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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1  통권 150호  필자 : 이해동  |  조회 : 4823   프린트   이메일 
[기획]
재한 몽골 이주민 사역의 역사와 전망

1. 재한 몽골 이주민 사역의 역사
산발적이고 개별적이던 재한 몽골인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6년 유해근 목사의 외국인교회(몽골교회)였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의 재한 몽골인 사역을 4기로 나누어 정리하고자 한다.

1.1. 태동기[(1996-2000) 대다수가 불법: 긍휼 사역
태동기인 1기는 재한 외국인노동자 인권운동을 하던 5인방의 목사(김해성, 인명진, 박천웅, 유해근, 서경석)들 중에서 유해근 목사1)에 의해 1996년 1월에 외국인(몽골인)들을 위한 사역이 시작되었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몽골인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들은 아래와 같다.

[표1] 1996-1999년 태동기 재한 몽골 이주민 사역 교회들의 개척시기(현재까지 사역 중인 교회들을 중심으로) 

본문 맨아래 사진 중에서 첫 번째 사진입니다.


초기 재한 몽골인 사역은 서울외국인노동자선교회와 충현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선교회의 주일 예배에 몽골 사람들만 100-200여 명이 모였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선교회는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제자양육 부분에서는 충현교회의 역할이 매우 컸다.

세 가지 유형으로 태동기의 재한 몽골인교회를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온누리교회, 주안장로교회, 충현교회가 중심이 된 대형교회 몽골 예배 형태가 있었다. 두 번째 유형은 외국인사역전문교회 중 몽골전문교회로 나섬교회, 공촌교회, 게르방교회, 갈릴리교회가 있었고, 세 번째는 중소형교회 중심의 몽골 예배로 장충교회, 왕성교회 등이 있었다. 그리고 초기에는 몽골인 사역을 하다가 사역을 내려놓게 된 한양교회, 평강교회 등이 있었다.
 

사역자의 유형은 노동운동이나 목회를 하던 한국인 사역자(유해근 목사)와 유학 온 몽골대학생 통역자 자야트(주안장로교회), 교회사역을 하다가 몽골사역으로 전환한 전도사들로 장주창(장충교회), 민병윤(충현교회) 등이 있었다. 또한 박연신(주안장로교회), 이해동(당시 한양교회) 등의 평신도사역자들은 열정은 있었으나 전문성의 결여, 언어의 문제가 있었다.

사역의 특징으로는 첫째, 예배는 통역에 의한 예배이거나 한국어 예배에 그냥 통역 없이 앉아만 있어야 했다. 예배도 몽골다운 예배가 아닌 한국적 예배였다. 한국교회는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둘째, 몽골인들의 신분적 특징으로 90% 이상이 불법체류자였기에 긍휼사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인권, 의료, 임금체불, 근로환경이 매우 열악하였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셋째, 몽골인들은 교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예배에 참석했다. 그들은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교회에 나왔다. 넷째, 평신도 중심의 사역이 대부분 이었다. 영적 공급보다는 긍휼사역을 통한 동원이 절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섯째, 또 다른 몽골인들은 온누리교회나 충현교회를 뛰쳐나와서 독립적으로 몽골인에 의한 교회개척을 시도하였다. 여섯 번째, 몽골 본국과의 네트워크와 몽골타운도 없었기에 한국 내에서 사회적 네트워크의 역할을 교회가 담당하였다. 이 시기에 중요한 몽골인사역 신학은 나그네 신학(게르신학)으로 몽골인들이 먼저 교회에 왔기에 교회는 이들을 도와주는 형태의 사역이 주로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태동기에 한국교회는 몽골인들에게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것과 세례를 주는 것이 중요했고, 몽골인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필요를 채우는 일, 일하는 공장과는 다른 섬김과 대접을 받는 것, 멋진 교회건물에 대한 매력과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서의 소속감이 중요했다. 몽골인들과 한국인들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접촉점은 긍휼사역이었으며 그 접촉 장소가 교회였다. 예를 들어서 유해근 목사의 서울외국인선교교회를 몽골인들은 ‘너거니 아르븐 두르’로 불렀다. ‘너거니 아르븐 두르’는 ‘녹색의 14번’에 대한 몽골어로, 2호선의 지하철 표시색이 녹색이고 강변역이 숫자로는 14번이기에 이곳에 가면 도움을 받고, 필요가 충족되는 것이 중요했지 교회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교회는 다녀도 예수는 믿지 않았다.

