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이 몸을 드리겠다고 헌신기도를 했다. 그리고 내 나이 스물두 살 때 신학공부를 하면서 사역을 시작한 후 교사강습회, 성경학교, 경로잔치, 수련회 등을 인도하며 전국을 누볐다.
어느 날 같이 사역을 하던 전도사(현재 K국 선교사로 사역)가 중앙아시아로 교사강습회를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외국에 못 가니까 너희들끼리 갔다가 오라’고 했는데 그 전도사가 ‘모든 스케줄은 자신이 짜는 거니까 전도사님은 스케줄대로 가서 강습회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미 현지에 광고도 나갔고 신청서도 다 받아놓았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단기선교. 사실 그때까지 다른 몇몇 선교지에서도 오라고 하였으나 나는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기 때문에 절대 외국은 가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도 해외라고 가지 않았다. 그렇게 첫발을 디딘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많은 선교지를 다닌 것이 벌써 20년.
‘선교사의 삶과 사역’에 들어갈 원고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무엇을 써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선교지의 먹거리 경험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 33-34) 라고 말씀하시지만 사실 많은 장단기 선교사들의 고민 중 하나는 음식에 관한 것일 것이다. 이 여담을 통해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문제에 작은 해답과 위로가 독자들의 마음에 전해지길 소망한다.
끓는 물세례 1996년 6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는데 그 비행기가 러시아 비행기였다. 김포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비행기 탑승을 위해 가는데 현지인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막 달려가는 것이었다.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어서 표를 보았으나 표에는 자석번호도 있고 다 정상이었다.
그래서 느긋하게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비행기 안에는 미리 탄 사람들이 앉아 있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했다. 내 자석번호를 찾아서 가니 누군가 남의 자리에 누워 있었다. 누워 있는 사람을 툭툭 치자 그 사람이 되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는 내 표를 그 사람에게 직접 보여 주었는데 그 사람은 다시 눈을 감고 그대로 다리를 쭉 펴고 드러눕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화물칸 입구 쪽에 신문지를 펴고 바닥에 앉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움직이자 스튜어디스가 와서 누워 있는 사람들을 일으키고 우리를 우리 자리에 앉게 해주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3시간 정도 흘러 기내식으로 컵라면이 나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컵라면에 물을 받고 있는데 하필 그때 난기류 때문에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고 컵라면에 부으려던 물이 그만 내 다리에 그대로 쏟아졌다. “앗! 뜨거워!” 스튜어디스는 컵에 물을 마저 채우고 앞으로 갔다. 나는 수건을 가지고 오리라고 기대했는데 그 스튜어디스는 다시 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나 참.
빵, 빵, 빵 무슨 소리냐고요? 이것은 그 어떤 소리가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한 지역에서 진행되는 3박 4일 수련회 기간 동안 밥은 딱 두 번만 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빵이 나온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빵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그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이 오직 교사강습회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날아갔는데…. 교사강습회가 시작되자 식사 때마다 빵이 나오는 것이었다. 아침에도 빵, 점심에도 빵, 저녁에도 빵! 빵….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도 …. 도대체 밥은 언제 먹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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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밥 교사강습회를 마치는 날, 양을 치는 현지 사람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다면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초대를 했다. 현지 지도자의 집에 저녁 5시쯤 도착해서 식사를 하게 됐다. 차가 나오고 과일과 사탕이 나오고 빵이 나오고 드디어 기름밥(쁠롭)이 나왔다. 그런데 보자마자 ‘욱’ 하고 속이 느글거리는 게 올라왔다. 겉으로 보기엔 소고기국밥과 비슷했다. 양고기와 당근, 양파, 쌀을 넣고 밥을 한 것인데 물대신 기름을 넣고 밥을 한 것이었다(소고기국밥에 물대신 기름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선교사님에게 도저히 못 먹을 것 같다고 했더니 ‘현지 사람들이 한 달 생활비를 모아서 한 저녁이니 다 먹어야 한다.’고 했다. 밥 한 숟가락 먹고, 차 한 잔 마시고, 밥 한 숟가락 먹고, 차 한 잔 마시고…. 그렇게 하면서 한 시간 만에 밥그릇을 비웠는데 더 먹으라는 말에 사양하느라 진땀 꽤나 흘렸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와 과일이 나와서 먹으면서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저녁식사를 하는데 5시간이나 걸렸다. 내 생애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긴 저녁식사였다.
