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후배, 정 선교사에게
정 선교사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프네. 선교지에 간지가 3년이 넘었던가? 떠난 이후 서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한번 나눌 기회가 없어서 아쉽다네. 많은 것을 나누고 싶지만 오늘은 선교사의 탈진 문제에 대해 선배 선교사로서 나누고 싶네. 행여나 정 선교사가 탈진해서 건강이 악화된 것인지 마음도 쓰이네. 우리가, 주신 선교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 나가기 위해서 길목마다 마주치게 될지 모르는 탈진의 문제도 잘 해결해야 할 것이네. 이 문제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보다는 좀 더 조직적, 체계적으로 선교사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나 인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나?

선교지에서 10여 년을 보내면서 느낀 것은 우리 한국선교가 선교사 파송 세계 2위라는 타이틀 가운데 자부심을 가지는 반면 선교사를 돌보는 것에 있어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네. 각 교회나 단체마다의 특징이나 장단점이 있어서 일괄적으로 묶어 얘기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선교사의 모든 여건을 고려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네.

선교사, 탈진…
우리가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선교사가 탈진했다’라는 말을 들어 보기나 했으며, 설혹 들었더라도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내가 단기선교사로 나가 있을 때, 그곳에서 장기 사역하시던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그때서야 ‘아하, 선교사가 탈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과 더불어, 그 상황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내가 장기선교사로 있으면서야 깨달았다네. 누가 다른 이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만은, 우리의 풍토가 선교사 탈진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너그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

선교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탈진을 했다는 것은 기도의 부족이나 영성부족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사역자 자신의 돌봄을 사치로 여기도록 만드는 풍조, 한국교회의 사역자들이 지니고 있는 권위주의 및 자기부인을 요구하는 전통적인 사역자 윤리가 선교사 탈진의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현 상황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 같네. 하지만 이 문제를 더 이상 회피할 수는 없을 것 같네. 

탈진했다는 것은 우울증을 동반하는 정서적 소진 상태라고 하는데, 일반 직장인도 과중한 업무나 생활 가운데 당면할 수 있는 문제이지. 그렇지만 선교사들이 상황적으로 더 쉽게 탈진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각 나라 선교사들마다의 차이도 있을 수 있는데 우리 한국선교사들은 특히 단일 문화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에서 느끼는 차이와 충격을 흡수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사용될 것 같네. 그리고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스트레스며 기후의 변화 등의 문화적 충격은 사역 초기에 주로 나타나고 장기선교사들의 경우에는 일반인들이 겪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즉 현지 사역자들이나 현지인들과의 갈등이나 부부 혹은 자녀와의 갈등 같은 가정의 문제, 건강, 재정적 빈곤 등이 선교사들을 탈진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들인 것 같네.

한국선교사들의 탈진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 외에도, 사역의 열매가 없을 때, 사역이 본인의 은사와 재능에 맞지 않거나 선교단체나 파송교회와의 갈등, 과중한 업무로 휴가를 갖지 못해서 탈진할 때가 많다네. 이러한 일들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타문화권에서 중도탈락하게 되면 인력과 재정, 하나님나라 확장에 있어서 얼마나 심각한 손실인가? 

보통 사람, 선교사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지. 선교사 치고 성격 좋은 사람이 없다, 개성이 강하다 등등. 그렇지 않은가? 선교지에서 만나 본 많은 선교사들이 사실 그렇더군, 하하. 최근에 오카다 타카시 박사가 쓴 선교사에게 많이 나타나는 성격장애의 유형을 보고는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네. 그리고 한편으로 모든 사람의 유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들어보겠나?

자기애적 인격장애라는 것이 있는데 소위, 칭찬만 듣고 싶은 사람이지. 이런 사람은 자기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유명인과 절친한 관계인 것처럼 자주 말하며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스스로 접근한다는군. 히스테리성 인격장애는 주인공이 되고 싶은 사람들인데 남을 매료하여 관심이나 주의를 끄는 것이 내적 역동이어서 천성적인 유혹자이고, 분열성 인격장애는 친밀한 관계를 원치 않는 사람들로 남과 어울리기보다 혼자만의 고독한 환경을 좋아하는 특성이 있는데 조용하거나 담담한 생활을 즐기며 사치나 화려한 것을 싫어한다는군. 듣다보니 모두가 선교사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 같지 않은가?

의존성 성격장애도 있는데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지. 자기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별 것 아닌 일조차 파트너나 친구에게 의지하고 혼자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며,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지. 경계성 성격장애는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인데 현대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대표적인 성격장애라는군.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나 호의를 보이면 뛸 듯이 기뻐하다가도 조금이라도 냉정해지면 금방 침울해지는 사람들이지. 또 강박성 성격장애는 지나치게 의무감이 강한 사람들로 이 유형은 다른 성격장애에 비하여 가장 성격장애답지 않다네. 예의 바르고 책임감이 강한 선량한 사람들이거든. 이들은 완벽주의자로 주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는 특징이 있다네.

구체적으로 다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읽으며 웃음이 나오더군. 내가 겪은 주위 사람들을 분류해보며 나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지 가늠해 보니 말일세. 결국에는 다른 사람 눈에 믿음의 사람으로 보이는 선교사도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죄인이자 연약한 존재라는 걸세.

