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에 등장하는 ‘찌라시’는 이 책의 저자 송명훈이 팟캐스트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찌라시’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잡기 전에 좀 망설였다. 전단지를 의미하는 찌라시라는 단어가 SNS시대를 만나면서 증권가 정보지의 ‘∼카더라’ 통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도 그런 내용이려나?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읽어야 할 책이 밀렸는데, ‘∼카더라’까지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길 잘 했다. 생각보다 내용이 넓고 깊다. 그리고 중국 관련 서적을 꾸준히 읽어본 바에 의하면 이 책에서 제공해주는 정보는 묵은 정보가 아니다. 햇정보다.

관시(關係) 문화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의 기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중국뿐이랴. 세계 어느 곳 아니 다른 별에서도 통할 이야기이다. 저자는 ‘관시의 사회학’을 이야기한다. ‘관시’란 우리말로 ‘관계’라는 뜻이다. 중국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관시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기본적인 예의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 가거나 중국 사람을 대할 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몇 가지 불문율이 있다. 그 첫 번째는 무시하는 듯한 언행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무시하는 것보다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을 낮게 보는 경향이 더 큰 것 같다. 내가 케어해주는 환자 중에 한족 여인이 있다. 중국 고위층의 딸이다. 천안문 사태 때 시위대에 합류하여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몰리자 딸은 물론 자신의 안위마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한 그녀의 아버지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모아서 그 딸을 비밀리에 한국으로 보냈다. 하늘에서 떨어져 한국에서 혼자 생활을 하는 그녀에게 이곳의 모든 상황은 낯설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한국 남성과 결혼하고, 한국에서 다시 대학을 졸업하고 모 대학의 중국어 강사로 출강하는 한족 여인인 그녀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국인들이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면전에서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젠 하도 당하다보니 이골이 나서 별로 신경도 안 쓰지만 암튼 여전히 힘들다고 토로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에 관련된 문화나 문명, 문물, 제품에 대해서 낮게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제법 많은 편이다). 중국은 우리와 대등한 전통문화의 강국이었다. 서로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겨루던 역사도 있었다. 아마 한중간의 미묘한 감정은 일제강점기와 6·25 사변까지 이어지면서 누적된 정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교육은 일본이 1등, 우리는 2등, 중국은 3등이라는 개념을 심어 놓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 본다.”
 

관시 문화 불문율 두 번째는 “감정에 대한 표현을 명확하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사나 사과에 대한 감정 표현에 있어서 약간 오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 사람에게 그런 표현을 기대하거나 그것을 통해서 자기만족을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고맙다 ‘셰셰’와 미안해 ‘두이부치’, 딱 두 단어밖에 없다.
 

중국의 핸드폰 사업이 말살되지 않은 비밀
저자가 풀어나가는 중국의 이런저런 이야기의 제목만 나열하는 것보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핸드폰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의 삼성이 애니콜을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할 때, 중국은 PCS폰도 못 만들 수준의 휴대폰 업체밖에 없었다. 그 당시 노키아, 삼성을 비롯한 모든 기업이 동시에 중국 휴대폰 시장을 노리고 들어갔지만, 그때 삼성의 애니콜은 단연 최고 인기였고 중국 시장을 완전히 독점해 버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당시 삼성 휴대폰의 중국 시장 가격은 국내와 비슷하게 50-70만원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반면 중국 국내산 휴대폰은 5-10만 원 선으로 가격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삼성과 손잡지 못한 중국 업체들, 도저히 경쟁이 안 될 작은 규모의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꼼짝없이 무너지는 것이 합리적인 이치인데, 그런 중국의 중소업체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유통 과정 중에 삼성 휴대폰 10대를 도매로 공급받으려면, 중국산 휴대폰 100대를 인수하도록 규칙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즉, 삼성 휴대폰을 직수입해 시장을 개방해주는 대신, 중간 도매업체는 삼성 휴대폰 10개를 받기 위해서 중국 휴대폰 100개를 의무적으로 받아서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국식 관시는 바로 이런 곳에서 자양분을 받는다. 관시의 경제학이다. 그런 비용으로 중국의 조악한 휴대폰 회사들은 공존과 발전을 이어 갈 기회를 얻게 됐다.
 

당시 기업들이 진출할 때 지분을 49%밖에 가지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이미 그 회사가 중국에 들어갈 때 국가의 주요 공무원들이나 고위층들이 51%를 갖고 있음으로써 회사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삼성이 차리기는 했지만, 주식의 51%가 중국인의 몫으로 배당되었는데, 그것을 일반 소시민이나 힘없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 기업의 가치를 아는 권력자가 투자와 배당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은 이미 정치적인 배경이 든든한 파트너를 얻게 되었으니, 삼성의 사업이 일사천리로 풀리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여건 속에서도 중국 정부는 자국의 중소기업이 회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배려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그렇게 육성된 자국의 휴대폰 사업은 2014년 기어이 중국산 폰으로 중국 내 시장점유율 1위를 탈환하게 된다.
 

“같은 고도성장기와 급속한 공업발전을 겪은 가운데, 중국과 한국이 비교되는 점은 우리의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공존할 사회적 시스템을 발달시키지 않은 것이고, 그것은 독점 자본의 탐욕 때문은 아니었는지 안타까운 의문을 던져본다.”
 

이 책의 저자 송명훈은 스스로 다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고 소개한다. 몇 군데 기업체를 운영하다가 2008년부터 중국 투자 자문사를 운영하였으며,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곳을 오가던 중 현재의 중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 생활하고 있다. 원래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작가가 꿈이었다. 지난 2012년에는 통일부에서 주최하는 ‘통일동화공모전’에 〈할머니의 메밀밭과 두루미〉를 응모하여 대상을 받기도 했다.  

책은 ‘관시와 의식주’, ‘중국의 경제’, ‘중국의 교육과 산업’, ‘중국의 정치와 외교’ 등 4부로 구성되었다. 특히 흥미롭게 본 내용은 ‘중국의 음식 문화와 산업구조’, ‘중국의 의류산업’, ‘세계 금융의 블랙홀, 화교 자본’, ‘중국 의료산업이 몰려온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 정치’ 등이다. 인기 팟캐스트 〈새가 날아든다〉 중국이야기 시즌2를 기대한다.    

♣ 변성래 | 중국을 알고 싶은 의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