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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  통권 149호  필자 : 데이비드 도커리(David S. Docke  |  조회 : 4416   프린트   이메일 
[기획]
교파제도의 흥기와 쇠퇴 그리고 미래

이 글을 통해 교파제도의 부흥과 쇠퇴를 살펴보고 미국 복음주의 형성과 역사적 변화가 미국 남침례교 및 전 세계 복음주의 신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각 교파의 발전이 어떠한 사회학적, 역사학적 의미를 갖는지 되짚어 보고 또 21세기에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전망해 본다.

몇 가지 중요한 사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 전에 우선 내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나는 침례교 소속 복음주의이자 복음주의 침례교 교인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신분을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가끔은 당신이 선택한 글자 가운데 명사가 형용사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이 장은 주로 침례교 복음주의 성도들의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복음주의 침례교 회원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 무게를 싣고자 하는 부분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에 이르러 어떤 함의를 설명하고자 할 때 ‘복음주의 침례회 회원’의 시각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6절의 말씀을 이 글을 위한 배경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들어가는 말: 내부적인 대화
2010년 1월에 갤럽이 미국인들의 종교와 교파에 대한 중요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종교와 교파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각이 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미국에서 종교적 혹은 교파적 신분의 의미가 흐려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장에서는 자세하게 언급하기보다는 대략 윤곽만 잡아주는 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 또 출구는 어디인지 고민해 보도록 한다. 크리스천 투데이가 2009년도에 발표한 소식에 따르면 1990년도에 자신이 ‘무교파주의’라고 대답한 기독교인이 대략 20만 명이었으나 2009년에 이르러 800만 명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파제도가 쇠퇴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좋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16세기부터 지금까지 개신교를 이끌어오고 있는 교파의 구조이다. 교파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면 21세기의 기독교 신앙은 누가 이끌고 갈 것인가? 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잠깐,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어놓기 전에 기독교 교파의 역사를 잠깐 되돌아 보고 각 교파의 기원을 살펴보았으면 한다. 이를 통해 역사적 연결점을 찾고 어떻게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렀는지 알아보자.
 

1987년에 출판된 신경정신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의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는 신경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에 대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들의 특징은 심각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일종의 증후군으로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 치료를 해주는 의사도 이런 환자들이 왜 기억을 잃고 방황하는지 이유를 모른다. 그들은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자아도 잃어버렸다. 지금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희망과 정체성을 잃을 위기에 처해 방향을 잃어가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사람들이 가진 문제는 의문이 많은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기억의 고리와 같다. 잃어버린 연결 부위를 찾아 이어나가야 한다.

18세기 제1차 대각성운동 당시에 이미 비교파로 발전되는 운동이 일어난바 있다. 그 시기를 이끈 사람이 바로 제1차 대각성운동을 주도한 조지 화이트필드(George Whitefield) 목사이다. 화이트필드 목사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먼저 체험한 선배이기도 하다. 그는 1740년 필라델피아에서 설교할 때(그의 설교는 드라마틱 한 것으로 유명하다.) 큰 소리로 외쳤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여, 당신은 지금 천국에서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성공회 교인입니까?” “아닙니다.” “장로교 교인입니까?” “아닙니다.” “독립교파 교인입니까?” “침례교 교인입니까?” “감리교 교인입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럼 당신과 함께 천국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당신이 말한 그 이름들을 모릅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기독교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교파의 이름을 잊게 하여 주시고 진리가 있고 행함이 있는 기독교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난 세기에 활동한 R. A 토레이(R. A. Torrey)박사는 ‘근본주의’ 프로그램의 편집장이었다. 그의 메시지는 화이트필드의 주장과 흡사했으며 자기 스스로를 ‘성공장로감리침례교 교인(Episcopresbygationalaptist)’이라고 칭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던져준다. C. S. 루이스(C. S. Lewis)는 교파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유일하신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 앞이 아니라면 교파간 이견을 놓고 분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바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루는 교파문제도 내부적인 시각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즉 집안 사람들 간의 논쟁이라는 뜻이다.

교파제도의 역사
교파의 어원은 라틴어로 “명명하다”이다. 교파는 어떤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성경에서 교파를 만들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파는 기독교 역사를 돌아볼 때 교회구조나 교회조직의 매개체로써 동일한 신앙과 경험을 가지고 사역을 위해 노력할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역사적으로 교파는 교회, 자선사업, 선교단체와 교육기관 등에 관리감독, 연결성, 관련성, 구조와 조직의 역할을 감당했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세 갈래로 구분한다. 로마 천주교, 동방정교회, 그리고 개신교이다. 이 글을 통해 개신교의 전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개신교는 1517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마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의 만인성자교회 문 앞에 ‘95개의 논제’를 붙여놓았다. 우리는 기독교 내부적으로 교파가 3개 이상 심지어 수천수만 개의 교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각 교파 운동의 발전단계를 훑어 보자. 

