넘치게 채워주셨다. 이번 아웃리치는 나의 연약함을 처절히 깨닫고 인정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괴롭고 쓰리고 눈물이 났다. 하지만 나는 바로 그때서야 ‘예수’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예수’가 내 안에서 가장 존귀하다고 고백하였다.
“워 시앙 허 니 쭈오 펑요(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나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인 예수님을 소개하며 친구가 되어주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팀과 청년바다 공동체가 되길 기도한다.
오진주 | 부산호산나교회 젊은이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