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에 한국에서 상영됐던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큰 호평을 받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不能说的秘密)》, 《청설(听说)》의 뒤를 이어 아시아 관객의 주목을 받은 대만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는 제48회 대만 진마장(金马奖)에서 최고 신인배우상, 제31회 홍콩 진상장(金像奖)에서 최고 양안화어(两岸华语)영화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홍콩에서는 《무간도(无间道)2》, 《색계》, 그리고 주성치의 《쿵푸 허슬(功夫)》 등이 최고 흥행작이었는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기존 영화들이 세운 기록을 갱신하는 귀염을 토해냈다. 대만과 싱가포르에서도 개봉하자마자 역대 최고 흥행영화가 되었다. 2012년 1월에 중국 대륙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7580만 위안(한화 138억 원) 상당의 수입을 올렸는데, 대륙에서 개봉된 대만 영화 중 최고 기록이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영화의 일부 장면 때문에 18세 이상 성인등급 판정을 받아 일부 장면들이 삭제되었고， 대륙에서는 대만(중화민국) 국기게양식 장면과 외설적이고 폭력성이 연상되는 장면 3분 가량이 삭제된 뒤 상영되었다.

청소년기는 사회와 가족 중심적 가치관에 대한 회의와 개인욕구가 강한 시기이다. 그 시기의 그들은 타인지향적 가치관을 추구하기에 사회 내에서 구성원들간의 관계에 있어서 차별화를 꾀한다. 가정과 사회에서 모두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내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일탈을 감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개인의 욕구는 철저히 외면당한 채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희생당하면서 대학 입시에 시달리는 한편, 권위자들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런 까닭에 청소년들은 공부에 대한 허무감,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겪는 정신적 방황,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미친 듯이 입시에 몰두한다. 영화 속 남녀 주인공 커징텅(柯景腾， 柯震东 분)과 선자이(沈佳宜， 陈妍希 분) 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현실적 고민과 갈등, 복잡한 감정을 디테일하게 연기했다.

대만의 유명 작가인 주바다오(九把刀)가 고1 때부터 좋아했던 여학생 선자이와의 첫사랑 이야기를 인터넷 소설로 발표한 뒤에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맡아 영화제작에 참여하였다. ‘처음’이란 단어는 설렘, 환희 등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첫사랑이란 의미의 ‘초련(初恋)’역시 그렇다.

첫사랑의 만남과 좌절
대만 중서부 연안 장화(彰化)현 소재의 한 고등학교. 고1 커징텅은 외모는 수려하지만 말썽꾸러기다. 평소 잘난 척하는 바람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차오궈성(曹国胜[老曹], 庄濠全 분）, 웃기려다 실수만 연발하는 랴오잉홍（廖英宏[该边], 蔡昌宪 분）, 뚱뚱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셰밍허（谢明和[阿和], 郝劭文 분）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들 모두는 공부도 잘하고 예쁜 소녀 선자이를 좋아하였다.
 

고집도 세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커징텅은 영어 수업시간에 선자이가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을 것을 눈치채고는 자기 책을 빌려주고 자기는 책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교실에서 의자를 들고 서 있는 벌을 받았다. 선자이는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해 보답하려고 커팅텅에게 예비시험 문제를 풀어오라고 숙제도 내주고,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서 그의 공부를 도와주었다. 커징텅은 공부를 잘해야 선자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선자이와 내기를 걸었다. 월말시험에서 커징텅이 내기에서 지면 머리를 박박 밀고, 반대로 선자이가 지면 머리를 뒤로 묶기로 했다. 시험 결과, 내기에 진 커징텅이 박박 머리를 밀었다. 그의 박박머리는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뜻밖에 선자이도 머리를 뒤로 묶고 나타났다. 친구들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할 때, 커징텅만이 홀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 커징텅은 밤새워 영어를 공부하며 대학입시 준비를 했다. 그러나 선자이는 대학입시를 치르는 날 몸이 좋지 않아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타이베이 교육대학에 들어가고, 커징텅은 대만 명문대학인 교통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선자이는 부끄럽고도 화가 나서 서럽게 울었지만 커징텅은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할 지 몰랐다.
 

모범생인 선자이는 대학입시의 실패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선자이처럼 대부분의 아시아 학생들은 부모님들의 높은 교육열 때문에 치열한 대학입시 전쟁에 내몰리면서 이들은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키며 희생자가 되기도 하였다. 한 예로 최근, 베트남계 여학생과 한국인여고생이 대학입학 서류를 허위로 날조한 것이 들통나서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권위에 저항하는 사랑하는 친구
아침 조회시간, 국기게양식이 거행된다. 교관은 학생들의 대열을 오가면서 검열한다. 교관은 아침 등교시간에 교문에서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을 지도하기도 한다. 대만 고등학교와 대학에는 군사훈련 교관(약칭 교관)이 있는데 이들은 학교의 안전과 학생들의 군사훈련을 책임진다. 한국에서도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대만은 2021년에 가서야 이 제도가 학교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영화에서 교관은 교실에 들어와 학급비가 사라졌으니 의심이 가는 학생의 이름 3명을 적어서 제출하라고 요구하였다. 차오궈성과 커징텅은 무슨 자격으로 친구들을 의심하냐고 이름을 적는 것을 거부하였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가방을 검사하라고 교관에게 내던졌고 선자이는 차라리 학급비를 다시 내겠다면서 친구들을 의심하지 말라며 저항했다. 저항을 주도했던 커징텅과 선자이, 그리고 가담했던 몇몇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기마자세의 벌을 서게 되었다. 교정이라는 낙원 세계에서 유무형의 권위는 청소년들이 언어와 행동에서 제한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옭아매는 통제된 권위에 본능적으로 저항하는데, 이 점은 어쩌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인습적인 것에 대한 저항일 수 있다. 이따금 그들은 부당한 권위에 도전하여 해피엔딩의 쾌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성장통을 겪기도 한다.
 

