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를 꿈꾸던 그때
대학시절, 국제단체 활동을 하면서 문화교류의 장이었던 여름캠프에서 세계 곳곳에서 온 청년들을 만났다. 대만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 무슬림 국가에서 온 청년 지도자들과의 만남은 타문화를 처음으로 체험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캠프 기간 동안에는 문화차이에서 오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숙소 화장실용 공용바가지가 자주 없어지곤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동남아에서 온 친구들은 화장실에서 큰 볼일을 본 후에 휴지를 쓰지 않고 물로 뒤처리를 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손 씻을 물이 필요했다. 타문화권 사람들을 배려할 생각을 미처 못 했던 시절. 바가지의 행방이 묘연했을 수밖에. 재외국민청년캠프에도 참석하여 다른 문화권의 교포 1.5세 청년들도 만났는데 영어로 대화를 해야 했기에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관심과 호기심이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강한 도전을 심어주었다.

세계 평화를 꿈꾸던 그때, 진정한 평화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거창한 생각을 했었다. 대학 졸업 후 인생의 진로를 고민하며 헌신할 선교단체를 찾았지만 대학시절에 선교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경험이 없었기에 선교단체와의 연결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CCC(한국대학생선교회) 새생명훈련원[NLTC, New Life Training Course]에서 대학생과 지역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전도 및 제자훈련을 받게 되었다. 전도실습과 필리핀 단기선교를 통해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에 확신을 가졌기에, 이 6개월간의 훈련이 끝나는 대로 해외선교의 길이 활짝 열리는 줄 알았다.

새로운 선교적 패러다임의 ‘평신도선교사’인 피아노교사로 해외 단기선교를 가게 되었다. 선교지에서의 영적 전쟁을 전혀 모른 채, 현지 선교사님들에 대한 실망만 가득 안고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준비 없이 떠난 해외선교에서 큰 상처만 입고 돌아온 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기로 했다. 1990년대 초반, 온누리교회는 여러 선교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는데 나도 그 교회에서 차근차근 선교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타문화권 훈련보다 힘든 공동체생활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홍콩교회의 연합과 부흥을 사모하던 중에 1994년 40명이 홍콩으로 타문화권 훈련을 떠나게 되었다. 홍콩 단체 비자발급이 지연되면서 마카오를 거쳐 홍콩으로 들어가려고 애쓰며 기다렸던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비자를 발급받았다. 교회에서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타문화 적응 훈련을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해외 단기선교를 떠나는 이들에게 후원자개발은 가장 크고 시급한 문제였다. 재정이 채워져야만 하나님께서 출발을 허락하셨다는 표시였기에. 드디어 우리는 40명이 모두 함께 출발할 수 있었다. 큰 기쁨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홍콩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1994년 만해도 한국에는 휴대전화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홍콩에서의 문화충격은 길거리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며 길을 걷는 홍콩 사람들을 보면서 신기했었다. 매일 아침 홍콩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기도모임을 하고 홍콩 전 지역을 걸어 다니며 집회 홍보를 하였다. 중국인들을 향한 가슴 뜨거운 열정으로 홍콩에 왔지만, 몇 달간의 공동체생활은 타문화권에서 사는 것보다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해주었다. 공동체생활은 그동안 묘하게 숨겨져 있던 서로의 모난 부분이 부딪치며 서로를 찔렀다. 그리고 상처가 생겼다. 심지어는 서로 말도 하지 않은 채 불편하게 지내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렇게 홍콩에서 타문화권 훈련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또 다시 또 다른 타문화권 훈련이 시작되었다. 대만과 홍콩, 싱가포르에서 온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선교 훈련을 시작했다.

선교 훈련을 받으러 왔지만 중국인들이 한국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한국인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것도 순조롭지 않았다. 고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매일 김치 등으로 식사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중국인들 입맛에 맞는 한국 음식이 많지 않았기에.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말에는 한국인들 가정에서 중국인들을 초청하여 직접 중국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서의 선교 훈련 중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언어소통이었다. 그래서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강의와 훈련을 아주 간단한 영어지만 통역을 하였다.

서서히 지쳐갈 때 열린 해외선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쉴 틈 없이 선교 훈련과 사역을 위해 달려온 10여 년.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내게 해외선교의 문이 열렸다. ‘선교사가 해외에 있지 않으면 선교사가 아니다.’라고 회자되던 때, 주변의 축하와 격려 그리고 우려 속에 한국에서 나를 후원하고 있던 중국인들을 통해 장기선교사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굳이 신학교를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선교단체 훈련과 해외 단기선교 훈련 등은 내가 중국선교를 꿈꾸도록 큰 도전을 주었다. 대만과 홍콩, 싱가포르에서 온 선교 헌신자들을 돕는 코디네이터를 하면서 한국 사역자들과의 작은 갈등도 겪었다, “한국에 훈련받으러 온 것이니 한국 문화에 적응하도록 하게 하라”는 동료 사역자들의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타문화권 훈련을 통해 중국 문화를 경험해 보았기에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던 나의 마음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다.

2000년 4월, 한국에서 대만과 홍콩으로부터 온 선교 헌신자들과의 시간을 정리하고 마카오로 출발했다. 1999년 중국으로 반환된 마카오. 그 땅에 첫발을 내딛었지만 비자 문제로 오래 동안 머물 수가 없었다. 언어 과정의 학교를 들어갈 수도 없었고 매번 비자연장을 위해 홍콩을 다녀올 때면 해관에서는 늘 맨 마지막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한국인 동역자 없이 용기를 내어 출발했지만 비자 문제로 석 달 만에 홍콩으로 선교지를 옮겼다, 같은 광동어를 쓰는 문화권이었고 배로 한 시간 거리인 마카오.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뒤로 하고 홍콩에서의 3년여의 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함께 훈련 받았던 홍콩 선교 헌신자들과 함께 홍콩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한국 리더십과 홍콩 현지 사역자들과의 갈등, 파송교회와 선교단체의 서로 다른 이해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10여 년 동안 몸 담았던 선교단체를 떠났다. 평신도선교사를 고집하며 신학교에 가기를 거부했던 내가 비자 문제로 홍콩 현지신학교를 가게 될 줄이야. 선교사 출신이신 신학교 교수님들과 제3세계에서 온 교회지도자들, 홍콩 현지학생들과의 만남은 나를 더 넓은 세계로 나가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음호에서 계속 됩니다.

김그레이스 | 전 중국선교사, 중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