1.2. 성장기[(2001-2007) 불법에서 합법으로: 영적성장
성장기인 2기는 영적 운동이 대두되고, 재한 몽골인 사역의 중심이 몽골교회에서 DMN(디아스포라몽골네트워크, DIASPORA MONGOLIAN NETWORK, 이하 DMN이라 함)으로 이동하는 시기였다. DMN은 2000년에 재한 몽골인 세 교회가 연합하여 추석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고, 국내에 3천여 권의 몽골어성경을 보급하면서 네트워크가 강화되었다. 그리고 강화된 네트워크는 경기와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격월로 재한 몽골인 연합예배를 드리기 시작해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재한몽골외국인노동자를 위한 상황화된 교재를 제작하여 보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흥한국과 기술적 협력관계를 맺고 몽골어 찬양테이프를 제작하고, 각 개 교회들의 지도자양육을 위해 비전스쿨과 디사이플스쿨을 각각 15주 과정으로 진행하는 등 재한 몽골인 사역의 영적인 기초를 놓았다.

[표2] 재한 이주민 사역과 재한 몽골인 사역의 시기구분 
 

 본문 맨아래 사진 중에서 가운데 사진입니다.

자료: 이해동 ‘삼위일체적 이주민사역 신학’, 총신신학대학원 석사논문, 2009자료를 보완수정

‘성장기의 중심이 교회가 아닌, 왜 DMN(Para-church) 이어야 하는가?’ 이 시기에는 재한 몽골인교회들의 흥왕성쇠가 분명했다. 명성교회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준으로 1년 간 몽골 예배를 폐쇄시켰다. 그리고 충현교회도 2000년대 초반에 주일 출석인원이 70여 명에서 상황이 어려워지자 10여 명으로 감소하였다. 한국교회들이 선교적 관점(한 영혼의 중요성)이 아닌 한국적 비용효율의 관점(출석교인 숫자)에서 사역을 하는 즉, 예산 대비 출석인원의 기준을 재한 몽골교회에 적용하였다. 1년 예산이 5백만 원인 교회가 몽골인 출석인원이 5명이면, 몽골 사역은 정리대상이 되었다.

2001년 5월에 DMN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8개의 재한 몽골인교회의 평균 출석인원은 756명, 최대 출석인원 1,330명이였다.2) 이것은 당시 재한 몽골인 약 15,000명 중에서 약 7% 가량이 크리스천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를 출석하는 재한 몽골인들 중에서 35%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을 보면 교회를 출석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크리스천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2009년 3월의 DMN 조사에서는 교회를 출석하는 재한 몽골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한 사람들은 9% 정도였다. 신앙의 질적인 부분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이 시기를 재한 몽골인의 영적 성장기라 할 수 있다.

사역 교회를 살펴본다면, 기존의 3가지 형태의 교회들 (1) 대형교회의 다국가·다민족 중 몽골 (2) 몽골전문사역교회 (3) 중소형교회의 몽골 예배에다가 특징적인 부분들이 발생하였다. 서기원 몽골선교사(2002년 귀국 결정)가 개척한 부천몽골교회는 조금란 사모와 몽골어로 예배를 드리고, 몽골어로 상담이 가능한 교회의 출현이다. 또한, 인명진 목사의 갈릴리교회 안에서 수흐바타르 전도사가 1999년 개척한 몽골 예배를 이어 받아서 사역한 갈릴리 몽골이 2002년 3월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는 몽골인의 독립적인 성향이 반영된 부분이라 하겠다. 하지만 완전한 독립적인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부분적인 독립 형태를 취하며 갈릴리교회는 성장하였다.

사역자들의 유형을 살펴보면, 기존의 선교담당교역자, 열심 있는 평신도와 몽골인 통역자들 그리고 몽골선교사들의 재한 몽골인 사역에의 유입으로, 서기원, 권기홍, 송기태, 김태근, 안식년선교사(이대학, 문경식, 권오문, 이영춘) 등이 있었다. 그리고 몽골인 사역자의 대두로서 1기 태동기에 몽골이 아닌 한국에서 예수님을 믿었던 몽골인들이 2기 성장기의 사역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자신이 불법체류자들의 경험이 있기에 이주민교회의 이주민들의 고통을 잘 이해하면서 사역을 훌륭하게 감당할 수 있었다(몽골제자교회 바야르마, 갈릴리교회 수흐바타르 목사, 게르방교회의 갈라 목사, 새문안교회 알탕치멕 목사, 귀국한 오르나 목사 등). 또한 몽골에서 몽골 현지인 사역자의 한국 유입이다. 즉 신학공부를 위해 한국에 유학을 오거나 사역을 위해 한국으로 입국한 경우이다(광주 개신대의 가나, 부천몽골교회의 어요나 목사, TEE의 주데, 현재는 귀국한 광염교회의 소욤보 목사, 온누리교회: 몽골의 하이르교회 가나 등).
 

