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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국인 사역의 시작
하나님이 한국에서 새로운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다. 대만에서 선교사로 계셨던 중국인 부목사님께서 선교단체 훈련을 받게 되면서 사임하시는 관계로 후임 사역자를 찾고 있었다. 그때 파송교회는 선교비 후원을 중단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해외선교만을 고집해 온 나에게 한국에서 중국인근로자 사역의 문이 열렸지만 망설여졌다. 선교단체에서 일했던 내가 한국교회 사역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두려웠다. 또한 나는 대만에서 중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중국 대륙에서 쓰는 간체자보다 번체자에 익숙했다. 대부분이 대륙에서 온 자매들이었고 도와주는 중국인 사역자도 있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힘이 되었던 그 중국인 사역자는 몇 주 지나지 않아 중국에 계신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갑자기 중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새로운 사역자가 오자 교회에 나오지 않던 중국인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일년 동안 쉼과 재정비의 시간을 끝낸 의료선교팀도 의료봉사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 의료선교팀이 온 주일날, 중국인 목사님께 설교를 부탁드리고 의료선교팀을 맞으러 나갔다. 그날 설교 중에 갈등관계에 있던 두 자매가 ‘서로 너에게 하는 설교’ 같다며 서로 비아냥거리더니 결국엔 머리채를 잡고 싸우더니 심지어 구두를 던지며 싸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싸움은 말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온몸으로 그들을 저지하며 서로 떼놓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중국인 목사님은 “중국들이 싸울 때 절대 말리지 마세요. 중국인들이 나서서 해결하도록 하세요.”하시며 구경만(?) 하셨다. 나는 그 말씀에 더욱 화가 났다. ‘교회에서 싸움이 났는데 그냥 놔두라니’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감정논리 아닌가? 이 일은 나에게 주일설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중국인근로자와 병원 사역
주중에 병원 사역이 갑자기 많아졌다. 서대문에 있는 적십자병원은 정몽구재단의 후원으로 외국인근로자들에게 의료비 혜택을 주었다. 소문을 들은 많은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된 한국인들도 본인부담의 맘모톰(Mammotome, 유방조직검사) 시술비용을 면제받았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이 시술을 받았다.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병원에서 중국어 통역을 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병원 사역은 쉽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허약해졌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중국인 형제자매들의 도와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나도 대만에서 수술한 경험이 있었기에, 타국에서 병으로 고통 받는 중국인들을 더 잘 도와주고 싶었다. 타국에서 몸이 아프면 마음은 더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선교단체를 통해 만났던 대만, 홍콩, 동남아화교권의 선교 헌신자들이 아닌,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 온 중국인근로자들과 영적 싸움은 쉽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이 교회 근처인 동대문을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다. 그들은 또한 텐진(天津)출신이었다. 중국 자매들은 미싱 보조로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했다. 중국에서도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살다가 한류의 중심으로 부상 중인 동대문에 정착하는 것이 놀라웠다. 그들은 한국 생활에 도움을 받고자 교회를 찾았다.
‘동거’를 금하는 주일설교를 들은 중국인들의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전임사역자의 말씀을 들었다. 동거남의 협박도 받았다고 하셨다. 불법근로자 신분에 집세를 아낀다는 명목으로 동거를 시작한다.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디까지 품어야 하는 걸까? 동거로 인해 병원에 갈 일도 잦아졌다. 이는 나의 영육을 연약하게 만들어 기침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기도의 자리를 찾게 되었다. 중국인 사역을 나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노릇. 이러다간 내가 먼저 병들어 죽을 것만 같았다. 더욱더 기도에 집중할 수밖에. 약을 먹어도 낫지 않던 기침이 멈췄다. 빛은 어두움을 물리치는 힘이 있기에 나는 계속해서 빛 가운데로 나가기로 했다.
