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선교중국 2030’이 발행하는 중문판 중국선교 전문 계간지「오늘의 선교」(今日宣敎) 창간호(2015년 10월호)에 실린 “이웃사랑 여행: 북조선 단기선교여행 탐구”(爱邻之旅:北朝鲜短宣之旅探究)를 번역하여 여기에 개재합니다. 최근 한국교회 안에는 중국교회를 통한 통일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글의 필자는 중국교회 역시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필자는 북한교회의 현 실정을 196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에 비교하면서, 북한 안에 있는 지하교회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또 최근 중국인들의 북한관광여행이 확대되고 있는 것을 선교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는 성서가 우리에게 명하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중국교회가 현재 세계선교에 힘쓰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이웃인 북한에 먼저 눈을 돌려야 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북한선교에 대해 중국교회 지도자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이웃사랑여행: 북한 단기선교 탐구
북한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낯선” 국가인 것 같다. 또한 중국처럼 사회주의체제 국가로 남아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공유제기획경제를 실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품을 구입할 때 “표”가 있어야 물건을 살 수 있다.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을 받는다.
“오픈도어(Open Doors)선교회”는 2015년, 세계 기독교 박해 상위 50개국 가운데 1위가 북한이라고 발표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현재 세계에서 기독교를 가장 심하게 박해하는 국가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13년 동안 이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0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조선반도) 북부지역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서, 40년대 초까지 평양은 한반도 모든 대도시 가운데 기독교인 수가 가장 많은 도시였다. 기독교인 수가 성인 인구의 25-30%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선교사들은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렀다.
1950년대에, 북한 전역에서 각종 종교활동이 금지되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미제국주의의 사악한 종교”라고 불리며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5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모든 교회당은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북한은 계급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중국 문혁 당시 “흑오류(黑五类)”에 해당하는 “제37적대세력”으로 그들을 분류해 그들이 죽어도 끝나지 않았다. [편집자 주: ‘흑오류’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배척한 구 지주계급, 우파 등 다섯 부류를 이르는 말이다. 1950년대 후반, 북한은 주민성분조사와 주민재등록사업을 실시해서 종교인 등을 37계층으로 분류하여 특정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등 여러 탄압조치를 취하였다.]
현재 북한에는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종교박해와 기독교인들의 활동의 비밀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적지 않은 “지하교회”들이 북한에 있다고 전한다. 외부에서는 그들에 대한 진정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비밀리에 기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한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웃이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복음전파를 가로막는 견고한 진들을 돌파하며, 그들을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북한은 이미 중국인들에게는 정식 관광지가 되었다. 여행수속은 이전보다 간단해졌으며, 관광코스 또한 훨씬 다양해졌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복음의 통로로 준비하도록 하셨는데,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이웃이 되게 하셨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중국의 기독교인들을 선교 사역의 새로운 모델로 채택할 수 있다. 이것은 “이웃사랑여행” 활동이다.
이웃사랑여행,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여정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 10:33-37)
지금, 북한 주민들은 강도 만난 사람과 같다. 기아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다. 우리는 정죄에 익숙한 율법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적당주의 레위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를 바라신다.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분이시다. 기아 가운데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 우리는 듣지도 물을 수도 없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그들을 위하여 우리의 힘이 닿는 데까지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웃사랑여행” 활동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중국의 형제자매들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의 마음을 품고 우리의 이웃인 북한 주민들에게로 가서 그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그들의 고통을 나눠게 되기를 바란다.
이웃사랑여행, 약속의 땅을 정탐하는 여정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 지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민 13:17-20)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셨다. 모세는 정탐꾼을 보내어 그 땅과 그 땅의 백성들이 어떠한가를 정탐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이는 모세의 믿음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원인 때문인가? 한 사람의 지도자, 모세가 정탐꾼을 파송한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려는 것이었는가? 우리는 먼저 성경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정탐꾼을 보낸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일을 이어받아, 계속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한다. 여리고성에 이르러 여리고성을 공격하여 전쟁하기 이전에, 여호수아 또한 모세처럼 여리고성에 정탐꾼을 파송하여 보낸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공격할 때 군대를 의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였음을 볼 수 있다. 정탐꾼들은 “군사정보”를 의지하지 않았다. 왜 정탐꾼을 파견하였을까? 열심히 여리고성을 정탐함으로 정탐꾼은 라합을 만났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구했다. 하나님은 또한 정탐꾼들을 대신해 라합의 집을 구원하셨다. 우리도 북한을 여행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한 한 사람 혹은 한 가정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최후에 진정으로 구원받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웃사랑여행, 여리고성을 애워싸는 여정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수 6:1-5)
가나안 사람들은 여리고성을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의 도전은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견고한 성을 공격하는 방식은 만군의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없다. 하나님의 눈에는 무너지지 않을 성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무너지지 않을 성벽도 없다. 오늘날 북한은 성문이 굳게 닫혀있고,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여리고성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지금은 북한이 중국인관광객들에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의 행동을 제한한다. 그래도 여전히 아주 작은 한 가지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기도이다. 그리고 다함께 기도하기와 성경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모든 군사들이 그 성을 애워싸고 하루에 한 번씩 도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중국기독교인들이 “이웃사랑여행” 활동에 참여해서 더 절박하게 기도하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웃, 북한을 위해,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완전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기독교 국가를 이루기 위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는 명성을 회복하기를 기도하자.
이웃사랑여행, “손대지 아니한 돌”의 여정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단 2:31-35)
다니엘서 2장은 고대의 동방세계를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제국의 유명한 느부갓네살왕의 기이한 꿈을 이야기한다. 이 꿈은 일반인들이 “낮에 생각한 것이 꿈” 이라는 꿈.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다.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기 위해 특별히 하나님의 기이한 꿈을 주셨다. 하나님은 바벨론제국의 운명을 꿈을 통해 보여주셨다.
예언 가운데 “손대지 아니한 돌”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단 2:44)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다. 인간의 수단과 전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다. 주님의 구원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시고,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웃사랑여행”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한 가지 요청하고 싶다. 중국에서 가지고 온 돌에 예수 그리스도의 표식인 십자가를 그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써서 북한 전역에 뿌려보자. 이런 기도의 행위 또한 하나의 선포이다.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선포하자. 우리는 또한 뿌려진 이 돌들이 “손대지 아니한 돌”이 되길 바란다. 북한의 지하교회 신도들에게 위로의 말이 되는 이 돌들을 그들이 발견하는 것이다. 아마 그들이 이 돌들을 발견한다면,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와 힘을 얻고 하나님이 그들을 결코 잊지 않고 계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맺는 말
성경과 역사의 관점을 종합해보면, 선교는 사실 본고장에서부터 먼 곳으로, 동족에서부터 다른 민족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현재까지 중국교회는 본고장에서부터 시작하여 해외까지 선교사역을 펼쳐가고 있다. 시선을 다른 민족에게 돌리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우리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우선 문 앞에 있는 눈을 치우듯이 우리의 이웃인 북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선교전략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그분은 주위의 사람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에게 접근하였다(마 9:35)
“이웃사랑여행”의 선교전략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북한 전역에 가서 주민들과 접촉해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한다. 우리는 인류 근원이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들의 직책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자. 또한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같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이 되지 말자. 반대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기회를 포착해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자. “이웃사랑여행”의 선교대열에 합류하자.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깨우쳐주시기를 바란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 14:6)
번역•정리 |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