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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4.1  통권 152호  필자 : 왕빈  |  조회 : 3324   프린트   이메일 
[선교나침반]
“‘삼자교회냐’ ‘가정교회냐’ 구분은 더 이상 의미 없다”

한국교회 관계자들을  만나면 “선교파트너를 삼자교회로 해야 하느냐, 아니면 가정교회로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동역할 대상이 삼자교회인지, 가정교회인지 마냥 헷갈린다는 의미다.

한국교회 내 삼자교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正視歷史, 開闢未來(역사를 바로 보고 미래를 연다)”라는 관점이다. 이는 실증주의 역사관에서 볼 때 삼자교회는 일부 불순한 목회자들과 중국 정부(공산당)와의 야합을 통해 탄생한 것, 즉 중국 정부의 종교 통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교묘하게 조작된(?) 정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은 그동안 가정교회와 동역해온 보수적인 한국교회와 한인선교사들의 시각과 삼자교회를 이데올로기와 통일전선전술의 작품이라고 간주해온 기존 화교교회 지도자들의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가정교회의 삼자교회에 대한 주요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삼자회가 설립되던 그날부터 중국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신앙의 자유를 완전히 잃게 됐다. 삼자회의 목적은 바로 중국교회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조국을 매우 사랑하며 국가 법률을 위반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비판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과 삼자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인들의 대열 속에 섞여 들어와 정당치 못하게 살아가는 인물들로 ‘교회 밥’을 얻어먹는 자들이다.” “삼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여기지 않으며 통일전선부(統戰部)의 통제를 받는다. 중국 헌법에는 종교 신앙의 자유가 있다지만 교회는 반드시 삼자회에 등록해 기독교 양회(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의 관리 하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한국교회 내 삼자교회를 옹호하는 입장은 1949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새로운 중국이 출범하고 국가 및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역사·문화적인 상황에 따라 기존 교회가 해체되고 삼자교회가 생겨났다는 점을 이해하면 그 존재 이유와 방식에 대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관점이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삼자교회가 세워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필연과 정치·사회적 환경을 고려하고 앞으로는 한국교회가 삼자교회와의 교류를 전방위적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는 시각과 궤를 같이 한다. 이 같은 견해를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삼자교회가 창의적인 리더십이나 선교적 통찰력, 세계교회와의 연대 등에서 미흡한 면이 있지만 중국인들이 제한 속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었다.” “삼자교회를 중국 정부의 부속기관, 관변단체로 이해하는 것은 극히 잘못됐다. 이는 중국 내 극좌파의 과오를 일반화하거나 반공정신이 전제된 한국교회의 오해에서 비롯됐다.” “한국교회와 삼자교회 간 정보, 자원 및 인적 교류의 확대를 위해 함께 지키는 절기예배, 학술정보지 공동 발행, 양측 신학교 자원 활용과 신학교류위원회 설치, 교환 교수·학생 제도 도입 등이 시급하다.”

요즘 중국과 해외에서 중국교회(가정교회 또는 삼자교회) 지도자를 만나다보면 위와 같이 첨예하게 대립된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과거보다는 서로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갖고 있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삼자교회, 가정교회 공히 현재 시급한 과제는 역사적인 애증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및 교인의 자질 향상과 목양의 전문화, 지속가능한 (신학, 평신도, 교회학교) 교육의 체계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 중국 곳곳에서 사역하던 해외선교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추방되거나 재입국이 불허되고 저장(浙江)성 등 많은 지역에서 가정교회, 심지어 삼자교회가 철폐되고 교회 리더십들이 지속적으로 고초를 겪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초강도의 핍박만큼은 아닌 거 같다는 의견이 폭넓은 것 또한 사실이다.

왜 그럴까. 과거 중국 공안은 타깃이 된 가정교회를 분쇄하거나 핵심 지도자를 솎아내기 위해 주로 모임 현장을 대대적으로 급습했다. 하지만 요즘 공안 당국은 이 같은 진압 행동이 자칫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노출돼 예상치 못한 사회적 이슈 또는 인권의 시시비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 지양하고 있다. 국가종교사무국은 기독교 양회를 통해 종교정책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중국 기독인들과 해외 기독인들과의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도록 도우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강조한다.

종교사무국 왕줘안(王作安) 국장은 지난해 기독교삼자애국운동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기독교의 중국화가 삼자교회의 목표”라며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기독교 기본신앙을 따르더라도 중국의 국가 형편 및 상황에 적응해야 하고 중국 문화에 융합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중국에 존재하는 기독교가 아니라 중국의 기독교로 변해야 한다”면서 “기독인들은 공산당 영도와 사회주의 제도를 옹호하고 개인의 작은 꿈은 국가의 큰 꿈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 국장은 베이징의 한 교회를 방문해 “해외 세력이 기독교를 이용해 중국에 침투하는 활동을 단호히 엄단할 것”이라며 “교회는 공익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하고 종교단체는 단합해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안 당국은 문제의 인물일 경우 조용히 사회와 격리시킨 뒤 수감, 심문, 구타, 경고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더 이상 사역을 진행하지 않도록 강력한 조치를 내린다. 그러면서도 최근 현장 단속 중에는 상대방이 불필요한 분노를 표출하지 않도록 공권력 투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단속에 따른 영향과 범위를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저항에 따른 파장이 커질 것으로 판단되면 집행 계획을 잠시 유보했다가 기회를 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에 옮긴다. 포퓰리즘적 강력한 단속과 관리, 감독보다는 비교적 조용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동원해 반정부 인사의 준동과 연결되지 않도록 사용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발본색원하려고 한다. 