초기교회: 초기교회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한 교회보다 훨씬 더 단결된 모습이었다. 특히 제4차, 제5차 공의회 이후 기독교인들은 더욱 하나로 단결했다. 서기 325년에 열린 니케아공의회(Nicaea)부터 451년에 개최된 칼케돈공의회(Chalcedon)까지 총 4번의 대규모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당시 주교들의 강력한 리더십과 조직력이 교회에 일체감을 주었다. 그러나 1054년에 동부와 서부에서 동방정교회(Orthodox)와 로마 천주교(Roman Catholic) 사이에 분열이 생기게 되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쌓여왔던 문제로 구체적으로 성상사용과 교황무오설에 대한 이견으로 인한 것이었다. 1517년에는 개신교(Protestantism)가 천주교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종교개혁: 1517년 개신교가 탄생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나무망치를 들고 서 있는 수도승을 발견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종교개혁을 시작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그가 바로 ‘95개의 논제’를 비텐베르크교회 문 앞에 붙인 마틴 루터이다. 그때부터 교파들이 하나 둘 독립하기 시작하였고 16세기 초 독일에서 교파들이 발전하고 있을 때 이웃국가 스위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는 마틴 루터와 행보를 함께했다. 그들은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구속의 본질 등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성찬문제에 있어서 의견대립이 생겨 각자의 노선을 걷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루터를 따르는 신도들과 츠빙글리를 따르는 신도, 스위스 재세례파(Anabaptism), 존 칼뱅의 신도, 기타 단체 등으로 교파분열이 가속화 되었다. 영국에서는 ‘제3의 길’이라는 단체가 발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모두가 알고 있는 영국국교회(Church of England)혹은 영국성공회(Anglicans)이다. 물론 이들은 기본적인 교리에 있어서는 큰 차이는 없지만 결정적인 세부사항에 대해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또한 그런 세부사항들로 인해 신흥 운동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신흥운동들이 증가됨에 따라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루터와 칼뱅의 추종자 필립 멜랑톤(Philip Melancthon)과 마르틴 부서(Martin Bucer)는 교파의 급증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하나됨을 외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권고했다. “우리 모두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고 하나의 보편적인 사도의 교회를 고백하는 니케아신조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었다.

17세기 교파분열의 가속화: 17세기에 시작된 청교도(Puritan)운동은 국면을 전환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을 부채질했다. 만약 새로운 운동이 16세기에 진행된 개신교개혁 기간에 시작했더라면 17세기에 이르러서 청교도가 교회를 정화시키려 함에 따라 설교와 기독교체험(혹은 이른바 청교도적 체험종교라 칭하기도 한다.)을 더욱 강조했을 것이다. 청교도(Purtian)나 분리주의자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단체들은 침례교(Baptists), 회중교회(Congregationalists), 장로교(Presbyterians), 퀘이커(Quakers)다. 사도들이 세운 교회는 신약시대부터 시작해 1054년까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성장했다. 즉 천주교는 자신들이 가던 길을 가고 동방정교회 역시 자신들만의 노선을 걸었다. 루터교와 개혁교회도 상이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갔고 성공회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또 성공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단체들도 각자의 노선을 택해 발전해나갔다. 

18세기: 대각성
대각성운동은 18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다. 감리교(Methodists)라고 칭하는 웨슬리교(Wesleyans) 역시 대각성운동 시기에 성장하였다. 당시 존 웨슬리와 찰리 웨슬리가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들은 만 차례가 넘는 설교를 하고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는 수 많은 찬송가를 만들었다. 존 웨슬리는 천재적인 조직가였으며 신학적 방법론(Method)를 강조하여 ‘메서디스트교회(감리교)’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19세기: 대부흥
19세기 초에는 여러 차례 부흥운동이 펼쳐졌다. 켄터키주의 바턴 스톤(Barton Stone)과 알렉산더캠벨(Alexander Campbell)이 이끈 케인 릿지(Cane Ridge)부흥은 부흥운동(Restoration Movement)의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는 이 운동을 계기로 탄생한 교파를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와 사도교회(Disciples of Christ)라고 부른다.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역시 이때 분리되어 나온 갱신운동이다. 이 운동으로 인해서 교파의 구조가 더욱 복잡해졌다. 모든 단체는 초창기 성결의 모습을 시도하였으며 회복운동을 통해 신약시대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들은 천주교, 루터교, 성공회, 개혁교와 출발선이 다르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모태는 순전한 것, 신약시대라고 주장했다.

21세기: 성령과 은사
21세기에 일어난 또 다른 운동은 바로 오순절운동(Pentecostals)이다. 오순절파 사람들은 그들의뿌리가 캔자스주 토피카(Topeka)라고 말한다(비슷한 움직임이 남가주 아주사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 교파는 어떤 교파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기독교계에서 또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빨리 성장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21세기에는 성결운동이 오순절운동으로 발전하였고 모든 단체들의 ‘특성’을 강조하여 불균형이 야기되었다. 즉 이견만을 강조하고 공생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교파의 특색: 로마 천주교는 성례와 전통을 강조하고 동방정교회는 예식과 신비함이 두드러진다. 루터교는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을 중요시하며 장로교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지한다. 성공회는 《성공회 기도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예배형식을 중요시한다. 침례교는 성경과 회심, 세례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고 퀘이커 교도들은 내면의 빛에 대해 호소하며, 감리교는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결운동은 경건함과 세속적인 삶을 지양하길 기대한다. 회복운동가는 신약의 교회에서부터 뿌리를 찾을 수 있고 오순절파는 성령의 능력과 표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렇게 많은 단체와 그들의 특징, 그리고 수많은 이견들이 존재하는데 에베소서 4장에서 말하는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니”라는 고백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나? 앞서 말한 단체들은 제각각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과 세계 곳곳에 수만 개 이상의 교파가 있다. 어떤 사람은 교파들을 정확히 알기 위한 연구를 하다가 포기하고 역사와 전통문제에 염증을 느끼기도 한다.

