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청쩌(鈕承澤, 1966-) 감독의 《러브(愛, Love)》는 2012년 제49회 대만 금마장(金马奖)에서 최고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뉴청쩌는 《맹갑(艋舺, Monga, 2010)》으로 주목을 받았고, 《군중낙원(军中乐园, Paradise in Service, 2014)》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는 만주족 장군의 후손으로 태어나 대만 군인가족 마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성장배경은 《러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뉴 감독과 함께 작업한 롼징톈(阮经天)과 자오유팅(赵又廷)을 포함하여 8명의 주연 배우가 타이베이와 베이징을 오가며 펼치는 다양한 계층과 다층적인 관계로 얽힌 러브 스토리이다. 사람들마다 사랑에 대한 생각과 경험은 제각각이다. 또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나 영화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뉴청쩌처럼 ‘사랑’이란 단순한 제목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흔하지가 않다.

사랑과 자존감의 회복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품는다. 샤오니(小霓, 郭采潔 분)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부잣집 딸이고 그녀의 아버지 루핑(陸平, 鈕承澤 분)은 성공한 사업가이다. 그녀는 예쁘고 재능도 많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툭하면 말로 상처를 주곤 한다. 이러한 그녀를 지지해주는 남자친구 아카이(阿凱, 彭于晏 분)가 있었다. 그는 영화 동아리활동을 하며 장례식장 촬영기사를 하며 생활을 꾸려나갔다. 주변 사람들은 성공한 영화감독이 되길 원하는 아카이를 조롱했지만 샤오니는 격려해주었다.

샤오니의 절친인 이자의 부모님은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남매를 키웠는데 그녀의 오빠 샤오콴(小寬, 阮經天 분)은 호텔에서 서빙하며 가계에 보탬을 주었고 이자도 틈나는 대로 부모님의 식당 일을 도왔다. 이자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며 단란한 가정이었다. 성품이 온화한 이자는 샤오니가 거친 말을 토해낼 때마다 그냥 받아주었다. 그러나 이자가 뜻밖에 아카이의 아이를 갖게 되자 세 사람의 우정과 사랑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아카이는 이자의 임신에 대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샤오니에게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그녀만이 함께 꿈을 이루어가고 싶은 유일한 대상이라고 강조하였다. 아카이는 샤오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학생들 앞에서 학교의 정화조에 빠지는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샤오니는 두 친구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며 이자한테 있는 대로 화를 퍼붓고 아카이랑 바다에 빠져 죽는 생각까지 하며 괴로워했다.

후에 샤오니는 아카이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고 그녀는 태어날 아기의 양엄마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아카이는 뒤늦게나마 이자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사과를 하며 양육비를 매달 지급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자는 샤오니의 진심어린 마음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여겨졌지만 사실 아버지 없이 자라야 될 아기의 불행과 이자의 평탄치 않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자는 부잣집 딸인 샤오니에 비해 자신은 주관도 뚜렷하지 않고 남다른 개성도 없어 주위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고 자책하며 암울한 현실로 인해 착잡해졌다. 이자는 자신이 샤오니와 아카이의 사랑을 방해한 제삼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아기를 지우려고 산부인과를 찾았다.

낮은 자존감에 사로잡힌 이자는 자신의 사랑을 적극 쟁취하기보다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샤오니와 아카이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자는 오빠가 자신의 아기를 평생 책임지고 양육하겠다는 설득에 감동을 받아 낙태를 하지 않고 배 속의 아기를 위해 다시 용기를 내어 살아보기로 결심하였다. 이자는 임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한테 버림당했지만 자신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이자는 대학에서 자전거 서클 선수로 활동하였는데 전방에서 앞질러 달리다가 골인 지점이 가까우면 주전에게 1등을 내주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최전방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피치를 올리며 전력 질주를 하다가 코치한테 호되게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그 순간 이자는 자신이 더 이상 타인의 보조자 역할에 저항하며 아웃사이더로 맴도는 인생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로 선언한 것이었다. 이자는 자신의 외모, 금전, 재능 때문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지만 자신이 품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의 사랑으로 상실과 버림받은 고통에서 점차 벗어났다. 

