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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1  통권 165호  필자 : 파울라스  |  조회 : 3146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국내 다문화 사역의 현주소와 과제-중국인 사역을 중심으로-
남부전원교회의 이주근로자 사역 사례

 

들어가며
우리는 왜 이 땅의 나그네인 이민자(immigrants)를 주목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바로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요, 그분의 뜻에 대한 우리의 자연스런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4월말 기준으로 대한민국에 있는 이민자의 수는 197개국 200만 명에 이른다. 이미 한국으로 귀화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귀화자를 합하면, 그 수는 220만 명을 넘어선다. 우리가 과거에 언제 이렇게 많은 이민자와 부대끼면서 삶의 터전을 공유하며 살아본 적이 있었는가?  
 



 
2007년 8월 24일. 그날은 대한민국에게는 특별한 날이었다. 그 날은 외국인의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선 날이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이후, 60년이 되는 해에 외국인의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쟁의 아픔과 폐허를 극복하고 발전하여 세계인들의 눈에 매력 있는 나라가 되었고 그들이 스스로 한국을 찾아왔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8년! 다시 새로운 120만 명이 순증(純增)하였으니, 이렇게 단기간에 이민자가 압축하여 증가하는 현상은 그만큼 한국의 경제도 압축하여 급격히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주학(migration study)에서는 이주(migration)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는데, 사람 이동(movement of people)의 근본은 ‘더 나은 삶(better life)’을 영위하기 위한 인간의 경제 목적에 기인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 나타나는 압축 이주현상은 그만큼 한국의 경제가 발전한 국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경제발전과 함께 민주화를 이루어 냈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연합(UN)은 이미 2002년에 한국을 일본, 대만 등과 함께 후발 이민국가로 분류하였다. 주님께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음에도 오늘날 전 세계 197개국 220만 명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닌가. 우리가 그들의 삶 속에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사명이 아닌가 싶다. 이 시대는 이제 국가와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도 이민자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최근 다행히 한국의 많은 교회가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 사역에 큰 관심을 갖고 사역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중도에 포기하거나 흐지부지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필자는 이 글에서 남부전원교회의 외국인(이민자) 대상 사역을 통해 겪었던 갈등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교회가 이민자 사역을 어떻게 이해하였고, 어떤 방식으로 사역을 하였는지 그리고 사역을 하며 부딪친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래서 이민자(이주 근로자) 선교 사역의 실천 방향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주근로자 사역에서 겪은 갈등

남부전원교회의 이주근로자 사역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관내에 거주하는 필리핀 출신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영어예배를 시작하며, 그들의 일터(신흥목재)에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효시가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1년 평택 관내에 거주하는 중국인근로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평신도로 구성된 4명의 집사들이 모여 기도모임을 갖고, 평택 공단을 중심으로 중국인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였다. 2001년 10월 첫 주에 6명의 중국인과 함께 교제를 갖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해 말, 중국선교회(원신쯔지아)1)는 60여 명이 모여 예배와 교제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2002년 2월경에는 130명의 중국인들이 모여 춘절(설)예배를 드리고 행사를 가졌다. 이어 예배인원이 300명을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남부전원교회에 등록한 필리핀 성도는 3천여 명, 중국인성도는 5천 명에 이르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로 사역은 확대되었으며, 대전, 천안, 안성, 아산, 원주, 의정부, 화성, 용인 등 전국 곳곳에서 중국인성도들이 예배와 교제를 위해 평택 남부전원교회를 찾아왔다. 하지만 중국 이주근로자 사역이 그리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사역은 갈등과 은혜의 연속이었음을 회고하게 된다.   





이 글을 통해 사역에서 겪었던 갈등을 유형화하여 소개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은 은혜가 어떻게 임하였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지금도 묵묵히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사역자들에게 감사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2) 
 

