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문화가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양식에 대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내면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개념보다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의 동심원에서 가장 바깥의 동심원은 행동양식을 말한다. 이런 행동약식은 얼마 정도의 시간만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보면, 비교적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따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약식은 그 안에 있는 가치에 영향을 받게 된다. 가치는 다시 그 안의 믿음에 영향을 받게 되며, 믿음은 세계관의 영향을 받게 된다.
 
                               
행동양식(Pattern of behavior)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식사를 할 때, 인도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다. 하지만 우리는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인사를 할 때, 우리는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악수를 하든지 아니면 포옹을 한다. 이처럼 행동약식은 대부분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인식하고 따라할 수 있는 일이다.

가치(Value)는 문화 속에서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예를 들어 한국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는 나이(age)이다. 옆에 있는 연장자에게 반말로 말을 걸어보라.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를 가치로 여기지만 나이를 가치로 여기지 않는 나라도 많이 있다. 나이처럼 그것이 중요한 가치인지를 알아내기는, 행동양식의 차이를 인식하고 따라서 하기 보다는 훨씬 어렵다. 필자는 인도네시아에서 호주선교사님과 함께 일을 했다. 독신인 그 선교사님은 우리 어머니와 동년배이셨는데 자기를 부를 때, 친구처럼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주문이었다. 만약 내가 우리나라에서 우리 어머니 친구에게 친하다는 표시로,

“야, 경자야!”

이렇게 부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믿음(Belief)은 문화 속에서 가치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믿음은 어떤 문화 속에서 사람들이 공유하는 절대적인 의미를 말한다. 이러한 믿음은 오랜 기간 동안 문화 속에서 받아들여지고 공유되기 때문에 가치에 비해서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이 가치에 영향을 주게 된다. 세계관(World-view)이란 어떤 문화 속에서 그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틀이다. 대부분 종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인간의 기원, 죽음, 영적인 존재들에 관한 복잡한 설명들이 이 세계관 속에 들어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네 가지 요소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관계를 다음의 실례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겠다. 한국 외과 의사 한 분이 중동 A국의 현지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현지 의사가 자기 환자에게 전화하는 것을 들었다. 그 환자는 그날 오후에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전화를 옆에서 듣게 되었다면 그 현지 외과 의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 현지인들의 문화를 심도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이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손님접대 (hospitality)이다. 만약 그가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멀리서 온 손님을 소홀히 대접했다면, 우리나라에서 마치 나이를 존중하지 않은 것처럼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A국이 접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믿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천사를 대접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유대인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 성경에서도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생각은 4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전에 몽골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몽골 사람들은 자기 가축을 데리고 게르(ger, 몽골 사람들의 이동식 천막집)를 떠날 때는 문을 잠그지 않는다고 한다. 문을 열어놓고 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집안에 음식을 장만해 두고 떠난다고 한다. 우리나라 면적의 9배나 되는 넓은 국토에 300만 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나그네들이 음식을 얻게 하도록 하는 배려에서 나온 관습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A국 사람들은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무슬림의 세계관은 유대인의 세계관과 유사하다. 따라서 이들은 천사를 하나님이 보내실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만약 한국선교사가 이 병원을 세웠고 병원의 모든 의사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현지 의사를 그가 무책임한 의사라는 이유로 처벌했다면 그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A국 사람들은 그 의사를 나무라지 않고 한국선교사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 속에 있는 매우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는 나이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감하고 싶다면 큰 길에 나가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라. 서로 누가 잘 했느니 잘 못했느니 시시비비를 가리다가 맨 나중에 하는 말은 무엇인가.

“너 나이가 몇인데 이래?”

우리 중에 나이와 교통사고가 관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나이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경우는 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장유유서(長幼有序)라고 하는 믿음의 체계를 확고히 해왔다. 이것은 한국 유교의 세계관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손창남 | OMF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