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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1  통권 155호  필자 : 김산돌  |  조회 : 3695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선교와 독서
책 선물하는 선교사

한국교회여 굶주린 선교사에게 책을
한국을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가 기억난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을 떠나오는 일도 가슴 아팠지만, 이제는 일이 없는 한가한 날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향기로운 커피 한 잔에 곁들인 따끈한 신간도서 한 권을 음미하는 일도 쉽게 하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니 아쉬움에 코끝이 찡했다.

떠날 짐을 꾸리던 때도 여태껏 사 모은 책들을 정리하는 일이 가장 골치 아픈 일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지니고 다니리라 다짐한 몇 권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교회에 남겨 두었다. 그렇게 책들을 떠나보내고 중국으로 왔다.

내게 있어 받았을 때 가장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선물은 역시나 책이다. 우리 모두는 이미 적어도 한 번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해 주신 책,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행복, 그것을 누리는 기쁨.

중국의 서북 지역인 이곳은 다른 도시에 비해 여전히 한국 식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매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중국 동부 지역의 한인교회에서 선물 박스를 보내주신다. 말 그대로 성탄 선물을 받은 아내와 나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박스를 뜯는다. 맥심커피, 고추장, 된장에 환호하다가 나는 재빨리 짜파게티와 신라면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휘저어 깊이 파묻힌 책 한 권을 찾아낸다. 매번 책 한 권을 같이 넣어 보내주시는 한인교회의 센스에 참으로 마음이 즐거워진다. 이번에는 무슨 책이 왔을까. 기대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중국에 있으면 기본적인 한국 식품은 인터넷을 통해 대충 구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신앙서적은 한국에서 우편을 통해 받는 것 외엔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한국교회여 굶주린 선교사에게 책을 좀 나눠주시길!

책 선물하는 선교사
책 받는 기쁨을 잘 알기에 중국 형제자매들에게 수시로 책을 선물한다. 내가 사역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그룹은 중국의 대학생, 비교적 젊은 직장인들이다. 그들을 만나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그나마 아는 것도 바닥이 나고 무엇보다 언어가 부족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없을 때, 마음을 담아 말 대신 책을 선물한다. 문서 출판에 제약이 많은 중국은 한국에 비하면 신앙도서의 양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감사하게도 인터넷을 통해 대만과 중국 일부 지역에서 번역, 출판된 양질의 도서를 구매할 수 있다.

‘이 형제에게는 이 책을 소개해주면 좋겠다’, ‘이 자매에게는 이 책이 딱이지’ 싶은 마음이 들면 번역본이 있나 인터넷을 뒤져본다. 아직 중국에 없는 책이면 그렇게 마음이 아쉽다. 어쩌다 번역이 되어 있는 책을 발견하면 마치 보물을 찾은 듯 기뻐하며 얼른 주문을 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인터넷에서 번역본을 찾아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책을 선물하는 것은 중요한 사역이 되었다.

갓 교회에 나온 초신자에게는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我的心 基督的家), 인터넷에서 번역된 글을 찾을 수 있다》(로버트 멍어)을 소개해 주며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라 격려한다. C.S 루이스(路易斯)의 《순전한 기독교(纯粹的基督教)》를 통해 합리적인 기독교 신앙을, 《스크루테이프의 편지(魔鬼家书)》는 영의 세상의 일들이 매일매일 내 삶의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설명하기에 좋다. 필립 얀시(杨腓力)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恩典多奇异)》는 예수님의 풍성한 십자가 은혜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세례를 받고 제자 훈련에 들어선 후로는 성경의 큰 맥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 크레이그 바르톨로뮤(克雷格•G.巴肖罗缪와 마이클 고힌(迈克•W.戈欣)의 《성경은 드라마다(圣经戏剧》를, 기도의 도전을 주고자 E.M. 바운즈(邦兹著)의 《기도의 능력(祈祷出来的能力)》을 선물하고, 토마스 아 켐피스(托马斯.厄.肯培著)의 《그리스도를 본받아(效法基督)》를 추천하며 영성 생활에 박차를 가하길 도전한다.

리더들에게는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当代基督门徒)》을 비롯한 존 스토트(约翰.斯托得) 목사님의 저서들을 교과서 삼아 읽히고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当代基督十架)》나 제임스 패커(巴刻)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认识神)》은 꼭 도전해 보기를 격려한다. 그 외에도 일과 결혼, 삶의 현장에서의 신앙을 키우기 위해 폴 스티븐스(史蒂文斯)의 《일의 신학(工作真重要)》, 최근 주목받는 작가 팀 켈러(提摩. 凯勒)의 《결혼을 말하다(婚姻的意义)》도 추천할 만하다.

