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夜鄜州月,闺中只独看。遥憐小兒女,未解忆长安。
香雾雲鬟湿,清辉玉臂寒。何时倚虚幌,雙照淚痕乾。
오늘 밤 부주에 뜬 달
규중에서 혼자서 바라보고 있겠지
멀리 가엾은 어린 것들
장안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 알 리 없겠지
향기로운 밤안개에 구름 같은 머리카락이 젖고
맑은 달빛 아래 옥 같은 팔은 시리울 터
어느 때나 달빛 비치는 휘장에 기대어
함께 달빛 아래 눈물 자국 말릴까?
1 鄜州(부주) - 오늘날 섬서성 부현(鄜縣) 일대. 안록산 난을 피하여 두보의 가족들이 잠시 머물던 곳이다.
2 閨中(규중) - 일반적으로는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규중에 거처하는 사람, 곧 두보의 아내를 가리킨다. 只独看(지독간) - 그저 홀로 달을 바라보다.
3 遥憐(요련) - 멀리서 가여워하다. 小兒女(소아녀) - 어린 자식들. 이 구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장안에서 두보가 부주에 있는 어린 자식들을 가여워한다는 말이다.
4 未解(미해) - 이해하지 못하다. 忆长安(억장안) - 장안을 그리워하다. 이 구절은 어린 아이들이 아직은 철이 없어 멀리 장안에 있는 남편을 그리워하는 어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5 香雾(향무) - 향기로운 안개. 밤안개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雲鬟(운환) - 구름처럼 말아 올린 쪽진 머리.
6 清辉(청휘) - 맑은 달빛. 玉臂(옥비) - 옥처럼 하얀 팔. [향무(香霧)2구]는 달빛 아래에서 오래토록 서성이며 장안의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부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묘사한 것이다.
7 虚幌(허황) - 달빛이 비치는 투명한 휘장.
8 雙照(쌍조) - 함께 달빛을 쐬다. 淚痕乾(누흔건) - 눈물 자국이 마르다.
천보 14년(755) 11월 9일, 안록산과 사사명이 황제의 어명을 받들어 양국충을 죽이는 것을 거짓 명분으로 삼아 15만 군사를 이끌고 동북방으로부터 남하하기 시작했다. 당시 당 왕조는 병력을 서북쪽에 집중하고 있어 중원 지역 수비는 허술하였으므로 안록산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곧바로 낙양을 점령하였다. 천보 15년(756) 정월, 안록산은 낙양에서 국호를 연(燕), 자신을 웅무황제(雄武皇帝)라 칭하였다. 이미 앞서 수차례 안록산의 난의 조짐을 서술하였던 두보는 당시 봉선(奉先)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전쟁의 판도가 어렵게 되자 두보는 가족들을 데리고 백수(白水)로 이주하여 당시 백수현위를 지내던 외삼촌 집에 기거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안록산의 군대에 의해 동관(潼關)이 함락되면서 백수도 적의 수중에 들어갔으므로 두보는 가족을 이끌고 북쪽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다. 일 년 뒤에 쓴 <팽아행>이란 작품에는 당시의 고생이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옛날 피난 시절을 생각하니
북으로 가며 험난한 곳을 지났었네
밤 깊은 팽아성의 길
달은 백수산을 비추고 있었지
식구들 오랜 시간을 걷다보니
사람을 만나도 얼굴 부끄러웠다네
새들이 들쭉날쭉 우는 골짜기에는
행인들 돌아오는 것도 보이지 않았네
철없는 딸은 배고프다 소리치니
울음소리 호랑이 들을까 두려워
끌어안고 입을 막았더니
몸을 비틀며 성을 내고 소리를 질렀네
어린 아들은 철이 좀 든 것인 양
쓴 오얏이나마 찾아서 먹었다네
열흘 동안 반은 소나기가 내려
진흙탕 길에서 서로 이끌어주었다네
비를 막아줄 것이 아무 것도 없이
미끄러운 길에서 옷은 차갑기만 했지
어떤 때는 너무도 힘이 들어
종일토록 겨우 몇 리를 갈 수 있을 뿐이었다네