너무 많은 교파: 그러나 조지 화이트필드가 강조하고 지적한 것처럼 제1차 대각성운동은 20세기부터 유명세를 떨친 보편적 복음파가 내딛은 첫발이다. 20세기 초 리차드 니부어(H. Richard Niebuhr) 의 저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은 교파’는 확실한 문제점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교파제도는 전체적으로 실패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주류사상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교파제도가 분쟁을 야기하고 유해하기 때문에 죄라고 말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나뉘는 것, 특히 필요 없이 나뉘어 지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니부어의 ‘교파제도는 기독교의 도덕적 실패를 의미한다’라는 발언은 사회학적 차이와 모든 교파 내부사람들의 인정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교리의 차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신학적 차이: 사람들은 대게 신학적인 차이는 교파를 이해하고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학적인 문제에서 칼뱅주의나 알미니우스주의만이 각 교파의 성장을 다루는 유일한 시각이 아니다. 교리상의 차이점이 존재할 때는 서로가 맞추기 어렵다. 교파의 차이를 이해하는 비교적 좋은 방법은 누가 칼뱅주의자인지 혹은 알미니우스주의를 따르는 사람인지 물어보거나 전천년설을 따르는 사람이 누군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군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교회체제, 조직방식, 교회구조, 관리방식의 시각으로 우리의 다름을 바라보아야 한다.

교파의 체제: 장로교, 성공회, 침례교는 모두 각기 상황에 맞게 칼뱅주의를 받아 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지배구조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뿐만 아니라 알미니우스파 침례교, 알미니우스파 장로교가 아직 존재한다). 성공회(Anglicans)의 지배구조는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등급을 가진 구조다. 장로교는 장로교 회의(Synods) 혹은 총회(General assemblies)가 외부 혹은 교회 내부에서 교회의 구성원인 장로가 심의와 결정을 진행한다. 회중교회(Congregationalists)와 침례교(Baptists)는 모든 신도와 자원봉사자들이 예배를 강조하기 때문에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리더십을 구축했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교파 간 차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좋다. 

예전: 교파 간 차이와 성장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예배이다.  로마 천주교는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을 주장한다. 그러나 루터교의 주장은 그리스도가 빵과 잔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빵과 잔을 ‘에워싸고 덮고있다’고 주장한다. 또 장로교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루터가 묘사한 그런 방식은 아니라고 말한다. 또 침례교 교인들은 성찬예식이 예수님의 수난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퀘이커 교도들은 그 말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예식도 진행하지 않는다. 교파 간 이견이 교회조직, 예식, 성례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세례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손에 물을 적신 후 안수해야 하는 것이나? 물속에 데리고 들어가는 침례식이어야 하나? 몇 방울 혹은 소량의 물도 세례로 인정받을 수 있나? 우리가 교회조직, 사회운동, 신학적으로 중점을 두는 부분, 시스템, 예배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으로 서로 다름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같은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사람들로서 여전히 큰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회학적 시각: 사회학을 교파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미 3대 교회인 동방정교회(동방교), 로마교회(로마 천주교), 영국교회(성공회)에 대한 관찰을 진행했다. 기타 교파들은 상술한 교회에서 분리된 신교파이다. 루터교는 로마 천주교에서 분리되었고 침례교는 영국 국교회에서 분리되어 성장해 왔다. 또한 이러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이렇게 떨어져 나온 단체와 갱신운동이 교파구조로 바뀔 때 성령의 역사하심은 퇴색되었다. 그들이 ‘버려진 아이’와 같다가 사회에서 ‘책임을 질줄 아는 교파’로 변모했을 때 이들이 중점을 두는 부분이 조직구조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때 관료주의 경향이 나타나면서 천천히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멀어지게 된 것이다.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은 이미 조직구조(기독교사역을 이끄는 필수 매체)와 성령 사이에 일종의 경쟁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성령이나 조직구조 중 한가지만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한 쪽은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는 17세기로 돌아가 교파제도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퓨리터니즘과 경건주의 운동도 살펴보았다. 이러한 갱신운동을 하는 과정에 새로운 교파가 탄생했고 이는 개신교 교파가 급증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들 교파는 마치 더욱 순전하고 신약시대의 기독교인들과 같은 곳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인들의 눈에 비친 교파제도: 주지하다시피 교파제도는 복음주의처럼 기본적으로 미국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교파라는 것이 미국에서만 성장하고 늘어날 수 있어서가 아니다. 미국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여러 교파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어 더욱 커지고 번창하여서 모체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지금 미국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교파들이 존재한다. 교파제는 복음주의와 같다 미국에서 발전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불행한 것은(나는 지금 매우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교파제도의 발전이 미국의 기독교화가 아닌 기독교의 미국화를 야기시켰다는 점이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으로 교파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21세기를 이끌 기독교 운동의 틀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18세기 미국독립전쟁 시기에는 교파가 세 개 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중교회나 장로교, 성공회 교인이었다. 당시에 이 3대 교파에 다니는 교인 수가 전체 인구수의 75%를 차지했다.

그러나 1850년에 이르러 ‘3대 교파’의 신도가 전체 인구 비율에서 20%에도 못 미쳤다. 이러는 와중에 두 개의 신흥교파가 탄생했다. 바로 감리교와 침례교이다. 특히 남부와 서부 지역에서 이 두 교파의 성장은 기타 단체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독립전쟁 시기에 감리교가 탄생했을 때 교인들의 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 내전 시기에 이르렀을 때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교파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18, 19, 20세기에 미국에 온 다른 민족이나 이민자들이 가지고 온 교파를 계산에 넣지도 않은 것이다.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의 교회는 조지 릴(George Lyle)과 앤드류 브라이언(Andrew Bryan)에 의해 조지아주 서배나에서 시작되었다. 자유, 성령, 소망은 그들의 찬양과 설교의 특색이었다. 그들의 사역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교회와 이민 교회에서 위대한 운동을 이끌어 내었고 그 가운데 많은 교회가 비영어 설교라는 특색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 특징은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졌다.

