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적 성취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한 상앙의 이론과 실천은 초단기적으로 부국강병을 달성한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그 자신은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방법으로 중국 통일에 성공한 진나라이지만 불과 15년 만에 망해버렸으며, 《상군서》는 계승자도 없고 더 이상의 이론적 발전도 없이 역사 속에 묻히고 말았다. 《상군서》는 눈앞의 부국강병에 매진하는 사람들에게 채찍의 유용성을 깨우쳐 주는 지혜 주머니 역할을 해줄 것이다. 반면, 항구적인 문화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상군서》는 채찍의 위험성과 인류 문명의 미래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_장현근
제자백가의 사상들을 공부할 때마다 춘추전국의 시대상과 사상가들의 고민이 비단 중국 고대의 역사 속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 사회의 문제들과 해결방식에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상가들이 줄곧 고민해온 생존의 문제, 정치의 문제, 인간성의 문제 등은 한 시대를 넘어서는 문제로 인간본질의 실현과 사회통합의 구현을 위한 인간 역사의 영원한 숙제처럼 보입니다.
오늘날의 문명 사회는 지구촌시대를 맞이하여 그 어떤 한계도 없이 더 큰 풍요를 얻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회적 불합리와 정치적 부조리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먹고 먹히며 경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많이 가지면 더 많이 행복하고 더 많이 평화로워야 하는데 그와 반대로 더 많이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는 오늘의 무한경쟁만큼이나 치열한 약육강식의 모습으로 대륙 전체가 전시상황이었고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살육의 시대였습니다. 이때의 통치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힘’에 대해 골몰했고 패자(霸者)로 군림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대륙에는 여러 나라를 돌며 정치적 유세를 펼치는 사상가들이 등용되어 각자 나름의 독특한 정치사상들을 펼쳐나갔습니다.
춘추전국시대로부터 사실상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상은 유가의 덕치와 법가의 법치입니다. 역사적으로 법가는 유가를 이기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한 사상이지만 오히려 통일된 중국이 안정기에 접어들 때에는 빠르게 몰락하고 다시 유가가 중국 정치사상의 중심으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중국에 강하게 뿌리내린 유학을 비판하며 중국을 하나로 만들었던 법가에는 도대체 어떤 현실적 능력이 있었던 것일까요.
유가의 덕치주의는 친친(亲亲)을 원리로 하는 통치자의 덕(德)에 기반한 정치를 말하는 것으로 나와 남을 한 가족처럼 여기며 인의예지로써 보듬고 돌보는 모양의 정치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법가는 바로 그러한 나와 남의 구별이 없는 관계로부터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력화된다고 보았습니다. 친하게 여기는 관계에는 공평무사함이 없고 예의와 도덕은 부국강병의 핵심인 힘을 길러주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유가비판과 함께 부국강병을 위해 윤리도덕이나 예의범절이 아닌 신상필벌의 법과 이를 사용하는 통치자의 절대권력을 강조한 것이 바로 상앙입니다.
《상군서》의 저자인 상앙은 최초의 법가로 평가되는 관자(管子)와 법가의 종합을 이뤄낸 한비자(韩非子)의 중간에 위치하는 인물로 중국의 고대사회를 봉건제도에 기반한 귀족정치에서 법질서를 통한 관료정치의 군주국가 체제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관심은 백성이 아니라 군주였고 덕치를 통한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통한 부국강병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단순히 전쟁에 참여하는 수준이 아닌 전쟁을 즐거워하고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준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위해서 철저히 백성을 전쟁을 위해 도구화하는 방법으로 상과 벌의 공평무사한 법치 시행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상앙은 법치의 시행이 단순히 백성을 저버리고 왕의 권력유지와 야욕에만 집중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국강병이야말로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길이며 결국에는 백성들의 생존과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덕생어력(德生於力), 힘에서 덕이 생겨난다고 한 것입니다.
상앙의 정치는 사람의 가치를 힘에 집중시켰고 실제로 이 힘은 변방의 약소국이었던 진나라가 통일의 대업을 완성하게 하였습니다. 법으로 통제하는 사회에서 백성들은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이전거전(以战去战), 곧 전쟁으로 전쟁을 몰아내는, 힘으로써 모든 힘들을 무찔러버리는 가장 강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강성했던 진나라는 왜 또 그토록 빨리 망해버렸고 힘으로 백성들을 이롭게 했던 상앙은 추앙받지 못하고 자신이 세운 법에 의해 죽게 된 것일까요.
상앙의 법치와 진나라의 흥망성쇠로 보건대 법은 힘을 기르는 데는 유용한 도구일지는 몰라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가는 데는 한계를 가진 도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상앙은 완벽한 법의 시행을 위하여 상을 적게 하고 형벌을 엄중하게 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여가생활과 놀이, 예술을 엄격히 막고 전쟁과 관련이 없는 직업은 금지시켜 버립니다. 법치를 통해 사람과 사회의 이상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상을 철저히 현실의 힘을 위해 배제합니다. 그래서 법가는 역사적으로 천하통일은 이뤘지만 태평성대를 이룰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인인 우리는 이러한 힘을 추구하는 역사의 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법과 힘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율법과 믿음의 관계를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시대와 초대교회에도 법을 잘 지켜야 강해진다, 혹은 온전해진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문제에서조차 율법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을 때 그 엄격함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사람을 위한 율법이 도리어 사람다움을 헤칠 위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안식일 논쟁은 이러한 율법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는 법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더 이상 법은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라고 말씀하시고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에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법의 목적도 여전히 사람살이에 있다면 그 주체인 사람의 사람다움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뜻에는 법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죄 됨과 연약함을 싸매는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인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
♣ 김주한 | 길가에 교회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