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중국을주께로』가 ‘펩진(종이잡지)’에서 웹진으로 전환될 때, 염려가 컸습니다. 공연히 시류(時流)를 따르다가 낭패를 보는 것은 아닐까? 과연 예전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변함없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독자들을 여전히 잘 섬길 수 있을까? 계속해서 중국선교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염려는 점점 확대되어 ‘잘못하다가는 종언(終焉)을 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7호선 승객’으로서, 아날로그 시대의 영향과 향수가 많이 남아 있고, 디지털 세계에 대해서는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좇아가고 있는 ‘열등생’이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발간과 직접 관련된 분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그런 말씀을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중주』를 사랑하는 분들이 더욱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월간 웹진『중주』는 이렇게 염려 속에서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1년을 걸어왔습니다.
‘펩진’에 대한 미련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중국어문선교회가 주최하는 어느 모임에서 한 실무자가 “전 같으면 참석자들에게 『중국을주께로』를 선물로 나눠드릴 수 있을 텐데….” 혼잣말로 말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며 속으로 ‘동감이오!’ 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월간 웹진『중주』가 웹진의 장점을 확대해 나가면서 뿌리를 착실하게 내려가는 가운데 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강하게 터져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첫째, 실무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개척’의 수고를 감당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개척’이라는 말에는 진한 땀 냄새와 눈물이 어려 있는 법입니다. 교역자들 사이에는 “죽고 싶으면 개척하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제2의 창간’이라고 할 수 있는 웹진으로의 전환, 이것은 큰 개척이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격월간에서 월간으로의 전환도 이뤄졌습니다. ‘이중의 전환’을 개척해 나가느라고 수고가 정말 많았습니다. 웹진은 ‘반무형성(半無形性)의 잡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격의 잡지를 생산할 때는 애로와 스트레스가 그만큼 많은 법입니다. 전파 매체에 종사하는 이들은 활자 매체에 종사하는 이들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공식적인 보고가 나온 일이 있습니다. 활자 매체에 종사하는 이들은 수고의 결과가 손에 잡힙니다. 어느 잡지 편집자의 글에서 “막 인쇄되어 나온, 잉크냄새가 싱싱한 잡지를 대하면 한 달의 피로가 눈에 씻은 듯이 사라진다.”는 대목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루 종일 분주하게 뛰어다녔는데 그 결과는 모두 전파로 허공에 날아가 버리고 남은 것은 휴지통에 던진 구겨진 파지(破紙) 몇 장인 것을 보면서 허탈감을 느낀다.”는 전파 매체 종사자의 수기를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웹진 종사자는 그 반(半) 쯤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스트레스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고 웹진 전환 1년의 탐을 잘 쌓아올린 것을 치하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 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웹진으로 전환한 이후에도 변함없는 애정을 가지고 격려해주시고 조언해 주시고, 주변에 소개도 해 주시고…. “웹진이 된 다음에는 소개하기가 편해져서 좋아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열어 『중주』를 불러내서 보여주면 놀라면서 고개를 끄떡인다니까요. 그 사람은 아무 틀림없이 단골독자가 될 거예요.”라고 하는 독자를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은 종이냐, 인터넷 모니터냐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사랑은 『중주』가 빠짐없이 발간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또 매번 ‘더 좋은 잡지를 내야지!’ 다짐하게 하는 ‘채찍’도 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저도 『중주』독자입니다”하며 반가워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웹진 전환을 통해 더 여러 곳에서 그런 분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됩니다. 특히 중국에서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조서 4:13)『중주』발간은 이 말씀이 그대로 이뤄지고 있는 현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십수 억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 싶어 하는 ‘소자’들을 또한 사랑하시고 큰 힘을 부어주시고 계심을 늘 깨닫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백일이 되고 또 돌을 맞이하면 잔치를 벌여 축하를 했습니다. 거기에는, 예전에는 영아사망률이 높았는데 그 고비를 잘 넘긴 것을 축하하는 뜻이 있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그러니 이제 힘차게, 튼튼하게, 그리고 바르게 성장하거라!’ 격려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합니다.
월간 웹진『중주』의 돌을 맞으면서 힘차게, 바르게, 알차게 자라면서, 하나님께는 큰 영광을, 독자들에게는 더 많은 유익을 드리기 위해 힘쓸 것을 역속하면서 감사, 감사, 감사를 드립니다.
♣ 유관지 | 본지 발행인, 성화감리교회(분당) 원로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