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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  통권 149호  필자 : 왕빈  |  조회 : 2803   프린트   이메일 
[선교나침반]
파리든, 여우든, 호랑이든 뭐든지 다 잡는다

‘권불십년(權不十年 · 어떠한 권력도 10년을 넘지 못함)’, ‘의법치국(依法治國 · 법에 따른 국가통치)’, ‘반부패투쟁을 통한 파벌정치 종식과 권력의 고도 집중화‘. 2015년을 목전에 둔 중국 정치를 보면서 연상되는 단상이다.

1989년 6·4 천안문 사태로 장쩌민(江澤民)을 중심으로 한 제3세대 지도부가 등장한 이후 ‘상하이방(상하이 근무 경력이 있는 정치세력)’, ‘태자당(혁명 원로나 고위 간부 중심 세력)’,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출신 세력)’, ‘석유방(에너지·석유업계 세력)’ 등 파벌 정치가 굳건히 자리매김해 왔다. 또 전통적으로 인치가 국가권력의 통치이념 및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12년 11월 제18기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가 확립되면서 이 같은 공식은 깨어질 기미를 보였다.

당 대회가 끝난 지 불과 18일 만에 전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周永康, 석유방과 쓰촨방의 좌장)의 최측근인 리춘청(李春城) 쓰촨(四川)성 부서기가 썅규(雙規) 처분을 받으면서 저우가 최종 타깃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분분했다. 쌍규란 당원자격을 박탈하고 모든 직책에서 면직시키는 공산당 기율위원회의 결정을 말하는데 그 이후엔 공안당국에 의해 사법처리 수순을 밟게 된다. 이밖에도 1년여 동안 쓰촨성에 남아있던 저우 충성파들과 에너지 및 석유업계 라인이 줄줄이 조사를 받고 낙마했다.

시진핑은 집권 초기부터 “고위 부패 관료인 호랑이와 하위 부패 공무원인 파리를 함께 때려잡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올해는 ‘여우’까지 잡아야 한다고 했다. 여우란 부당이득을 취한 후 외국으로 도망간 부패한 공산당 간부들을 의미한다. 의법치국이 공식적으로는 등장한 것은 장쩌민 총서기 시절이던 1997년 제15기 당 대표대회에서다. 이후 후진타오 총서기 집권기에도 이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말뿐이지 실천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에서 강력한 반부패운동이 벌어지면서 ‘중국식 법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함께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지난 10월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8기 4중전회)에서 의법치국을 주제로 다양한 제도 장치들이 마련됐다.

2014년 의법치국의 절정은 아무래도 후진타오 총서기 시절 당 군사위원회 부주석이었던 쉬차이허우(徐才厚),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정법위원회 서기였던 저우융캉(周永康)에 대한 사법처리의 공식화와 더불어 현직인 당 통일전선공작부장이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2기 전국위원회 부주석인 링지화(令計劃)의 체포일 것이다. 이들에 대한 메가톤급 반부패 척결은 전 총칭시 당서기 보시라이(薄熙來)가 낙마에 이어 종신형을 선고받은 데서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중국 내부에 비교적 정통한 해외 언론매체 보쉰(博迅)은 1년 전부터 이들을 ‘신(新)4인방’이라고 명명하고 지난 2012년 의기투합해 정권 탈취를 기도했다고 보도해왔다. 의혹 보도의 요지는 신4인방이 보시라이와 링 부장을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시켜 시진핑 체제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한 뒤 장쩌민의 권력까지 제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 그러나 장 전 국가주석이 이들의 움직임을 먼저 간파하고 시진핑 등과 힘을 합해 계획을 분쇄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진위 여부를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의혹 대상자 4명이 현재 모두 실각했다는 점에서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없어 보인다. 중국전문가들도 보시라이 몰락 이후 쉬차이허우, 저우융캉, 링지화 등 신4인방 척결이 일정 시간을 두고 이뤄지겠지만 시진핑 체제 임기 중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 저우융캉과 링지화에 대한 이상 징후는 2년 전부터 감지됐다. 2012년 당 대표대회를 통해 정치국 상무위원 체제가 9명에서 7명으로 줄어들면서 정법위원회 책임자가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닌 정치국원의 권한과 역할로 대폭 축소됐다. 저우융캉이 과거 맡았던 정법위원회의 변화와 함께 각 지역의 정법위 책임자들이 핵심권력에서 배제됐다. 링지화도 정치국 상무위원은 물론 정치국원조차 되지 못했다.

