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물건을 살 때 저울을 속이는 것이 다반사였다. 금방 드러날 일인데도 속이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전자저울을 사용하는 상점은 아주 드물었다. 옛날 한국에서 사용했던 저울대에 추를 달아서 사용하는 그런 저울이었다. 과일, 고기, 계란, 야채, 모든 것을 저울에 달아서 파는데 그런 옛날 저울 보는 법을 잘 모르는 나는 번번이 속았다. 그런데 저울 보는 법을 훤히 알고 있는 현지인들도 물건을 사다가 종종 싸움이 일어난다. 상인들은 의례적으로 물건을 팔면서 슬쩍 저울 눈금을 속이는 것을 하나의 상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큰 시장 같은 데는 자체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고 손님들로부터 정직한 시장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하여 신고센터가 있다. 만약에 저울을 속이거나 하면 그곳에 가서 신고하면 신고센터에서 사람이 나와서 즉시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손님을 우롱하는 상인들의 못된 관행을 징계하는 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의 사기 행각은 아주 고단수였고 아주 다양하였다.
한번은 설날이 다가오기에 쇠고기를 사러 큰 시장에 나갔다. 재래시장에는 푸줏간이 일렬로 죽 늘어서 있는데 한국처럼 고기를 냉장 보관하여 파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고기를 가지고 와서 즉석에서 큰 쇠갈고리에 걸어 놓고 파는 것이다. 손님이 걸려 있는 고기의 부위를 가리키며 이 부위를 잘라 달라고 하면 푸줏간 주인은 시퍼런 칼로 고기를 슥슥 베어서 저울에 달고 비닐봉지에 넣어주는 것이다. 아마도 손님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고기를 자르는데 어떻게 속일까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속이는 방법은 정말 교묘하다. 당시 나는 큰 시장에 모처럼 나왔으니 고기를 좀 넉넉히 사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한참 자라는 아이들도 있고 또 종종 현지 사람들을 대접해야 했기 때문에 음식 재료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한국처럼 편리하게 어느 때나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또 육류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으로 팔기 때문에 미리 사다가 부위별로 손질해 두지 않으면 먹거리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꽤 많은 양의 고기를 달아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푸줏간 주인이 내 눈앞에서 고기를 달았기에 안심하고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기를 꺼내 씻으려고 하자, 내가 달라고 했던 고기부위는 위에 절반 정도만 있고 검은 비닐봉지 밑에 있는 고기들은 전부 먹지도 못할 쓰레기 같은 고기, 기름 등만 잔뜩 있는 것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시장에 가서 따지기도 겁이 났다. 푸줏간 용 시퍼런 긴 칼을 들고 서 있는 주인에게 따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중에 다른 선교사님한테 들으니, 이곳에서는 보통 그렇게 속여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손님하고 흥정이 끝나면 상인은 미리 준비해 놓은 검은색 비닐봉지에 쓰레기 같은 먹지 못할 고기를 적당히 넣어 둔다. 그랬다가 손님이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 부위를 이만큼 달라고 하면 적당히 자르고는 이미 못 먹을 고기를 잔뜩 넣어둔 봉지에 새로 자른 고기를 덧얹어 놓는 것이다. 얼마나 교활한 속임수인가? 늘 누군가에게 속임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누군가에게 늘 감시를 당한다고 생각하니 이중삼중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는 했다.
아무튼 나는 내가 정당한 값을 치르고 산 고기의 1/3밖에는 못 먹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왜 고기를 속여 팔았느냐고 따지러 가지는 않았다. 내가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러 왔다는 고고한 선교적 소명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더 큰 이유는 그 푸줏간 주인을 다시 만나는 자체가 매우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선교지에서 종종 이런 식으로 속임을 당하고 나면 나의 마음 한구석으로 곧 황량한 바람이 일었다. 도무지 그들의 양심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저렇게 굳은 마음 어디에 복음을 받아들일 옥토의 마음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복음전도자의 소명을 분명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역의 어려움을 실감하곤 하였다. ▩
♠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