20세기에 일어난 오순절운동은 교인 수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교파 가운데서도 가장 우위를 차지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드리는 찬양 중 참여성을 중시하는 오순절파의 곡이 많다. 1906년 아주사 거리에서 탄생한 보잘 것 없는 단체가 이제 전 세계 각지로 뻗어나간 것이다. 한 세기 전 오순절파와 오순절운동이 탄생했을 때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내쳐졌다. 윌리엄 시무어(William Seymour) 는 오순절파가 지금처럼 이렇게 성장하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재 미국에서 또 전 세계적으로 교인 수가 증가하는 교파는 오순절파 특히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의 탄생: 그러나 모두가 아는 것처럼 20세기에 겪었던 분열의 경험은 복음주의 탄생을 위한 초석이 되었다. 이제 미국복음주의라고 불리는 운동으로 초점을 돌려보고자 한다.

자유주의의 대두: 20세기의 특징은 사회와 문화의 동요, 대규모 이민, 도시발전과 산업화 경제의 변화이다. 당시 사회와 문화 각 영역에서 모두 이 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고 실천하고 믿어왔던 기독교 신앙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화와 여전히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시작된 계몽운동과 진화론 등의 사상이 자유주의를 탄생시켰으며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미국에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의 흐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프리드리히 쉴라이에르하머(Friedrich Schleiermacher), 호레이스 부시넬(Horace Buschnell), 월터 라우센부시(Walter Rauschenbusch)이다. 쉴라이에르하머는 그의 저서 《종교론-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에게 보내는(On Religion: Speeches to Its cultured Despisers)》 을 통해 계몽운동이 펼쳐지는 문화에서 기독교가 다시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부르짖으며 기독교 신앙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 부시넬은 신도들을 양육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지 회심하는 것에 두면 안 된다고 제안했다. 라우센부시는 20세기 초에 활동한 침례교 신학자이다. 그는 복음의 사회적 응용과 간증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점차적으로 복음 그 자체를 대신해버렸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회복음’이 탄생했다.

21세기 초에 영향력을 펼쳤던 세 명의 리더는 기독교 신앙이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의 배경 속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 기독교 신앙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학술저서는 해리 에머슨 포스딕(Harry Emerson Fosdick),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와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를 통해 대중화되었다. 당시 뉴욕과 보스턴의 중요한 강대상은 모두 이 세 목회자의 차지였다. 그들의 설교는 명확한 내용, 자신감 있는 어투, 선지자와 같은 품격으로 회를 거듭할수록 큰 호응을 얻었다. 1922년에 포스딕이 한 설교에서 근본주의는 막을 내려야 할 때라고 호소하면서 “근본주의는 승리할 수 있을까?” 라고 묻자 회중들은 우렁찬 소리로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와 동료들은 자유주의가 교회 안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믿었다. 1926년에는 《기독교세기(The Christian Century)》의 편집장이 그들의 믿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러한 조류가 널리 퍼지자 교회도 신앙을 변화시켜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이는 단지 기독교가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도록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또 기독교가 다시 한번 대우를 받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반대로 기독교의 메시지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기독교 교리와 거리가 멀어져 버렸고 ‘위대한 전통’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들 사이에 자유주의적인 시각이 대두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일들 특히 기적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이성이 계시를 이기고 경험이 전통을 눌러버렸다. 이것은 자유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난 세기의 산물로만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모습들이 오늘날에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정통교파 기독교인의 도전을 받았다. 당시 자유주의의 강력한 대항마가 바로 장로교의 위대한 사상가 그레샴 메이첸(J. Gresham Machen)이었다. 메이첸은 1923년에 출판된 저서에서 자유주의는 기독교 형식의 또 다른 형식이 아니라고 말하며 기독교와 자유주의는 완전히 별개의 종교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저서는 대범한 문체와 정확한 표현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고 정통교파 사상의 부흥을 불러 일으켰다. 끊임없이 바뀌는 문화와 자유주의의 부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되었다.

메이첸은 자유주의는 그것을 지지하는 신도들을 교회에서 만나기는 하지만 기독교 형식의 일부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교라고 비판했다.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는 허구라는 말이다. 그의 주장은 리차드 니부어의 인정을 받았다. 니부어는 자유주의의 기본 메시지가 “분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빌렸으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죄가 없는 남자와 여자를 데리고 심판이 없는 나라를 간다.”라며 통렬한 비판을 했다.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든 사람이 메이첸 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을 더욱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러자 근본주의의 열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자유주의에 대한 반격은 메이천이 보여준 간결하고 논리적인 대응방식과 달랐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텍사스 토네이도’라는 별명을 가진 남부 근본주의자 프랭크 노리스(J. Frank Norris)다.

