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_사도 바울

고린도전서 1장 18-25절에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제자들과 사도 바울과 같은 선교사들로 인해 교회는 확장되었습니다. 당시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권력 아래 있었던 지중해 세계의 기독교는 종교적으로는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고 사상적으로는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이면서 또한 변증가였던 사도 바울은 로마 정치의 현실적인 문제보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적 사상적 영향에 주목하고 그것들과는 대비되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십자가의 도’라는 단어를 통해 바로 세워가고자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라는 강한 선민의식과 율법정신으로 무장하여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은 언제나 율법의 해석 문제를 놓고 골몰하였고 사람들의 아픔이나 처해진 환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종교적 열심은 언제나 그러한 외형적인 열심에 다다르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들을 배척하고 멸시하며 자신의 종교적 우월함을 과시하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들이 율법적으로 완고할수록 유대교는 영혼과 공동체를 살리는 생명력을 잃어갔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사유의 전통을 우리는 ‘공로주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에 이르려는 공로주의는 종교적 열정을 부추기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쉽게 종교적 행위가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정죄하기 쉽고 이로 인해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관점과 상황에서 너무 쉽게 판단해버릴 우려도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신은 언제나 지극히 인간적인 신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현실과 반대되는 고상한 형이상학적 세계를 상상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인간의 논리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그러한 세계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이었습니다. 수사학이 발달하면서 설명되지 못하는 것들은 더욱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해 언제나 세세히 묻고 따져보는 풍조가 강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사유의 전통을 우리는 ‘합리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데 머리로 이해되고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라는 이러한 사유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기는 하지만 인간 이성의 틀을 벗어나는 것에는 진정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불가지론이나 회의주의에 빠질 염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성의 강조는 인간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함과 더불어 인간 사회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시대정신으로 기능할 수 있음과 동시에 보편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때에는 이성들 간의 충돌을 피할 수 없고 사회의 안녕에 대한 목적과 윤리적 실천을 잃어버린 이성은 오히려 인간의 인간다움을 잃어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로주의와 합리주의로 표현되는 두 가지 사유 전통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 열심히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가장 고상한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종교적인 노력이나 이성적인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고 믿음을 통한 구원은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의 선물(엡 2:8)’이라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최근 불어온 인문학 열풍과 더불어 학문 간의 연계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대중의 필요와 입맛에 맞는 강의와 서적출판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홍수와 같이 쏟아지는 인문학적 정보들 속에서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성경과 신학 이외의 것을 공부하고 비교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로 그것은 바로 종교적 사유와 철학적 사유와의 비교를 통해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가는 일입니다. 종교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사람과 사상과 역사를 공부하기에 유익하지만 우리에게 ‘십자가의 도’가 없으면 그것은 언제나 인간적인 차원의 것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더 공부할수록 그 안에서 어느 종교가 더 우월한지 어느 철학이 더 가치 있는지 다 검증할 수 없는 거대한 인간사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한 시대를 풍미하는 시대정신도 발전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넘어선 보편적인 진리는 그러한 시대정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초월한 그 무엇이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바로 그 진리를 ‘자신’에게서 발견한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간적 사유를 배우면서도 그것의 한계를 직시하는 기준으로 ‘십자가의 도’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세상의 종교와 철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하나님의 자기계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종교와 철학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설명하고 변증하고 또한 그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건강한 종교적 표현과 철학적 표현이 더욱 필요합니다. 계시는 영적인 신비적 차원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고 관계적인 차원을 갖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임과 동시에 한국 사회, 아시아 사회 속에서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정과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세상의 종교사상과 철학사상들이 표현되어 있는 문화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비기독교적인 사상들을 간단히 거부해버리고 말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시대의 문화와 환경 가운데 새롭게 복음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고 또한 우리의 기독교의 복음이해와 신앙생활 또한 그러한 세상적인 관계들을 통해 새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것은 세상의 종교와 철학과 비교하여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고히 함과 동시에 다시 그러한 세상의 종교와 철학의 언어들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선교가 사상적 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상 전통들과 소통하며 발전하였다는 것은 아시아 부흥의 세기를 맞이한 오늘의 우리들에게 동양사상을 배워야 할 이유와 도전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