들 과일로 식량을 충당하고
낮은 가지로 서까래를 삼았다네
(후략)
두보 가족은 천신만고 끝에 부주에 도착하여 강촌(羌村)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가 강촌에 가족을 안돈시킬 무렵 천보 15년 7월 숙종이 영무[靈武, 지금의 영하(寧夏) 영무현]에서 즉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보는 가족들을 부주에 머무르게 하고 홀로 숙종의 행재소로 떠났다. 가을이 깊어가는 8월 무렵이었다. 하지만 연주(延州)에서 영무로 가는 도중 안록산의 반군에 붙잡혀 당시 이미 함락된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다행히 두보는 당시 지위가 높지 않았고, 명성이 크지 않았으므로 반군의 주목을 받지 않았으며, 다른 관리들처럼 낙양으로 압송되어 위직(僞職)을 강요받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위에 소개한 시 <월야>는 바로 이렇게 두보가 안록산의 반군에 포로로 잡혀 장안성에 연금되어 있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가족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장안성에서 홀로 바라보는 가을 달, 두보의 마음은 그 시린 달빛을 타고 멀리 부주의 가족들에게로 간다. 두보의 마음이 찾아간 그곳 부주의 강촌에는 배고프다 칭얼대는 아이들을 다독여 재우고 멀리 황제의 행재소로 떠난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며 그리움과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부인이 마당을 나와 서성이고 있다. 구름처럼 탐스런 아내의 머리칼에는 차가운 밤안개가 자욱하게 내리고 옥같이 하얀 팔에는 시린 달빛이 부서지고 있다. 얼마나 그리운 자태런가. 참으로 기나긴 힘겹고 어려운 시절을 함께 지나온 두보 부부의 부부애는 남달랐을 것이다. 언제 전쟁이 끝나고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달빛 휘영한 창가에서 아내의 마른 눈물 자국을 확인할 날이 올 것인가.
두보가 부주 강촌으로 가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지덕 2년(757) 가을 무렵이다. 이 시기 두보는 장안을 탈출해서 봉상(鳳翔)에 있던 숙종의 행재소로 가서 황제로부터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받았다. 하지만 정치적 파벌 싸움에 휘말려 황제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황제는 그를 내칠 심산으로 명을 내려 조정을 떠나 부주로 가서 가족을 만나게 했던 것이다. 난리 통에 가족과 헤어진 뒤 거의 일 년여 만에 돌아왔을 때의 극적인 상황은 <강촌(羌村)>에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험준한 붉은 구름이 서쪽에 일고
햇살은 평지에 내린다
사립문에 참새들 시끄럽나니
길손이 천릿길을 돌아왔음이라
처자식은 내가 살아 있음에 깜짝 놀랐다가
놀라움이 가시자 다시 눈물을 닦네
세상이 어지러워 떠돌게 되었으니
살아 돌아온 것 우연으로 이루었네
이웃 사람들 울타리에 가득하여
감탄하며 흐느끼기도 하네
밤이 깊어 다시 촛불을 잡고
마주 대하니 꿈인 듯 싶네
이 시의 마지막 두 구절은 <월야> 시의 마지막 두 구절에 대한 완벽한 대구이다. “언제나 달빛 비치는 휘장에 기대어 나란히 눈물 자국 마른 것을 달빛에 비춰보리오”라며 안타까워하던 시인은 마침내 “밤이 깊어 다시 촛불을 잡고 마주 대하니 꿈인 듯하다”고 재회의 벅찬 감동을 말하고 있다. ‘달빛’이 ‘촛불’로 바뀐 것뿐이다. 희미한 촛불 아래 서로의 얼굴에 남아 있는 눈물 자국을 닦아주는 두보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따사롭기 그지없다. 거의 같은 시기에 지은 유명한 <북정(北征)>에도 이 당시의 상황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한 해를 넘기고 초가집에 이르니
