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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한국에서 섬유제조공장을 운영하던 중 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 땅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곳에서 이미 오랫동안 사업을 하던 한 분이 내게 건넨 이야기가 떠오른다. “중국은 정말 묘한 나라입니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듭니다. 이사장님도 아마 중국에서 평생 헤어나기 힘들 겁니다. (…)” 그분의 예언(?)은 적중했다. 1991년 8월 중국 칭다오에 현지공장을 설립하고 맺은 중국과의 인연은 그 뒤 8년간 중국에서 사업을 하며, 2003년부터는 사역자로서 칭다오에서 생활하고 사역하며 아직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칭다오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1991년은 아직 한중수교 전으로 중국은 막 잠에서 깨어난 사자와 같았다. 그 당시 칭다오 상주 한국인은 불과 십여 명, 도시는 수많은 자전거와 우마차의 물결 속에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 회색의, 그야말로 표정 없는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 오늘의 칭다오는 어떠한가. 상주 한국인만 수만 명이고 동북에서 칭다오 등 연안 개방 지역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며 내려온 조선족교포도 이십여 만 명이나 된다. 거리는 신형 승용차로 길이 막히며 수많은 고층 빌딩들이 그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이렇게 급성장한 한인 사회와 함께 설립된 수많은 현지한인교회들을 살펴보고, 그리고 칭다오를 사역지로 택한 많은 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은혜로운 사역과 또 이면에 돌출된 크고 작은 다양한 문제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베이징, 상하이 등 1선 도시를 제외하고 한국인선교사와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가장 잘 맞는 산동성의 대표적인 관문도시인 칭다오에서 진행된 선교 사역을 돌아보고 변화된 중국의 관문도시에 적합한 선교 전략을 새롭게 수립함으로써 칭다오를 중심으로 한 도시선교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중국선교의 지경을 확대하고자 한다.
먼저 칭다오란 도시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출석하는 현지한인교회와 이 교회들을 통한 지역의 중국인, 조선족대상의 선교현황을 알아보고자 하겠다. 그리고 우리 한인들처럼 동북에서 관문도시 칭다오로 이주한 조선족들의 현지교회 상황을 살펴보겠다. 이들 조선족교회와 중국선교를 함께 펼쳐 나가는 형제와 동역자로서의 바람직한 사역방향과 선교 전략을 찾기를 기대한다. 또한 교통의 편리함이라는 접근성과 사역기반들이 잘 갖추어진 이곳에서 사역하는 수많은 한국인선교사들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바람직한 전략을 세우기 원한다. 아울러 교통편과 경비의 저렴함으로 여름마다 겪는 단기선교팀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고 모범적인 선교팀의 자세를 몇 가지 제안할 것이다. 그 후에 급변하는 칭다오 지역의 경제 환경에 따른 선교적 차원의 대비책과 마지막으로 이를 전체로 아우르는 칭다오 지역 도시선교의 성경적 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본 원고에 나타난 익숙한 지명은 현행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으로 표기했으며, 기타 지명은 한자음으로 표기했다. 혹시 필자 개인의 주관적 생각과 좁은 안목으로 판단한 칭다오 지역의 현황이 사실과 부합되지 않을 경우가 있다면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칭다오(青岛)라는 도시
산동성의 성도는 지난(济南)이지만 우리에게 쉽게 떠오르는 도시는 아무래도 산동성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한국과 각종 교류가 활발한 칭다오일 것이다. 현재 칭다오시는 인구 약 8백만 명이며 행정구역은 시남구(市南区), 시북구(市北区), 이창구(李沧区), 청양구(城阳区), 노산구(崂山区), 황도구(黄岛区), 등 6개 구와 지모시(即墨市), 교주시(胶州市), 내서시(莱西市), 평도시(平度市) 등 4개의 행정직할시가 있다. 한인들은 시남구와 청양구에, 현지공장들은 각 직할시 등에 몰려있으며 동북에서 온 조선족교포들은 현지에서 이촌이라고 부르는 이창구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한국은 수교 전인 1989년경 T전자와 K식품 등 선구적인 몇몇 기업이 개인적인 연고로 칭다오에 진출하여 사업상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중국 기업인들과 경제계에 알려지게 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기업은 본격적으로 현지법인과 공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동시에 수많은 한국인 주재원들이 가족과 함께 칭다오에 삶의 터전을 마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현지에 한인 밀집 지역인 칭다오코리아타운(?)이 형성되었고, 예배를 사모하는 신실한 주재원들을 통해 한인교회가 세워졌다. 지금은 6만여 명의 한국인과 약 40여 개의 한인교회가 칭다오 지역에 세워져 있다.