사역적 특징으로는 첫 번째, 재한 몽골인의 합법화이다. 즉 2003년 8월의 조치는 산업연수생에서 고용허가제로의 이행이었고, 몽골인의 불법체류율은 [표3]에 의하면 1999년 87%였으나, 2003년 8월을 지나며 2007년 말에는 44%로 많이 감소했다. 또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는 기존의 교회와 인권 단체들의 외국인을 섬기던 역할을 국가가 수행함으로 인권적 접근이 감소하였고, 이주민들에게 대하여서 긍휼 사역보다 영적 각성의 접근이 대두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두 번째, 몽골인의 신앙 성장은 교회의 독립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십일조와 몽골 사람들의 헌금이 강조되었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온 몽골 사람들이 십일조를 드린다는 의미가 몽골인의 신앙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자리매김 한다. 세 번째, 추석과 구정수련회, 격월의 연합예배, 봄철의 디사이플스쿨, 가을의 비전스쿨을 통해 이들의 신앙이 성장하였다. 네 번째, 여름 몽골 단기선교가 한국교회에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재한 몽골인교회는 몽골 국제가족심방 여름 단기선교가 사역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몽골어 찬양에 한국말로 토를 달아서 몽골어를 배우도록 구성된 ‘찬양으로 배우는 몽골어’ 단기선교안내서가 탄생하게 된다. 다섯 번째, 귀국 몽골 성도들의 신앙 정착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다. 이 시기의 재한 몽골인 사역적 신학은 선교적 신학이다. 재한 몽골인들을 몽골로 다시 돌려보내서 한국인 입장에서 현지선교사로 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1.3. 표출기(2008-2011) 합단기에서 장기(가족): 영적 에너지 표출
표출기인 3기는 성장기에서 축척된 영적 에너지를 몽골인들은 독립적 교회개척과 신학교 개교로 표출했다. 유목민인 몽골인들은 유난히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다. 2008년 1월, 바야르마 목사(태동기에 충현교회에서 믿고, 충현교회에서 한국인 성가대와 통역을 하다가 귀국해서 몽골신학교를 졸업하고, 몽골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이후 한국에서 장신신대원 졸업)가 동천교회에서 사역하다가 한국 개척교회 건물을 인수해서 처음으로 온전한 몽골교회로서 모양을 갖추고 독립했다. 당시 재한 몽골인 사역을 하는 교회 중에서 주일 평균출석인원이 50-100명, 십일조를 안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10명 이상, 몽골인 사역자인 교회는 부천몽골교회, 게르방교회, 갈릴리교회, 몽골제자교회였다.

[표3] 재한 외국인과 몽골인 체류추세
 

 본문 맨아래 사진 중에서 마지막 사진입니다.

자료 : 각 년도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 통계월보와 연보

당시 DMN 조사에서 재한 몽골인교회는 2009년 3월 현재 65개로 조사되었다.4)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회가 몽골제자교회였다. 이전에는 반독립적인 형태인 게르방, 갈릴리교회가 있었으나 몽골제자교회는 온전히 몽골인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이고, 한국교회와도 비교적 큰 잡음 없이 독립하였다. 또한 2011년 3월에는 수흐바타르 목사(과거 충현교회 출석, 아미신학교 출신, 갈릴리교회)는 하비스트신학교(을지로교회)를 개교했지만 2013년 2월, 이 학교는 문을 닫았다. 이것은 몽골인들에 의한 신학교의 독립을 시사한다.

표출기의 두 번째 특징은 6천 명이 모인 ‘한몽수교 20주년 기념 나담행사’5)(2010.7. 연세대학교)를 개최했던 것이다. 그리고 장신대 한경직기념홀에서 ’몽골선교20주년 기념행사‘(2011.11) 가졌었는데 2천여 명이 참석했다. 세 번째 특징은 한국에서 신앙을 가진 몽골 사람들과 한국교회는 몽골로 돌아간 몽골 크리스천들이 몽골에서 교회를 세우도록 했는데, 이것은 중요한 흐름이 되었다.