보통 사람 돌보기 - 선교사 케어
감사하게도 선교사 돌봄에 대한 많은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인식은 많이 확산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그런 혜택을 잘 누리지는 못한 것 같군. 탈진한 엘리야를 찾아와 위로하시고 회복시키신 하나님, 당신을 따라다니며 식사할 시간조차 없이 무리를 섬기던 제자들이 쉴 수 있도록 돌보시던 예수님을 보면 사실 선교사 케어 문제는 일찍부터 논의되어야 마땅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선교사의 발전, 가족들의 건강 등을 위해 여러 가지 자원을 제공하는 것 뿐 아니라 선교사 선발에서 은퇴까지 복음을 위해 더 전략적으로 돌보는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네. 정 선교사의 상황을 잘 알 수 없지만 지금쯤 한번 체크해보고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좋을 것 같아서 몇 자 더 적어보네.

■ 자기 케어
선교사는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늘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평소에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며 쉼을 위한 시간도 잘 조절해야 하지. 탈진에 이르기 전 힘들고 어려움이 있으면 먼저 기도하면서 자기 안에 허락하신 능력을 최대한 길러내 보고, 해결되지 않을 때는 누군가에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네. 그것이 탈진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인 것 같아.

■ 후원교회와 선교단체에서의 조직적 격려와 지속적인 돌봄
후원교회와 파송단체는 선교사를 파송한 후 지속적으로 해당 선교사가 있는 곳을 방문하고 선교사와 그의 가정을 늘 관심 있게 보살핌으로 상황이 어려워져 탈진에 이르는 경우를 예방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일정규모를 가진 교회나 단체로 선교사를 케어할 만한 여력이 있는 조직이 아니면 전문적으로 선교사를 보살핀다는 것이 쉽지는 않는 것 같네. 자네 교회나 소속 선교단체는 어떤지 모르겠군.

■ 팀 사역을 통한 선교사들의 케어
선교사들의 상황과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동료선교사인 것 같네. 팀 사역을 하고 있다면 동료선교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선교사의 연합이나 국제적인 선교사들의 모임을 통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네. 하지만 사역적인 것을 상담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나 일반인이 함부로 상담할 수 없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전문적인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과의 컨택이 필요한 사람도 있더군.

■ 선교 상담 전문가의 계발과 양성
선교 상담 전문가는 선교에 있어 많은 경험과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가진 상담전문가여야 할 것 같네. 파송교회와 단체가 이런 전문적인 선교 상담가를 배출하여 선교사를 돕기는 쉽지 않다네. 선교사가 문화에 있어서나 선교에 있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때, 상담자가 그러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선교적 지식이 있더라도 상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선교 상담 전문가는 단기간에 배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담에 대한 지식과 선교 등 여러 방면에 경험을 가지도록 준비되어야 할 것일세.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듯이, 여러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탈진에 이른 선교사 사역과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이런 전문가를 개발하고 양성하는 것이 중요한 현실임과 아울러 선교사가 탈진에 이르지 않도록 케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지. 이런 기관은 교회 연합이나 선교단체 연합으로 세우는 것이 좋을 듯하네.

■ 선교사 재교육
선교사는 사실 일생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지 않나. 그런데 현지의 사역과 상황에 묻히다 보면 탈진하지 않고 사람을 돕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기가 쉽지 않지. 이러한 선교사를 현지 교육 프로그램이나 본국에서의 프로그램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 줄 필요가 있는 것 같네. 비록 시대의 발전으로 많은 자료들을 구해서 혼자 노력할 수 있는 면도 있지만, 선교지에서 생활해보니 그것도 한계를 가지더라고. 

국내 선교사 케어 기관
내가 가정 문제로 탈진되어 가고 있을 때 주위 몇 분들에게 그저 토로하는 것 밖에 몰랐는데 나중에야 국내에 선교사를 보살피는 몇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네. 혹시 주위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면 좋겠네. 

■ 아시안 미션(Asian Mission)
아시안 미션(Asian Mission)은 선교사들의 쉼과 회복(Rest & Restoration)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세계선교와 복음화를 위한 협력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선교계의 UN과 같은 UM (United Mission)을 추구하고 있다.

■ 한국선교 상담지원센터(Korea Member Care Center)
한국세계선교의회(KWMA)산하 기관인 한국 선교 상담지원센터(KMCC)는 선교사와 선교 헌신자, 그리고 자녀들의 스트레스, 사역 탈진, 부부 또는 대인관계 갈등 등의 정신건강을 돌보고 관리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선교 기관들과 협력하여 심리검사, 상담세미나, 훈련 프로그램 등으로 예방과 해결에 중점을 둔다.

■ 한국 하트스트림(Heart stream Resources Korea)
한국 하트스트림(HSRK)은 통합적이며 공동체적인 케어 프로그램과 교육, 문제 예방 등을 통해서 선교사역을 돕는 초교파 선교 단체로서 199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비영리 종교 법인으로 설립되었고, 한국 센터는 2008년에 멤버케어의 확장에 대한 일환으로 세워졌다. 주로 자아 정체감, 성격, 정서, 대인관계, 가족 간의 갈등, 스트레스, 문화적응 등 현대인들의 삶과 마음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돕는 상담을 주로 제공한다.

한국인선교사도 잘 없고, 독자 사역을 하던 우리 부부는 국제결혼이라는 좀 더 복잡한 문제를 가지면서 주위에 도움 받을 사람이 없어 많이 힘이 들었다네. 지금 뜻하지 않게 귀국하게 되어 나름대로 안식하며 우리를 탈진하게 한 문제들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좀 더 여유를 가지면서 회복의 시간을 갖고 있네.

결론적으로 탈진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교제를 나누며, 자신의 신앙과 사역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네.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땅을 향해 떠나려고 하네. 그곳에서 행하실 그분의 역사를 기대함과 동시에 또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탈진. 하지만 그것이 나를 낮추며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므로 담대하게 나아가네. 그곳에 함께 서 있을 정 선교사를 기대하네.

이사라 | 중국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