해외에 널리 알려져 있는 교회 지도자는 일정 기간 강경 진압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명망 있는 지도자에 대해선 감시와 통제를 하면서 결정적인 타격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그다지 이름이 나있지 않는 지도자는 체포, 수감, 구타, 처벌 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일부 예배당은 건축 인허가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불법건물이 돼 봉쇄와 철거에까지 이른다. 비공식적으로 신앙서적을 인쇄, 배포한 기독인들은 불법 문서출판에 따른 이윤 추구라는 죄목 등으로 범법자가 된다. 

현재 삼자교회를 포함해 중국교회는 과거 모습에서 많이 벗어났다. 도시화가 급속히 이뤄지면서 농촌, 여성, 저학력자 중심이라는 틀에서 벗어났다. 도시 신흥가정교회가 늘어나 대학생 등 고학력자가 많아졌고 집회방식도 매우 활기가 넘친다. 해외유학파, 기업가, 교수, 문화예술 종사자도 대거 교회에 유입됐다. 다양한 단체(團契)가 만들어지는 등 교회 또한 조직화된다. 가정교회의 경우 교파 개념이 없이 보수 신학을 유지해오던 데서 오순절주의, 칼뱅주의(개혁주의), 복음주의 등 교파 및 신학노선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주일헌금, 십일조, 건축헌금 등 목적헌금을 드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담임목사뿐 아니라 분야별 전문 사역자를 초빙하거나 예배당 건축을 고려하는 등 상당한 재정능력을 갖춘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등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데도 관심을 보이는 기독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복음이 중국으로 들어왔으니 이제는 복음을 중국 밖으로 내보자”고 외치며 선교사 파송단체까지 설립해 자체 훈련을 진행하는 가정교회도 있다. 다른 가정교회와 일절 교류하지 않은 채 순혈주의를 고집해왔던 가정교회들이 기도네트워크 결성, 연합집회 준비, 사역자 교육 및 신학훈련의 공동 진행 등을 시도하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삼자교회도 많이 변했다. 성경공부, QT, 일대일, 아버지학교 등 해외교회의 각종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하려고 애쓰고 가정교회와도 공동 집회를 개최하는 등 질적 성장에 힘쓰고 있다. 각 성 양회를 이끄는 목사들은 목회자보다는 정치가에 가까울 수 있지만 각 지역교회 목사들은 정치가보다는 목회자에 가깝다는 관점도 생겨나고 있다. ‘노삼자(老三自)’, ‘신삼자(新三自)’로 나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노삼자와 신삼자는 딩광쉰(丁光訓)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중국판 신학사상건설’에 따른 신학적 갈등과 목회자(사역자)에 대한 일관된 훈련 부족, 해외교회와의 협력사역 확대 등으로 내홍을 겪었다. 노삼자는 1950년대 자아비판을 통해 주님을 배반하고 정치학습을 통해 세계관이 개조된 상태에서 공산당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신삼자는 겉으로는 당의 종교정책을 옹호하지만 진심은 다른 데 있다. 문제는 노삼자와 비해 신삼자가 정치적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기회주의적인 기질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삼자는 해외교회로부터 예배당 건축이나 각종 교육과 훈련 등에 필요한 경제적 도움을 받으면서 삼자원칙을 지키지 않고 공산당을 은근히 비판하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교회다. 더 이상 삼자교회냐 가정교회냐 이분법적 사고로 중국교회를 재단하던 태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중국교회는 일단 ‘중국인의 교회’, ‘중국인에 의한 교회’, ‘중국인을 위한 교회’가 돼야 한다. 종국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가 돼야 한다. 한국교회는 중국과 중국인, 중국교회를 바라보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중국교회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중국교회 원로지도자의 조언을 되새겨보길 바란다. “중국인과 중국교회의 정서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성과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고 생명력 있는 영성을 갖춰야 한다. 중국 기독인들이 성경공부와 신학훈련, 목양훈련, 차세대 사역, 가정 사역 등을 체계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중국적 상황에 적합한 출판, 미디어 사역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교단 교파를 이식시키지 말고 올바른 신학과 건강한 목회의 토대 위에 중국교회가 세워지도록 지원해야 한다.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를 위한 선교의 동역자가 돼야 한다.”

또 다른 지도자의 말을 옮겨본다. “그동안 중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에 사로잡힌 기독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대가를 치른다 해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교회에 대한 중보기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게 됐다. 왜냐하면 중국교회가 급속하게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단의 확장이 자칫 교회를 사교집단으로 인식시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린도후서 1장 24절 말씀이다. 현장 사역에 대한 사도 바울의 태도이다. 오직 중국교회와 중국 기독인들이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주관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의 태도가 한국교회와 한국 기독인들에게 요구된다.



왕빈 | 중국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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