사역자의 특징은 몽골인의 약진이었다. 이것은 몽골선교사를 역임한 한국인선교사의 감소다. 안식년선교사나 기타 몽골에서 사역한 한국인선교사들 중에서 재한 몽골인 사역 3기에서도 유지되었던 사역자는 서기원, 손정미, 권기홍, 김태근, 반상혁 목사 정도였다. 몽골인 사역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한국인선교사는 스페어 타이어’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몽골 현지 사역자의 한국 유입과 한국에서 예수를 믿고 성장한 몽골인 사역자들의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장석교회 뭉흐바타르 목사, 안산동산교회의 투므르 전도사, 부산영락교회의 어여 목사, 울산시민교회의 에르뜨네 전도사 등).

3기 사역의 특징은 불법체류, 연수생, 학생, 국제결혼, 사업비자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과거에는 한국 체류기간을 2년에서 3년의 단기로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재한 몽골 사람들의 한국 체류 희망기간이 장기로 변경되었다. 이는 한국의 정책이 외국인 장기체류를 억제하고, 단기체류를 권장하던 것에서 장기체류 허용과 선택적 외국인의 정주화 허용으로 변경되었다. 재한 몽골인들이 한국에 사회적 관계망과 사회적 자본을 구축했기에 가능해졌다. 또한 사역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사역의 대상자 측면에서 청년 남자와 부부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대학생으로 확대되는 사역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과거에는 몽골 예배도 한 가지 예배였지만, 청년대학부Youth-DMN의 사역이 2007년 2월에 시작해서 2008년에는 본격적으로 안착했으며, 부천몽골교회와 몽골제자교회의 영유아부(탁아방) 사역 등 자신의 교회에 맡겨진 상황에 알맞은 사역을 창조적으로 이루어가기 시작했다. 재한 몽골인 사역은 성경공부 스타일(이해동 목사의 DMN & Y DMN), G12스타일(바야르마 목사의 G12)로 크게 두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아울러 영적 성숙이 중요 관심사가 되었다. 몽골 사람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편부모, 술 먹는 아버지, 배다른 형제 등으로 성장 과정 중에서 내적인 상처가 매우 컸다. 또한 한국 생활이 매우 힘들었다. 재한 몽골 사람들은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고 변화되어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했다.

몽골단기선교를 가서 몽골 사람들에게 사영리로 전도를 하면 거의 대부분 받아들인다. 이는 손님을 대하는 예의로 그냥 대충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이들 마음의 첫 단계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의 마음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종류의 마음으로 이를 종교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몽골 사람들은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고, 한국인처럼 기복사상이 있어서 십일조를 하는 것을 받아들 수 있다. 특히 몽골에는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물을 먹으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에 오면 한국의 종교를 기독교라고 한다면,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몽골로 돌아가면 몽골의 종교인 라마불교를 믿는다.

몽골인의 마음에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부분이 많다. 이는 몽골 사람들이 가정과 관련되어 상처가 많은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아버지에게 상처가 있는 몽골인은 예배시간에 찬양을 하며 울며 기도하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증오가 있기에 이 증오와 미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그의 부산물이 지속적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것이 일시적으로 찬양을 통해서 해소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예수의 십자가와 성령으로 완전하게 치료되어져 변화된 제자로서 세워지고, 이것이 사역의 핵심가치가 된 것이다.

1.4. 성숙기(2012-현재) 단순 장기체류에서 자녀교육으로: 사역의 성숙과 디아스포라를 향하여
성숙기에는 한국인과 몽골인의 연합이라는 대명제를 1년간의 준비를 통해서 재한몽골인기독교연합회MCAK(Mongolian Christian Association in Korea, 이하 MCAK라 함)의 창립총회를 2012년 5월에 장충교회에서 개최했다. 연합하는 조직의 형태가 필요하게 되어 이해동 목사의 제안으로 MCAK이 창립되고, DMN은 보다 더 원색적으로 선교적인 방향으로 그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이에 DMN은 2012년 9월 추석수련회에서 몽골인으로 해외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20여 명의 해외몽골선교사를 초청해서 선교몽골(Mission Mongolia Conferance)을 개최하고, 이어서 여기서 선교헌신자를 모집해서 YWAM과 PSP훈련(Mission Perspectives)을 15주간 진행해서 60명의 수료자를 배출하고 현재 몽골어로 Mission Perspectives책을 번역하고 있다. 이 책을 번역해서 재미 몽골인, 재유럽 몽골인, 재중 몽골인, 본토 몽골인을 위한 선교훈련 교재로 사용되고 선교훈련도 전 세계 디아스포라에게 시행하고, 몽골 사람들을 선교사로 동원하여 과거 몽골 사람들이 다녔던 비단길의 초원길을 유목민창의 복음의 길로(Nomad Window) 나아가도록 제시했다.

