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代世界一件最浩大的工程,后来变成了大灾难。当时人类汇集了无与伦比的组织和动员力,同心建造巴别塔,结果却沦为分散各地无法沟通的族群,人类文明至今还未能从这个惨痛的结局中恢复过来。即使这样的努力和宗教有关(特别当这样的努力和宗教有关),也不能自动证明其正当性。
고대세계의 가장 거대한 사업이 훗날 큰 재난이 되어 버렸다. 당시 인류는 비교할 수 없는 조직과 힘을 모아 한마음으로 바벨탑을 세웠다. 그 결과 각지로 흩어져 소통할 수 없는 종족들로 전락해 버렸다. 인류 문명은 아직도 이 비참한 결과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특히 이러한 노력이 종교와 관련이 있을 때) 자동적으로 그 정당성을 증명할 수 없다.
(……)
诗篇127篇教导:正确与错误的工作态度各是什么。这首诗借着一项警告和一个例证,引导基督徒在工作中荣耀上帝。
시편 127편은 일에 대한 바른 태도와 잘못된 태도가 각각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이 시는 하나의 경고와 하나의 예증을 써서 그리스도인이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인도한다.
起初上帝就作工
태초에 하나님이 일하셨다
这首诗为所有工作设定了一项前提,那就是上帝一直在工作:“若不是上帝建造房屋(……) 若不是上帝看守城池 (……)”表明条件的倘若一词,是以上帝做工为前提:他建造,他看守。
이 시는 모든 일에 앞서 전제를 설정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속 일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 조건을 나타내는 만약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전제한다. 그는 세우신다. 그는 지키신다.
基督徒和别人最大的不同,在于我们严肃地面对上帝,而别人却不是。我们确实相信上帝是一切存在的中心实体;我们确实关心上帝的所是所为;而我们也确实让自己的生活能够响应那样的事实,而不是依照其它标准。关心上帝的所是和所为,包含体认到他是一位持续工作的上帝。
그리스도인과 다른 사람들의 가장 큰 차이는 우리들은 진지하게 하나님을 대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존재의 중심이 되는 실체임을 확실히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행위에 분명히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또한 자신의 생활이 그런 사실에 반응할 수 있고 다른 표준을 따르지 않도록 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일하심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일을 지속하시는 하나님임을 깨닫는 것을 포함한다.
我们生活在上帝不断工作的宇宙和历史之中。圣经开宗明义地表明工作是上帝的行动。因此,在我们研究社会学家如何描述工作,心理学家对工作有何洞见,或者经济学家怎样分析工作以前,必须先认识圣经的记载:上帝做工。圣经充满对上帝所做之工的定义和描述。其中有创造的模式、救赎的行动,上帝帮助人、怜悯人的例子,以及安慰和救恩的范例。基督徒不间断地仔细查考圣经,很重要的一点是要找出上帝在耶稣基督里工作的方式,以至于我们可以奉耶稣基督的名工作。
우리는 하나님이 부단히 일하시고 있는 우주와 역사 속에서 생활한다. 성경은 일이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첫머리에서 요지를 밝힌다. 따라서, 사회학자가 어떻게 일을 묘사하는지, 심리학자가 일에 대해 어떻게 꿰뚫어 보는지, 혹 경제학자는 어떻게 일을 분석하는지 연구하기에 앞서 필수적으로 우선 성경의 기록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일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정의와 묘사가 가득하다. 그중에는 창조의 모델, 구속의 행동, 하나님이 사람을 돕는 것, 긍휼히 여기시는 예 등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자세히 성경을 살펴본다. 아주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시는 방식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保罗在他每一封书信里都说明着:基督徒的工作,是极其自然、无可阻挡、必然信实地,从上帝的作为所发展出来的。而每封信结尾,保罗都一步步引导我们参与上帝的工作。很不幸,有些人的生活不是这样,他们的工作了无意义、徒无益而且微不足道,这样的工作是离开上帝的结果,是忽视了这首诗一开始所说的若。作门徒的训练,就是借着上帝所作的工来校正自己,在上帝的作为中寻找到自己的定位,免得我们成为工作狂。图斯的圣者希拉里(Hilary of Tours)提醒基督徒必须时时警惕,避免陷入他所谓的 “irreligiosa solicitude pro Deo”──以一种亵渎的焦虑来为上帝工作。
바울은 모든 서신에서 그리스도인의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막을 수 없고, 필연적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의 일에서 발전되어 나옴을 설명하였다. 매 서신의 끝에 바울은 한걸음씩 우리를 하나님의 일하심에 참여하게 인도한다.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들의 생활은 이렇지 않다. 그들의 일은 의미가 없고, 헛되고 하찮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결과에서 떠나 있고 이 시가 처음에 말한 ‘만약’을 무시한 것이다. 제자의 훈련은 하나님이 하신 일로써 자신을 교정하고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 일벌레가 되지 않아야 한다. 투스의 성자 힐라리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매 순간 깨어서 “irreligiosa solicitude pro Deo”(하나님을 위한 불경건한 열심)- 일종의 신성 모독적인 염려를 갖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一旦和这位将“救恩施行在全地的”上帝失去接触,我们的工作就会出错。要不是过度担忧,就是一点也不想工作;或是在工作上变成热切的工作狂(像巴别),或是变得懒散没有生趣(像帖撒罗尼迦)。工作是美好的,这是最基本的真理。假如上帝都工作,工作必然是好的。工作有其尊严:假如上帝都工作,那么工作就不卑微。工作是有意义的:假如上帝都工作,工作就不是徒劳无益。
일단 “모든 곳에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과 접촉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일은 곧 문제가 생긴다. 과도하게 걱정하거나 아니면 조금도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혹은 일터에서 일밖에 모르는 일벌레로 변한다(바벨처럼). 혹은 게으르고 흥미를 잃은 사람으로 변한다(데살로니가처럼). 일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진리이다. 하나님도 일하신다면 일은 반드시 선한 것이다. 일은 존엄함이 있다. 하나님도 일하신다면 일은 비천한 것이 아니다. 일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도 일하신다면 일은 헛되고 무익한 것이 아니다.