밥은 왜 같이 안 먹어? 중국의 한 시골교회를 들어갈 때마다 새벽, 오전, 오후, 저녁 말씀집회를 한다. 그리고 숙소에서 집사님들이 해주는 밥을 먹는데 다른 집사님들은 늘 다 같이 밥을 먹는데 유독 한 집사님만 같이 밥을 먹지 않았다. 그게 벌써 몇 년째다. 밥을 같이 먹지 않는데도 반찬을 만들어 놓고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왔다. 이상하다 싶어서 다른 집사님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반찬만 먹고 자신이 만든 반찬은 안 먹고 그대로 남길까봐 겁이 나서 같이 안 먹는다고 했다.
평소 먹는 대로 지린(吉林) 지역에서 교사강습회를 할 때였다. 40-50명의 교사들이 모여서 강습회를 하는데 본 교회 집사들이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식시준비만 하는 것이었다. 반찬이 끼니마다 15가지 정도나 됐다. 그래서 그 다음날 오후에 부엌에 들어가서 집사님들에게 “평소 먹는 대로 반찬은 서너 가지만 하고 집회에 참석하라’고 했더니 집사님들이 하는 말 ”평소 먹는 대로 하는 건데요!” 했다.
몸보신 사할린의 한 시골에서 3박 4일 교사강습회를 할 때였다. 그때가 6월 말 경이라 아직 연어가 올라 올 시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교사강습회 둘째 날 강의 도중 휴식시간에 물을 마시러 부엌에 들어갔는데, 다른 교회 집사님 한 분이 팔뚝만한 연어 세 마리를 가지고 와서 ‘목사님 대접하라고 연어가 미리 올라온 모양’이라고 하면서 주고 갔단다. 그런데 저녁 반찬에 연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연어 튀기는 것도 봤는데…. 그래서 집사님에게 연어를 달라고 했더니 귀한 목사님에게 흔한 연어를 대접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안되겠다 싶어서 한국에서는 연어를 먹고 싶어도 너무 비싸서 못 먹고, 일 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다고 했더니 그때서야 튀긴 연어 두 조각을 가져다주었다.
그 다음날 오후엔 또 다른 교회 집사님이 목사님 대접하라며 송어 일곱 마리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오늘 저녁엔 송어국을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이번에도 소뼈다귀 곰탕이었다. 송어국을 달라고 했더니 선교사님이 가시면서 목사님은 여기 교사강습회 끝나고 두 달 동안 러시아 본토와 중앙아시아 지역을 돌면서 사역하기 때문에 여기서 몸보신을 하고 가야 하니깐 잘 대접하라고 하였다면서 귀한 소뼈다귀국을 잡수셔야 한다고 끝내 송어국을 주지 않았다. 그곳에서 식사하는 12끼 내내 소뼈다귀국만 먹고 왔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사할린에서는 소를 키우지 않기 때문에 모든 소고기는 수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귀한 손님은 소고기나 소뼈다귀국을 대접하는 것이란다.
