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선교지에 온 첫해 겨울이었다. 우리 가족은 매해 원단(元旦)에는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것을 전통으로 지키고 있다. 선교지에서도 어김없이 그 전통은 이어져 도착한 첫해 원단에도 생수 한 통을 사다놓고 3일간의 금식을 시작했다. 이번 원단금식기도회 때에는 남편이 우리 가족을 위해 ‘내적치유 세미나’를 열었다. 3일간의 금식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큰 아이들은 물론, 초등학교 6학년이던 막내까지도 잘 따라주었다. 원단금식기도회가 끝나는 날, 금식하며 강의했던 남편은 피곤했던지 일찌감치 방으로 쉬러 들어갔다.

나와 세 아이는 거실에 앉아서 받은 은혜에 대해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선교지의 환경에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의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다. 엄마인 나는 때로는 그들의 신앙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했다. 자녀교육도 염두에 두면서 신앙경험들을 이야기하며 자녀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다.

그날, 우리의 신앙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은혜와 은사’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은사를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자신이 은혜를 받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때문에 하나님께 끝까지 쓰임을 받으려면 날마다 성령 충만하고 그분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했던 부흥사 한 분이 한 때는 크게 쓰임을 받았으나 교만으로 인해서 끝이 좋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교지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간절했기에. 그런데 다음 순간,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아들아이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엄마,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저, 지금 너무 두려워서 가슴이 떨려요.”

한다. 나도 깜짝 놀라서

“얘야, 갑자기 왜 그러니?”

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저는 지금까지 교회만 잘 나가고 헌금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의 마음이 얼마나 잘못되었지 이제야 깨달았어요. 저, 사실 이곳에 와서 수업을 들을 때 현지 선생님들이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고, 현지인 친구가 한국을 무시하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 몰라요. 지금, 나를 화나게 하는 저 친구 녀석을 때려주고 싶었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어요. 그때 그런 심정으로 그 친구를 정말로 때렸었다면 아마 그 친구는 무사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엄마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제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는 천국에 갈수가 없는 사람이네요. 저는 심판을 받겠네요. 엄마, 제 영혼을 위해서 기도 좀 해 주세요.” 눈물 콧물 흘리며 쏟아 놓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 나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아들은 온 몸을 부르르 떨면서 두려워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번 원단금식기도회를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만지시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했다. 아들아이는 그렇게 온전히 회심을 경험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들은 우리들 몰래 현지에서 싸구려 복사판 게임용CD들을 하나둘 사 모았던 모양이었다. 하나님께 죄를 자백한 회개의 표시로 자기 손으로 그것들을 가족이 보는 앞에서 가위로 다 잘라 버렸다.

그처럼 원단금식기도가 끝나고 변화를 보이던 아들은 계속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 그해 부활주일이 지나고 성령강림주일까지 오순절을 맞이하는 ‘40일 기도회’를 온 가족이 시작했다. 나는 매일 기도회에 참석하는 아이들에게 성령받기를 사모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40일 기도회가 끝나고 그 이튿날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저 사실 어제 입 안에서 자꾸 이상한 언어가 나와서 절제하느라 애 먹었어요.” 하는 것이다. 나는 “아들아, 하나님께서 네게 방언의 은사를 주셨구나. 이제 은사를 받았으면 날마다 기도생활에 더욱더 힘을 다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그리고서는 세 아이 모두에게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할 것을 권면하면서 이번 40일간 집중적으로 기도하면서 받은 은혜를 잘 유지하기 위한 기도생활이 습관화가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큰아이는 15분, 둘째는 10분, 막내는 5분씩을 날마다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두란노의 기도수첩일지를 나누어 주고 기도제목을 적어놓고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방언을 받은 아들은 한 달가량 지나면서 기도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두 달을 지나면서는 50분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영적인 교제권이 별로 없는 선교지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나 걱정하고 있던 우리 부부의 마음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그리고 주님은 “네 아이들은 내가 키운다.”는 표적으로 아이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셨다. 

그리하여 아들은 믿음으로 쑥쑥 자랐다. 선교지에서 회심을 경험하고 성령세례를 받은 아들은 공부에도 최선을 다했다. 여름방학이 되자 두 여동생들이 한국에 나갔을 때도 자기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국에 나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선교지에 혼자 남아 긴 여름방학 내내 공부의 땀을 흘렸다. 고3이 되었어도 새벽에 일어나 큐티와 기도생활을 꼬박꼬박 한 시간씩 하나님께 드렸다. 대학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고 하더니 자신의 그 믿음대로 한동대학교 산업정보디자인학부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였다. 자신의 재능과도 잘 맞는 전공을 선택하여 행복해 하더니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우리 가족에게도 큰 기쁨을 누리게 해주었다. 이 모든 것은 낯선 선교지라는 환경 속에서 자라는 MK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은혜 덕분이다.

♡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