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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  통권 168호  필자 : 西瓜  |  조회 : 1597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문화 그 영원한 숙제 #2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오늘 비행기가 출발하지 않아서 그래요
어느 해 여름 비쉬켁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공항청사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음식을 풀어놓고 먹고 있었다. 공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그늘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음식을 먹는 풍경이 참으로 이상해서 물어보니, 오늘 비행기의 결항으로 비행기가 출발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항의를 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출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밖으로 나와 배웅 나온 가족, 친구들 또 함께 여행하는 동료들과 같이 기내에서 먹을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음식을 만들어 와서 비행기를 기다렸다가 타고 간다는 것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상대방도 무슨 일이 있고,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 내일이 또 있기에 기다릴 수 있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 조급함이나 첨예한 대립을 보이며 타협할 수 없다는 우리의 확고함을 보여줘야 하나. 아니면 성급함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그들의 여유에 적응해야 하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크고 작은 여러 사건들을 겪고 나면 어느 순간 우리의 눈에 그들의 삶이 보이겠지. 그들 삶의 여유들이 그들 문화 자체가 우리 안에 들어오겠지. 그때 가서 더 깊이 이해하고 관찰한 그들의 문화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문화를 뿌리 깊게 심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절대로 조급해하지 말자.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조금만 더 멀리 바라보자.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지. 


우리는 무용선교팀

2009년 현지 아이들이 제법 잘 자라서 함께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현지인 교사에게 미리 아이들에게 무용을 가르쳐서 노인잔치에 합류하라고 하였다. 첫 번째 교회, 두 번째, 세 번째 교회… 한 교회 한 교회 지나갈수록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세 번째 교회에서 집회를 마치고 ‘목사님이랑 이렇게 시골 다니는 것 힘들지 않니?’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우리는 목사님과 같은 선교팀 이예요. 목사님은 말씀 전하시는 분, 우리는 무용선교팀’이라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그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올 여름 K○○○ 대학생 비전캠프에 그 아이들 가운데 한명이 중국어 교사로 합류하게 된다. 이듬해에는 K○○○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대학생들이 중국 현지 체험을 하러 가게 되는데 그 아이들이 현지 안내와 개인 언어 교사로 봉사하게 된다. 선교는 함께하는 시간인 것 같다. 철없이 밥 한 숟가락 때문에 삐치던 아이들이 이제는 작은 동역자로 자랐으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훌쩍 자라 더 든든한 동역자들이 되겠지. 


목사님 알고 시작하셨죠

중국에서 교사들에게 키보드를 가르치기 시작하고 나서 일 년이 지난 어느날, 미국인목사님이 물질을 후원하시고, 한국인목사님이 피아노를 사서 중국의 시골교회에 배달해주셨다. 미국인목사님도 한국인목사님도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이시다. 교회에 도착해보니 피아노가 있어서 기도하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조금 후에 교사들이 하나 둘 도착하고 시간이 되자 성도들도 모두 모였다. 먼저 예배를 드리고 피아노 강습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교사들 중 한명이 뜬금없이 ‘목사님! 알고 시작하셨죠?’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뭘?’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교사는 다시 ‘피아노요, 피아노 말이에요’ ‘피아노가 왜?’ ‘아이, 목사님! 피아노가 생길 줄 알고 피아노 강습을 시작하신 것 아니냐고요?’  


이럴 때 ‘응, 알았으니깐 시작했지?’라고 대답해버리면 엄청 능력 있는 목사로 추앙받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 전혀 몰랐어. 아마 더 열심히 피아노 연습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거겠지? 그러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더 열심히 해’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한 2년 정도 더 피아노 강습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교사들 대부분이 돈벌이를 위해 한국으로 나오고 한사람만 고향에 남아 반주도 하고, 찬양 인도도 하고, 설교도 하면서 목회자 아닌 목회자가 되어 섬기고 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도시로 이사를 해서 도시교회에 출석하며 성가대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주자가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나고, 또 다른 반주자는 대학진학을 하면서 반주자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잘은 못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목사님 어떻게 해요?’ ‘잘하든 못하든 순종해야지. 그러게 열심히 연습하라고 했잖아.’ 시골교회로 갈수록 성도들은 목사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고, 목사님이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도를 부탁한다. 이럴 때 이것을 하나의 일상의 일로 생각하고 의식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면 성도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심어주게 되고 잘못된 교회 문화를 만들어 가게 된다. 스스로의 부족을 인정하고 주님을 닮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 한다. ‘몇 명을 가르쳤냐?’가 아니라 ‘지금 주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이가 몇 명이냐?’를 이야기하고, 내가 가르친 자들이 더 큰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고 뒷받침해주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눈 녹은 물을 헤치고

구소련 지역에서 여름수련회(라겔)는 노래와 춤으로 시작하여 노래와 춤으로 끝난다. 그런 곳에서 기독교 여름캠프를 시작하여 찬송과 예배, 성경공부, 천로역정, 저녁부흥회, 기도회 등 한국식 캠프를 강행했다. 처음 3년은 캠프장에서 진행을 하였고, 4년차에는 해발 1800m 고지에서 텐트를 치고 3박 4일 동안 하였다. 하루에 3번씩 내리는 소나기는 텐트를 뚫고 들어와 텐트 안의 이불과 침낭을 다 적셨다. 잠시 소나기가 뚝 그치고 해가 나면 이불과 침낭을 널어서 말린다. 또 다시 소낙비가 쏟아지면 나무 밑에서 공부하다 말고 뛰어가 이불과 침낭을 텐트 안 구석에 집어넣는다. 이렇게 이틀을 보내고 사흘째가 되는 날, 폭포를 보러 가기 위해 산행을 하였다. 한 시간쯤이나 올라갔을까 계곡을 건너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눈이 녹은 물은 가파른 계곡을 휩쓸며 내려오고 있었다. 캠핑장으로 올 때도 중간에 차가 계곡에 빠져서 고생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물이 너무 차갑고 물살이 너무 거셌다. 준비한 밧줄을 펴서 교사들이 양끝과 중간에 서서 그 밧줄을 잡게 했다. 그리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 밧줄을 잡고 건너가게 하였다. 밧줄의 중간을 내가 첫 번째로 잡았다. 그런데 1분 정도 지났을까. 발이 시려 오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다른 교사와 교대를 하였다. 밖으로 나오니 발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어린 아이들은 교사들이 그들의 손을 꼭 잡고 한 사람씩 건너 주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물살에 휩쓸려 그만 넘어졌다. 다행히 가까이에 있던 김 선교사가 바로 잡아주었기에 사고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마다 캠프를 진행해 오면서 어린이캠프에 청소년캠프를 추가하였다. 그리고 다시 대학생비전캠프를 추가하였는데 올 여름에는 국토순례캠프를 추가하여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현지인들이 보고, 체험하고, 직접 진행하며 따라올 수 있도록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추가해가고 있다. 한걸음 또 한걸음, 현지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그리스도의 문화가 뿌리내리는 그날까지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西瓜 | 순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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