첫째, 관습과 복음의 갈등이다. 관습과 복음의 갈등은 주로 사역자(이하 ‘스태프’라고 함) 사이의 갈등, 스태프와 일반성도와 갈등, 스태프와 교회 중직자들과 갈등 등 주로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주근로자 사역을 하지 않았었다면, 겪을 수 없었던 아니, 겪지 않아도 될 모습이었다. 이 가운데 교회의 큰 부담이 된 것이 사역에 들어가는 재정 문제였다. 중국인성도들이 많아지면서 사역에 필요한 교회의 재정도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교회 재정에 큰 부담이 되기 시작하였다. 교회 예산을 이렇게 늘려 가면서까지 이주근로자 사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적당한 선에서 사역을 유지하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등 여러 말들이 들려왔다. 한편 중국인성도들이 늘어나면서 교회마당은 중국인들로 차고 넘쳤다. 불과 6개월 만에 300여 명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들은 교회마당을 비롯하여 식당, 카페 등 교회의 곳곳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교회의 여기저기에서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가 서서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이 바로 재정 문제였다. 한마디로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이 돈 문제는 성도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쉬운 명분이었다. 하지만 교회에 이민자가 꽉 차고, 한국인과 이민자가 함께 어울려 교제하고, 예배를 드리고, 다양한 국적과 민족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 이 모습이 우리가 꿈꾸며 그려왔던 모습이자 사역의 열매가 아니었던가. 천국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들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둥 상상도 할 수 없는 온갖 불만들도 표출되었다. 중국인성도들은 교회의 본당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본당(本堂)이 교회 권위의 상징이며,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주근로자에게 내어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다. 심지어는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즐기는 주일 점심식사를 중국인성도들에게는 돈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인성도들의 식사예산보다 중국인성도들의 식사 예산이 두 배 이상의 재정이 든다는 현실의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한국인성도들은 화장실을 가도 줄을 서야 했고, 주일 식사를 위해서도 줄을 서야 했으니 불편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함께 산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구나! 우리 교회공동체의 믿음의 수준이 이 정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서서히 은혜와 축복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우리가 가진 복음’이 무엇인가라는 근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냄새 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무엇인가. 냄새 나는 사람은 교회에 올 수 없는가? 본당은 한국인들의 전유물인가? 이주근로자는 함께 떡을 뗄 수 없는 사람들인가? 이러한 질문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진지한 질문으로 다가갔고, 성도들은 자신이 받은 복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관습과 복음의 갈등의 최고조는 흡연 문제였다. 중국인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본당 앞 계단, 카페 옆 야외 벤치, 선교교육관 옆 외부 베란다 밑, 교회에 오르는 언덕길 등 곳곳에서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이러한 모습은 많은 한국인성도들에게 극심한 혼란을 안겨주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냐”며 울부짖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갈등을 통해 교회가 더 교회답도록 성숙해지도록 인도해주셨다. 담임목사님부터 시작하여 장로님들, 스태프들은 교회의 곳곳을 다니며 그들이 피운 담배꽁초를 줍는 청소를 하며 그들을 섬겼다. 한편 목사님과 사역자들은 강단에서 이러한 갈등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지에 대해 성도들을 도전하게 하였다. 교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는 동시에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러한 모습 때문에 상처받은 성도들에게 어떤 확신을 갖고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며 복음증거자로서 관습에 대한 개인의 확신을 정립해 나가게 되었다.   


둘째, 복지와 복음의 갈등이었다. 이주근로자 사역자가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복지와 복음 사이의 갈등이다. 이민자는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낯선 땅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들은 많은 필요를 요구한다. 대부분이 3D업종의 제조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초과근무를 조금 더 하더라도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고향으로 송금할 겨를도 없는 상황이 다반사이다. 병이 났을 때 의료기관 방문, 가족에게 우편 보내는 일, 심지어는 핸드폰에 가입하는 일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도움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 소위 필요를 채워주는 복지제공의 사역은 사역자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게 되었다. 필요를 채워주는 사이에 사역자는 서서히 지쳐가고, 회의감도 갖게 되었다. 이주근로자에 대한 편의제공, 과연 그 끝은 어디란 말인가? 하는 질문 속에 사역자는 탈진하게 되며, 개인의 확신과 헌신도 잃어버리기 쉽다. 하지만 사역자에게 필요채움은 복음을 증거하는 절호의 기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자를 통해 이민자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부전원교회의 필요채움 사역  


셋째, 이민자와 본국에 있는 ‘이민자 가족과 갈등’이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근로자는 결국 본국으로 돌아갈 자들이다. 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귀국한 후에 본국에서 어려움 없이 신앙을 생활하리라고 미리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그들 가정의 종교 가족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의 가족이 과거 수십 년 동안 해 온 종교생활과 신념 또는 이념, 삶의 철학은 이주근로자가 본국으로 귀국하였을 때 가족 사이에 불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교제를 해야 한다. 그들이 귀국하였을 때 부부 사이에 부모자식 사이에 종교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갈등을 예상하여야 한다.   