사랑에 대한 용기와 오해
선자이와 커징텅 두 사람은 대학에 입학해서 남북으로 떨어져 지내다가 커징텅이 타이베이로 올라와서 데이트할 때 철도를 따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선자이는 커징텅한테 “네가 날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네가 몰라서 그렇지 난 집에서 지저분하게 해 놓고 살아.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사소한 일로 동생한테 화를 내는 그냥 보통여자애에 불과해. 네가 좋아하는 것은 그냥 상상 속의 모습일거야”라고 말했다. 커징텅은 “난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반박하였다. 커징텅과 선자이는 각자 소원을 적은 등을 하늘로 날려 보내면서 커징텅은 선자이에게 자기의 짝사랑을 하기 때문에 자신을 싫어한다는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거절당할 까봐 선자이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그녀를 백퍼센트 자신의 여자 친구로 만들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는 자신이 완벽한 남자가 된 후에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고 하였다. 커징텅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격투기 대회를 열어 강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선자이는 격투기로 얼굴과 몸에 상처를 입은 커징텅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화를 내며 그의 행위가 유치하다고 소리 질렀다. 장대비 비가 내리던 그날 커징텅과 선자이는 서로를 오해하여 심하게 말다툼을 한 후 커징텅은 그녀를 포기해야 한다는 고통 속에 빠졌다. 커징텅은 속으로 선자이를 좋아하지만 거절당할 까봐 두려워하고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선자이가 강한 남자를 좋아해줄 거라고 믿었다. 선자이는 자신은 불완전한 존재라서 사랑받을 자격도 없고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좌절하였다. 청춘은 이성 교제와 학업의 압박 속에서 고민하며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어 간다. 이런 인지적 왜곡은 상대가 필요한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강요한다.

역경 속에서의 화해, 우정으로 남은 사랑
절박한 순간에 사람은 절대 고독 속에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화해하게 된다. 커징텅과 선자이 이들 두 사람은 심하게 말다툼을 한 후 냉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921 대지진이 발생하였다. 1999년 9월 21일 새벽 1시 47분 난터우현(南投县)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하여 2321명이 사망하고，8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는 20세기말 대만에서 일어난 가장 큰 지진이었다. 지진 발생 지역은 커징텅의 학교와 더 가깝지만 그는 제일 먼저 선자이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지만 수신이 제대로 되지 않다가 간신히 연결이 되었다. 커징텅은 그녀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짧은 기간 만났지만 커징텅만큼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았고, 다시는 자신을 그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커징텅은 그러면 왜 자신의 여자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선자이는 남녀가 밀당을 할 때는 모호하고 신비로우면서 아름답지만 실제로 사귀게 되면 오히려 상대한테 소홀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사이 남녀는 밀당을 통해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상처를 받지 않고 우위를 차지하려고 한다. 사랑도 비즈니스나 승부의 세계처럼 전략적인 게임으로 변질하는 듯하다.
 

선자이는 자신을 좋아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커징텅은 “너를 좋아했던 나도 좋았다”고 화답하면서 영화의 영문제목인 “넌 영원히 내 눈 속의 사과야 (You Are the Apple of My Eye. 你永远是我眼中的苹果)”라는 대사를 남겼다.

두 사람은 전화로 오랜만에 해후해서 옛날 추억을 나누며 화해하고 결국 친구로 남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커징텅은 대학원에 진학해서 인터넷 소설가로 활동하였고 선자이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연상의 남자와 결혼하였다.

천재지변이라는 삶의 끝자락에서도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

첫사랑의 축복: 그래도 사랑은 아름답다
“영화로 타임머신을 만들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와 다시 만남”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영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을 그렸다. 영화는 이성간에 사랑하다가 결혼이란 일반적 결말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순수한 영혼으로 서로 참아주고 따뜻하게 돌봐주었기에 이별의 결과에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리숙하고 유치하게 보이는 그런 시절을 아름다운 축복의 시기로 보았기에 아시아의 젊은 관객들이 아프지만 아름다운 첫사랑의 울림이 있는 추억에 공감하였다.
 

삼포세대와 칠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취업, 내 집 마련, 인간관계, 희망 포기)에서 N포세대로 옮겨가는 시대에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영화 같은 순수한 사랑에 대한 기대는 어쩌면 사치일 수 있다. 《응답하라 1994》 같은 복고 드라마나 영화가 뜨는 것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청춘의 삶을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에게 중국 소설가 라오서(老舍)가 남긴 “첫사랑은 청춘의 첫 번째 꽃이니 마음대로 포기할 수 없다. (初恋是青春的第一朵花，不能随便掷弃.)”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 김영철 |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