근본주의는 역사를 근간으로 하는 정통교파를 방어하기 위해 출발한 것으로 《근본주의》라는 책이름만 봐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영국의 사상가 에드윈 오르(J. Edwin Orr), 미국 남침례교의 무린스(E.Y. Mullins) 20세기 초의 유명한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지도자 등 많은 사람들이 제기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성경과 신학적 논거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노리스와 일부 사람들은 이 운동의 목표를 근본에서 ‘근본주의’로 바꾸었고 이로 인해 정통 교파운동과 방향이 달라지고 운동의 성질도 바뀌었다. 근본주의자들은 교파를 떠날 것을 호소하며 보수주의, 분리주의, 율법주의 교파로 변모해 갔다.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가 시작될 때 예언적 성격의 집회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노리스와 그의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믿고 있는 기독교 신앙 근본에 헌신할 것을 호소했다. 즉 성경의 진실과 무오성, 하나님의 신성, 동정녀와 독생자, 대속,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근본주의자들의 입김이 커질수록 그들이 믿고 있는 신앙의 리스트가 점점 더 길어졌고 시대론, 분리주의, 교파분리 등의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로 인해 이 운동은 교파와 분리되고 16세기에서부터 19세기까지 기독교를 이끌어 오던 중요한 조직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근본주의는 더욱 강경하고 엄격하며 고립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교파간 분열이 심화되었다. 교파의 분열은 전국에 만연하고 북부 장로교와 침례교가 가장 심각했다. 많은 장로교단체와 수천 수만 개의 독립 침례교회가 전국 각지에서 난립했고 성경교회(Bible Churches)와 기타 무교파 단체(Nondenominational Groups)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새로운 선교단체와 신학교가 생기자 새로운 네트워크(서로 연결되어 있는 비공식연합 시스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스템이 교파의 위치를 대신하자 조직구조의 필요성이 나타났다. 20세기초에 이러한 논쟁이 뜨거울 때 근본주의는 자신들의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갔다.

20세기 미국(그리고 영국)의 복음주의: 2차 세계대전 기간(1930년과 1940년 대)동안 많은 사람들은 근본주의가 자유주의처럼 곁길을 가가 시작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해롤드 오켄가(Herold Ockenga), 칼 헨리(Carl F. H. Henry)와 이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 역사에 기반을 둔 정통교파에 대한 새로운 헌신을 호소했다. 사람들은 이 운동을 ‘신복음주의’라고 명명했다. 이 운동은 부흥운동, 경건주의, 퓨러터니즘, 종교개혁과 어떤 부분에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칼 헨리는 1947년에 출판한 저서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을 통해 내부적으로 세 가지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기독교는 지식에 반하면 안 된다. 기독교 사상, 전통, 학술, 문화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2. 기독교인은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채 살 수 없다. 그리고 세상만 바라보고 살아서도 안 된다. 이 둘 사이에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3. 헨리는 복음주의 내부의 분리주의 모습에 대응하며 복음주의가 분리주의가 되어서는 안되고 낡은 틀에 매달려서도 안 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해롤드는 헨리의 저서를 평가하며 복음주의는 이미 신학적 감별능력을 잃어버렸다며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덜 중요한지 분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해롤드는 복음주의가 그리스도 신성의 중요성과 포커게임을 반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구분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헨리의 《복음주의자의 불편한 양심》에서 거론한 세 가지 논거를 바탕으로 시작된 신복음주의는 초교파를 주장한다. 복음을 중심으로 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놓치지 않는 정통교파이다. 이런 부르짖음은 영국의 존 스토트(John Stott), 파커(J.I. Packer), 부르스(F.F.Bruce)와 같은 인물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새로운 친밀단체: 교파를 초월한 복음 네트워크(Networks), 1942년에 창설된 전미복음주의협회는 창립초기 복음주의의 모든 구성원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전통교파에서 벗어나 효율성을 높이는 새로운 방식의 네트워킹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파 안에 머물러 있었지만 한쪽 발은 교파 내부에 한쪽 발은 바깥에 두는 형식을 취했다. 미국 남침례교를 포함한 대다수 교파단체들이 이러한 새로운 복음주의가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대각성과 대부흥 시기처럼 복음주의는 기본적으로 교파조직을 중심으로 일했으나 교파를 통해서 사역을 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었기 때문에 사역의 방식이 교파방식과 달랐다. 60년 동안 복음주의의 발전역사를 보면 데이비드 베빙톤(David Bebbington)이 네 가지로 묘사한 전통신앙(성경의 진실성, 복음의 독특성, 회심의 필요성, 사역과 선교의 중요성)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초교파운동, 특수목적의 단체(Robert Wuthnow의 말을 인용한 것) 및 네트워크를 맺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역도 인정한다(최소한 부분적으로 인정한다). 과거 60년대에는 함께 연합하는 새로운 형식의 네트워크가 주가 되었고 교파가 나서서 미국의 복음주의의 중심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구조조정의 길을 걷다
우드나우가 그의 저서《미국종교의 구조조정(The restructuring of American religion)》에서 강조한 것처럼 초교파운동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종교개혁이래 가장 큰 변혁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등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반대로 보수주의, 복음주의, 온건주의, 자유주의 등 다른 네트워크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때문에 자유주의 성공회와 자유주의 감리회의 공통점이 자유주의 성공회와 보수주의 성공회보다 많을 정도였다. 마찬가지로 복음주의 침례교와 복음주의 장로교의 공통점이 자유주의 침례교와 복음주의 침례교 간 공통점보다 많았다. 이런 변화와 함께 미국 종교의 구조조정은 수직구조가 아닌 수평구조에서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기독교 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졌으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구조가 특히 과거 4세기 동안 이어져온 교파 발전의 구조와 달랐다.

