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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1  통권 155호  필자 : 송광택  |  조회 : 3169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선교와 독서
책 읽는 사람이 미래를 연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기독교 역사에서 책은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안내자, 박해를 당하는 성도들의 위로자, 그리고 교회개혁과 부흥의 도구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책의 종교이고, 기독교 역사는 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파스칼의 《팡세》,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같은 책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발견하고, 영적 자유를 얻었으며, 주님께 헌신했던가! 교회사를 살펴보면, 독서를 통해 자신의 정신적, 영적 문제를 숙고했던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국의 복음전도자 존 웨슬리는 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경건생활에 힘쓰긴 했지만, 진정한 회심(回心)을 경험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미국 조지아주 선교여행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후 모라비안 형제단의 집회에 참석했다. 그때 그는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그는 그날의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날 저녁, 알더스게이트가(街)에서 기도모임이 있었다. 사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주석 서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밤 9시 15분 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신다는 부분을 낭독자가 낭독하는 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또한 그리스도가 내 죄를 사하시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1738년 5월 24일자 일기 중에서)

평생 책을 가까이했던 웨슬리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는 매년 8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순회전도여행을 했고, 평생 4만 번 정도의 설교를 했으며, 4백여 권의 책을 썼다. 이처럼 방대한 사역을 하면서도 그는 결코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늘날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독서는 성장과 성숙으로 가는 길이다. 지도자는 지식과 지혜, 현실에 대한 통찰력,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도자가 책을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하는 이유다.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와 역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알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경건서적과 선교사의 전기뿐만 아니라 역사, 문학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 시대의 정신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선택은 바닷가에 쌓인 모래 가운데서 진주를 캐내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어려서 읽은 책 한 권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 한다’고 했다. 그만큼 많은 책 중에서 읽을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성경을 우리 영혼의 양식으로 여기고 꾸준히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책을 꾸준히 읽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분명한 우선순위에 기초해서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고전을 읽자
우리는 동시대의 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위대한 고전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고전을 ‘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모든 사람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나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했다. 정리하면, 고전은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그 분야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읽히는 제일급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문학작품일 수도 있고, 사상이나 철학과 관련된 서적일 수도 있고,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의 저술일 수도 있다.

고전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오랫동안 행해진 대화이기 때문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근본적 물음에 대해 의미 있는 통찰을 줄 수 있다.

세계적인 스테디셀러인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 S.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운 책은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 있다. 그러나 아마추어는 그것을 판단할만한 안목을 갖추지 못했다. 유일한 안전장치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한 기독교적 기준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시대의 모든 논쟁들을 올바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고전 이외에서는 얻을 수가 없다. 독서를 위한 좋은 지침이 있다면, 새 책을 읽은 후 고전을 읽을 때까지 다른 새 책을 읽지 말라는 것이다.”

위어스비는 고전 읽기를 강조하면서 ‘많은 지도자들이 《천로역정》을 전혀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지도자들은 종종 옛 우물을 다시 파고 잊혀 진 선배들의 글을 상고함으로써 오늘날 그들이 감당하는 설교 사역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자
문학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 인간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할 수 있다. 문학의 독특성은 경험을 재창조하는 데 있다. 문학은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한 해석까지 제공한다. 문학은 기계를 조립하기 위해 필요한 설명서라기보다는 기계 그 자체의 그림이다. 한 편의 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삶과 경험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창문이요 렌즈다. 《세상으로 난 창문》에서 리런드 라이컨이 말한 대로, 문학작품은 삶의 한 선택적 측면으로 우리의 생각을 집중시켜서 그것에 대한 이해를 분명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종종 문학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경험이나 관점을 형상화시켜 준다. 문학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을 통해 시공을 벗어나 여행하면서 보고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더 성숙한 모습이 되어 간다. C. S. 루이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확장하기 위해 애쓴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싶은 것이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과 선별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한편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상상력으로 상상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고 싶어 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창문이 필요하다. 내가 아는 한, 이것은 문학이 가진 독특한 가치이자 이점이다. 문학은 다른 사람의 체험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시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시각을 통해서도 봐야 한다.”