현재 칭다오가 국외 한국과의 관계에서 차지하는 교통거점으로서 중요성을 보면 현재 칭다오공항의 국제선기준 출발편수의 80%가 인천공항 등 한국의 각 지역이며 나머지가 일본, 대만, 동남아 몇 편, 그리고 단 한 편의 유럽행 노선이 있을 뿐이다. 인천공항의 경우, 양대 국적기가 매일 각 2편씩, 동방, 국제 등 중국 양대 항공사 각 2편 이상. 그 외 저가항공 등을 합하면 하루 10여 편 가까워 마치 서울에서 대전 등 고속버스처럼 거의 매시간 항공편이 있어 일일생활권을 넘어 아침 첫 비행기로 한국에서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다시 칭다오에 돌아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인천시 칭다오구’란 말이 실감나는 도시이다. 또한 칭다오는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와 매시간 항공편과 수십 편의 열차로 연결된다. 이렇게 칭다오는 중국 동부 연안의 대표적 허브 기능을 가진 교통중심 관문도시이다.
칭다오의 한국인과 한인다아스포라 현지교회
현재 칭다오 지역은 약 6만 명의 한국인이 다양한 목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몇 년 전 전성기에는 약 만여 개의 한국 기업과 십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거주했다. 상주 한인들은 기업체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인원과 그 가족이 50%, 자영업자(여행사, 식당, 소규모 도소매업)가 30% 정도, 유학생 등이 10%, 그리고 직업이 잘 파악되지 않거나 소위 “오도 가도 못하는” 신분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사람들이거나 여러 형편으로 한국을 떠나 중국에서 새롭게 사업상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10%를 차지한다.
칭다오 지역 최초의 한국인교회는 1992년 당시 류팅에 진출한 한 기업의 경영자와 직원들의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다수가 크리스천들이라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주일예배를 드리다 갈급함을 느껴 목회자를 청빙하고 곧 이어 예배장소를 회사 밖으로 옮겨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 이외의 한인들도 참가하게 되었다. 그 후 늘어나는 한인 상주인구에 걸맞게 지금은 40여개 교회가 개척되었고, 매년 두세 개의 교회가 설립되고 또 그 만큼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지고 있다. 대다수의 교회가 재정적으로 미자립 교회이며 목회자 개인의 후원이나 연고가 있는 한국 내 교회의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교인들의 이동이 직장의 인사이동이나 학업의 종결, 사업의 변화 등으로 3-4년 주기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매주 새가족 소개와 함께 귀국하는 가정의 송별안내가 주보에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인들의 소속감이 매우 낮으며 한평생 섬겨야 하는 ‘내 교회’라는 개념이 현저히 부족하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일부 중직들은 주말에 귀국하여 한국의 본 교회에서 주일을 보내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아쉬운 점은 규모나 교인들의 수가 적어 일부 두세 곳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현지인선교와 중국 현지교회 지원은 생각조차 못한다는 것이다. 직접 선교하기보다는 개별적으로 선교사 개인을 지원하고 기도해 주는 것으로 중국선교를 열정을 달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대형교회도 나름대로 공안의 단속과 도움을 받는 중국교회와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칭다오의 조선족교회 상황
칭다오의 조선족교회는 크게 시정부 민족종교국에 등록된 소위 삼자교회와 미등록 교회인 가정교회로 나누어지며 현재 칭다오에는 조선족삼자교회는 이촌 지역의 대형교회 한 곳을 포함 4개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칭다오 지역 미등록 가정교회의 조선족은 약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어느 정도가 미등록조선족교회를 통해 신앙생활을 하는지 파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각 교회 나름대로 지역 한인교회, 또는 한국 내의 교회들이나 이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과 협력으로 지역선교에 이바지 하고 있다. 한국 내 이단들의 침투와 중국 현지실정에 맞지 않는 프로그램의 무분별한 사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다만 바람직한 현상은 칭다오 지역 일부 조선족교회들이 신학적으로, 재정적으로 자립을 이루어 이중 언어의 은사와 소수민족이란 특징을 가지고 한국인선교사나 한족 사역자가 감당 할 수 없는 중국 내 서부 지역 무슬림소수민족선교를 일정부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한국교회와 한인선교사들이 지혜롭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칭다오 지역 선교사들의 사역(신학교 사역을 중심으로)
칭다오는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각 교단선교부, 개별교회 단독파송이거나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독립군’으로 사역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중 필자는 현재 칭다오지에서 가장 많이 이뤄지는 신학교(또는 성경학교) 사역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경제, 교통의 관문도시인 칭다오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을 살펴보겠다.
