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에서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일이 선교지에 도착한 이듬해에 발생했다. 제자로 양육하던 자매가 갑자기 천국으로 떠났을 때였다.
옥희는 한국에서 유학 온 대학생이었다. 여고를 졸업하고 하사관으로 임관하여 5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난 후, 아무래도 대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수능을 보고 대전에 있는 한 대학에 들어갔던 성실한 자매였다. 그러느라고 대학생 치고는 나이가 든 편이었다. 스물일곱살 혼기가 차 이미 결혼상대자도 있었다. 그녀는 훈련된 하사관 출신답게 공부도 억척스럽게 했다. 주어진 1년의 유학기간 동안 중국어수평고시(HSK) 6급을 따고 돌아가기 위해 정규수업 외에도 하루에 8시간씩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녀가 유학을 왔을 때만 해도 그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불교신자라고 자신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유학 온 그리스도인인 여대생이 자기 방에서 찬송가를 듣고 있으면 자신은 더 크게 찬불가를 틀어놓으면서 대적했다. 한국인이 별로 없던 선교 초장기에 선교지에서 자매를 처음 만났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이 자매를 전도하여 제자 삼으라’는 강한 마음을 부어 주셨다. 그래서 나는 자매를 불러서 밥도 해 먹이고 배추김치며 깍두기도 만들어 보내주기도 했다.
그처럼 그 자매를 전도하기 위해 관심을 쏟으면서도 내가 타문화권 선교사로서 1년 후면 한국으로 돌아갈 이 자매를 전도하고 제자훈련을 한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 선교마인드일까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여 그 자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하여 1998년 5월 19일 옥희는 거듭났다. 나는 그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먼저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영화 한편을 보여 주었다. 내가 보여준 전도영화 ‘예수전’을 보면서 옥희는 말했다. “예수님이 저렇게 좋은 분이라면 믿고 싶어요.” 그동안 옥희는 주변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교회에 대해 마음을 닫고 있던 자매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이곳에 유학을 보내셔서 그녀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진행하셨던 것이다.
주님을 영접하고 난 옥희는 주일에는 우리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도 따로 하루 시간을 내어서 나와 함께 일대일 제자훈련 성경공부를 했다. 성경도 열심히 읽어서 신약을 통독했다. 그렇게 예쁘게 믿음이 자라가면서 옥희는 한국에 있는 자기 아버지에게 또 남자친구에게도 편지로, 때로는 전화로 전도를 했다. 또 말씀을 가르쳐 주는 나에게 고맙다면서 비싸지 않은 것이지만 머리핀이라든가 하는 작은 소품을 선물로 사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이 곱게 자라가던 옥희가 가끔 배가 아프다고 했다. 예수 믿고 7개월여 되었을 때였다. 옥희는 계속해서 위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현지 병원을 가도 별 효과가 없다고 했다. 얼마 후에는 너무 아파서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으니 잠시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전에 위궤양 증세가 있었는데 한국에 가서 약을 받아 가지고 오겠다고 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1년 유학으로는 언어를 제대로 배우기 어려워서 1년을 더 연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제 한국에 가서 치료받고 오면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하면서 짐도 다 놔두고 배낭 하나만을 가볍게 메고 그녀는 한국으로 갔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옥희의 모습이었던 것을.
한국으로 간 옥희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 아무래도 죽을병인가 봐요.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 후에 결과를 알려 준다고 하네요.” 그러더니 일주일 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저 지금 죽어도 천국갈 수 있지요? 저 위암 말기라서 수술해도 못 산대요, 3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거라고 해요. 저 위해서 기도 좀 해 주세요.” 옥희는 이 엄청난 말을 어쩌면 그렇게 담담하게 전하는지 그 말이 마치 사실이 아닌 것처럼…. 그러나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믿고 싶지도 않았고 믿어지지도 않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항의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나님, 어떻게 된 거예요. 하나님께서 옥희 자매를 처음 만났을 때 제자를 삼을 마음을 주셨잖아요. 그런데 벌써 데려 가시면 어떡해요. 아직 성경공부도 다 마치지 못했잖아요.” 우리 가족은 21일 동안 옥희 자매를 위한 릴레이 금식기도를 했다. 그곳에 와 있던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보해 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꼭 한 달 만에 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녀는 아주 평안하게 임종을 맞이했다고 그녀의 임종을 지켰던 올케 언니가 전해왔다. 의사가 3개월은 살 수 있을 거라는 한말이 무색하게 그녀는 일찌감치 더 고생하지 않고 자기의 진정한 아버지가 계신 하늘나라로 떠나 가버렸다. “저 아버지 집에 갈 거예요. 선생님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니까 저는 천국으로 가요.”라는 마지막 말을 내게 남긴 채…. 자기가 결혼하면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 것인지를 가끔 나에게 들려주던 옥희는 스물일곱살 꽃다운 나이에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갔다.
옥희의 가족들로부터 딸을 돌봐 주어서 고맙다는 국제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유해는 화장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동안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사귀던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러갔던 대천 해수욕장에 옥희의 유해를 뿌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이 말했다. “대천 해수욕장의 물은 이곳으로 흘러 들어오는데 옥희가 자기가 구원받은 이곳이 그리워서 서해를 따라 중국으로 오고 있겠구나.” 그 말을 듣던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옥희가 무척 보고 싶었다. 옥희는 이곳에 유학 와서 예수 믿고 천국백성이 되었다. 옥희는 언어연수도, 나와 공부하던 일대일 제자훈련 성경공부도 다 마치지 못하고 아쉽게 떠났던 이곳을, 못 잊어서 죽어서라도 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해변으로 갔을 것이다. ▩
♣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