(……)
基督徒口袋里钱多还是少,实在不那么重要。我们的文化如何看重或报答我们的工作,也没多少区别……倘若上帝不在其中。因为我们的工作既不能创造生命,也不能创造公义。毫不留情、作个不停的工作狂(“作到纤纤十指劳烦蚀骨”),乃是现今社会重视和夸奖的工作习惯,然而,诗人却视此为信心不足和骄傲自大的表现,彷佛我们信不过上帝能成就他的旨意,彷佛只要靠自己努力,就能将宇宙重新排列。
그리스도인의 주머니에 돈이 많은지 적은지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문화가 어떻게 우리의 일을 알아주거나 보답하는지도 차이가 별로 없다. (…)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않으면, 우리의 일은 생명을 창조할 수도 없고 정의를 창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안면몰수하고 쉬지 않는 일벌레가 되는 것(열손가락으로 부지런히 수고하며 뼈가 삭기까지 이른다)이 오늘날 사회에서 중시하고 칭찬하는 일 습관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것을 믿음이 부족하고 교만한 것으로 표현하며 우리가 하나님이 그의 뜻을 이루실 것을 믿지 못하거나 자기 노력만 의지하면 우주를 다시 배열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第一批唱着这首诗的天路客,通常得费尽力气才能抵达耶路撒冷。有些人需要长途跋涉,克服千辛万苦。他们岂不是很自然会彼此寒暄恭贺旅程顺利,或是骄傲自负地夸口自己的成就,或是交换彼此的心得?他们难道不会相互较量:谁走得最远,谁走得最快,或是谁带领最多朋友同行,谁来最多次?然后,就在群众七嘴八舌的时候,有人会适时带头唱出:“若不是上帝建造……看守……”这首诗提醒他们:天路客不是天路历程的中心;主才是中心。不论沿途曾经遭遇多少困苦,不论他们有多少可歌可泣的英勇行径──击退抢匪、棒打猛狮、打倒豺狼──这些都不是他们应该歌颂的对象。这就是诗篇127篇坚持的观点:我们的努力不过是次要的部分,上帝的作为才是中心和重点。
이 시를 노래하던 처음 순례자들은 온 힘을 쏟아서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먼 길을 고생스럽게 가야 했고 온갖 고비를 넘겼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여행이 잘 되길 축하해 주는 말을 하고 혹은 교만한 자부심으로 자기 성취를 자랑하거나 혹은 서로의 소감을 나누지 않았을까? 그들은 서로 비교하지 않았을까? 누가 가장 먼데서 왔는지, 누가 가장 빨리 왔는지, 혹은 누가 가장 많은 친구들을 데려 왔는지, 누가 여러 번 왔는지, 그리고 군중에서 제각기 떠들고 있을 때, 누군가 때맞춰 첫머리를 불렀을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지 아니 하시면 (…) 지키지 (…)” 이 시가 그들을 일깨운다. 순례자는 여정의 중심이 아니다. 주님이 중심이다. 길에서 예전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만났든지, 얼마나 많은 노래를 하고 울만한 영웅적인 행동이 있든지- 강도를 격퇴하고, 사자를 몽둥이로 때려잡고, 늑대를 때려눕히는- 이런 것들은 그들이 노래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것이 시편 127편이 견지하는 관점이다. 우리의 노력은 부수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중심이며 중요한 것이다. ▩
♧ 출처 | 《天路客的行囊 (한 길 가는 순례자)》, 尤金•毕德生 (유진 피터슨)
♣ 번역·정리 | 밝은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