몽골 사람들이 복음의 유목민창(Nomad Windows)은 Old Nomad Window(과거 몽골이 세계 정복 후 역사 속에 흩어진 몽골인: 아프가니스탄의 하자르족, 중국의 내몽골족 등에게 나아갈 지역)과 New Nomad Window(현대의 돈과 공부와 성공을 목적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몽골인: 재영국 몽골인, 재독 몽골인, 재불 몽골 사람들에게 나아갈 지역)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에게 선교로 나아가고자 했다.

2. 2013년 재한 몽골 이주민 사역의 현안
현재 재한 몽골인 사역은 성숙기에 진입했지만 새로운 환경 변화에 도전을 받는 등 과도기에 직면했다.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왜 과도기인가?

첫째, DMN에서 MCAK로 사역 이동하면서 아직 MCAK가 온전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둘째, 태동기에서 성장기를 지나며 축척된 영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방향이 결정되어야 할 과도기이다. 발산될 부분이 어디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교회건축이 유행이라면 재한 몽골인교회도 건축을 할 것인가? 단지 외적인 표출기와 같은 형태보다는 다른 형태의 표출이 중요하다.

셋째, 재한 몽골인의 구성이 변화되고, 재한 몽골인의 숫자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표3]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1999년 재한 몽골인 중 유학생은 11,981명중에서 69명으로 0.6%이였고 대부분이 노동자였으나, 2012년에는 재한 몽골인 중 유학생은 26,461명 중에서 4,952명으로 69명에서 72배의 증가했으며, 구성원의 비율은 0.6%에서 18.7%로 크게 증가했다. 즉 몽골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지고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 오는 목적이 ‘노동’에서 ‘공부’로 변하고 있다. 또한 재한 몽골인의 숫자 자체가 크게 감소했다. 2

000년대 초반에는 재한 외국인의 숫자가 1위는 중국인이고, 2위 그룹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몽골로 연도별 상황에 따라 변동됐으나, 베트남은 2000년대 초반 몽골과 비슷한 재한 베트남인이 1만 명대의 인원에서 2012년 몽골은 2만6천여 명이지만, 베트남은 12만 명이 되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한국적 요인으로서 몽골인을 공장에서 선호하지 않는다. 목포의 삼호중공업이 2000년대에는 힘이 센 몽골근로자를 선호했으나 과도한 음주, 음주 후 출근시간지각과 결근, 폭력사건, 성폭력사건 등으로 베트남인으로 전원 교체되었다. 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재한 외국인 중 몽골인 범죄율이 가장 높았는데 공장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게 된 것이었다.

두 번째 요인은 몽골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몽골인들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셋째, 재한 몽골교회 자체의 과도기이다. 2013년에는 재한 몽골교회에 많은 변화가 진행 중이다. 재한 몽골인 총인원이 축소되고, 노동자에서 학생으로 구성원이 바뀌는데 이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교회는 큰 어려움을 격고 있다. 올해 사역을 내려놓은 교회가 원당교회, 사랑과꿈의교회, 남부교회이다. 그리고 인원이 줄어서 사역자가 교체된 교회는 장석교회 등이 있다.

넷째, 재한 몽골 사람들이 화이트칼라 노동자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학생으로 있던 몽골 사람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삼성과 같은 대기업, 은행, 증권사 등으로 진출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장기거주, 자녀교육도 고려하기에 이들을 위한 새로운 사역도 요구된다. 

3. 재한 몽골 이주민 사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
첫째, MCAK에서의 한국인과 몽골인의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간의 연합을 모델로 서로 존중하며 사역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전망은 긍정적이다.

