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trauma)란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정신적 외상’ 혹은 ‘충격적인 경험’이라고 한다. 누구나 살아오는 과정 속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트라우마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의 강도와 횟수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그 트라우마가 평소엔 잘 나타나지 않다가 과거에 경험했던 환경이나 상황에 맞닥뜨리면 잠재되어 있던 충격이 되 살아난다.
나에게도 몇 가지 트라우마가 있다. 오랫동안 선교사로서 살아오면서 아직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트라우마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그러니까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이듬해 1993년 1월, 처음으로 중국에 발을 디디면서 생긴 트라우마다. 비록 그때는 단기선교로 잠시 다녀오는 것이었지만 이후 1999년에는 온 가족과 함께 장기 선교사로 중국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음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는 트라우마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국 입국 시 맞닥뜨리게 되는 입국수속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다. 벌써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처음 중국 땅에 발을 딛고 입국수속을 했던 그 장면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고 하지만 중국 톈진(天津)의 1월의 추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추웠다. 여기에다 잔뜩 긴장을 했으니 체감온도는 휠씬 더 춥게 느껴졌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톈진까지 1박 2일이나 걸려 도착했다. 밤 늦은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선상에서 하루를 더 묵어야 했다. 날이 밝아 오면서 눈에 띈 세관의 첫 장면은 푸르스름한 군복을 입고 입에서는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입김을 날리며 구령에 맞춰 제식훈련을 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중국선교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며 그들을 가슴에 품고 섬기기 위해 준비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 오랜 시간 배를 타고 오면서 배 멀미로 몸속의 물이라곤 다 토해내는 고생을 하며 왔는데 눈앞에 펼쳐진 중국의 모습을 보니 자신이 없어졌다. 승객들의 짐을 세관 바깥마당에 팽개치듯 펼쳐 놓으면 찾아가야 하는데 일부 가방들은 열리고 터져서 가방 안의 물건들이 여기저기에 너부러져 있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너무도 기이한 장면을 보게 되어 나도 모르게 휴대한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만 나는 공안에게 발각되어 불려가 필름을 빼앗겼고 훈계를 들어야 했다.
아!
지금 돌이켜 봐도 강제 귀국 조치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이후 세관 입국수속을 하면서 맞닥뜨린 세관 직원이 어찌 그리 부담스러운지. 공안복을 입고 아무런 표정 없이 무슨 목적으로 왔느냐? 어디를 가느냐? 등의 질문들이 까칠하게 들렸다. 가까스로 수속을 마치고 빠져 나왔지만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가지고 간 물건들을 찾아 무사히 세관을 통과해야 했다. 왜냐면 우리의 가방엔 우리 여행의 목적을 말해주듯 중국어 성경은 물론 여러 신앙서적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입국수속 트라우마는 공항에 갈 때면 심지어 중국 공항이 아닌 다른 나라 공항에서도 기쁘지 않고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보니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건가. ▩
♤ 출처 | 동북의 창(窗)
♠ 정리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