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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1  통권 165호  필자 : 김영철  |  조회 : 2764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세 도시 이야기(三城记, Tale of Three Cities, 2015)》
-홍콩 여성감독 장완팅(张婉婷)-

격동기 소시민의 이산의 아픔
홍콩의 유명 여성감독 장완팅(张婉婷, 1950-)이 1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세 도시 이야기》는 2015년 8월 27일 중국에서 상영되었고,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되었다. 그의 오랜 연인으로 지내는 뤄치뤼(罗启锐)가 각본과 제작을 맡았는데 세계 액션배우 청롱(성룡, 成龙)의 부모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관객과 친숙한 탕웨이가 청롱의 어머니 역을 맡았다. 
 

영화는 1940–195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국민당 경찰과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는 팡다오롱(房道龙, 刘青云 분)은 천웨롱(陈月荣, 汤唯 분)을 안후이(安徽)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헤어져 상하이(上海)에서 서로를 찾아 헤매다가 간신히 만났지만 또 다시 헤어졌다가 마침내 홍콩에서 재회하였다. 영화는 두 소시민이 일본의 침략과 국공내전의 난세 속에 겪는 사랑과 역경을 담아냈다. 장완팅은 홍콩대학(香港大学)에서 심리학을 전공한데다가 여성특유의 섬세함으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상미를 표현하였고 섬세한 감정처리는 압권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여러 차례의 물그림자 영상은 어지러움, 흔들림, 뒤집힘 등 이미지를 통해 여주인공이 평소 물을 무서워하는 것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여주인공의 내적인 갈등과 불안 심리를 심도 있게 그려냈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녀는 중국 대륙에서 몰래 배를 타고 홍콩으로 밀입국하다가 홍콩 경찰에게 발각되자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팡다오롱에 의해서 간신히 구조되었다. 감독은 여성과 물의 연관성에 천착하여 중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간 한 여성의 역경을 간접 조명하였다. 영화의 중국어 제목은 ‘세 도시에 관한 기록’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영어 제목은 ‘Tale’로 번역됐는데 이는 ‘이야기의 서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쟁과 내전에 시달리던 소시민의 온갖 상처와 아픔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로 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인색한 편이지만 메시지는 어느 개인보다는 동시대인의 아픔이며 세계 스타 청롱의 후광보다는 인류 보편의 감정인 이산가족의 아픔을 표출하였다.
 

난세 속 소시민의 처절한 삶
중국현대사를 살펴보면, 1931년부터 45년까지 일본은 중국을 침략해 8년 동안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중국 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사이에 두 차례의 내전이 있었다. 1927년에서 1936년까지를 제1차 국공내전, 1946년부터 1949년까지를 제2차 국공내전이라 한다. 영화는 항전시기와 제2차 국공내전에 초점을 두고 이 격동기를 살아간 농촌과 도시의 소시민의 애달픈 삶을 형상화하였다.
 

국민당 경찰노릇과 비밀요원 역을 맡은 팡다오롱은 대원들과 공산당원 소탕작전을 수행하다가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는데 일본군이 휘두르는 칼에 한 대원이 참수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 일 후에 팡다오롱은 조직 탈퇴를 결심하지만 조직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부단히 협박을 가했다. 결국 그는 야밤에 벌어진 총격으로 두 아들과 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다. 팡다오롱은 총상을 입은 발을 질질 끌고 가다가 길에 쓰러졌는데 떠돌이 장사꾼인 서우마이화(收买华, 井柏然 분)가 그를 발견하여 다리에 박힌 탄환을 제거해줘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팡다오롱은 천웨롱이 일본군과 지방 토호의 위협을 견디지 못해 안후이를 떠나 상하이로 떠난 것을 알고 상하이 곳곳에 구인 광고지를 붙이면서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팡다오롱은 전차를 타고 가다가 차창 밖으로 천웨롱을 우연히 발견하고 다급히 내렸는데 마침 그를 쫓던 비밀요원이 그를 발견하고 추격전을 벌이다가 그는 머리에 총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천웨롱은 빙 둘러 선 사람들 틈바구니 사이에서 팡다오롱을 발견하였다. 천웨롱은 상하이 조계지역 외국인 집에서 잡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그를 치료하기 위해 거금이 필요하자 전에 팡다오롱이 그녀에게 주었던 귀한 장신구와 가진 모든 것을 전당포에 잡혔다.
 

팡다오롱은 힘겨운 수술을 마치고 간신히 살아났지만 국민당은 공산당군에게 밀려 쫓기면서 배신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길에서 처형을 단행하였다. 팡다오롱은 자신이 수배자 명단에 오르자 홍콩밀입국을 감행하였다. 그는 서우마이화와 서우마이화가 상하이에서 알게 된 여자 친구인 처우샤오링(仇肖玲, 秦海璐 분), 천웨롱의 두 딸과 그녀의 어머니를 함께 데리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서우마이화는 공산당원과 공모하여 타고 온 트럭에 시한폭탄을 설치하고 자결을 결심하였다. 천웨롱의 어머니는 이 충격의 장면을 목격하고는 자신은 남아서 두 딸을 돌보며 지내겠다고 고집하였다. 천웨롱은 차마 어머니와 그리고 두 딸과 떨어질 수 없어서 남기로 했다. 팡다오롱은 하는 수없이 사랑하는 천웨롱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서 홀로 홍콩으로 오게 되었다. 후에 천웨롱은 밀입국 배를 타고 홍콩으로 와서 팡다오롱과 재회하였다.
 