둘째, 재한 몽골인 사역의 영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방향은 교회건축이나 외형적 표출보다는 전도와 변화된 제자양육과 선교로 그 방향이 결정되어져야 한다. 세 가지 단계로 여겨지는 몽골인의 마음속에서 가장 깊은 곳까지 변화된 몽골 신앙인이 많이 배출되어서, 자신의 과거 가정에서의 상처가 십자가의 보혈로 치유되고, 이러한 몽골인 제자가 많이 양육되어서 한국에서 몽골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을 전도하고, 선교사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행사를 위한 행사나 과시용 행사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행사기획이 중요하다.

셋째, 각 교회들은 숫자적으로 사람만 많은 교회가 아닌 영적으로 강한 교회, 선교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성도를 숫자로 보면 안 된다. 한국교회의 단점 중 하나인 성도를 영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숫자로 보는 것이 몽골 사역에서도 나타난다. 몽골 예배의 교역자나 책임자는 숫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영혼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파악 가능한 60여개의 재한 몽골인교회 중에서 의미 있는 53개의 교회를 보면 주일 평균 출석인원 30명 이상은 12교회, 30-10명은 20교회, 10명 미만은 21교회가 존재한다.6) 이중 40명 이상이 되는 교회 중에서 영적으로 강한 교회는 3개 교회(게르방교회, 몽골제자교회, 갈릴리교회)가 있다. 이러한 교회는 십일조 교인이 10명 이상이고 몽골지도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게 영적으로 강한 교회는 교회건물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가 없는 지역에 입양을 해야 한다.

넷째, 성도의 내적 성숙은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재한 몽골인 사역 15년의 결론은 혼자서도 말씀을 묵상할 수 있는 사람만이 교회에 남았다. 손해를 보면서도 5년이 넘도록 QT책을 발간하고 있다. 일시적인 기분이나 감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준으로 열등감, 교만, 상처받은 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진정한 제자가 되었다. 교회적으로는 성경공부를 하면서 성경의 기준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개인적으로는 지속적인 QT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한 내적 성숙이 이루어졌다는 증표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부모님이라면 그들을 전도해서 교회에 나오도록 하고, 서로의 마음에 용서가 이루어져서 부자간 모녀간 상호 평화가 이루어져서 아름다운 가정이 이루어진 것이 올바른 내적 성숙의 징표로 삼아야 한다.

다섯째, 사역자의 양성이다 재한 몽골인 사역자가 재한 몽골인 사역에서 배출되고, 더 나아가서는 몽골에서 필요한 사역자들이 재한 몽골인 사역에서 양성되기를 희망한다. 질 높은 사역자 양성을 위한 훈련과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몽골인들이 한국에서 신학 지식을 습득하고, 재한 몽골인 사역을 통해서 각박한 이민생활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목자의 마음을 연습하는 실습의 장이 되어야 한다. 몽골에서도 몽골 사역자가 충분하지 않기에 몽골에서 사역자의 유입이 용이하지 않다. 몽골의 신학교나 교계에서 한국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의 몽골 사역자가 원활하게 공급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숫자보다 질 높은 사역자가 양성되어야 한다.

여섯째, 재한 몽골인 사역에서 양성된 사역자들이 재한 몽골인 사역과 몽골 사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파송되어야 한다. 몽골인의 정체성이 유목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몽골 사람들에게 주신 장점이다. 재한 몽골인 사역에서 축척된 영적 파워는 ‘선교’로 발산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재한 몽골인 사역에 진정으로 바라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2012년 선교몽골컨퍼런스(추석수련회)에서 헌신하고 가을에 MP를 수료한 몽골인 61명을 선교사로 파송해야 한다.

DMN은 Old Nomad Windows의 역사 속에 흩어진 몽골인인 C국의 몽골 사람들을 위해서 2005년 선교사를 파송한 후 계속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New Nomad Windows의 일, 공부, 결혼 등을 위해서 흩어져서 살아가는 몽골 사람들을 위해서 2000년대 초반 덴버에 몽골교회가 세워지도록 황필남 선교사를 덴버에 소개하기도 하고, 미국에서 몽골 사역이 8개 교회로 성장해 2007년에는 콜로라도스프링스 World prayer center에서 재미 몽골 지도자모임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현재 재미 몽골교회는 17개로 성장했다.7)