문학은 여러 측면에서 지도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지도자는 문학을 통해 상상력과 미적 감수성을 훈련시킬 수 있고, 세련된 표현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형태로 복음을 제시할 수 있다. 한편,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주고, 삶의 다양한 모습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역사서를 읽자
역사는 과거의 사실에 관한 학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카는 역사를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로 정의한다. 사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의식함으로써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세계나 문화와 관련을 맺으면서 자신 또는 이웃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다. 노틀담대학의 마르스덴 역사학 교수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과업은 현세에 살면서 그리스도 안에 구현된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한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의무며, 이해는 사랑의 필수적인 요소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재의 60%는 과거요, 40%는 미래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도 역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역사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과거를 이해할 수 있고, 현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며,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 역사는 무의미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역사는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역사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역사를 이해하고 제대로 해석하는 성경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역사의식을 가진 지도자로 깨어 있는 파수꾼이 되기 위해 지도자는 역사서를 읽어야 한다.

전기를 읽자
지도자가 영성을 유지하고 신앙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 신앙위인의 전기를 읽는 것은 성경을 읽는 것 다음으로 유익하다. 전기를 읽으면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고, 그들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을 읽으면 신앙위인들이 문제를 해결했던 방법을 참고해서 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 《영적 지도자 만들기》의 저자 로버트 클린턴 교수의 말에 따르면, 많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제임스 패커 역시 ‘청교도 거인들의 교훈과 모범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말한 것을 보면, 신앙위인들의 전기를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자극’을 위해 읽고, 고전과 대작을 읽었다. 그중 리처드 백스터의 전기는 그가 청교도 연구에 열을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 의하면, 지도자로서 자랑하려는 성향을 스스로 제지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위대한 성도들의 전기를 읽는 것이다. 신앙위인들의 역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섭리에 대한 여러 모습들의 가장 분명한 흔적이다. 백금산 목사 역시 신앙위인들의 전기를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보물창고’라고 했다. 그 안에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유산이 보화처럼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기를 읽을 때에는 사람을 영웅화하거나 우상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모든 면에서 완전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왜소해 보인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전기를 읽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신앙위인들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삶의 거울로 삼는 것이다.

맺는 말
우리는 폭넓은 독서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사색의 폭을 넓혀주고, 설교의 눈높이를 성도들에게 맞추고, 그들과 접촉점을 찾게 만드는 데 유익하기 때문이다. 침례신학대학교의 도한호 총장은 ‘모든 지도자의 변하지 않는 텍스트는 성경이다. 하지만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그 교훈을 삶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문화적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책읽기의 즐거운 혁명》의 저자 장경철 교수의 말을 빌리면, 책은 사상을 유통하는 매체다. 그는 독서를 정의하기를 ‘글자 속에 담긴 사상과 사건, 원리를 끄집어내서 나의 정신과 삶에 담는 행위’라고 했다. 우리는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 안에 담긴 사상을 우리의 존재 속에 담으면서 우리의 인생을 열어 간다. 즉, 독서는 책 안에 담긴 사상과 사건을 우리의 정신으로 옮겨오는 기술이며 예술이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주제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말한다. 올바른 독서법은 저자의 의도와 책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책의 전체적인 관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는 균형 잡힌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독서를 강조하는 것은 결코 머리만 큰 사람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경적 앎이란 아는 것 자체가 아니라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성경은 진정한 앎과 믿음이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1세기에도 한국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계속 감당해야 한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선교지를 찾아간 선배 선교사들의 자서전이나 전기는 초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선교적 열정에 자극을 줄 것이다.





♠송광택 |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변성래 (2015-07-03)
참된 Leader는 좋은 Reader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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