상처받은 영혼의 사랑
한번 상처받은 영혼은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마커(馬克, 趙又廷 분)는 젊고 유능한 대만의 사업가로서 베이징에 거주할 사합원(四合院)을 구매하려다 중개인 샤오예(小葉, 趙薇飾 분)를 우연히 만났다. 샤오예는 사합원의 문 열쇠를 찾지 못해서 직접 담을 넘다가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그러자 마커는 샤오예와 함께 경찰서와 병원을 다녀주었다. 마커와 샤오예 두 사람 사이에 갈등도 있었지만 그녀의 아이가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였다. 샤오예는 한 부모가정 여성가장으로 아들 하나를 데리고 힘겹게 살고 있었다. 샤오예의 남자 친구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샤오예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며 낭만적이었던 여인에서 강인한 어머니로 재탄생했다.

마커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자 자신이 출세하여 어머니를 돌보겠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늘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자랐다. 마커는 가출한 샤오예의 아들에게 자신이 바로 집나간 아버지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운동회에 아빠의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마커는 이 아이는 자신이 어려서 버림받은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사랑에 대해 냉정하고 이지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과거 사랑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위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커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샤오예와 그녀의 아들과의 관계에는 많은 유사점 있었다. 마커는 거칠고 강인한 샤오예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에 외톨박이로 지냈던 것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자신에 대해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렸던 감정의 소유자는 사랑과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내면의 감정을 숨김으로 사람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장애를 겪는다. 마커는 샤오예 모자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과거 모습을 인정하면서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독립적인 사랑
사람들은 때론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을 놓칠까봐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사람에 집착한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로우이(柔伊, 舒淇 분)는 대학시절부터 부자들과 교제하며 화려한 의상과 음식에 취해 사교계의 꽃으로 활동하며 삶의 쾌락을 추구했다. 그녀가 교제하는 성공한 중년 사업가 루핑은 진지한 교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로우이가 길에서 낯선 사람에게 불쾌한 일을 당하자 샤오콴이란 청년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로우이를 구해주었다. 샤오콴은 말더듬이로 어려서부터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자란 외톨이였지만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로우이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에게 호감을 갖고 돈과 부에 기생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꼈다. 루핑은 로우이와 샤오콴의 관계가 갈수록 깊어지는 것에 질투를 느끼고 샤오콴의 집에 찾아가서 골프채를 마구 휘둘렀다.

로우이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에게 호감을 갖고 돈과 부에 기생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꼈다. 루핑은 로우이와 샤오콴의 관계가 갈수록 깊어지는 것에 질투를 느끼고 샤오콴의 집에 찾아가서 골프채를 마구 휘둘렀다. 중년의 루핑은 마음이 초조해지자 샤오콴이 로우이에게 하고 싶었던 프러포즈를 결심한다. 루핑은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큼직한 다이아몬드 반지로 로우이에게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엔딩은 야외 결혼식장에서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 백발의 여성에게 결혼 맹세를 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로우이는 식탁 위에 놓여있던 장식품으로 반지로 만들어 그곳에서 서빙을 하는 샤오콴의 손가락에 끼워주면서 청혼하였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놓칠까 불안해한다. 로우이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렵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든데도 사교계에 드나들었다. 그러나 로우이는 샤오콴을 만나면서 돈과 사람에게 과도하게 매달리던 과거에 염증을 느끼고, 외부적 조건에 기대지 않고 타인 의존적 생활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독립하는 것이 성숙한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단순하게 남녀가 일대일로 만나는 것 자체에 그치지 않고 다중 관계망을 형성하여 복잡다단하게 결합되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남녀의 만남은 지역, 계층, 신분, 문화, 시간을 뛰어 넘어 이루어진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이자는 한부모 여성가장 샤오예의 미래 모습이고, 그녀의 아이는 미래의 마커이기도 하다. 아카이와 루핑의 후회는 사랑에 대한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사랑에 대한 그릇된 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막지도 못한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인해 야기된 유한한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갈구를 통해 치유되고 확장된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ERICA캠퍼스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