두 사람은 1954년에 아들을 낳았는데 홍콩에서 태어나서 강성(港生)이라 이름을 지었는데 이 아이가 바로 청롱(성룡)이다. 팡다오롱과 천웨롱은 38년이 지나서야 두 아들, 두 딸과 재회할 수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난세(亂世)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 전쟁의 혼란기 속 여성들은 안팎으로 이중의 위험에 처해진다. 천웨롱은 고향까지 침입한 일본군 때문에 낮에는 숯검정 얼굴을 하고 다녀야 했고 향촌의 세력가는 그녀를 과부로 여기고 강제로 첩을 삼으려하였다. 팡다오롱이 총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기에 서우마이화와 천웨롱은 그의 빠른 회복을 위해 고급 자명종을 시장에 팔았는데 고작 계란 4개 값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의 중국 침략,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약육강식이 판치는 세상에서 소시민은 온갖 유린과 배신을 당하고 온몸으로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그중에서도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전란 속에 꽃 피운 첫 사랑
영화는 빈번한 전란으로 참혹해진 인간의 실상과 비인간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노출하였지만 오직 진실한 사랑으로 희망의 꽃을 다시 피울 수 있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영화 도입부에서 유기견이 거리에서 떨어진 생선을 먹고 있는데 이를 본 어린아이가 개를 쫓아내고 생선을 입에 물고 다니다가 눈을 부릅뜬 성인남자에게 먹을 것을 빼앗기고 그 남자는 마침 일본군기의 공습으로 폭격을 맞은 건물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었다. 영화는 약육강식 사회의 한 단면을 샅샅이 파헤쳤다. 전장에서 어린 아이와 부녀자의 참상은 더욱 가혹하였다.
 

여주인공 천웨롱은 15-16세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 딸 둘을 낳았는데 일본군의 공습으로 남편을 잃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이 며느리의 박복한 운명 때문이라며 천웨롱을 내쫓자 그녀는 두 딸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남편 없이 두 딸을 키우느라 힘겨운 흑토(黑土)를 몰래 나르는 범법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 일이 국민당 경찰 팡다오롱에게 발각되었지만, 병으로 아내를 잃은 팡다오롱은 폭격으로 남편을 잃은 천웨롱에게 연민을 느껴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결혼승낙을 받으려고 팡다오롱은 천웨롱의 어머니를 찾아갔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거절하였다. 팡다오롱은 요리, 음악, 무술 등에 다재다능하고 총명하지만 6글자밖에 모르는 일자무식이라고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천웨롱은 세상의 기준보다는 팡다오롱 속의 보이지 않는 진심을 발견하였다. 팡다오롱이 국민당에게 쫓겨서 피신했을 때 지방세력가는 천웨롱을 과부로 여기고 밤에 집으로 쳐들어와서 데려가겠다고 행패를 부렸다. 그녀는 팡다오롱이 주고 간 장총으로 자신을 방어하였고 이 사건 후에 고향 안후이를 떠나 상하이로 도망갔다.
 

팡다오롱은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뜨자 두 아들을 자신의 아버지와 키웠다. 천웨롱은 남편을 여의고 두 딸을 홀로 키우는 엄마이지만 팡다오롱의 진실한 마음에 끌려 그에게 첫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팡다오롱은 자신이 신변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천웨롱을 걱정해주고 상하이로 떠난 그녀를 찾기 위해서 온갖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쟁의 혼란과 세상 사람의 편견,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사랑이었다. 사람의 무식함은 사랑의 장애가 되지 않았다.
 

홍콩 사람인 장완팅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홍콩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 도시 이야기》에서 주인공 남녀가 홍콩으로 불법이민을 감행하는 상황은 감독의 초기작에서 단서가 보인다. 장완팅은 1985년에 연출한 《불법 이민자(非法移民)》는 불법이민을 소재로 다룬 영화인데, 제30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제5회 홍콩영화제인 진상장(金像奖)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장완팅은 그 외 《가을날의 동화(秋天的童话), 1987》, 《팔냥금(八两金), 1990》 등을 연출하여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중국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홍콩감독들의 공통 관심사이기도 한다.
 

중국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이 벌인 내전으로 인해 수많은 피난민이 홍콩으로 몰려들었다. 1950년대에는 홍콩은 중국 대륙보다 GDP가 5배나 높아서 홍콩으로 불법 이민하는 풍조가 만연하였다. 1949년 이후 홍콩뿐만 아니라 타이완도 중국 대륙과의 교류를 전면 중단하면서 사회에서 온갖 문제를 야기하였다. 타이완은 1987년에 장징궈(蒋经国) 총통이 퇴역 병사들이 중국 대륙에 있는 그들의 가족과 친지를 방문하는 것을 허락함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었다. 또한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됨으로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었고, 현재 타이완은 중국 대륙과 비즈니스, 관광, 유학 등의 문호까지 개방하였다.
 

최근 한반도는 북핵의 위협으로 남북관계의 이상기류가 계속되고 있고, 6.25전쟁으로 이산가족들은 이산의 고통과 비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산가족의 비극은 정치의 이념과 전쟁의 고통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 5월이 가족의 달이라고 해서 어린이날 다음날인 6일이 임시휴일이 되었다. 소비를 진작하려는 경제 논리를 내세우기보다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의미를 되새겨 봄으로 가족이 함께 있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은 지상에서 영원하지도 않고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도 않기 때문이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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