칭다오는 교육을 받을 대상인 중국인 양육대상자들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기에 신학교 사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보니 그렇다. 많은 수의 신학교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크리스천 기업들이 그들 신학생들에게 숙식제공과 교육장소를 제공하기에 중국 내 타지역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그리고 칭다오는 한국과 가까워서 한국 교수요원들의 교통비와 체류비용 등이 비교적 저렴하다. 이러한 관문도시 칭다오의 특성을 잘 활용한다면 앞으로 중국 내 어느 지역보다 전략적으로 신학교 사역을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한국의 신학교처럼 체계적인 교과과정으로 각 과목별 합당한 교수요원을 적시에 동원하기가 곤란함으로 학생들이 학문적으로 다소 혼동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정된 조선족 통역사역자들의 질적 저하와 각 신학교별 통역 유치경쟁으로 이들의 몸값(?)이 자꾸만 올라간다는 점이다. 해결책으로는 무분별한 신학교의 확장보다는 우선 신학적으로 바로 서고 영적으로 사명감에 충실한, 정말 섬길 수 있는 통역사역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면 관문도시인 칭다오에 밀려오는 단기선교팀들 문제는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대부분의 단기팀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현지 지역 중국인과 중국교회를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뭔가를 베풀고, 선진국 국민으로서 한 수 가르칠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즉 섬김의 십자가가 아니라 태극기를 휘날리며 나타나는 경우다.
필자는 그런 팀을 만나면, 특히 청년대학생 선교팀일 경우 일단 섬김의 자세를 가지기 위해 몇 가지 예화와 사실로 팀들의 열기와 교만을 식히게 한다. 즉 한국 청년들에게 1957년 소립사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양전닝, 리정다오 박사’를 비롯한 노벨물리화학상을 받은 중국인 과학자 6명을 소개한 후 2013년 1월 30일 한국이 세 번 만에 가까스로 성공한, ‘나로호’위성이 발사되었을 때 이미 그 하늘에는 지난 2008년 9월 27일 중국의 ‘선저우7’가 우주선에서 순 중국제 특수우주복 ‘비천’을 입은 ‘자이즈강’이란 중국인우주인이 우주유영을 성공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교회의 원로급 지도자들이 모두 지난 세월 문화대혁명 시절 대부분 강제노동 10-20년 형을 선고받고 십수 년 간 복역하다 중국이 등소평의 개혁개방 이후 비로소 석방되었다는 사실을 들려줌으로 겸손하게 한 다음 사역현장으로 안내하곤 한다. 효과적인 선교지의 섬김을 위해선 현장에 오기 전 한국에서 좀 더 체계적인 낮아짐의 선교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급변하는 중국 도시 환경에 적응하는 선교 전략
칭다오 지역의 경제•사회적 환경은 이 지역 한국인과 진출기업, 그리고 한인교회와 선교사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변화를 주고 있다.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과 외자 기업에 비교적 느슨하던 4대 보험 등 법 규정의 엄격한 적용 등으로 봉제, 신발, 공예품 공장 등 한국 업체들은 철수하거나 베트남 등 타지역 이동하고 있다. 이로 인해 칭다오 한인 사회가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 그와 함께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수도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이 지역 선교사들의 기댈 언덕 역할을 하던 곳들이 대폭 축소되거나 없어졌다. 이 지역 선교 전략을 원점에서 새롭게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 아래 맺는말에서 그 대비책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맺는말
음악에서 ‘페이지터너’라는 용어가 있다. 우리말로는 ‘넘돌이 또는 넘순이’라고 하는데, 피아노연주회 등에서 연주자의 옆에 앉아서 연주자가 매끄럽게 잘 연주할 수 있도록 악보를 넘겨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페이지터너는 연주자보다 키가 커서도 안 되고 용모가 튀어서도 안 된다. 의상도 연주자와 비슷한, 절대 돋보이지 않는 수수한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면 연주자가 받는 박수갈채를 뒤로하고 넘돌이(넘순이)는 혼자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져야 한다.
이제 ‘중국선교’가 저물어가고 ‘선교중국’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칭다오와 같은 중국 관문도시 미래의 사역은 현지 중국인 사역자가 연주하는 ‘선교중국’이란 곡을 차질 없이 잘 연주할 수 있도록 우리 한국선교사들은 페이지터너로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에베소서 3장 6절 말씀에서 우리는 지역 도시선교의 성경적 전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중국 관문도시 칭다오의 중국인들과 조선족들은 지금까지는 우리의 선교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이 시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귀한 동역자들이며 하나님 나라의 공동상속자이며 ‘선교중국을 함께 이루어 나갈 형제자매들’이다. 우리가 이를 위해 우리의 선교 전략을 말씀에 비추어 패러다임을 ‘페이지터너섬김’으로 전환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관문도시 이곳 칭다오의 모든 지체들을 사용하시어 중국교회와 선교중국을 크게 부흥시키실 것을 기대한다.
끝으로 칭다오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기며 수고하시는 모든 동역자들에게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찬송과 함께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 이요셉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