얼마 전에는 교회의 전임사역자를 세우는 훈련 중에, 찰스 스펄전(司布真)의 《목회자 후보생에게(注意! 牧者们)》를 함께 읽었다. 한 챕터 한 챕터를 읽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스펄전 목사님께 얼마나 감사했던지. 사역자로 임명 후 NIV 스터디 성경(新译本圣经研读版)과 알리스터 맥그라스(麥葛福)의 《신학이란 무엇인가(基督教神学手册)》, 고든 디. 피의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圣经导读 解经原则 第三版)》, 마지막으로 진리를 깊이 알아 쉽게 전하라는 뜻에서 백금산 목사님 편집의 《만화 기독교강요(漫画 基督教要义轻松读)》-아쉽게도 간체자 번역본은 아직 없다-를 선물했다. 선물하면서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던지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좋은 책들이 번역되어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일일이 책의 목록을 나열해 놓는 것은 중국에 이런저런 책들이 번역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대학생, 지식인층을 대상으로 한 사역에 도서가 실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국 저자들의 도서가 번역되기 시작했다. 옥한흠(玉汉钦) 목사님의《평신도를 깨운다(唤醒平信徒)》, 이애실(李爱实) 사모님의 《어, 성경이 읽어지네(易读学校)》 등 한국교회에 좋은 영향을 끼친 도서들이 중국에 소개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더 많은 양서들이 빨리 번역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중국의 출판 상황은 여전히 많이 부족한 형편이다. 중국에서의 문서사역이 제약 없이, 더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그래서 더 많은 양서들이 소개되고 다양한 독서토론들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다린다.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중국선교
어쩌면 선교사로 중국에 오기까지의 나의 첫걸음 역시 다름 아닌 책 한 권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대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볼프강 짐존의 《가정교회》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가정교회를 중국의 삼자교회에 대립된, 그러니까 중국교회의 한 유형을 가리키는 용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정교회 하면 중국을 떠올렸고 당연히 이 책도 중국교회에 대한 이야기인 줄만 알고 집어 들었던 것이다.

“나는 단순한, 그러나 역동적인 공동체, 온 세상과 이웃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그런 공동체를 꿈꾸었다. 하나님이 고안하신 공동체로서 영생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가진 교회, 서로 제자가 되게 하고 예수님의 삶이 서로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게 하는 교회, 은혜를 경험하고 주의 만찬을 함께 나누는 교회,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교회, 죄 용서의 감격과 재미가 있는 교회, 성령의 능력과 배움을 위한 자료들이 그런 교회 말이다.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책의 서문 일부에서 이런 구절을 읽자마자 이 책이 중국의 가정교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도 저자가 말하는 그런 교회를 꿈꾸는데?’ ‘그래, 그런 교회 안 될 것이 없지?’ 하는 맘에 얇지 않은 책을 단숨에 읽었다. 교회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church houses가 아닌 house churches. 즉, 건물 중심의 교회가 아닌 사람 중심의 성령공동체, 그러한 교회를 통해 누룩과 같이 번져가는 하나님 나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중국에 이런 가정교회가 우후죽순 일어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중국의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 이러한 살아있는 교회로 살아내기를, 교회인 그들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내가 함께 있어, ‘그들과 함께 열방을 향해 나아가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책 속의 글이 삶 되길

어쩌면 선교지의 선교사만큼 멘토 혹은 친구와의 만남이 그리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외로운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는 선교사에게 책으로나마 멘토를 만날 수 없다면 선교지는 황량한 사막일 수밖에 없다. 거창한 비전을 품고 막상 중국에 왔지만 꿈꿔왔던 하나님의 완벽한 교회에 반해 현실에서 맞닥뜨린 중국의 가정교회는 사람의 모임인지라 연약하고 때로 실망되었고, 사랑과 능력이 없는 내 모습을 볼 때 낙담되었다. 그럴 때마다 내 등을 토닥이며 위로를 해 준 멘토는 예수원 설립자인 고 대천덕 신부님이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까지 찾아와 강원도 산골짜기에 한국인들과 함께 공동체를 꾸려 평생을 사셨던 분이셨기에 그의 책에는 삶의 무게가 실려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예수원에 가보기도 하고 테이프를 통해 신부님의 육성 강의도 듣고 했었기 때문인지 책을 펼치면 어눌하지만 따뜻한 그분의 한국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심지어 어눌한 말투도 마치 내 중국어 같아서 큰 위로가 된다!) 대 신부님의 여러 책 중에서도 자주 꺼내 읽는 책은 《우리와 하나님》이라는 책이다. 외국 땅에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이방인들과 평생을 살며 무릎으로, 손과 발로 섬기며 이방인의 나라를 품고 사랑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공동체를 향한 대 신부님의 평생의 고민들과 연구들이 책 군데군데 담겨있어 책을 천천히 읽다 보면 내가 당면한 문제들은 실로 작고 평범한 일일 뿐이구나 깨닫고,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 좋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보물을 찾는 것처럼 즐겁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사실 독서는 ‘진짜 보물’을 찾기 위한 보물지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책을 추천할 때는 좋은 책을 징검다리 삼아 성경을 펼치고 진리를 깨닫고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초기 한국교회 부흥에 큰 역할을 담당한 분들은, 조선 방방곡곡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책(성경)을 권하던 수많은 ‘권서인’들이라고 한다. 중국은 더 이상 성경을 구할 수 없는 나라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성경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책을 펼쳐 읽기까지는 또 다른 ‘권서인’들이 필요하다.

요즘 나는 한국에서와 다름없이 종종 카페에 가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는다. 3-4년 전만 해도 이곳의 환경은 이렇지 못했다. 대학가에도 카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거리거리마다 카페들이 즐비하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내겐 참 감사한 일이다. 다만 커피의 확산만큼 진리의 확산이 빠르지 못함이 안타깝다. 중국의 청년들이 카페에서 마시고 수다 떠는 것만 즐기게 되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한 마음이 많다.

그리스도인에게 읽는 행위 없이 신앙을 쌓기란 어려운 일이다. 독서는 때로는 단순한 읽기를 넘어선 기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카페에서 기도를 한다. 책을 읽고 줄을 긋고 책 속의 글이 삶 되길 기도한다. 그리고 중국의 청년들이 이 카페에서 책을 펴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를 탐구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김산돌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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