실례로 남부전원교회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공산당 1당 체제인 중국은 공산당에 대한 이념이 개인과 가족에게 신념화가 되어 있는데 예수를 믿고 난 이후, 이주근로자는 그 이념을 버렸지만 종교 때문에 가족과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남부전원교회는 중국선교여행을 통해 그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여 그 가족과 친구가 되고, 신뢰를 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선교여행을 통해 그들의 가족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또한 사역자는 찬송가 568장과 같이 예수를 믿는 과정에 반드시 어느 누구든지 ‘선택과 결단의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선택’과 ‘결단’의 순간이 없는 것이 문제임을 기억해야 한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이와 같이 이주근로자와 그리고 그의 가족과 친한 친구가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과 결단,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하기 이전에 그들과 친한 벗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누추한 삶의 처소에 스스럼없이 방문하여 교제하고, 함께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선교여행을 충분히 활용하여 그 형제와 자매의 본국 가정을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이민자의 과거 삶의 터전을 느끼고, 그리고 그 가족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을 직접 가봄으로써 개인적인 친밀감 형성은 물론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넷째, 사역자 내면의 갈등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높고 낮음이나, 쉽고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모두가 생명을 살리는 귀중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근로자 사역자은 특히 내면의 갈등을 수시로 갖게 된다. 수고와 땀이 없이는 감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낯선 땅의 나그네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일정기간 주위의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수고와 땀이 이 사역에 배어 있기 마련이다.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설령 필요채움의 단계를 벗어났다 하더라도, 한 영혼이 영적으로 자라면서 예수 믿기 이전의 모습을 보이는 등 실망스런 모습을 보일 때, 내가 ‘제대로 사역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모두가 영적 부모가 되는 산고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역자의 파이팅 스피리트(fighting spirit)을 유지하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스태프 들과 교제를 통해 서로 격려하고 개인은 늘 십자가 밑에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갈등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시는 분이시다. 사역의 어려움 속에서 사역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 넘치는(overflowing) 교제이다. 남부전원교회 중국선교회 스태프들 사이에 서로에게 약속한 원칙이 있다. 그것은 매주 토요일마다 스태프 성경공부와 말씀교제를 반드시 갖는 것이다. 스태프들은 이주근로자 사역을 하지 않더라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키기로 약속하였다. 스태프들이 스스로 정한 이 원칙은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지치고 힘들어도 우리의 시선을 말씀에 초점을 둘 수 있도록 하였고,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온갖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을 먼저 생각하고 그분의 뜻을 찾도록 해 주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사역을 통해 말씀하심을 뼈저리게 느끼꼈다.  


이민자 사역자와 교회를 위한 조언

이민자 사역자와 이민자 사역을 시작하는 교회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 시작단계에서부터 ‘사역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사역자 개인의 확신에서 시작되며, 이것이 모이면 교회의 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선교와 국내선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사역의 공간이 ‘국내’라는 면에서 부담감이 덜 할 수는 있겠지만, 큰 차이가 없다. 언어와 타문화에 대한 이해 등 물리적인 어려움이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다문화 사역에 대한 믿음과 헌신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여야 한다.
 

남부전원교회의 경우, 4명의 성도가 먼저 기도모임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2-3개월 동안 계속해서 기도모임을 통해서 사역자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낯선 사역을 시작하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헌신과 개개인의 믿음, 선교에 대한 개인의 확신과 비전으로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왜 이 사역을 하려는 것인지, 무엇을 추구하는지, 성경에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예수님의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한 개인의 확신은 매우 중요하며, 확신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로버트 콜만의 《주님의 전도계획》이라는 책을 스태프들이 함께 읽고 토론하고 교제를 하였던 것이 초기 확신을 갖는 데 유용했던 기억이 난다. 





둘째,
교회와의 끊임없는 공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선교는 복음의 핵심이며, 교회 존재의 본질이다. 다문화 사역은 이 시대에 특별한 사역이 아니며, 이는 특별한 사람만이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다문화 사역을 하는 교회가 특별한 사역을 한다고 바라보는 것도 성경적으로는 옳지 않다. 교회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시는 때까지 선교는 지속되어야 한다. 다문화 사역은 교회에서 책임 지워진 몇몇 스태프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사역을 통해서 교회가 복음의 본질에 접근하게 되고, 교회의 체질이 변하고 성숙하게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셋째, 이민자 사역의 목표를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사역의 목표, 개인별 양육의 목표를 올바로 설정하는 것이 사역의 성패를 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역의 본질이 되는 목표는 ‘제자와 일꾼양성’에 두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선교 사역의 방법이었다. 소수의 헌신된 제자와 일꾼을 양성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하며, 아울러 폭넓은 사역을 통한 복음을 전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한다. 가장 효과 있는 방법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을 돕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맺음말
선교는 복음의 핵심이자, 교회 존재의 본질이다. 다문화 사역은 백화점에 놓여 있는 상품이 아니며, 교회의 화려한 장식물도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따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자연스런 응답이요 순종이다. 기존 교회는 다문화의 특수성으로 인해 교회의 체제나 문화, 관습 등으로 종종 마찰과 갈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필연의 모습임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이주근로자 사역을 통해서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며, 교회의 체질이 변하고, 포용성이 높아가며, 성도 개인의 영적 시야와 안목이 넓어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셨다. 훗날 우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천국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천국에서 함께 사는 법을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이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미주....................................................

1) ‘원신즈찌아(溫馨之家)’는 ‘따뜻한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의미로서 남부전원교회 중국선교회의 명칭임.
2)이 내용은 국제위디선교회(WiThee Mission International)가 주관한 이주민선교훈련학교(MMTS: Migrant Mission Training School)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재정리하였다. 



파울라스 | 남부전원교회 집사(
bepeace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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