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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  통권 149호  필자 : 밝은뜰  |  조회 : 2521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죽을 마시다! 喝粥


학생 신분으로
대만에 단기선교를 갔을 때 우리 팀을 맞이한 교회에서 준비해준 요리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물에 귀한 오골계와 고수(香菜)만을 넣어 맛을 낸 것이 신기했다. 삼계탕의 국물 맛을 기대하던 우리 대부분은 국물을 한 입 떠먹고는 바로 뱉어버렸다. 혹자는 비누 맛이라고도 하는 그 맛은 도무지 목으로 넘길 수 없는 맛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몇 년 후 대륙에 첫 여행을 가서는 희한하게도 별 문제 없이 고수를 먹을 수 있었다. 그 다음 번에는 아예 그냥 씹어 먹어도 괜찮았다. 점점 국물 맛을 내는 그 맛을 알아가게 되었다. 나중에는 도삭면(刀削面)을 먹을 때 꼭 식초와 함께 고수를 넣어 먹게 되었다. 현지에 살면서 과학자에게서 이 고수가 피부를 좋게 한다고 들었다. 멜라닌 색소를 퍼뜨리는 데 도움을 주어서 까맣게 되기는 하지만.

중국선교사가 현지 문화에 적응할 때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 중에 하나가 음식이다. 어떤 분들은 위장이 제일 마지막에 적응한다고도 하셨다. 음식의 천국이라고도 하는 중국에서 제대로 된 음식은 맛도 보지 못하고 맥도날드와 KFC를 전전하거나 컵라면으로 때우고 여행을 마치는 사람들을 간혹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까웠다. 사역자들 가운데도 느리게 적응하는 위장 때문에 한국 음식만 찾아 먹다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참 아쉬운 일인 것 같다. 음식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기초가 된다. 그러한 음식에는 일상생활과 긴밀히 연결된 문화의 암호들이 많이 숨어있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일상적인 음식과 문화 사이에 암호들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왕멍(王蒙)의 단편소설 『坚硬的稀粥』(직역을 해본다면 단단한 묽은 죽’)에서 고영양의 서양식 아침식사를 시도했던 대식구가 결국 원래 늘 먹던 묽은 죽으로 돌아서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중국인들이 서양에 개방을 하면서 급속히 변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따라가려고 애쓰지만 중국 서민의 삶 속에 박혀있는 문화의 깊은 뿌리를 제거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느낌으로는 음식을 받아들이면서 문화도 몸에 입력하는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묽은 죽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살면서 죽이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을 많이 넣고 오래 끓인 중국의 죽은 말 그대로 묽다. 한국의 죽은 되고 빡빡하게 끓이지만 중국의 죽은 매우 묽기 때문에 씹을 것이 그렇게 없다. 죽만으로는 먹고 나서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어에서는 죽을 먹는다(吃粥)고 쓰지 않고 죽을 마신다(喝粥)고 쓴다. 죽은 짠 맛과 단 맛으로 크게 나뉘는데, 곡식, 야채, 오리알, 백합, 버섯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게다가 매우 싸다. 우리는 아파서 기운이 없을 때 죽을 찾는데, 중국에서는 매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 죽 전문점도 몇 개나 있고 그 종류는 수십 종에 이른다.   

첫 학기에는 전병(煎饼)에 중독되고, 두 번째 학기에는 나이차(奶茶)에 중독(?)되어 가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왕멍의 소설처럼 아침마다 내가 살던 아파트 아래에 있는 죽집에 들르게 되었다. 막 잠에서 깨어 다소 부스스한 상태로 나와 있는 사람들과 같이 죽을 한 잔 마시면서 여우티아오(油条)를 더우장(豆浆)에 찍어먹고 가게 되었다. 나의 위장도 어느덧 중국 사람과 같아졌던 것 같다. 

이어령은 그의 책 디지로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보를 정보만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음식과 함께 정보를 전달한다고 했다. 나 역시 음식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값을 매길 수 없는 정보를 전하는 일을 했다. 그러한 사역 덕분에 집으로 많은 지체들을 초대하게 되었는데 음식 솜씨가 좋지는 않아도 매 번 음식을 준비해서 나누었다. 학교 식당 밥에 질려있는 학생들에게는 이 보다 더 마음을 위로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마구 달려들어서 차려진 음식을 싹 먹어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늘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나도 지체들에게서 현지 음식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지체들도 나에게서 한국 음식을 하나하나 배워가면서-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은 모두 김밥을 아주 잘 만들게 되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나누고 가르치게 되었다. 점점 성장한 지체들은 스스로 새로운 친구들을 초청해 우리 집에 와서 음식을 만들어 먹이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 안의 교제를 나누곤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새해에는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보고 배우면서 성찬으로 영원한 십자가의 메시지를 우리 가슴에 새겨주신 예수님을 따라 사랑의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삶을 계획해도 좋을 것 같다.





밝은뜰 | 전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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