그동안 적잖은 고위 관료들이 부정부패로 낙마했지만 대다수는 당-정-군보다는 상대적으로 권한이 약한 각급 인민대표대회 또는 인민정치협상회의 간부였다. 또 현직 보다는 전직이었다. 이 때문에 깃털만 건드리고 몸통은 건드리지 못한다는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각종 보도를 통해 드러난 신4인방의 부정부패 규모와 그 내용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링지화의 몰락은 예상됐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였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산시(山西)성 출신인 링 부장은 1979년 23살에 공청단에 들어간 뒤 중앙선전부장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1995년 당 중앙판공청에 진입해 중앙판공실 조사연구실 3조 책임자를 거쳐 조사연구실 주임, 중앙판공실 주임 등을 맡으며 실력자로 부상했다. 중앙판공실은 당 최고지도부와 당·정 산하 권력기관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중추기관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을 합친 기능을 갖고 있는 중앙판공청의 주임은 최고지도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실세 중 실세다.

하지만 그의 앞날에 적신호가 켜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2년 3월 그의 아들이 만취 상태로 페라리를 몰고 반라의 여성 2명과 광란의 질주를 벌이다 교통사고를 낸 것. 이후 링 부장이 이 사실을 은폐했다는 보도가 여기저기서 꾸준히 제기됐다. 그는 중국의 대표적 석탄산지인 산시성 출신 인맥을 말하는 ‘산시방’을 권력의 기반으로 두고 있다. 산시방은 광산소유주들과 결탁해 풍부한 광물자원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을 공유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청단 출신으로 후진타오의 복심으로 통했던 그가 시진핑 체제 출범과 함께 정치국 상무위원은 몰라도 정치국원조차 되지 못한 것은 그의 수명이 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12월 22일 당국이 링지화 부장에 대해 심각한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심각한 기율 위반은 고위 인사가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황이 있을 때 중국 언론이 흔히 쓰는 표현이다.
링 부장을 체포한 과정은 앞서 저우융캉을 잡아들인 과정과 꼭 닮았다. 사정 당국은 저우융캉을 본격적으로 처벌하기 전 그의 지지 세력으로 꼽혀온 ‘쓰촨방(四川幇)’과 ‘석유방(石油幇)’을 초토화했다. 중국에서 어떤 주요 인물이 낙마할 때는 주변 인물부터 깨끗이 정리한다. 사정 당국은 링 부장에 손을 대기 전 그의 지지기반인 산시성 출신 차관급 인사 5명을 포함해 20여 명을 체포했다. 지난 6월 링 부장의 둘째 형 링정처(令政策)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 부패혐의로 낙마했다.

지난 7월 셋째 링팡전(令方針)의 남편인 왕젠캉(王健康) 산시성 윈청(運城)시 부시장이 구금됐다. 그는 링팡전과 함께 부패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섯째 링완청(令完成)은 신화통신 기자를 하다가 2000년대 투자회사 대표로 변신했다. 일족의 재산을 관리하던 링완청은 사정 당국에 체포된 뒤 형 링지화가 뇌물로 받은 금품을 숨겨둔 산시성의 비밀장소를 자백했다. 보쉰에 따르면 들통 난 링지화의 뇌물은 황금·서화·골동품 등 트럭 6대 분량이나 된다. 그의 부인 구리핑(谷麗萍)도 자신이 운영하던 창업지원조직을 통해 거액의 뇌물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간첩 혐의로 체포된 CCTV의 유명 앵커 루이청강(芮成剛)과 불륜 관계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링지화의 몰락에 앞서 낙마한 저우융캉은 최악의 인사이자 최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다. 당은 지난 12월 5일 당적 박탈과 더불어 저우융캉에 대한 검찰 송치 결정을 내리며 그의 혐의를 뇌물수수, 직권남용, 매춘, 간통, 당과 국가의 기밀 누설 등이라고 적시해 눈길을 끌었다. 기밀 누설 혐의는 그 동안 나오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일각에선 최고 지도부의 축재 규모를 해외에 유출한 것을 일컫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저우융캉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자 중화권 매체는 ‘백계왕(百鷄王)의 몰락’이라 표현하고 그의 엽색 행각을 집중 보도했다.