그리고 DMN의 비전스쿨을 마치고 몽골로 돌아갔다가 터키선교사로 나아간 툽싱 자매에 의해서 기적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터키에 몽골인교회를 개척했다. 현재 유럽의 몽골인교회는 체코에 4개, 영국에 3개, 독일에 1개, 헝가리에 1개, 스웨덴 1개, 스위스 1개, 오스트리아 1개, 터키 1개 등 현재 파악된 유럽교회는 13개이다. ‘미션퍼스펙티브스’의 몽골어 번역을 마치면 PSP나 MP로 전 세계(미국, 영국, 한국, 몽골 등)의 지역강사를 활용하여 선교사훈련으로 좋은 선교사를 양육하여서 Old Nomad Window와 New Nomad Window에 선교사를 파송하는데 재미 몽골교회와 재유럽 몽골인교회, 몽골의 몽골교회, 재한 몽골교회가 연합해서 Nomad Window Mission Movement를 이루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일곱째, 사역의 전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몽골 예배도 한 가지 예배였지만, 이제는 청년대학부, 중고등부, 초등학생, 영유아부, 국제결혼자 등의 세분화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Youth-DMN (청년대학부), 부천몽골교회와 몽골제자교회의 영유아부(탁아방) 사역 등 교회 상황에 맞는 사역을 새로이 잘 개척해야 한다.

여덟째, 이단에 대한 경계이다. 현재 하나님 어머니 이단(청구역), 안식교, 인덕원 소재 구원파 이단모임 등 다양한 이단 속에 몽골 사람들의 모임이 형성되어져 있다.8) 이단 몽골인 리더들이 세워지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단은 영적 사기꾼인데, 몽골 사람들이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미혹당하는 영혼이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재한 몽골인 사역의 전망: 불법에서 합법으로, 다양한 장기거주로 변화, 한국 사회의 파워엘리트로
필자가 재한 몽골인을 만난 지가 이제는 15년이 되었다. 불법 단기거주에서 합법 단기거주로, 정착으로 거주 형태가 바뀌었고, 다양한 비자 형태로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단순한 거주 형태의 변화가 중심을 이루었다면, 향후 20-30년 후의 재한 몽골인 거주 형태는 한국의 파워엘리트 그룹에 외국인, 즉 몽골 사람들도 속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대졸 취업자들이 한국의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취업해서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삼성, SK텔레콤, 신한은행, 증권회사 등에 취업한 몽골 사람들은 약 50명 정도이다.

그 후에는 1.5세대들이 한국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외국인 전형이 아닌 한국인들과 경쟁해서 한국의 의대, 법대, 공대, 경영대를 졸업해서 의사와 판검사, CEO, 교수로 경쟁하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에서 몽골인 국회의원이 나오게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이 30-40년 아니면 1세대 2세대가 걸릴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재한 몽골인 사역(DMN & MCAK)은 완전히 몽골 사람들에 의해서 운영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재한 몽골인교회는 교포이민교회가 되어서 2세들과 관련된, 또한 이민교회에 해당하는 고민을 할 것이다. 우리는 임시거주가 아닌 장기체류에 관한 이민교포교회로서의 사역의 방향과 전제를 설정하고 다가올 다국가·다문화 사회의 포석을 놓아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담는 또 하나의 새로운 그릇이다. 재한 몽골인 사회라는 새로운 사회적 그릇에 성령 충만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

또한 이 불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 된 새로운 삼위일체의 불로 개인의 문제와 단점이 치유되어서 영적으로 성숙된 불이고, 이 불은 한국에서만 타는 불이 아니라 몽골 본토와 미국, 영국, 독일, 헝가리, 중국, 러시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타오르는 불이 되어서 흩어진 몽골족에게 은혜의 불로 영원히 타오르는 축복이 될 것이다.


<미주>
1) 예장통합 ‘서울노회 60년사’, 1996년1월 외국인근로자선교회로 사역시작, 몽골인 출석은 1996년 2월부터였음.
2) 장주창, ‘재한몽골인 이주 노동자 선교전략’,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 p.131.
3) 이해동, ‘재한몽골인 사역자 세미나’, 디아스포라 몽골 네트워크, 2009, p.9.
4) 몽골의 최대명절이 매년여름 7월 10일에 개최되는데, 이때를 축하하며 한몽수교2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5) 이해동, ‘찬양으로 배우는 몽골어’, DMN, 2009, p.16.
6) 이해동, 2012년 구정집회 개최를 위한 준비자료, DMN내부자료.
7) 재미몽골교회, ‘재미몽골 5회 연합수련회 안내자료‘, 2013.3.
8) 이해동, ‘재한몽골인을 위한 이단예방을 위한 교육자료’, 디엠엔, 2013.4.



이해동 | DMN 상임대표, MOST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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