처자는 옷을 온 군데 기워 입었네
통곡소리에 솔바람 맴돌고
슬픈 샘물도 함께 나직이 흐느끼는데
평소에 귀여워했던 아이
얼굴빛이 눈보다 하얗고
아비를 보고는 등 돌리고 우는데
때가 잔뜩 낀 발엔 버선도 없구나
침상 앞의 두 어린 딸은
꿰매고 기워 겨우 무릎을 가렸네
(중략)
내 어찌 행낭 속에 비단이 없겠느냐
추위에 벌벌 떠는 너희를 구하리라
분과 눈썹먹 또한 보따리 풀고
따뜻한 이불도 늘어놓았더니
여윈 아내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고
철모르는 딸 머리를 스스로 빗네
엄마를 따라 못 하는 게 없어
아침 화장이라며 손가는 대로 찍어 바른다네
한참 붉은 분을 바르더니
어지럽게 눈썹을 굵다랗게 그렸네
살아 돌아와 어린 것들을 마주 대하니
배고픔과 갈증도 잊을 것만 같네
이것저것 물으며 다투어 수염을 잡아당기지만
누가 이런다고 화내며 꾸짖을 수 있겠는가
돌이켜 적에 갇혀 있을 때의 근심을 생각해 보며
뒤섞여 어지럽게 떠들어도 달게 받아들인다네
가장 없이 일 년여를 버텨온 두보 가족들의 궁상스런 분위기는 두보가 가져온 선물로 인해 금방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행복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화장품을 덕지덕지 얼굴에 바르고 두보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장난질 하는 아이들은 바로 <월야> 시에서 어미가 장안에 있는 아비를 그리는 심정도 헤아리지 못한다고 했던 그 철부지 아이들이다.
이렇게 만난 두보 가족은 이후로는 다시 헤어지지 않았다(사천 성도로부터 친구 엄무를 전송하러 면주로 갔다가 전란에 막혀 가을 한철을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 적은 있었지만, 금새 다시 돌아와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사천을 떠돌았다). 계속된 전란 속에서 두보 가족은 보다 안정된 삶의 조건들을 찾아 계속 이곳저곳으로 떠돌 때에도 항상 함께였다. 부주 강촌에서 장안으로, 다시 장안에서 화주로, 다시 화주에서 진주로, 다시 진주에서 동곡으로, 동곡에서 마침내 성도 초당으로 이주할 때까지 늘 함께였다. 상원 원년(760) 성도 완화계에 초당을 짓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시기에 지은 <강촌(江村)>에는 두보 가족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짧지만 인상 깊게 묘사되고 있다.
맑은 강이 한번 굽어 마을을 안고 흐르나니
긴 여름날 강촌에는 일마다 그윽하구나
저절로 왔다갔다 하는 것은 처마밑의 제비요
서로 살갑게 친근한 것은 강위의 갈매기로다
늙은 아내는 종이 위에 장기판을 그리고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시 바늘을 만드네
병 많은 몸 오직 필요한 것은 약 몇 가지러니
미천한 몸이 이것 밖에 또 무엇을 구하랴
농사일이 한가로워진 여름날 종이 위에 장기판을 그려서 남편을 초청하는 늙은 아내가 바로 <월야>의 달빛 속에 서있던 구름 같은 머리칼의 아름다운 부인이다. <월야>의 철부지 아들도 이젠 제법 커서 제 스스로 바늘을 두드려서 낚시 바늘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처마 밑을 수시로 드나드는 제비들은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의 모습이요, 물가에서 서로 서로 살갑게 친근한 갈매기는 바로 두보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다. 장기판을 다 그린 부인이 방금 낮잠에서 깨어나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을 부른다. 남편이 몸을 일으켜 부인이 앉아 있는 물가 정자 쪽으로 나가면서 웅얼거린다.
“내기 장기나 해서 마누라한테 술이나 한 잔 얻어 먹어볼까.......”
김성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