백계왕은 100마리 암탉을 거느린 왕이라는 뜻. 저우융캉은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에 재직하던 시절부터 여성 400여 명과 동침하면서 이 같은 별명을 갖게 됐다고 한다. 당과 국가 기밀의 누설은 형법상 10년 이상 징역이 가능하며 뇌물수수는 사형까지도 가능하다. 실제로 2000년 청커제(成克杰)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과 2007년 정샤오위(鄭篠萸)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 국장이 뇌물수수로 사형이 집행됐다. 저우융캉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그의 가족과 측근들로부터 최소 900억위안(약 16조3000억원)의 자산을 당국이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평생 공직생활을 한 저우가 미국 미디어황제 루퍼트 머독 일가의 재산 135억 달러(약 15조1200억 원 · 2014년 미국 포브스 선정 기준)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긴 것이 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인터넷판은 지난 12월 10일, 저우의 행위를 반혁명분자의 행동으로 간주했다. 중국 정부의 의중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받는 인민일보가 저우를 반혁명분자로 규정하고 공산당 초기 배반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들춰낸 것은 그에 대해 사형 또는 사형 유예 등 무거운 형벌이 취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걸 시사한다. 저우는 1949년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비(非)정치적 이유로 기소되는 첫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저우에 대한 사법 처리는 중국이 집단지도체제가 아니라 사실상 시 주석 1인 지배체제를 강화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개연성이 크다.

한편 쉬차이허우 전 부주석이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기 시작한 지난 6월 이래 인민해방군 내에서 적발된 부패분자는 10여 명에 달한다. 지난 2000년 이후 14년간 5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중국군 부패의 몸통으로 불리는 쉬의 베이징 호화주택에서 1t 이상의 현금과 막대한 보물들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11월 21일 홍콩 봉황주간에 따르면 쉬차이허우가 중국의 각지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하이에서는 4살 된 그의 손자 이름으로 된 부동산이 최소한 4채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그의 개인 운전사도 뇌물을 중개하면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지난 3월 15일 그의 부인과 함께 사정 당국에 끌려간 그는 6월 30일 당적을 박탈당했다. 부하들의 승진 등을 대가로 막대한 뇌물을 받았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최근 반부패운동과 관련돼 유의미한 움직임이 있었다.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140여 곳의 최고 권력기관 모두에 기율위 인원을 파견, 상설 기구를 설치하기로 한 것. 이는 성역 없는 부패 척결은 물론 등잔 밑 부패도 모두 때려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천원칭(陳文淸)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는 “140여 곳의 중앙 1급 당과 국가기관 중 아직 기율위의 상주기구가 설치되지 않은 곳은 80여 곳”이라며 “여건이 성숙하는 대로 기율위 상주기구 설치를 하나씩 늘려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12월 11일에는 시진핑 총서기의 비서실 격인 중앙판공청을 비롯해 중앙조직부, 중앙선전부, 통일전선부, 국무원 판공청, 전국인민대표대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등 7대 기구에 기율위 상주기구 설치가 결정됐다. 이미 기율위 상주기구가 설치된 곳도 59곳에 이른다.

시진핑 체제의 반부패 투쟁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비서실 역할을 하는 중앙판공청까지 기율위의 상주를 허용한 것은 반부패에 대한 솔선수범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중앙기율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는 당 서열 6위인 왕치산 서기의 정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고지도부인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실제로 감찰대상에 포함될 지도 관심사다.


왕빈 | 중국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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