우드나우는 특수목적 단체의 부상도 발견했다. 이런 단체는 파라처치(Parachurch)라고 불렸는데 수평적구조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교회단체, 복음과 선교단체, 구호단체, 사회단체, 출판사, 방송국, 학교, 대학, 신학교가 함께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미국 복음주의협회(NAE)의 목록을 살펴보면 이런 단체들이 기본적으로 NAE의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단체들은 세계복음주의연맹이라는 비교적 느슨한 구조의 조직과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무디와 그래이엄의 영향
제1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을 때처럼 조지 화이트필드가 초교파운동의 첫발을 내딛었다면 무디(D.L. Moody)는 이 운동을 널리 확산시켰다. 무디는 활동가였다. 복음전파를 위해 단독으로 진행하는 모든 사역을 되도록 모든 방향에서 연계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20세기에 무디가 시작한 운동은 그레이엄을 통해 급속히 발전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인 교파구조를 뛰어넘는 기관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러한 특수목적의 단체가 부상했고 그레이엄의 축복과 자유주의 쇠퇴, 주요 교파들의 탈전통 러쉬가 이어짐에 따라 새로운 교파가 아닌 새로운 운동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복음파 인사들도 이를 위해 열정을 쏟아 부었다(기독청년회(Youth of Christ), 세계선명회(World Vision), 청년생활리더(Youth of Christ),영 라이프(Young Life), 대학생 선교회(Campus Crusade), 네비게이토(Navigators), 감옥선교회(Prison Fellowship), 크리스천 투데이(Christianity Today) 등 수 만개의 교회기관이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릭 워렌(Rick Warren), 척 콜슨(Chuck Colson), 칼 헨리(Karl Henry), 해롤드 린셀(Harold Lindsell)과 그레이엄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들은 지금 혹은 예전에 미국 남침례교의 교인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미국 남침례교회 교인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챈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들은 참여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 혹은 사회네트워크 출신이며 어떤 교파 출신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마틴 루터는 루터교의 대표인물, 존 녹스는 장로교 대표인물, 토마스 크랜머는 성공회 대표인물, 존 웨슬리는 감리교 대표인물, 윌리엄 캐리는 침례교 대표인물로 알고 있다. 기독교의 리더들은 보통 그들의 교파 신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서 기독교 리더(적어도 복음주의라는 울타리 안에서)들은 특정 교회나 기관 신분과 관련성이 더 깊어졌다. 어쩌면 우드나우의 말을 빌어 이러한 조직을 ‘특수목적단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교파의 중요성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 놓았다.

네트워크, 교파와 교회론
복음주의 운동은 일반적으로 풀뿌리 운동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비슷한 신앙과 비슷한 기관의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복음주의 신학은 성경의 진실성, 성서 해석학, 계시론과 복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와 관련한 많은 사역을 하지만 대부분의 복음주의 신학은 교회론을 잘 해석하지 못했다. 이런 약점은 교회간 또는 교파 내부와 외부의 교회를 어떻게 네트워킹 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개념을 내어놓지 못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21세기 초 10년 동안 교리의 핵심을 교회론에 맞추게 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다.

앞서 25년 동안 아주 미묘한 변화들이 발생했는데 네트워크가 더 이상 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는 캘리포니아 갈보리교회(Calvary Chapel)에서 시작되었고 이곳을 통해 예수그리스도 운동(Jesus Movement)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뒤이어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가 사역하는 윌로우 크릭교회(Willow Creek)와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교회(Saddleback)까지 전파되었다. 이들은 다음세대까지 영향력을 미쳐 우리가 지금 익숙하게 알고 있는 네트워크들을 탄생시켰다(사도행전 29장(Act29). 이머전트 빌리지(The Emergent Village), 하나님을 향한 갈망(Desiring God), 나인 막스(Nine Marks),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 함께하는 복음 함께하는 입양(Together for the Gospel, and together for adoption) 등. 

현재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교파나 교파제도에 대한 견해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55년 헤르베르그는 그의 저서이자 고전인 《프로테스탄트, 카톨릭교인, 유대인(Protestant Catholic Jew)》에서 교회에 나오는 미국인 가운데 일생 동안 교파를 바꿀 가능성은 25%로 내다보았다. 1985년에는 이 수치가 약 33%까지 증가했다가 2009년에 이르자 교파를 바꿀 가능 성이 있는 사람의 확률이 60%까지 늘어났다. 이것은 21세기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생에 한번 이상 교파를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교파의 충성도와 변화, 쇠퇴도 중요하지만 교파가 아닌 특수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단체나 네트워크의 교인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교파 간 경쟁과 지리적 위치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교파의 중요성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바꾸어 교파의 다양성에 많은 도전을 주었다. 교파 간 경쟁은 이미 변했다. 우리는 새롭고 다원화된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리와 위치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과거 100년 동안 새로운 단체와 운동들이 서부를 향해 끝없이 발전했다. 겉으로 봤을 때 미국의단체와 교파들이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화의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지리적 위치가 바뀌어도 지역적 대표성과 교파의 영향은 유지되고 바뀌지 않았다. 로마 천주교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루터교는 중서부와 북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고 침례교는 남부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졌으며 네덜란드 개혁교는 중서부에서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리적 위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와 지방의 특색이었다. 대도시와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종교의 중요성에 대해 갖는 이해가 매우 달랐다. 대형 교회는 비교적 큰 도시에서 왕성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사실은 교회를 간다고 말하는 미국인 가운데 12%만이 실제로 교회 안에 있다.

변두리에 위치한 대형교회가 미국 기독교의 모습을 만들다
이런 교회들은 보통 초교파적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몇 세대 전과 비교할 때 교파라는 표시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보스톤대학의 사회학자 낸시 애머먼(Nancy Ammerman)이 발견한 현상은 서부와 동북부 지역의 32%의 사람들만 교파 신분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고 남부의 70%의 사람들은 교파신분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는 더욱 컸다. 84%의 시골 사람들은 교파 신분을 매우 중시했으나 대도시와대도시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 사람들만 교파 신분을 중요하다고 보았다. 지역과 관련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대부분의 교회가 인구가 많은 대도시나 교외 지역이 아니라 시골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다른 변화나 도전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 외에도 인구이동과 교파의 중요성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구의 비율과 그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동부와 서부의 대도시지역이 더 그렇다.


