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이 한국대학에 들어가게 되자 우리는 아이들 교육에 대한 부담이 덜어졌다.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우리는 선교사가 잘 들어가지 않는 곳으로 가서 개척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랫동안 기도를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선교지에서 중남부 쪽에 있는 도시로 옮기기로 하고 조목조목 기도제목을 적어놓고 남편과 날마다 기도했다. 그중에는 좋은 이웃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제목도 들어 있었다. 특히 남편은 좋은 이웃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아주 열심히 했다. 왜냐하면 타문화권에서 이웃을 잘못 만나면 꽤나 성가신 일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처음 정착하는 선교지에서는 현지인이웃의 도움은 꼭 필요하며, 친절하고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선교지의 삶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동안 좋은 현지인이웃도 많이 만났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려움을 주는 현지인이웃도 많이 만났기에 더욱 그런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외상이 없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한쪽으로 나란히 두 채가 있는 아파트였는데 꽤 넒은 복도가 있고 맞은편에 또 두 채의 아파트가 있었다. 그래서 한 층에 4채의 집이 있는 셈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친절한 이웃은 바로 우리 집 맞은편에 있는 집이었다. 우리 옆집은 오랜 시간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비어 있었다. 또 맞은편 집의 옆집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사람이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 집과 맞은편 집 이렇게 두 가정이 마주 보며 한동안 살게 되었다. 우리 집 앞에 사는 주인은 30대 부부로 세 살 박이 아들 하나가 있었다.
남편인 왕씨(우리는 샤오 왕이라고 불렀다.)는 러시아에 유학을 가서 학부과정을 마치고 온 사람으로서 제약 제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유학생활을 오래하면서 타문화생활을 해서인지 우리 가정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며 배려를 해주었다. 이곳은 주로 광동말을 쓴다. 만다린어만을 쓰는 또 다른 언어권에서 온 우리는 전에 있던 H시나 N시 와는 또 다른 이곳 생활이 익숙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이웃인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고 베풀어 주었다.
앞집의 부부를 통해서 이곳 식사 문화인 짜오차(早茶, 늦은 아침에 식당에서 얌차이(饮茶)를 먹으며 교제를 하는 것) 문화를 알게 되었다. 우리 이웃은 자주 우리 부부를 짜오차에 초대했다. 특히 자동차가 없는 우리는 이웃 집 자동차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병원이나 우체국에 갈 때도, 물건을 사러 갈 때도 우리 이웃은 함께 동승해주었다. 그의 아내 샤오바이는 전형적인 광동사람이고 우리가 사는 J시토박이였는데,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친절했으며 나를 참 잘 따랐다. 나는 나를 좋아하고 잘 따르는 샤오바이를 먼저 전도하였다. 그는 처음엔 거절하였지만 두 번째 전도했을 때 주님을 영접하였다.
한번은 내가 한국에 한 달 가량 있다가 들어와서 열대 기후에 적응이 안 돼 피부에 열꽃이 폈다. 샤오바이는 그런 나를 승용차에 태워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 자신이 잘 아는 피부과에 가더니, 특별히 여자 의사를 찾아서 진찰을 받도록 해주었다. 왜냐하면 피부뿐만 아니라 엉덩이에도 뾰루지가 나 있었기 때문에 남자 의사에게 가게 되면 곤란해 할까봐 배려해준 것이다. 또 내가 어쩌다 한국에 나가 있을 때는 매일 저녁 우리 남편에게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해서 저녁을 거르지 않게 해주었다. 남편은 그 집 음식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다고 평소에 말해왔지만 초청해주는 것이 고마워서 매번 가서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한번은 남편과 내가 선교학 석사과정 논문학기 때에 논문을 쓰기 위해 몇 개월을 한국에 나갔다가 온 적이 있었다. 3개월가량 집을 비워 놓았더니 전기와 수도가 끊겨 있어서 우리 집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침 우리 집 옆집에 사는 주인인 대만 할머니가 대만에서 들어와 있었는데 자기 집 안방에 와서 자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집도 비어 있던 집이었고 침대는 있지만 침대시트는 없었다. 샤오바이는 자기 집에서 침대시트와 베개를 가져다가 침대시트를 직접 씌어주며 우리가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때 정말 이웃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더니 그 이튿날은 자기 집에 와서 청소해주는 사람을 우리 집에 보내서 그동안 묵은 청소를 도와주게 해주었다.
이제 이곳 생활도 2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있지만 정말 좋은 이웃을 만난 덕분에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전혀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땅에 온 우리를 이렇게 친절한 현지인이웃을 예비해 놓고 우리를 도와주게 하셨던 것이다. 그 외에도 내가 어디로 출장을 가게 될 때마다 동료들에게 이곳의 특산물인 오징어채를 사다 주는 나의 심부름도 자신이 도맡아서 해주었다. 샤오바이는 자신이 잘 아는 해산물도매시장에 가서 아주 싼 가격으로 사다주곤 하였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의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산다. 그것도 부족해서 출입문을 두세 겹으로 해놓고 사는 집이 다반사이다. 그런데 우리 이웃인 앞집과 우리 집은 보통 집에 사람이 있을 때는 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언젠가 그 집에 샤오바이 시누의 남편이 놀러 와서는 우리 집과 이처럼 한집처럼 지내는 것을 보더니 자기는 십수 년을 이웃하고 살고 있는 집하고도 이처럼 친하게 지내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샤오바이가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들 하고는 저희도 그렇게 안 지내요. 그런데 나 선생님 댁 하고만 특별한 거예요.” 했다. 샤오바이의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현지인이웃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셔서 이런 특별한 친한 관계가 되게 해주셨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상대방이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더욱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앞집과 우리는 그 뒤로도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이사도 못가겠다며 이러고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