19살에 유학을 왔다가 유학을 포기하고 근로자가 되어 눌러앉은 중국 자매가 결혼과 출산을 통해 교회에 나왔다. 그 자매를 통해 중국 션양(沈阳)에서 새로운 중국인들이 교회로 왔다. 한국 생활 정착에 필요한 도움을 받기 위해 교회에 왔겠지만 그럴지라도 귀한 영혼들임에는 틀림없다. 중년의 자매들은 친한 친구처럼 내게 위로가 되었다. 복음으로 가득한 나라, 한국. 이 큰 어장에 스스로 이 땅에 찾아온 중국인근로자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고 싶다.
바람이 분다
중국인들이 일년도 채 안돼 이사를 하게 되면 보증금 문제가 생긴다. 그들은 보증금 일이백만 원정도의 집을 얻는다. 계약 기간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하는 것을 집주인이 좋아할 리 없다. 부동산 중개인도 개입하기 싫어한다. 보증금 백만 원 월셋방을 6개월 만에 이사한다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달란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집주인의 마음이 움직였다. 부동산 소개비를 제외하고 다 돌려받았다. 보증금을 받고 나자 중국인 자매의 마음이 바뀌었는지, 자신이 새로 구입한 가스레인지는 두고 가겠다더니 집주인이 없을 때, 다른 한 자매가 가스레인지를 가져가겠다고 겁도 없이 중간밸브만을 잠가버리고 가스레인지를 가스관에서 분리했던 것이다. 도시가스는 이사하기 전에 가스전문기사가 처리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는 주일예배 참석도 하지 않고 대림동으로 몰려가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단다.
이런 일을 겪을 때면, 주일에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인지! 중국인근로자들이 주일에만 쉴 수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주일에 일 처리를 도와달라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도우려 한 것이 결국은 예배를 흐트러뜨린 건 아닌지! 부동산 중개인도 아니면서 창신동 달동네를 왜 수없이 오르내리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문제만 해결되면 교회에는 나오지 않는 중국인들을 어찌해야 하는지! 여전히 동대문과 연결되어 일은 하지만 대림동에 정착하는 중국인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복음만이 답일 텐데.
일주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대림동 중국인 거리로 몰려가는 자매들이 있었다. 자매들 가운데 처음에는 교회를 잘 나오다가 다른 중국인의 핸드폰 개통을 도와주기 위해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고 대림동으로 향한 자매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교회를 잘 다녔다고 한다. 그럼에도 헌금에는 인색하다. 중국인교회에서는 누가 헌금에 대해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헌금에 대해 왜 이리 마음이 열리지 않는지.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이사야 61:1)
동대문에서 중국인근로자 사역을 시작한 지 3년 반이 지났다. 하늘 아래 나를 만난 것이 큰 복이라며 고마워 하지만, 믿음이 자라지 않는 중국인들을 볼 때는 마음이 아프다. 매주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어떤 주일은 스스로 일찍 나오다가, 어떤 주일은 전화도 받지 않고, 일주일에 하루 쉬는 주일에 놀러 가는 모습을 보며, 주님만 더욱 의지할 뿐이다.
주님만이 유일한 정답
동역자 없이 중국인 예배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외롭기도 하고 쉽지도 않은 일이다. 아직도 중국인을 이해하는 것이 부족한 걸까? 중국인 사역은 중국인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에 다른 사역자들에게 물어봐도 속이 시원하지는 않다. 그래! 주님 만이 유일하게 내게 정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지.
중국인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병원에 가야 해서, 집 문제 등등으로 교회에 왔지만, 그들의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일상에서 체험한 중국인들이 믿음의 뿌리를 잘 내리기를 기도한다. 중국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내게 큰 축복임을 감사하며 내일도 중국 형제의 병원진료를 위해 다른 일정을 다 취소했다. 아직 혼자 병원에서 검진을 받기에 한국어뿐 아니라 병원진료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중국인 근로자들에게 큰 부담이다. 건설현장에서 몇 년을 일한 중국인근로자가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병원에 와서 간호사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던 일이 생각났다. 동대문은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황금어장이다. 중국인 사역에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심, 중보기도자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이 번호로 김그레이스 선교사님의 ‘선교사의 삶과 사역’ 이야기를 마칩니다. 사역을 나눠주신 선교사님, 감사합니다. _편집자 주
♣ 김그레이스 | 전 중국선교사, 중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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