주류에서 비주류까지

대부분의 주류 교파도 서서히 방향성을 잃었다. 어떤 교파는 역사적 전승을 끊어버렸고 심각하게는 성경과 중요한 기독교 전통마저 끊어버렸다. 어떤 교파는 초교파적일 뿐만 아니라 포스트 크리스천의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들이 주로 주장하는 것은 포용성과 보편주의다. 성문제나 다른 종교간의 영성문제도 마찬가지다. 2009년 1월 갤럽여론조사에서 1955년부터 매년 조사한 수치를 발표했다. 이 기간 동안 발생한 수치상의 변화는 뚜렷했다. 2009년 1월에 조사에 응답한 사람 가운데 67%가 종교와 교파의 신분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정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 가운데 74%의 사람들이 이에 동의했고, 그 외 28%의 미국인은 어느 교파 소속이냐라는 문제는 “지나간 과거가 되었다” 라고 대답했다. 이와 비교할 때 1959년에는 69%의 미국인들이 교파 신분과 종교의 영향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교파의 영향이 약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67%의 사람들과 뚜렷한 대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파제도와 복음주의: 미래의 문제에 관해서
그렇다면 교파제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비록 교파제도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지만 교파와 그 구조는 여전히 중요한 존재이다. 앞서 야로슬라프 펠리칸(Jaroslav Pelikan)의 저서 《구조와 성령(Structure and Spirit)》의 내용을 여러 번 인용한바 있다. 그는 시종 기독교가 구조적으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조에만 집중을 하면 균형을 잃고 관료주의에 쉽게 빠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성령만을 강조하는 등 다른 한쪽으로 치우쳐도 조직적이지 않고 구조적이지도 않은 기독교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다원화된 환경 속에서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미래의 교파제도나 교파구조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파신념과 협력

21세기에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교파를 초월했다. 네트워크는 우드나우가 묘사한 것과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짧은 시간 동안 네트워크는 이미 교파를 대체하고 있고 이것이21세기 기독교세계에서 가장 중대한 변화이다. 나는 앞으로도 교파가 특히 미국 남침례교가 자신의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교파는 그들의 성경, 복음 그리고 전통적인 신념으로 네트워킹하여 외딴 섬으로부터 나와 친밀한 단체와 네트워크를 통해 협력을 도모하며 끊임없이 바뀌는 전 세계적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협력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교파는 더 이상 네트워크나 다른 교파들을 자신의 경쟁상대로 보지 않고 다른 특수목적의 단체와 협력하며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한다. 나는 이 방면에서 내 생각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 남침례교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본다. 성경과 복음에 대한 신념 그리고 혐력의 정신과 이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활력이 넘치고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념과 협력, 경계와 협력, 구조와 성령의 사역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또한 이들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하거나 어느 한쪽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적 시각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 나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기회 속에 도전과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앞에 희망이 가득한 미래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세속주의, 무신론, 신자유주의와 근본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미국 기독교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나 젊은 사람들이 이신론에 빠져있다거나 복음주의가 사면초가라는 소식이 들리면 힘이 빠지고 방향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절망의 길에서 벗어나 희망의 길을 걸어야 할 때라는 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을 탄생시킨 전통과 중요한 특색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기독교의 신앙을 찾아 서반구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세계화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이다. 1900년도에는 전 세계 80%의 크리스천이 유럽과 미주에 거주했다. 그러나 2000년인 지금 전 세계 60%의 크리스천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 있다. 이것은 불가사의한 역사적 변화이다.

따라서 이제 미국 안에서 일어나는 교파간 분쟁에서 눈길을 떼어야지만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전 세계에서 어떠한 역사를 행하시는지 볼 수가 있다. 20세기에는 아프리카가 큰 변화를 경험했다. 크리스천 비율이 1900년도의 10%에서 2000년도에는 46%까지 증가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아프리카의 크리스천 수는 이미 미국의 인구를 넘어섰다.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기독교인임을 밝힌 사람이 천 만 명에서 3억 6천만명까지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2025년이 되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아프리카의 크리스천 인구가 6억 4000만 명, 라틴 아메리카의 크리스천 인구는 6억 4000만 명, 아시아의 크리스천 인구는 5억 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전형적인 크리스천의 표준이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에 사는 남자가 아니라 나이지리아 혹은 브라질의 한 시골마을에 사는 부녀자가 될 것이다.

인구의 증가이건 기독교 중심의 위치이건 간에 변화는 항상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와 비슷한 모습이 현재 미국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미국 어느 지역에서건 교파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것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침례교의 교회 역시 변화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영은 전 세계로 운행하시고 계신다. 우리는 낡은 관점이 아닌 새로운 관점과 방식, 또 새로운 눈으로 이 나라와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계몽운동과 포스트 계몽운동 문제로 논쟁을 이어나갈 때 아프리카에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은 사악한 영과 이슬람교로부터 오는 영적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들이 처한 세상은 당신이 알고 있거나 경험한 그 어떠한 곳보다 더 사도행전 시대의 기독교 같을 것이다.

