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언어의 절반
2002년 2월 26일 남편과 함께 큰 포부를 안고 조국을 떠나 중국 내륙의 한 도시에 도착했다. 남편은 이미 도착하기 전 선교단체를 통해 어느 정도 중국어 초급 과정을 공부했기에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했다. 그러나 난 겨우 ‘니하오’만 할 줄 아는 왕초보였다．

내가 속한 파송단체에는 현지 정착을 위해 2년 동안은 무조건 언어 학습만 해야 하는 정책이 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사범대학 한어 어학당에 등록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한 후, 학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２시부터 또 두 시간 동안 중국인 과외 선생님과 함께 숙제도 하고 쉬운 표현의 대화를 더듬더듬 이어갔다．

과외가 끝나면 교과서의 한어(漢語) 테이프를 들으며 중국어와 병음을 적어 보았다. 이 시간이 끝나면 밖으로 나가서 중국인대학생을 만나 교제하고,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는 시장에 가서 그날 배운 것들을 활용해 보았다. 중국어로 더빙된 한국 드라마 DVD나 중국 드라마 DVD를 구입해서 보고 듣고 또 보고 들었다. 모르는 문장이 나올 때면 DVD 플레이어를 일시정지 시켜 놓고 사전을 찾아 써보고 또 기록했다．　-

그 다음날 과외 선생님께 전날에 공부한 문장들을 사용해 가며 어휘와 표현들을 더욱 정확하게 교정을 받았다. 가끔씩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물과 함께 중국어로 일기를 쓴 것도 중국어 표현과 교정에 큰 유익이 되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흘러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찾아 왔다. 조금씩 중국어가 들리기 시작했으며, 간단한 일상적인 회화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어 성장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며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이 생기자 더 적극적인 대화의 장소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일상회화를 넘어서
그렇게 두 학기를 보냈을 때, 이제는 택시기사와 수다를 떠는 일이 중요한 일과 중에 하나가 되었다 한 번은 기사 아저씨가 일부러 길을 돌아가며 거짓말을 하려는 것까지 들리게 되자, 본의 아니게 다투며 점점 더 쌈닭이 되어갔다. 들리지 않았을 때는 언제쯤 중국어가 들려서 그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을까 오매불망하던 중국어였지만, 막상 들리고 내 속을 표현할 수 있게 되자 웬일인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음속에 들어와 헤집고 다녔다.

그토록 오래 기간 기도해오고, 그들을 사랑하고, 좋은 소식을 전해주고자 왔건만, 난
그들과 싸우고 있었다.
 

‘왜 길을 돌아 가냐고？’
‘왜 이렇게 비싸냐고？’
‘왜 속이냐고？’

이들의 단점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에서 배운 욕이며 부정적인 표현들을 싸움 속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싸웠는지 부끄럽다．

3학기를 마친 후, 아직 도착한지 채 2년이 안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부득불 사역을 시작해야만 했다. 먼저 와서 사역의 터를 닦아놓은 선배 내외가 한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역을 이어가야만 했기에 그곳의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오전엔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후엔 함께 공부하면서 중국인들과 교제하며, 성경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역 언어에 진보가 있었다. 중국어를 배운지 ２년이 지나서 HSK[한어수평고시, 중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중국어 능력 시험. ‘汉语水平考试 (Hanyu Shuiping Kaoshi)’의 약칭] 시험을 봤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문법과 듣기 능력이 더 향상되었다. 언어가 향상되기 원한다면 HSK는 반드시 쳐 볼만한 것 같다. 결과는 중급단계인 ７급이 나왔다.

비자를 해결하기 위해, 2년 후에도 계속 학교에 적을 두고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공부를 해야 했다. 한 사람은 집에서 개인 과외로, 한 사람은 학교에서 그렇게 계속적으로 언어를 꾸준히 공부해 왔다. 그러던 중 2007년 봄에 고급시험 ９급을 통과했다. 그러나 늘 아쉬운 부분은 발음이 표준어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유창해지면 의사소통은 할 수 있으나, 한국인의 구강구조에서 오는 발음과 고유한 언어의 어투는 중국어를 구사할 때도 여전히 부딪히는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중국어를 하는 한국인들이 흔히 듣는 말이 중국의 남방 지역에서 온 사람이냐, 어디지역 사투리냐, 또는 타이완이나 홍콩 사람이냐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그 말의 본뜻은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거나 표현이 부드럽지 않고, 어조가 부자연스럽다는 우회적 표현인 것이다. 나 역시 여전히 그러한 말을 듣고 있다. 처음에는 이 말을　듣는 것이 몹시 기분이 상했었다. 어떻게 하면 중국 북방 사람처럼 말할 수 있을까 노력도　많이 해 봤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더 진보하도록 수고하는 것 밖에 없다고 여기며 노력하고 있다. 　

외국어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2004년 가을학기부터 내가 사역하는 지역 외국어대학교에 한국어과가 개설되었다. 감사하게도 원어민　한국어 교사로 청빙되어 회화과정을 지도할 수 있었다. 다른 한국어 전공자도 이력서를 넣었지만 당시의 책임교수는 나를 선택했다. 그 이유가 재밌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외모가 예뻐서란다. 지금 생각해도 그저 코웃음이 나온다. 교수님의 눈에 콩깍지가 씌었었나.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둘째, 의사소통이 가능해서였다. 아무리 한국어 전공자라 할지라도 전체를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힘들다는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비자 문제도 학생비자에서 취업비자로 있을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했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경험은 사역에 또 하나의 커다란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중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어려운 발음과 문법적인 오류를 잘 파악하여 가르칠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은 내가 먼저 중국어를 공부한 데 있었다.

언어를 잘하는 왕도는 없다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외국어를 잘하는 비결은 따로 없는 것 같다. 그냥 열심히 학교수업을 들으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책상에 앉아 외우고 듣고 나가서 실제 훈련하고, 시험도 보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 머리에 문법을 짜맞추지 않고도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특별히 사역 언어는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와는 또 다르다. 중국인들에게 실제적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제자훈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었다. 유창한 중국어 실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학기가 끝나고 안식 후 돌아와서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늘 마음은 조급하고 언제쯤 이 혼란의 시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과도기를 지나고 두 기간, 세 번째 기간을 보내는 동안 언어실력은 쌓이고 또 쌓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읽고 익히고 쓰고 듣고 말하고 　연습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른다고 생각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던가, 외국인으로서 어떤 언어를 정복하는 정점은 없는 듯하다. 그냥 내가 호흡하는 있는 동안, 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동안에는 부단히 노력하고 익히는 것이 언어를 향상시키는 왕도라고 생각한다. 　

1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어떤 곳에서는 막히고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참 난감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는 중국 친구들에게 물어보곤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경험한 한 가지 중요한 팁은 자기가 즐겨하는 관심분야의 중국어책을 많이 보라는 것이다. 육아든 영화든 아니면 스포츠라도 한 분야의 전문용어와 표현들을 잘 익혀두면 또 한 번의 자신감과 함께 중국어 공부에 대한 활력을 얻을 수 있다.

15년 가까이를 이곳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이곳 사람들을 대하는 관심의 진보, 사랑의 진보를 통해서만 언어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음을 느낀다. 지금은 언어의 진보 이전에 사랑의 진보, 관심의 진보를 더욱 깊이 이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주희 |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