우리도 밥 주세요 K국의 어떤 산에서 4박 5일 청소년연합캠프를 할 때였다. 산에서 직접 돌로 화덕을 만들고, 나무를 주워서 국을 끓이고, 빵과 오이를 잘라서 밥을 해 먹었다. 그런데 둘째 날 점심배식을 하고 있는데 뒤쪽에 있는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대서 돌아보았더니 소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한 10여 마리의 소떼가 아이들이 앉아 있는 풀밭으로 들어와 아이들을 몰아내고 한 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들과 함께 밥 먹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밥을 다 먹은 후 아이들이 조별 성경공부를 할 때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앉아서 느긋하게 말씀을 듣고 있는 소떼. 밥값을 하느라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목사님들은 술 마시던데요 어느 해 설을 쇠고 나서 중국의 시골교회로 집회를 갔다. 오후 집회를 마쳤는데 교회 나온 지 몇 년 안 되는 할머니가 당신 집에 와서 저녁밥을 같이 하자고 해서 갔다. 그런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와 계셨다. 무슨 날이냐고 여쭤봤더니 설 쇠고 나면 해마다 동네 어르신들 가정에서 돌아가며 저녁식사를 대접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녁상이 차려졌고 밥을 제외한 국과 반찬이 다 차려지고 마지막으로 술이 나왔다. 할아버지들이 내게 잔을 권했다. 그래서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들이 다른 목사님들은 다 마시던데 왜 목사님은 마시지 않느냐며 자꾸 권했다. 나는 원래부터 마시지 않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한 잔씩 따라 올렸다. 두 번째 잔은 서로 서로 따라 주는데 교회 다니는 할머니가 목사님이 안 마시니깐 자신은 한잔으로 끝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른 할머니들은 자신들은 한 잔만 더하고 그만 마시겠다고 했다. 다음날 저녁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할 차례인데 그 할머니가 어제 저녁 목사님이 기도해주시고 저녁을 먹으니 너무 좋았다면서 목사님을 자기 집에도 모시고 와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고 해서 그 할머니 집에도 가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들도 어제 술을 적게 마셨더니 아침에 속이 편안했다면서 오늘은 자신들도 한 잔만 하겠다고 하셨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되요? 나는 밥을 비며 먹거나, 국에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한 교회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목사님 제발 오이랑 고추만 먹지 말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해서 어느 초겨울에 ‘진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진짜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배추 한 포기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채를 쳐서 고추장에 벅벅 비벼 먹었다. 그 다음부터는 집사님들이 편안하게 시골밥상 그대로 차려왔다.
오늘은 한국에서 손님이 왔으니 야외에 가서 점심을 먹겠습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주일예배를 드릴 때였다. 설교를 마치고 광고시간에 선교사님이 오늘은 한국에서 손님이 왔으니 야외에 나가서 점심을 먹고, 야외예배를 드리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한국이나 중국에서 야외예배를 가려면 몇 주 전에 미리 광고를 해야 하는데 10분 후에 야외예배를 간다고 광고를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바로 차를 타라고 하여 차를 탔다. 선교사님이 전도사님에게 오다가 리뾰시까(화덕에 구운 둥근 빵)를 사 오라고 하고 사모님에게는 시장에 들려 오이를 사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분에게는 소시지를 사 오라고 했다. 한 30분을 달려서 어떤 숲 속에 도착했다. 그곳에 그냥 둘러앉아서 빵과 소시지 자른 것 그리고 오이를 나누어 주었고, 그것이 바로 점심이었다. 그래서 예배 때 바로 야외예배를 간다고 광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0명이 넘는 성도의 점심을 준비하는 것이 불과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
목사님! 수박이 없어요! 아이들 캠프 둘째 날 오후에 아이들 간식으로 수박을 잘라 주고 있는데 처음으로 캠프에 합류한 재정담당 선교사님이 와서 “목사님! 수박을 그렇게 많이 주면 어떻게 해요. 이제 몇 개 안 남았어요.” “괜찮아. 내가 누구야?” “수박 목사님.” “그럼 수박이 있어? 없어?” “목사님! 그게 아니잖아요?” “괜찮아, 수박은 있으니깐 걱정 하지 마.”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녁식사 시간이 됐을 때 한 선교사님이 교회 성도님 몇 분과 찾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정담당 선교사에게 “남자 아이들을 데리고 선교사님이 타고 온 버스에 가봐!”라고 했다. “왜요?” “그냥 가보면 알아” 선교사님이 버스에 수박을 가득 싣고 온 것이다. 170여 명의 아이들이 3일 동안 먹을 수박을.
우리도 같이 먹어요 연합캠프를 마치고 수고한 교사들과 함께 숲 속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샤슬릭(꼬치구이)을 구워먹고 수박을 먹을 때 말벌들이 자기들도 같이 먹겠다고 찾아왔다. 수박의 달콤한 향기가 벌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벌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먹어야 했다. ♣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 西瓜 | 순회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