희망과 재건을 향해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 있다. 우리가 투쟁해야 할 상대는 기독교 안에 있는 형제자매가 아니라 사악한 마귀, 세속주의 그리고 불신이다. 우리가 각 교파의 특색이 된 문제로 내부 논쟁을 이어가게 된다면 기독교 운동 안에서의 하나 됨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선교의 중요한 부분도 놓치게 될 것이다. 지금 미국 남침례교와 복음주의 단체들에게 필요한 것은 헌신과 성경 말씀과 일치된 삶을 살기 원하는 성실한 기독교이다. 세대를 초월하고 이 땅을 초월하며 민족을 초월하는 운동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교파 간 특색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모두가 복음의 공통성에 헌신하기를 바란다.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파의 특색에 앞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헌신에는 하나님 말씀의 주권과 신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진심으로 삼위일체와 복음의 독특성, 성령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만 구속 받을 수 있다는 점, 교회의 중요성,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과 디아스포라, 그리스도 재림의 희망, 생명과 가정의 거룩함 등을 진심으로 믿는 것이다. 21세기의 교회는 서로의 다른 점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로 중요한 문제에서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다른 세대로 이루어진 단체 혹은 다민족 단체와 네트워크의 기회를 갖고 그들이 귀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교파에 대한 충성심을 호소하다: 내가 제일 먼저 제기했던 문제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우리는 교파와 교파의 특색(특히 미국 남침례교)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나는 여전히 교파의 존재가 유익하다고 여긴다. 지도성, 지식성, 네트워크, 응집력이 있어 꼭 필요하다고 본다. 가령 당신이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것보다 그들이 자라서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되면 세례를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침례교 신도가 아니라 장로교 신도들과 더 잘 맞을 것이다. 또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 여긴다면 재세례교(Anabaptists)나 메노파(Mennonites)신도와 잘 맞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공통된 신앙과 관습 속에서 귀속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의 구체적인 표현 속에서 나타나는 이차적인 문제를 소홀히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문제도 이차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것은 활력이 넘치는 정통모델이다. 전통의 계승은 반드시회복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것은 교회가 가진 역사적인 전통으로 니케아에서부터 칼케돈까지, 어거스틴부터 버나드까지, 루터부터 칼뱅, 웨슬리, 겅건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또 대부흥과 제임스 파커(J.I. Packer), 톰 오든(Thom Oden)까지 모두가 ‘유일한 신앙’이라 고백한 전통이며 지금까지도 각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믿어오고 있다.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실하게 다시 헌신하는 것은 니케아 신조에서 말하는 기독교 신앙(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21세기는 변화무쌍한 시대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교회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위해 다시 헌신해야 한다. 헌신을 위해서는 바른 품성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범사에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사랑으로 서로 감싸주고 평화로 하나되며 성령님께서 주신 하나된 마음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가 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는다. 아울러 세상을 보는 눈도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의 종족간 화합도 포함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의 말씀처럼 각 나라와 민족, 열방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기다린다.

삼위일체를 믿는 크리스천, 복음이 중심이 된 선교, 교회 그리고 교파제도의 미래
그렇다면 교파는 여전히 중요한 것인가? 그렇다! 나는 교파가 확실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그 중요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여긴다. 단 조건은 성경과 정통성이 서로 이어졌을 때이다. 우리에게는 신념과 한계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협력하는 마음과 네트워크도 중요하다. 교파의 전승과 특색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더 필요한 것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루트이다. 

우리는 서로 존중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차적으로 중요한 문제에서 신념이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사역해 나가야 한다. 세상에서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한다는 공통된 사명을 위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로 중요한 신학적 문제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형제자매들과 손을 잡고 협력하여 함께 사역을 할 필요성이 있다. 협력을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쌓여있는 편협함을 버려야 한다. 특히 사회활동, 문화커넥션, 삼위일체를 믿는 모든 기독교인의 공공영역(Public square)과 관련한 문제에서 종교의 자유, 혼인, 성, 생명의 시작과 끝 등의 문제에서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우리는 다른 교파사람들과도 복음을 중심으로 복음전파나 선교사역을 합심하여 진행할 수 있다.그러나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모여야 한다. 그 사람들은 신앙적으로 중요한 문제에서 같은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며 우리와 같은 시스템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모였을 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거나 우리가 하는 사역을 감독하고 연계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나는 이 부분을 전적으로 믿는다.) 혹은 이것이 정말일 때 (나는 진실이라고 믿는다.) 교파라는 시스템(우리가 묘사한 특징을 반영한 것이며 신도로 구성된 단체들의 사역을 연계한 것이다.) 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미국 남침례회는 가장 희망적인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신선한 바람을 보내주시리라 믿는다. 우리의 신학적 신념은 물론이고 복음과 선교사역도 더욱 새로워지고 교육과 사역에 부흥을 가져다 주실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서로 사랑과 겸손함으로 하나가 되고 진실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침례교 이외의 다른 교파에도 새로운 생명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풍성한 교리와 신념 그리고 용기를 가진 정통신앙에 헌신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또 유명한 믿음의 리더십들이 본을 보인 것처럼 세상 앞에서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참된 신앙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특히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믿음의 변두리에 서있는 서방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복음, 교회, 성경의 진실성을 위해 새롭게 헌신하게 하시고 이러한 헌신이 복음주의와 다른 교파(특히 미국 남침례교) 가운데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하여 전 세계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로워지고 새롭게 협력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이제는 절망에서 희망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하자. 우리 함께 노력하여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역을 통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자.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키자. 교파 간 협력의 네트워크가 현실화되어 우리 교파를 위해 열심을 다하고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해서 위대한 하나님께서 영원히 영광 받으실 수 있도록 하자. 





출처 | 《敎會》 2014년 5월, 3호(통권 47호)
번역 | emily moon . 본지 번역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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